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에서 춤을 2
서현순
차 례
희망의 춤
담금질
그리움
인생은 나그네
사랑 건강 비움
큰 그릇 속에 놀고 있는 나
사랑의 제비
젊음 꼰대
지지배배 지지배배
희망의 백신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
빈배
비상
그날
살아있음에
위기를 극복으로
불편한 오해
희망의 춤
여고시절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들은 교내 발레 동아리였다.
비가 억수로 퍼붓던 하굣길 우산도 갖추지 못하고 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어보려고 자세를 한껏 취하고 있는 나에게 우산을 살포시 내밀며 같이 쓰고 가자고 했던 그 친구에게 단호히 거절했던 이유는 그 친구는 발레 동아리에서 프리 마돈나였다. 왠지 부러워했던 그런 내 모습이 그 친구한테 들켜버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리라.
이북에서 월남하신 부친은 생활력이 무척 강하셨다. 춤이란 아버지의 삶속에는 배고픈 딴따라였다. 그때 나는 동네 또래의 친구들을 모아놓고 아버지 몰래 트위스트를 내 스타일대로 가르치며 놀았는데 그 끼는 그때 벌써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십 년 전 농협문화센터에서 수강생으로 댄스 스포츠를 배웠던 시절이다. 수강생 중에서 유난히 우하하고 기품있는 여성이 댄스스포츠를 하는데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도 인생을 저렇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박혀버리는 순간이다. 그날 나는 춤과 눈이 맞은 것이다. 그야말로 바람이 났고 춤바람이 난 것이다.
사교댄스, 스포츠댄스(라틴·모던), 살사, 멜렝게, 바차타, 라인댄스,벨리, 아르헨티나 탱고, 그리고 요즘들어 하와이 훌라댄스까지 섭렵하였다. 댄스 강사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기도 하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쉬어간다 하지만 늘 준비된 자세로 살고 싶다.
노인 체육지도자 줌연수에서 외국의 어느 90세 된 여성강사 동영상 강의 가 너 무나 흐트러짐 없는 강의가 조금도 뒤쳐짐이 없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느 춤의 작가는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면 상처는 꿈이 된다고 했다.
누구나 출 수 있는 몸 가는 대로, 몸 흐르는 대로 추는 막춤이라도 그 춤에 몰입하면 깊은 명상이 되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한다고 한다. 춤은 머리로 그리는 틀을 깨는 몸짓이고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꿈이 나를 춤추게 할 때야말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 삶에 춤은 행복 그 자체이다.
몇 년 전 댄스 스포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회원 한분이 “선생님 댄스 운동으로 인해 건강을 찾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듣는 순간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코로나가 물러나는 그날을 위해 지금도 행복한 꿈을 꾸며 춤을 춘다. 그래서 가슴은 띄고 심장은 더 크게 팔딱거리고 있다. 내 나이는 비록 숫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구미시 ‘오하나 하와이 훌라 공연단’에 입단하여 젊은 선생님들과 열심히 춤을 출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축복이고 행복이다. 외로움을 스스로 치유하며 지난 날 아픈 상처는 곧 꿈이 될 것이다. 희망이라는 춤으로,....
담금질
차를 몰고 언덕배기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간다.
두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데 오른발은 갑자기 왼발에 자석처럼 붙어서 꿈쩍을 하지 않는다. 몇 번이나 시도를 해보았지만 여전하다. 급히 내려가는 차에 제동을 걸려면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마비가 되어버린 오른발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다. 그렇게 달리는 내 차 앞에는 앞차가 점점 크게 다가오는 순간 눈을 꼭 감아버렸다. 새벽녁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었다. 꿈이다!
“휴우!" 하며 벌떡 깨어난 기쁨에 부르르 떨어보는 나는 마음이 그냥 로또다.
너무도 생생한 꿈길에 오늘의 일상은 무조건 조심해야겠다 하면서도 아니지? 그래 오늘 로또를 한번 사봐..!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턱시도와 긴 드레스에 가오(폼)를 잡고 주말 파티를 즐기는 선남선녀들은 전국에서 몰려온 댄스 동호인들이다. 맛난 음식과 와인까지 겸비한 파티 석상,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동안 음악에 맞추어 동작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다른 커플과 부딪치지 않게 피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 즉 플로어 크래프트(floorcraft)를 도는 선남선녀들. 이렇게 각 지역에서 모여드는 동호인들은 파티가 끝나는 30분 전에는 행운권 추첨 시간이다. 그야말로 댄스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다. 반짝반짝 보석으로 수놓은 고가의 1등 드레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분들은 은근히 이 시간을 기다리고 즐긴다. 그 당시 나에게도 행운이 한번 돌아와 사회자의 마지막 맨트인 ”보 석 님!" 했을 때 그날의 기쁨이 두 배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분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추억의 시간도 있었다.
건강한 체력과 정서순화, 심리적 안정 효과까지 가져다준 댄스스포츠 10 종목을 두루두루 섭렵한 지금은 후회 없는 인생에서 로또 같은 마음을 가져본다. 코로나 19를 하루빨리 극복하고 평온을 찾아 많은 댄스 마니아인들 모두가 무도 예술인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년 넘게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노하우로 사업을 하고 있는 K여사도 얼마 전에 사교댄스에 입문하고 나서는 여기저기 쿵쿵 박히는 소리가 요란스럽기만 하다. 마치 초보자의 입문이란 양은 냄비에 깨를 볶는 깨춤 같을진데 그래도 그녀는 참으로 씩씩하다.
중년의 인격인 배가 눈에 띄게 슬림해졌는가 하면 그녀의 고질병이기도 한 당뇨병의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5개월째 당뇨약을 먹지 않는다니 그녀에겐 무엇보다 사교댄스 입문이 마치 로또인양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참 다행이다.
불가에서 이르기를 ‘부부의 인연’은 8천겁이요, '형제의 인연'은 9천겁, '부모와 사제간의 인연'은 10천겁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오욕락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을 멀리하라고 했는데, 나는 오욕락을 즐기며 로또 같은 이 경이로운 만남에 그이와 같이 댄스를 하지 못한 이가 2프로의 부족함을 로또 같은 마음으로 담금질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
그리움
두꺼운 이불은 죄다 장롱 속에서 내려 겹겹이 뒤집어쓰고 누워 버렸다. 오한과 설사는 계속 멈추지 않는다.
첫아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새댁이 입으로 밑으로 민망스럽게 똥물까지 토해내는 난감스러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지금 나의 며느리처럼 표현도 없이 얌전하기만 했던 그때 그날의 내 모습이었다.
젖먹이 큰아들이 “으앙! 으앙!” 울어대는 순간 “얘야, 아기가 운다, 얼른 젖을 물려라.” 어머님의 진한 핏줄의 사랑은 멀리서 아련히 들렸지만 난 속수무책이었다. 겹겹이 덮은 이불속에서 나는 그렇게 시간과의 타협을 기다리며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설사와의 전쟁이었다.
“얘야, 애기가 운다. 배고픈가 보다. 얼른 젖을 물려라.”
그렇게 서운하기만 했던 어머님의 말씀이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핏줄에 대한 사랑은 어머님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님의 목소리와 숨소리가 무척 그리워진다.
몇 년 전인가 복지관에 아침 강의를 나가는 중 배탈 난 신호가 오면서 순간 지하철 근처에 차를 세우자니 스티커가 겁이 나 한 블록 두 블록 차를 몰고 가는데 신호등의 빨간불에 이마와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려내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지하철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시동도 끄지 못한 채 계단을 내려가는 나의 발은 그야말로 발통 달린 로켓이었다. 그날 생리현상을 무사히 해결한 뒤의 통쾌함, 개운함은 가끔 잊히지 않은 설사와의 전쟁사이다.
대장을 수술한 그이는 한동안 차를 몰고 다니면서 먹으면 싸는 생리적 현상에 곤혹을 치르는 것 같았다. 흘려들었던 예사로운 말이 그때 그렇게 내가 당해 보고 나서야 알았으니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는 아파도 정작 그의 아픈 손가락은 헤아리지 못했으니 나의 지난날 이기심을 반성해 본다.
이제야 겨우 겹겹이 쌓아온 인생의 동반을 조금씩 느껴보며 이게 바로 “어느 60대 노부부의 얘기”라는 노래 말이 아니든가?
오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라 했는데 여느 때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저녁에 그이가 건네준 아이스바를 먹어서 그런지 갑자기 한기와 몸살기가 엄습해왔다. 얼른 타이레놀 2알을 복용했더니 다행히 몇 시간 후 열이 내려간다. 접종부위의 통증, 발열이 48시간 이후에도 악화된다든지 평소와 다른 이상 증상이 나타날 때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주의사항에 “설사 있을 시....”라는 문구는 없었다. 하루빨리 모두가 백신을 맞고 펜데믹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생활로 돌아가기를 기도해본다.
사우나실에서 어느 여자분이 흥분되어 여러 여사님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2층 피트니스 GX룸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유난스럽게 방귀를 설사처럼 연속하여 꿰어 오늘은 벼르고 별려서 아저씨를 향하여 폭탄을 터뜨렸단다.
“아저씨, 그렇게 괄약근 조절이 안 되시면 혼자서 다른 곳에 가서 운동을 하십시오.”라고 따지고 들었단다.
여사님의 입담에 우리들 주위는 “빵!” 하고 터졌다.
일상에 이런 다툼도 있구나 하며 돌아서서 나 혼자 독백해본다.
"설사, 그렇더라도 그렇지..."
내 아이가 장성했고 또 장성한 그 아이가 자식을 낳고 재미있게 사는 걸 보고 있으니, 문득 그 옛날 어머님이 계셨던 시골집에서 두 겹 세 겹 두터운 이불을 덮고 똥물까지 경험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대책 없는 며느리를 지켜보고 계셨던 어머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어머님과 나는 오롯이 자식을 향한 홍시 같은 마음의 여자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식을 사랑하는 이 땅의 여자라는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우리 어머님을 한번 더 그리워해 본다.
부질없음을 또 한 번 가슴에 새기면서.....
인생은 나그네
일사불란하게 토요일 일요일이면 이제는 제법 낯설지가 않은 줌 연수 창이다.
제주도까지 뻗혀 있는 연수생들의 수업 열기는 실시간 채팅 창과 함께 교수와 연수생들의 자연스러운 소통의 창이 되기도 하는 새로운 문화가 서서히 우리 몸에 배어 들게 한다.
중반에 접어든 연수가 이제 과제 보고서 작성하기, 실습 관련 복잡한 서류 제출 등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스멀스멀 걱정의 그림자가 되어 크게 다가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을 다독다독 해보며
“난 당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라고 남편에게 SOS 신호를 보내 본다. 코로나 19는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는가 싶더니 몸과 마음은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댄스스포츠 열공 시절 초기에 경주에서 무용 전공하신 선생님, 대구에서 체육심리학 전공하신 선생님, 그리고 나, 똘똘 뭉쳐 서로 의지하여 정보공유, 상부상조하며 심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인연으로 지금도 3명은 여든 살을 훌쩍 넘기신 은사 선생님을 짬짬이 찾아뵈며 담소를 나누고 선생님의 인생을 귀담아듣기도 한다. 노거수에 비유하며 고목나무가 드리워진 큰 그림자 밑에 앉아서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게 선생님의 그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월이 수십 년 흐른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고목나무 그림자 밑에서 그늘 삼아 열공하게 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사우나에서 늘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K여사는 요즘 사교춤에 신 바람이 났다. 긴 그림자를 보는 느낌이다. 그는 나에게 시원한 멘토를 청하기도 한다. 빙그레 미소 지어 보이며 여보시게 해보시게나 긴 그림자 되어 편한 그늘이 되기까지는 이제 불과 시작이 반이지 않는가? 그 발에 무쇠 덩어리가 실릴 때 당신의 발이 말을 해 줄 것이라네...ㅎ
1995년도에 남편과 함께 수성구에 위치한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영남차회가 주관한 '차와 예절'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행운권 추첨에서 제일 마지막에 1등으로 당첨되어 받은 유명한 다공의 다기세트를 받은 게 오늘따라 진열장 한쪽에 나의 서각 작품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지난날을 잠시 생각하게 한다.
창문에 비치는 비슬산 자락의 긴 그림자를 옆에 두니 내 마음은 부자이다. 해 질 녘 서각에 새겨진 그 옛날 좋아했던 글을 읊어본다.
茶나 머금세
여보게 벗 茶가 있네
차 머금으면 心身이
맑아지고 世上 모든 일
즐겁게만 보인다네
몸은 娑婆에 머물지만
마음이야 俗塵에 물들 수 있는가
淡淡한 맛이
차의 妙味라네
人間事 모두가 다 그러듯
親한 벗은 하나둘 보이지 않고
새로운 벗 사귀자니 힘이 들고
궂은일 좋은 일 의논하면서
산 그늘 내리는 故丘(옛 동산) 그리며
여보게 벗 茶나 머금세
(수안 스님)
마음의 한가를 절절이 갈구하며 춤의 그림자, 외로움의 그림자, 사랑의 그림자를 생각해본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노을 “인생은 나그넷길” 하며 어느 고인이 된 중저음 가수의 노래가 내 귓전을 맴돌고 간다.
사랑, 건강, 비움
두 줄, 세 줄 심지어 비좁은 인도까지 차지하고 줄을 서 있는 긴 행렬이다.
이미 그곳은 소문을 타고 알려진 로또 명당 점포다.
00년 0월 0일, 1등 57억 당첨, 00년 0월 0일, 2등 당첨, 한 해에 1등 세 번이란 당첨 문구와 함께 거창한 플래카드가 점포 유리면 아래위를 빼곡히 도배하고 있다. 마치 교문 앞 입구에 S대 합격, k대 수석 합격 누구누구 하면서 붙여 놓은 플래카드와 흡사하다.
이렇게 토요일은 유난히 역전 인생의 줄이 길고 긴 미로처럼 U자 행렬이다. 나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학원에서 개인 연습을 마치고 귀갓길에 은근슬쩍 미로 같은 이 대열에 몇 번 끼어본 경험이 있다. 오천 원 게임에 역전인생 꿈꾸는 쌩뚱 맞은 여자였다.
무한한 상상의 자유가 파도를 치며 요동을 친다.
그래! 내가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제일 먼저 내 동생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서 네 집 내 집 하며 매일 드나들 수 있는 그런 집을 같이 마련할 수 있게 한 밑천 기꺼이 도와주리라. 사는 데 바빠서 한 번도 뒤돌아보지 못한 그들에게 언니로서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기회의 역전인생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작은아들의 폼나는 멋진 빵집을 차리는 데 어미로서 일조할 거야.
세 번째는 카페가 드리워진 멋진 댄스 아카데미를 차려서 마니아들의 파티 장소를 마련하여 댄스스포츠에 한 획을 긋고 싶은 상상을 해보면서 잠깐 허당스럽기만 한 터널을 빠져 나오는 데는 적어도 로또 추천하는 며칠 동안은 오천 원의 행복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티비 프로를 요즘 들어 자주 즐겨보고 있다.
그들의 사연은 산이 좋아서, 사업실패 후 부도를 내고, 아내 혹은 부모의 건강을 위해, 또는 마지막 끈을 부여잡은 간절한 자신의 건강을 위해 등등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공통적인 것은 친환경적인 가치관 및 소박한 안빈낙도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한 삶이란 욕심을 비우고 마음의 짊을 내려놓는 데서 얻어지는 스스로의 만족이라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부처님 오신 날 사찰에서 행사를 하고, 우리 부부와 동문들은 오후 남는 시간에 학창 시절부터 들락거렸던 칠곡 약목면 약목약수터에 터를 잡은 동문 집을 번개팅으로 방문하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풍부한 유머와 재담으로 우리들을 즐겁게만 해주었다. 그런 그도 세월이란 장사 앞에 주름이 깊어져 있어 애잔한 마음이 느껴진다.
큰 욕심이 없는 그는 수십 년간 잘되던 약수터 식당도 아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접고, 부친이 물려주신 산자락에 여형제들과 나란히 그림 같은 전원주택 3채를 지어서 오빠 동생 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은 동문으로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늘 꿈꿔왔던 오빠로서 꿈이 약속어음이 되고 보증수표가 된 동문인 그를 통해서 닮고 싶은 모습이다.
그의 여동생들이 차려준 텃밭의 싱싱한 상추로 한 잎 두 잎 쌈 싸서 먹은 그날의 만찬은 아직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일찍 가장이 되어 자기 희생으로 여동생 셋을 키우며 베푼 그의 사랑에서 어떤 수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깊고 큰 형제의 정을 느껴본 날이었다.
어슴푸레한 저녁 산자락 돌아 동문들과 내려오는 길, 나는 과연 살아오면서 크든 작든 누구에게 마음의 부도수표를 준 적은 없었는가 자문해 보며 삶의 뒤안길에서 부도 수표가 아닌 백지수표를 그려본다.
사랑, 건강, 비움이란 마음의 메시지를 조용히 담으며,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우리들은 그렇게 서둘러 내려왔다.
큰 그릇 속에 놀고 있는 나
“2기입니다.”
담당 의사선생님이 밖에서 기다리는 그를 두고 나에게 툭 던지며 전하는 차가운 말은 이내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깊이 박힌다.
20년 전 우리 부부는 예쁜 옥탑방과 전용 옥상이 딸려있는 꼭대기 층 아파트를 보고 마음에 쏙 들어와서 다른 사람이 분양한 아파트를 웃돈 주고 사서 들어갔다. 아담한 다락방과 넓은 옥상은 우리 아이들과 꿈꾸며 미래를 설계하며 살아가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집이었다.
새집 증후군이라는 고약한 시멘트와 벽지 본드 냄새가 때로는 눈과 코를 괴롭혔지만 부족함이 없었던 그림 같았던 집이었다.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쁘고 그런 날들도 마냥 신나기만 했던 그때, 입주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변비로 불편했던 그가 병원에 다녀온 후 병원에서 보호자 호출이 왔다.
청천벽력 같은 담당 의사의 일상적인 말투로 내뱉은 판결이었다.
그의 수술과 입원으로 병원에 있을 동안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 위해 불이 꺼져있는 아파트를 들어서는 순간 아파트의 적막보다 내 안의 어둠이 괴물처럼 두려움으로 훅 하며 순간 몰아쳐 왔다.
차가운 옥탑방을 기다시피 올라가 그대로 쓰러져 얇은 이불을 칭칭 감고 누가 들을세라 이불로 입까지 틀어막고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새벽녘까지 밤새 혼자서 울었다. 수술하기 전 동해안 그 바닷길, 눈물만 줄줄 흘렸던 철없던 아내.
대장을 15센티나 잘라내고 극심한 몇 차례의 항암치료도 받고 남편은 괴물 같은 암을 고맙게도 잘 이겨주었다.
인생의 삶을 늘 저편에서 편안하게 내려놓고 욕심없이 살았던 그에게 아마도 부처님의 자비가 괴물에서 구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서 지금도 한번씩 그때의 아팠던 시간을 떠올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본다.
노인스포츠지도사 자격취득 3차 관문인 연수가 어제부터 매주 토 일요일, 하루 9교시씩 6월 6일까지 시작 되었다. 얼굴 없는 괴물 코로나19 탓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 했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합 연수 대신에 예전에 없던 최초로 까다로운 줌 수업이다.
대전대학교에서 실시하는 100명의 연수생이 컴퓨터 줌 화면 속에 일사분란하게 전국적으로 모여든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의 연수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도 많이 보인다. 수영, 게이트볼, 에어로빅, 레크레이션, 보디빌딩, 댄스 스포츠, 당구 등 노인 건강을 위한 필수 마지막 지도자 과정이다.
“어르신들 왜 운동을 하세요?”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치매가 무서워서.. ” 라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건강한 생활을 위하여, 행복한 삶을 위하여, 내 동반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내 삶을, 나를 더 개발하기 위하여.. ” 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이제부터 부정적인 단어와 표현은 사용하지 말고, 긍정적인 단어와 표현만 사용하라고 그렇게 지도자로서 어르신들을 일 깨워주는 연수 수업 중의 한 부분을 인용해본다.
휴식 겸 수행하러 경주 모 사찰에서 5일간을 지내고 남편이 돌아왔다. 당뇨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종합병원처럼 달고 다니는 그가 없는 요 며칠은 내 나이 어울리지 않게 조금 무섭고 공허한 걸 느껴본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큰 그릇 속에서 나는 또 그렇게 놀고 있는 것이다. 그 그릇 속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 준 그가 오늘 따라 무척이도 고맙게 느껴지는 날이다.
며칠 있으면 돌아올 부처님 오신 날, 그가 아파트 창문에 태양광등으로 밝혀 매달아 놓은 2개의 연등은 어둠이 짙은 밤에는 유난히 붉은 빛을 발한다. 삶이란 우리가 보이지 않은 괴물까지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든 나에게 더욱 가르쳐준다.
까까머리 때 만난 우리의 인연은 여전히 그의 큰 그릇 속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관세음보살.....
사랑의 제비
핸드폰 저 넘어 영상 속에 나타난 솜털이 보송보송한 예쁜 제비 두 마리.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온 귀한 철새, 여름 한철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려고 돌아온 제비를 떠올려본다. 어릴 때 초가집 처마, 마루 위에 집을 짓고 예쁜 새끼를 낳아 기르며 요란하게 재잘거리던 흔하던 복조, 길조였는데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것 같다.
저번 달은 손자 생일날 초대받을 거라는 맘으로 날짜를 꼽으며 기다렸다. 손자 손녀를 안고, 부비며 사랑의 정감을 표현하는 나를 상상하며 들뜬 내 모습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짝사랑으로 끝나버렸다.
5인 이상 모임금지라는 코로나19의 엄격한 지상명령에 우리 부부는 섭섭한 맘을 달래며 온라인으로 축하금을 보내고 야속한 세상을 탓해보기도 했다.
아들만 셋인 여동생의 카톡에서 사진과 문자가 왔다.
예쁜 그릇 속에 담긴 요리는 다 큰 아들 삼형제가 만든 요리란다. 매년 돌아오는 5월 5일은 저희들끼리 어린이날이 아닌 ‘형제의 날’로 만들어 이 날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삼형제가 모여 요리를 해 먹으며 재미있게 노는 날로 정해 놓았다고 하였다.
아들만 둘인 우리 집은 가정을 꾸린 큰아들과 아직도 솔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은 아들은 제각각 직장 일로 바빠서 자주 만날 수 없는 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
‘형제의 날’이라는 여동생 아들들의 행사를 상상하며 부러워 해본다.
어린이날 전날 밤 아들 내외한테서 느닷없이 늦은 밤 영상통화가 왔다. 손자 손녀 보고픔에 목말랐던 할미는 작은 화면 속에 빼꼼히 내민 얼굴을 보고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기쁨의 선물 저 넘어 화면 속에 기다란 목을 곧추세우며 두 팔 벌려 환하게 웃는
“지지 배배 지지배배!”
“뭐 해줄까? 뭐가 필요하니?”
뭐라고 분명히 저 속에서 애기는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장난감 이름인 것 같다.
다만 손자 손녀의 빨간 예쁜 입술이 화면 속에서 “지지 배배 지지배배!” 하는 것만 같다.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무한 리필 내 사랑 아기 제비들이다.
세상은 참으로 편리해져서 몇 초도 안 되어 아들 통장계좌로 돈이 훌쩍 날아가 버린다.
“어린이날 맛있는 것 사먹고 아이들한테 선물도 보태어서 사주어라.”
“어머님 고맙습니다!” 여전히 빠른 문자가 숨 가쁘게 되돌아 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속에서 가족 간의 소중한 만남도 이제는 이렇게 계좌번호와 카톡만으로 주고받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할이 참 안타깝다.
어버이날 그 날만은 꼭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이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려본다.
벌써 나의 머릿속에는 아들 며느리가 좋아하는 레시피를 그려 본다. 그리고 나의 예쁜 두 마리 제비를 한 아름 꼭 안을 수 있는 그 날을 떠올리며 어느 새 빙그레 미소를 지어본다.
이왕이면 둘째 아들도 빨리 짝을 찾아서 예쁜 제비를 두엇쯤 낳아서 함께 모였으면 금상첨화일리라. 부모의 사랑이 한 쪽으로만 자꾸 기우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해마다 찾아오는 5월은 사랑의 달이며 가정의 달이고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우리 부부의 사랑스런 제비의 달이기도 하다. ‘지지 배배 지지배배’ 그 소리는 5월이라서 더욱 정겹고 사랑스럽다.
젊은 꼰대
“정중히 자진 사퇴를 권해 드립니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며칠 전 불쾌했던 카톡 문자이다.
“빈 종이에 사퇴한다고 적고 관리사무소에 가서 내시면 됩니다.”
40대 중반의 아파트 선거관리위원장이 나에게 보낸 개인 문자 톡이었다.
사유는 선거관리 위원으로서 송주법 위원을 겸했다는 사실과 가정 행사로 깜빡했던 걸 미안해하고 있었던 차 회의 불참 사유를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원장으로서 나 하고는 같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편이 퇴직할 무렵 분양받은 현 아파트는 비슬산의 맑은 공기와 거실에서 내다보는 전망이 너무나 멋지고 맘에 들어 이사를 결심했다. 한 가지 흠은 가까이에 비슬산의 전망을 가리며 철골 송전탑과 고압전선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로 인한 이점은 아파트 앞으로 연간 상당한 금액의 지원금이 나오는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살다보니 부녀회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송주법 위원과 선거관리 위원이라는 각각 6명으로 구성된 2개의 위원회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 두 위원회에 겸직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었다. 젊은 세대 인구가 70%~80%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아파트는 젊음의 기가 팽팽하게 살아 있는 역동적인 아파트라 생각하며 난 삶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당연히 어르신이다.
어르신 광장이 아닌 젊은이의 광장은 때로는 좋은 아파트를 만들려는 갑론을박에서 젊은이들의 주장이 우선이고, 기성세대인 우리는 저들한테 흡수되지 못하는 소수 사람들의 주장으로 치부되어 씁쓸함도 느껴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내가 누군 줄 알아?(who)
네가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어떻게 나한테(how)
내가 그걸 왜?(why)
이와 같은 육하원칙 중에 적어도 하나라도 사용하고 있다면 영락없는 꼰대라고 의심해 보라고 그랬다. 그래도 현장에서 댄스를 하는 나로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은 걱정 없다고 자신하며 살았다. 아들과 같은 비슷한 나이들한테 ‘무임승차’라느니, ‘같이 회의를 하는 건 불편하다’느니 하는 불쾌한 문자를 받는 순간 꼰대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따져들고 싶었지만 침묵이 때로는 지혜라는 생각도 들어서 참았다.
“강제 사퇴인가요, 아님 소통부재에서 오는 문제인가요? 다음 회의 때 뵙겠습니다. 하나를 하든 둘을 하든 위원장이 관여할 일이 아닌 줄 압니다.”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본인이 사퇴하겠다고 문자가 온다, 나는 다시 또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누구 땜에 그런 건 없습니다.” 했더니 6명의 단톡방에 위원장은 일장의 입장문을 써놓고 단톡방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건 뭐지? 침묵 침묵 .....한바탕 선관위 위원장과의 전쟁이었다. 지금은 이기고 지는 건 차후라고 생각한다. 물러나는 것은 나 하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나이 들어서 나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내 자신이 슬프다. 어설픈 논리 싸움에 더 깊은 상처가 싫을 뿐이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중얼중얼 거리며 정신마저 혼미해진 하루였다.
안개 같은 일상을 느껴보면서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하략)
그 옛날 나의 노래방 십팔 번을 떠올리며 내 마음을 다스려 본다.
‘나이든 나의 어설픈 꼰대보다는 젊은 꼰대를 아끼고 사랑하자!’고 맘을 먹으니 맘은 차라리 편해진다. 시간은 흐를 것이다.
지지 배배 지지 배배
멋진 경연 날이다.
학처럼 기다란 다리에 접시모양 쫙 펼쳐진 발레복을 입고 발을 바싹 세우며 워밍업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우아한 한 마리 백조다. 까막 딱따구리 마냥 한껏 무스를 발라올린 머리는 힙합 댄스 선수이며, 화려한 공작새 모양 옷에 붙어 한들거리는 구슬의 현란한 스팡클은 밸리 선수이고, 머리에 화려한 큰 꽃으로 치장한 우리 팀은 흡사 아마존 밀림에 서식하는 이름 모를 여섯 마리 새의 모습과도 같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여러 종목 남녀 선수 200여 명의 화려한 분장과 옷, 그리고 여기저기 ‘재잘재잘, 지지 배배’ 마치 새들의 향연과 같다.
드디어 경연시작
연습실에서 제각각이었던 동작이 음악에 맞춰 이제는 단합이 되어 ‘날았다, 앉았다, 돌아섰다’ 영락없는 파란 드레스의 파랑새들이다.
우리 팀이 하와이 훌라 종목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기쁨을 얻었다.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환희가 한 아름 꽃이 되어 가슴 깊게 파고 들어온다. 기분 좋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인생의 선물’을 흥얼거리며 가만히 노래로 음미해본다.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 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 준다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개 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깐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하략)
헐레벌떡 캐리어를 들고 밤늦게 눈치보며 들어오는 나에게 마치 해외여행 갔다 오는 폼이라며 한 마디 하는 내 영원한 동반자 목탁새님.
카톡에는 여기저기 밤늦도록 파랑새들의 합창이다.
‘지지 배배 지지 배배’
희망의 백신
‘깨톡! 깨톡!’ 알림이다
올케 언니가 보낸 동영상 문자이다.
“어머님, 화이자 백신 맞으러 가시는데 소감 한 마디 하세요.”
가족 중 제일 처음으로 백신을 맞으러 가시는 엄마를 올케 언니가 단독 인터뷰해서 실시간 동영상으로 올려놓았다.
“이상 반응, 모니터링 대기 중 15분 정도 예정.” 수시로 동영상과 함께 실시간 문자 메시지는 마치 부산, 서울 시장 투표 끝난 뒤에 아나운서가 실시간 중계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친정은 외아들 혼사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시누이 넷이라는 숫자가 꼬리표처럼 걸림돌로 따라다녔다. 친정 모친은 그런 외아들인 오빠의 결혼 후에는 혹여나 딸들이 시누이 티를 낼까 해서 딸 편이 아닌 온전한 아들 편이었다. 앉은 자리 풀도 나지 않는다는 경주 최씨 우리 엄마, 그래도 구순의 나이에 장수하시며 건강하게 서울멋쟁이 할머니가 되어 계시는 건 모두가 오빠 언니의 정성 덕분이라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아들에게 올인했던 엄마의 꿋꿋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좀 더 건강하고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필요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요양보호사 자격 교육을 신청했다. 마침 대학교 졸업시 취득한 사회복지사 자격증 덕분에 교육시간도 1/3로 축소된다고 하니 기뻤다. 서랍 속의 자격증이 유익하게 쓰일 때가 있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에 교육받고 취득한 장애활동보조사 자격증도 그렇고, 취득하려고 하는 요양보호사자격증도 이순의 나이에 건강할 때 준비하는 자격증이 되리라.
파일 첩에 끼워둔 여러 분야의 자격증이 마음의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라틴, 모던 10종에 푹 빠져 댄스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열정으로 시작할 무렵, 필드에 라운딩 하러 나가는 것처럼 서울 동아리의 파티행사에 케리어 하나 들고 신데렐라 마냥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갔다. 돌아올 때 허겁지겁 막차에 올라탔을 때의 일이다.
그때 동아리 회장 부부는 초조했던 나의 마음을 눈치 채고는 서울역까지 바래다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회장님 부부는 요즘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던 내 모습과 함께 지금도 잊지 못하는 추억의 한 부분이다. 간간히 안부 전화할 땐 먼 곳에서 들려오는 편안한 그 분들의 음성은 세월도 잊어버리게 하는 고맙고 존경스런 분들이다.
언제였든가 서울 결혼식에 참석한 후 잔치 때 입은 한복을 그대로 걸치고 남편과 댄스파티장소로 냅다 달렸다, 그날 화려한 옷차림의 파티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춘 선남선녀들, 맛나는 푸짐한 음식, 댄스파티 문화에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남편의 놀라운 표정을 불안스럽게 훔쳐보기도 했다. 그래도 턱시도 갖춘 멋장이 남자분이 내민 손을 마다하지 않고 신나게 놀았던 간 큰 여자였다. 그나마 동아리 회장 부부의 초대였으니 마음은 조금 편했다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가슴 설레었던 날이 다시는 올 수 있을까?
이제는 산과, 바다와 들로 곳곳 명소를 돌며 여행하면서 유유자작 하게 다니고 싶은데 여전히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 순위 댄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과연 나의 마지막 열차는 어떤 것일까. 가끔씩 고민에 휩싸여 보기도 한다.
이제는 코로나 백신주사로 항체가 생겨 지쳐있는 사람들 모두의 가슴에 코로나는 제발 영원한 막차가 되길 기도할 뿐이다.
“어머님은 밤새 잘 주무셨고 지금은 괞찮으세요!” 하며 희망의 메시지가 ‘깨톡깨톡’ 하고 나의 단잠을 기분좋게 깨운다.
그래! 희망의 백신이야! 우리 엄마 건강하게 또 건강하게를 빌어보면서 나도 언젠가 맞을 희망의 백신을 두근대며 즐겁게 기다려본다.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
‘ka UIuwehi O Ke Kai (카 우웨이 오 커 카이)’
이 춤은 바닷가에 밀려온 해초를 주워 담으며, 즐거워하는 풍경을 그린 하와이 훌라 춤이다. 해초에 숨겨진 의미는 남자를 가리킨다.
하와이 훌라 경연대회 단체부문은 여섯 명이 한 팀이 되어 열심히 연습 중이다. 앞줄, 둘째 줄, 셋째 줄 번갈아 가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춤추는 선생님들, 어느새 안무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부터 연습이 지름길이다. 모두들 감정 표현과 손가락 선에 집중하면서 숙제가 아닌 축제의 분위기로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하고 있다.
구미에 거주하는 그녀들은 자주 만나서 충분히 맞춰볼 수 있는 장점에 비하여, 일주일 한두 번 모습을 비춰야 하는 나는 그녀들보다 몇 배나 혼자 연습을 한 뒤에 같이 맞추려 하니 힘이 든다. 그러나 사오십 대 초반의 그녀들과 즐겁게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쌤은 아직 아픈 데가 없으세요?”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묻는 그네들 앞에서 “아직은 그래도 고장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다네.” 살짝 그들에게 밉지 않게 흘겨보며 화답한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중략)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복지관 수업 때 늘 곰탕처럼 우려먹던 트로트 음악이다. 여기도, 저기도 아프신 어르신들
“그래, 맞다.” 하시며 “고장 난 벽시계도 고쳐가면서 써먹어야 한데이.” 하며 자신들의 노래인 양 열심히 불러가며 댄스를 했던 그 시간들이 오늘따라 새삼 마음에 젖어 그리움이 밀려온다.
내가 건강해야 주위가 편하고 행복한 걸 느끼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새벽 일찍 호텔에 출근해서 빵 굽는 아들을 빨리 장가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큰 인생 숙제다. 그러나 부모의 염원을 아들은 마냥 멀리하고만 있는 것 같다. 결혼하는 그날이 축제일 텐데 언젠가는 인연 되어 가는 날 있어 우리의 숙제를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 희망을 걸어본다.
이번 주 글제는 ‘숙제’다
어떻게 써내려가야만 좋은 수필이 될 수 있을까? 잠시 고민에 빠져보다가 선배 선생님의 새로운 수필을 읽고 “명쾌하고, 정확하고, 간결한, 그리고 참신성과 겸손하고 개성 있는 글” 등 도움되는 주옥같은 글들도 읽어보았지만 젊은 날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때만큼 힘찬 긴 여정이다.
교수님이 수업 중 하신 말씀 “석세스, 스트레인저, 언익스팩트, 탄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감정에 호소, 스토리텔링, 심플한” 그런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붓방아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면서 어느새 새벽을 지나고 있다.
마치 무대에 올린 2분 30초의 한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수백 번의 발동작, 손동작, 몸동작을 고치고 또 고쳐서 무대에 올려지듯이 수백 수천 번의 붓방아를 찧고 고뇌해야만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인생에 숙제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그럼에도 고급스러운 정신적 훈련에 막무가내 포기하고 돌아서기에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갈팡질팡이다.
이제부터라도 표현하는 즐거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좋아요, 사랑해요, 고마워요.”를 지갑에 넣고 다니며 내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고장 난 세월이 아닌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운 축제를 위해 연습이라는 숙제를 안고 감사하며 달린다.
“인생이란 희망을 걸고 숙제를 하는 거야.” 독백하며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
빈 배
긴 코로나로 인해 몸과 마음이 멈추어버린 듯 언제쯤 지난날과 같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필수도 없고 선택도 없는 길고긴 시간의 연속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조차 묻는 것도 어느새 귀찮이즘으로 빠져버렸으니 상대 또한 나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엄했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은 댄스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이 아니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의 여러 장르의 댄스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시대와 시절의 정서를 느끼면서 그들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난날 처음 댄스에 입문하였을 때,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과 두려움은 거친 파도에 나홀로 돛을 달고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녔으니 그 용기와 엉뚱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지금도 가끔씩 자신을 의심해 보기도 한다. 거친 파도에 튀어 오르는 눈 코 입속으로 들어간 지난날 짠 맛의 상처는 오랜 동안 사람과의 타협을 싫어했던 오로지 독불장군 자세 그게 나였으니 요즘 돌아보면 힘겹고 어려운 시간에서 이제는 마음에 약이 되어 영혼의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껴보기도 한다.
족쇄로 채워진 코로나 문화가 인내와 끈기로 조용히 때를 기다리게 한다. 마치 보잘것없는 빈 배가 밀물 때가 오면 반드시 바다를 향해 나가려는 준비된 자세다. 4월에 개최되는 금오무용제 하와이훌라 부문 출전을 위해 오늘도 유유히 즐기고 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벚꽃보다 더 화사하게 우리 부부에게 한껏 재롱을 피우고 갔다. 사랑과 고마움의 여운을 뒤로하고 연습실로 향한다. 누가 나의 동작을 힐끔거리며 보는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멋진 경연 대회를 위해서 진주 조개잡이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본다.
저 넓은 바다로부터
밀려온 진주조개들이
태양에 빛나면서 (하략)
내 맘은 벌써 하와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비상
깊은 잠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서울 모 암병동에서 오늘도 긴 투병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뽑아내고 있다. 그녀는 어떠한 모든 연락도 두절한 채 소식 없이 그렇게 온전히 누워만 있는 것이다.
우리 다섯 멤버들은 몇 차례 연락도 해 보려고 애써보고 면회도 같이 가 볼려 했건만 세월 때문에 그녀를 못 본 지 어언 1년도 넘었고 벌써 계절은 봄을 두 번이나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볼 수가 없었던 단아하고 야무진 그녀이기에 더 안타깝고 미안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이 되겠는가?
우리는 40년 전 남편 부인들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명의 새댁 모임이 구성된 것이다.
남편의 학교 생활이며 모든 행동반경은 번개처럼 먼저 알아 버리는 기이한 현상 그리고 다섯 새댁이 하는 유일한 취미, 사다리 계추라는 매력에 빠져 소박한 목돈을 들고 많이 재미있어 했던 시절 서로에 대한 표현마저 감추어 버리는 은근한 시샘, 대학 근처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그야말로 우리 다섯 맘들의 사랑방이었다.
돌아가면서 솜씨를 발휘했던 그 시절, 단골 비빔국수, 잔치국수는 지금도 만나면 웃으며 얘기하는 우리들의 소박한 추억의 메뉴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이혼이라는 아픔 앞에 넘쳤던 에너지 맘들의 모임은 그녀의 슬픈 얼룩진 인생을 위로도 못 한 채 모임은 끊어졌지만 그녀의 삶은 우리들의 관심 속에서 끈을 놓지 않았다.
숱한 세월 속에 혼자서 아이 둘을 키워 장가보내고, 사회에서는 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복지센터원장으로 자리매김도 하고, 서울 근교 예쁜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몇 년 전 우리들을 초대했을 때 우리는 그녀의 질경이 같은 인생을 힘차게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지 않았던가?
이 사람아, 빨리 일어나게나! 제발 희망의 실은 절대 놓지 말게나!
긴 겨울 속 우리들의 주름진 몸을 따뜻한 햇볕 속에다 말려보세나, 봄날에 날개를 달고 우리 아이들이 알콩달콩 사는 그곳으로 더 큰 날개되어 나의 얘기, 너의 얘기, 우리 아이들의 얘기를 들려주기를 마지막 젖 먹던 힘으로 제발 날아 보세나.
그 옛날 시샘의 열정은 다 어디로 갔는가.
꿈틀 대는 주름 속 희망을 부여잡고 뛰쳐나와 멀리 더 높게 커다란 날게 달고 우리 같이 얼른 비상해 보게나.
그 날
아침부터 주르륵 내리는 비는 우리 부부의 불협화음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눈깔사탕 같은 하루다.
구미로 냅다 달리는 아침, 고속도로 빗길은 내 앞차도 달려오는 뒤차도 유난히 오늘따라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순을 넘은 나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여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 길 위에서 방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은 적잖아 당황스럽기만 한 오늘이다.
금오제 무용 경연대회 앞두고 단체 팀워크는 선생님들과의 연습과 시간 기타 등등은 일상에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코로나로 인한 오랫동안 칩거생활에서 오는 몸과 맘의 부재에서 오는 허당의 익숙함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작년에 어렵게 합격했던 실기시험에 따라 연수 신청을 해야 하는데 신청기간이 일주일이 있어 여유 있게 생각했던 것이 그날 연습하고 돌아온 오후 4, 5월의 연수는 하루 만에 마감되어 버렸다. 에긍 이일을 어쩐다.
이제 기회라고는 7월에 접수해서 11월 연수를 기다려야 하니 이 허당을 우찌 할꼬.
그날 아침부터 마음이 터지고 나간 구미 발길은 무겁기만 했던 탓이리라.
늦은 밤 도마질 소리에 한껏 조심 한다했는데도 남편은 귀에 거슬렸나 보다.
미스 트롯 눈깔사탕 같은 꼬마 아이의 노래 "범 내려온다 " 딱 그 표정이다.
때 아닌 남편 폭풍 항의에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내 아들의 사춘기 때 그런 맘이었을까?
이순 넘으니 갈 곳이라고는 내 방 안방 10평 도 안 된다.
남편도 남이 되어버린 슬픈 밤이다.
입속에 사탕처럼 살살 녹여 가며 사는 인생 아닐 지라도 무쇠처럼 은근히 달구어 가며 사는 세월 아니든가.
그래서 내 주방 한편에 차지하고 있는 묵직한 무쇠솥을 나는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다.
어제 일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은 무덤덤으로 돌아간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야."
허당인 내 긴 한숨의 독백이다.
솜사탕 같은 사랑은 아니어도 눈깔사탕처럼 치뜨며 사는 인생, 그 또한 아니라 할지에도 입 속에 큰 왕사탕 하나를 오른 볼에 불룩이 넣고 이리저리 굴리며 녹여 먹는 달달한 침샘.
더는 외롭지 않게 그렇게 굴려 가며 인생을 살고 싶다.
커다란 왕사탕을 언제 사서 한입 가득 볼 터지게 물고 있어 봐야겠다.
허당 같은 나한테도 봄 햇살처럼 환한 이빨 드러내며 목젖까지 보이며 웃는 그날을 기다려 보자.
살아 있음에
오래전 문화센터에 등록해서 '라겐 차차차' 신명 나게 학생으로 운동하고 있을 때이다.
나하고 동갑인 그녀는 적어도 이슬만 먹고 살아온 것 같은 미모와 우아함을 겸한 천녀였다. 적어도 오늘날 내가 댄스에 빠져 버린 로망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나한테는 황무지와 같은 댄스판에서 가끔 배시시 웃는 모습이 전부였던 그녀의 춤사위를 한 번씩 훔쳐보고 내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충분한 조건을 가진 그녀였다.
까칠한 성격과 누구와 타협이란 걸 모르던 나에게 안겨준 건 모난 돌과 뾰족한 징 뿐이었다.
세월은 흘러 나에게 사랑과 타협과 동글동글한 몽돌처럼 세상 살아가는 법을 마음에 안겨 주었으니 어찌 내가 지금 와서 춤의 예찬가가 되지 않았겠는가.
목간통 동기생들과 정기적인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 나이 되어서 이제는 모두 즐겁게 살자면서 모였다 하면 입을 모아 합창이다.
그중 한 친구는 며칠 전까지도 만나 얘기했던 지인이 예전에 내가 살았던 모 아파트 9층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잘못된 생각으로 이슬처럼 가버렸단다.
오늘 아침 뉴스는 또 어떤가, 한 사람의 유명인이 이슬처럼 별이 되어 떠나지 않았는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와 고독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오늘도 춤이 있어 나는 감사하고 행복하다. 한때는 로망이었던 그녀도 바람결에 타고 오는 소식은 몇 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거동이 무척 불편하단다.
저녁에 동네 한 바퀴를 돌며 한 시간씩 매일 운동을 한다.
여름의 새벽 5시는 훤하다. 새벽이슬 먹으며 운동할까 해서 나가려 했더니 오늘따라 거실 창밖으로 비가 후드득 내리친다.
내일은 꼭 새벽 5시에 일어나 이슬 맞으며 운동해야 봐야겠다. 싫지만 않다면 습관처럼 내 몸에 운동으로 앞으로 맞춰야겠다. 이른 새벽이슬 맞고 하는 운동은 과연 어떨까.
또 한 번 스멀스멀 호기심이 발동한다. 못 말리는 에너지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잠시 무거웠던 내 마음을 내려놓아 본다.
위기를 극복으로
"두 번 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마음 속으로 이빨을 꽉 깨물고 있다.
매일 두 세 시간씩 혼자 스포츠댄스 모던 5 종목의 연습은 오롯이 나하고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치 힘이 든다는 생각보다는 가끔 이 짜릿한 쾌감은 뭐지?
몇 년 전 한양여대에서 치른 실기· 구술 시험에서 구술시험 랜덤 카드를 집어 든 순간 문제의 제목은 '폭스트롯에 임피투스'였다
"임피투스 남자 것 한번 해보세요." 하는 시험 감독의 말이 떨어지자 힐 풀을 해야 할 내가 브러시라는 여자 발을 하고 있었으니, 이미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날 참패의 기억은 넉넉한 실기점수 80점의 공든 탑을 가차 없이 뭉개어 버렸다.
총칼이 없는 휘귀병 코로나 19와의 전쟁 속에 전 국민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갇혀 버린 고통 속에 남아도는 많은 시간을 차라리 연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오늘도 아파트 멋진 연습장 클래시안, 나만의 공간에서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맹연습 중이다.
왈츠, 폭스, 퀵, 그리고 비엔너 왈츠는 내 건강한 행복을 위한 평화 속으로 오늘도 진행 중이다.
불편한 오해
오래전 댄스스포츠 라틴, 모던에 두 발이 풍덩 빠져 있을 때였다.
일요일 케리어 가방에 파티복, 댄스화를 넣고 동대구역 구석진 어느 곳에 주차를 해놓고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댄스 동호인들이 모여있는 서울의 어느 댄스 파티장이었다. 형형색색의 드레스와 빨강, 깜장 나비넥타이를 매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선남선녀들은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플로어에는 엘 오디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끊임없이 쌍쌍 파티로 돌아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어떻게 추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멋진 턱시도에 쫙 펴진 양어깨의 뒤태, 목에 깁스를 한 듯 자신감 넘치는 매무새에서 신데렐라가 된 착각도 잠시 나의 당혹스러움은 멈추지 않았다. 2곡을 추고 나면 손을 정중하게 놓고 돌아서지 않는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훗날 부끄럽게 스스로 깨달은 불편한 진실은 댄스로 비유하자면 운전자는 벤츠인데 대구 촌 여사님은 댄스 실력으로 비유한다면 털털 거리며 가는 고물 트럭이 바로 나였다.
불편했던 오해를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으니 그 후 세월은 적어도 나에게 춤추는 예의까지 가르쳐 준 세월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작년 겨울로 기억한다. 동호인 모임인 대구 파티에서 "보석님 한 손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 하며 다음 음악이 시작될 때까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또 다른 분이 "한 손 부탁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먼저 약속한 분이 계셔서....." 나의 끝말 뒷소리가 작았는지 그분은 거절로 받아들여 자존심이 상했던 표정이시다. 파티가 끝날 때까지 아니 그 후 몇 차례의 파티도 아예 얼굴은 데면데면이다.
그때의 그 불편했던 오해도 미세한 감정에 감출 수가 없는 열정이 그래도 식지 않는 건 음악이 있고 리듬이 있고 감정의 하모니라 그런가?
가랑비에 옷 젖는 세월이 어느새 짧지는 않았지만 늘 생각나는 노래 가사 말을 가끔은 혼자서도 읊조린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타인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오해보다 이해를 할 수 있는 넉넉한 삶을 살고 싶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불편한 오해보다는 행복한 이해를 하며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