제2화 갓바위부처님의 부활
불비불명(不飛不鳴)
불비불명(不飛不鳴)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새는 새인데 3년이란 세월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때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莊王은 즉위 후 3년이란 세월을 밤낮 주색잡기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간(諫)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쳐한다는 포고령까지 선포하고서 말입니다..
그런데.. 한 신하가 죽음을 불사하고 장왕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내게 됩니다..
"폐하,, 언덕위에 새가 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무슨 새입니까??"
"3년을 날지 않았어도 단숨에 하늘 꼭대기에 이를 것이며
3년을 울지 않았어도 한번 울기 시작하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만 물러가거라.."
이 일이 있은 후.. 또 다른 신하 대부 소종의 간언까지 듣고서
그제서야 장왕은 국정에 전념하여 초나라를 패국의 지위에까지 올렸던 것입니다..
갓끈을 끊고 연회를 즐겼다는 절영지회(絶纓之會)의 고사 역시 장왕의 이야기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0C5A0C4A8151CFAC)
사진은 갓바위 남동쪽 용주암 정상부에서 갓바위를 올려다본 전경입니다..
앞쪽의 시설물에 가려 갓바위부처님이 잘 보이지 않죠..
그러나,,자세히 보시면 갓을 포함한 불상의 머리부분이 보입니다..
그 옛날 현재의 모습처럼 인공적인 시설물이 없었을 자연상태의 관봉이라면
팔공산 동쪽 능선 어디서라도 관봉 갓바위부처님의 모습이 보였을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C5A0C4A8151CFAD)
앞으로 자세하게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팔공산 동쪽능선의 마지막 산봉우리에 해당하는 관봉(冠峰)..
그 관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갓바위부처님..
그 불상의 조성시기를 두고 현재 크게 두 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서기 638년(선덕여왕7) 원광대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하며
학계에서는 불상의 조성기법을 토대로 불상은 8-9세기 경에 조성되었고
갓은 불상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씌어진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으로부터 1,000여년이 훨씬 넘은 시기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해발 850m 산 정상..
그것도 신라오악 중 中岳에 해당하는 팔공산 동쪽 능선의 높은 산봉우리입니다..
불상높이 4.15m, 대좌포함 6m, 갓두께15cm, 갓지름180cm의 거대한 불상이죠.
팔공산 자락은 신라,고려,조선 세 왕조를 거치면서
왕실의 지원을 받은 사찰들이 많습니다..(이것 역시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갓바위 가까운 곳에는 김유신의 수도처로 알려진
중암암(돌구멍절)과 불굴사 홍주암 등도 있죠..
상황이 이러할진대...
갓바위부처님은 어찌하여
불교의 나라 신라 그리고 고려의 기록들에 언급되어 있지 않을까요?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은 고사하고
삼국유사에서 조차 이곳 갓바위부처님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거든요..
더욱 미스테리한 사실은
일연 스님께서 1284-1289년까지 주석을 하시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사찰인 인각사(麟角寺)가
갓바위에서 차량으로 30여분 거리에 있다는 점입니다..
선덕여왕께서,
김유신장군께서(638년 조성설을 근거로 하자면),
일연스님께서는
정말 지척의 거리에 있었을
갓바위부처님의 존재를 몰랐을까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C5A0C4A8151D0AE)
아무튼,,추측컨대
갓바위부처님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무슨 연유인지 알수는 없으나
분명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더라'는 불비불명의 고사처럼 말입니다..
不飛不鳴...
부활(復活)
1963년 계해년..
드디어..
갓바위부처님은
역사의 오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0C5A0C4A8151D0AF)
갓바위부처님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불과 40여년에 불과합니다..
'1963년 신라오악 불교유적 조사'
를 통해 공식적으로 세상에 데뷔를 한 것이죠..
발견 당시의 상황을 요약해본다면..
첫째,, 발견 당시에는 와촌쪽의 성불암이라는 암자의 한 스님이
갓바위부처를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무속인들 사이에서 영험한 부처라고 알려져 기도를 하거나 신내림을 받는 등,,
왕성한 무속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 제1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봉의 북쪽(경상방면) 와촌면민들에게는 이름난 기우제터로,,
관봉의 남쪽 산아래마을(대구방면) 주민들에게는
이끼가 잔뜩 붙은 오래된 불상이 있는 산봉우리로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C5A0C4A8151D0B0)
전국 제일의 기도처로 알려져 있는 갓바위부처님..
그런데,, 이 갓바위부처님이 세상에 알려진게
불과 4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대구방면에서 관봉으로 오르는 산자락에 자리한 관암사는
'갓바위부처님과 관암사 그리고 그 관암사의 창건주'에 얽힌
흥미로운 기록을 몇 군데 새겨놓고 있습니다..
그 한 곳은 관암사 가는 길 좌측의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불상이 보이는 곳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5E70244A84294E61)
![](https://t1.daumcdn.net/cfile/cafe/165E70244A84294F62)
바로 이 곳입니다.. 길 가에 있기때문에 쉽게 발견할 수 있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175E70244A84294F63)
백암스님은 관암사 창건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속 측면의 비문 중에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185E70244A84294F64)
다음 기록은(둘 다 같은 글) 새롭게 중창불사를 한
관암사 대웅전 우측 거대한 암벽에서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좌측 암벽)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E70244A84294F65)
제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만 한번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전국의 명산대찰을 편답하시다가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약사여래불을 친견하시고
원만한 상호와 불력에 이끌려 백일기도를 봉행하던 중
묵시적 심계를 받고 1963년에 옛 절터인 이 곳에 가람을 건립
관암사라 칭하고 주지가 되어
약사여래불을 국가로부터 보물로 지정받아 관리해왔으나
법란의 여파로 운영관리권이 타종단으로 넘가고
말았으니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하 생략"
기록이 사실이라면...
바로 백암스님이 갓바위부처님의 또 다른 발견자 중의 한 사람이며,,
국가를 상대로 보물등록작업을 거쳐 국가보물지정을 받아낸 인물이 되는 것이죠..
갓바위부처님의 정식 명칭은
'冠峰石造如來坐像'입니다..
'관봉의 돌로 만들어진 앉아 있는 불상'이라는 뜻이죠..
1965.9.1 보물 제431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현재 알려져 있는 내용으로는
갓바위부처님의 최초 관리권은
대구 쪽의 '태고종 사찰 관암사' 가 가지고 있었으나
그 관리권을 두고 경산방면의 '조계종 직영사찰인 선본사' 측과 4년 간의 재판 끝에
결국 1969년도에 그 관리권을 선본사 측에 넘겨주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승과 속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지금 현재도 대구시 동구와 경산시는
'갓바위부처님' 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1755BA1C4A8437F549)
대구방면에서 올라가면 갓바위 정상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안내판입니다..
참으로 눈에 거슬리는 문구입니다..
정말 더 아름다운 문구가 없었을까요??
갓바위부처님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유산인데...
![](https://t1.daumcdn.net/cfile/cafe/140C5A0C4A8151D0B1)
사찰을 찾아가는 길이란게 늘상 그렇죠..
산문을 들어서면서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을 거쳐 대웅전에 이릅니다..
이는 곧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 중심의 세계를 사찰건축에 그대로 표현을 한 것이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진리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그러한 가르침을 거쳐 수미산에 올랐던 것인데..
수미산 정상 갓바위부처님 앞에
불경스럽게도
저렇듯 문패를 세우다니..
갓바위부처님은...
그러실려고 세상 밖으로 나오신 건 아닐겁니다...
언젠가 저 안내판의 문구가
더욱 아름다운 내용으로 바뀌어지길 기대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좋은 인연 지으십시오...
송은석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