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엄마의 사랑 나눔
최균희
어느 일요일이었어요. 엄마가 미장원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지 몇 시간 만에 초인종이 따르릉 울렸어요. 나는 얼른 문열림 버튼을 누르고 엄마가 들어오길 기다렸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엄마의 모습이 아주 달라져서 몰라볼 정도였어요.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요. 그 동안 엄마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는 긴 머리를 뒤로 꼭 묶고 다녔는데 별안간 짧은 쇼트커트를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아니, 엄마의 변신? 왜 그랬어요?”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어요.
“엄마, 이상해!”
동생 혜지는 엄마 품에 안기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어요.
“그렇게 이상하니? 날씨가 더워지니까 자른 거야.”
그런데 아빠는 조금 전 놀랐던 모습은 어느새 감추고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어요.
“히야, 아주 세련되어 보이네. 진즉 그렇게 하고 다닐 것이지.”
엄마는 여러 차례 긴 거울에 전신을 비쳐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러자 아빠는 또 금방 엄마의 비위를 맞추기라도 하듯 말을 이었어요.
“얘들아, 너희 엄마 아주 예쁘지?”
“아휴, 그만 놀리세요. 머릴 자를 때가 되어서 자른 거랍니다.”
엄마는 가방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며 우리에게 살짝 윙크를 보냈어요.
다음 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를 만났어요. 내가 어디 가느냐고 묻자 엄마는 우체국에 우편물을 부치러 가는 길이래요. 엄마는 노란 서류 봉투를 내보였어요. 그게 무어냐고 묻자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그냥 걸었어요.
“엄마 누구에게 무얼 부치러 가세요?”
나는 엄마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며 물었지요. 엄마는 대답을 안했지만 나는 엄마가 우표를 붙일 때 슬쩍 그 봉투의 주소를 봤어요.
거기에는 분명히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라고 적혀 있었어요. 나는 속으론 놀랐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집으로 돌아와서 숙제를 다 했어요.
아빠가 퇴근을 하고 저녁상 앞에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를 기다렸지요. 마치 엄마의 비밀을 폭로라도 할 것처럼 내가 캐어 물었지요.
“엄마, 우체국에서 부친 노란 서류 봉투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었어요? 왜 나에게는 말해 주지 않는 거예요. 제가 분명히 읽었거든요.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였지요?”
“소아암 협회?”
아빠도 엄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어서 답해보라는 눈치를 보냈습니다.
“아휴, 난 은지 때문에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다니까. 별걸 다 궁금해 하고. 그래 말해 줄게. 별거 아니야, 어제 소아암 협회로 보낸 건 미장원에서 자른 내 머리카락이거든.”
“네? 머리카락이요?”
나와 아빠는 동시에 똑같이 외쳤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병을 이겨내는 것도 힘든데 항암제를 복용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소아들에게 가발을 쓸 수 있도록 25cm 이상 머리를 길러서 소아암 협회에 기부를 하고 있대요. 그런데 머리를 기르는 동안 염색이나 파마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요. 아주 건강한 머리카락만 사용하기 때문에 어린이 가발 하나를 만드는데도 40~50명 정도의 머리카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 동안 머리를 기른 이유가 다 뜻이 있었던 거군요.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 일을 해냈지요?”
“저의 비밀 셀프 미션을 걸어놓은 거지요."
“그럼, 엄마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멋도 부리지 못하고, 2년이 넘도록 계속 머리를 길렀다는 거네요?”
“내 작은 성의가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면 그게 바로 사랑 나눔이란다. 이 세상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거야.”
“야, 우리 엄마 진짜 멋쟁이다!”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요. 그런데 그 긴 머리 때문에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할까 봐 난 내심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모른답니다. 학부모 회의가 있는 날이면 ‘우리 엄마도 옆집 준호 엄마처럼 산뜻하게 차리고 나왔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으니까요. 그런데 목적을 가지고 그토록 열심히 머리를 길렀다니 우리 엄마가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엄마는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한 시도 쉬는 적이 없었어요. 우리가 학교에 간 사이에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었어요. 어느 때는 재봉틀 앞에 앉아서 온종일 작은 옷들을 만들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면사나 털실로 뜨개질을 하곤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모두 소아암 협회 같은 곳에 보내는 엄마의 사랑의 선물이었나 봅니다.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물김치도 담고, 김장도 많이 해서 불쌍한 이웃과 독거노인에게 나눠주고, 성당에 나가서도 자원봉사를 하는 일이 취미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물건을 사온 뒤 모아놓은 비닐 봉지들을 들고 나가 길가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에게 건네주는 모습도 나는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요즈음엔 매주 한나절씩 시간을 내어 석촌호숫가에 나가서 전에 학교에 근무했던 퇴직교사들과 함께 동요사랑 나눔 봉사를 한다고 들었어요.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동요를 들려주면서 아름다운 동심을 되살리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젖게 한다고요.
“엄마, 나도 이제부터 머리를 기를래요. 25cm 넘을 때까지 자르지 않을 거예요.”
내가 엄마에게 말하자 무조건 나를 따라하는 혜지도 금방 ‘엄마, 저도요' 하고 한쪽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머리를 기를 수도 없고, 소아암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없을까?”
아빠가 잠시 고민을 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해마다 헌혈을 하지 않나요? 그게 바로 사랑 나눔이지요. 그렇더라도 이제부터는 소아암 협회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가족이 불우 이웃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우면 어떨까요?"
“ 좋아요. 찬성합니다.” 우리 가족은 다같이 손뼉을 쳤습니다. 엄마는 금방 인터넷에 들어가 여러 곳을 알아보더니 누군가와 한참 동안 전화를 한 뒤 말했습니다.
“이번 주말에 우리 가족이 찾아갈 곳은 ‘꿈나무 마을’로 정했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우리들이 입던 작아진 옷 중에서 깨끗한 옷들을 챙기고, 나와 동생은 우리가 쓰던 장난감과 책들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랐습니다. 아빠는 박스를 챙기고 포장을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아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그 동안 자원봉사는 엄마만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의 작은 힘도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별안간 옆집 개구쟁이 친구 준호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등이 닿을 정도로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만날 때마다 뒤에서 내 머리채를 잡고 장난을 걸어올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내 작은 비밀을 말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엄마가 스스로 셀프 미션을 정해놓고 감쪽같이 해낸 것처럼 말이지요. (월간 문학 2017년 6월호 게재)
★ 최균희 약력
*197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아기 참새)
*1992 년 현대문학 3월호 수필 등단(목화솜 이불)
창작동화집 『아기 참새』 『동전 한 닢의 편지』 『꽹과리 소년』 외,
글쓰기지도서『재미난 이야기글쓰기』, 동시집 『아이와 달맞이꽃』,
한영동화집 『아기 참새』, 장편소설 『평양기생학교 스캔들』등 저서 20여권 출간
* 한국문학예술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 개나리동요대상, 상상탐구작가상, 펜문학상 등 수상
* (사)어린이문화진흥회 이사장, 국제펜한국본부 부이사장,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현대작가연대문인회 부이사장, 계간문예작가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문인극 기획위원, 물오름 극단 배우,
*전)언남중학교 교장, 송파문인협회 회장, 추계예술대학교 문창과 외래교수 역임
kyunhee37@hanmail.net
서울 송파구 중대로 24. 209동 202호(문정동 올림픽훼밀리@)
핸드폰 010-7459-6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