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화도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수도원체험 때인 2008년 여름이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그 뒤로는 강화에 갈 때면 들러서 밥을 얻어먹곤 했었는데 어느 해는 아내와 함께 간 적도 있었다. 하루걸러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뒤로는 강화 나들이가 어려워지고 2014년 겨울에는 참나리 선생님 부부가 부산에 온 적이 있었다. ‘참나리 동시동화나라’의 뒤뜰 장독대에는 지금도 김치와 젓갈이 익어갈 것이다. 그만큼 참나리 선생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김치박사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다섯 가지 이상의 김치를 담근다는 솜씨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계절 따라 다양한 참나리표 김치가 이어진다. 그러나 과묵한 성품의 남편 박상규 선생님은 칭찬에 인색하다고 노상 투정이다. 그러나 그는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이를 데 없다. 어떤 설명으로도 그를 제대로 소개할 수 없을 듯하다. 평소 작업복을 입고 지내지만 주일이면 반드시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성당에 간다. 나이 들어 자녀들을 외지로 떠나보내 일손이 모자라는 이웃의 밭일을 자기 일처럼 하기에 틈이 없다. 유일한 취미생활이 물때를 맞춘 망둥어낚시다. 그는 강아지가 밥을 다 먹는 것을 보고서야 밥상에 앉는다. 갈 때마다 김치 담그는 솜씨 못지않게 빼어난 음식솜씨로 싼 연밥과 갖가지 부침개와 수육, 찬으로 밥상다리가 휘어진다. 마당 텃밭에서 정성들여 기른 꽃을 말려서 우려낸 그윽한 빛깔의 향기로운 꽃차가 후식으로 나온다.
그 정성과 솜씨로도 그동안 강화순무김치를 담그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옛 조상들로부터 전해진 신토불이 토속음식의 맛을 내기가 어려운가 보다. 이번에 마침내 순무김치를 담그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을 나에게도 한 통 보내온 것이다. 강화순무는 선명한 보랏빛과 흰색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화순무는 5월과 10월 두 차례 거둔다. 5월에는 봄순무, 10월에는 가을순무라 부른다. 겨울 추위를 견딘 봄순무의 향과 빛깔, 그리고 맛이 진하다. 그 이유는 강화의 토양이 갯벌로 이루어져서 토양 자체에 미생물과 플랑크톤이 풍부한데다 겨울해풍 때문이란다. 순무김치의 맛은 쌉쌀하면서 인삼 맛을 내는 다소 매운 맛이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준다. 순무는 칼슘이 많고 칼로리가 낮아 혈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고 간에 좋으며 섬유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와 변비에 활용되는 건강식이기도 하다. 특히 순무의 매운 맛을 내는 이소시아네이트와 인돌은 항암작용을 한다고 전한다. 가을무는 인삼보다 좋다고 하는데 그 자체가 보약이다.
이렇게 귀한 순무김치를 직접 담근 뒤 익혀서 보내주셨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칠 다름이다. 내가 좋아하는 강화순무김치는 오돌오돌한 식감에 알싸하고 소박한 맛이 그만이다. 순무김치는 으스러질 정도로 푹 익혀서 곰삭아야 제 맛이 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화순무김치를 섬 밖으로 가져나가면 고유의 맛을 잃고 무가 물러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토속음식을 지키려는 마음에 순무김치공장의 광고카피가 아닐까 싶다. 강화순무김치는 강화읍에 공장이 있고 농장은 강화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인근의 불은면 넙성리에 널려 있다. 나의 투석치료는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국내여행의 첫 목적지를 강화의 ‘참나리 동시동화나라’로 정하고 두 번째는 해안선 따라 순례한 제주로 정했다. 나는 참나리표 강화순무김치를 더 익혀서 깊은 참맛을 느끼기 위해 조금씩 아껴 먹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새해를 맞아 그리운 손녀, 리아의 만남과 함께 강화 구경분 선생님으로부터 배달된 참나리표 강화수무김치가 새해를 맞은 우리 가정에 크나큰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