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곳이 없다 보니 눈 내리고 추우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니까요.”
최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광주지역 상당수의 기·종점에서 대기하는 시내버스 운전원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마땅히 쉴 만한 대기실이 없는데다 시내버스의 공회전을 5분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운전원들의 몸 녹일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11일 광주 남구 봉선동의 한 시내버스 종점. 황량한 주차공간에 10여 대의 시내버스가 시동을 끈 채 주차해 있다.
송정98, 봉선37, 봉선27, 금남57번 등 시내버스의 회차지인 봉선종점은 주차장 한 켠에 이동식 화장실만 두 개 설치돼 있을 뿐 아무런 대기시설이 없다. 이 때문에 버스 운전원들은 차 밖에서 몸을 움츠리며 대기한다.
한 시내버스 운전원은 “새벽 출근시간이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종점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더 고통이다”며 “차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계속 제자리 걸음을 걸으며 몸을 녹인다”고 말했다.
광주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광주지역 전체 60여 곳의 기·종점 중 40여 곳이 봉선종점처럼 편의시설이 없다.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은 시 공영차고지 6곳, 자치구 공유지 임대 5곳, 도시공사와 철도공사 부지 임대 2곳, 사유지 임대 6곳 등 19곳에 불과하다. 버스 운전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통상적으로 버스 운전원들이 노선 운행 후 대기하는 시간은 종점이 10여 분, 기점은 30~40분이다. 대기실이 없을 경우 꼼짝없이 추위에 떨어야 한다.
예전 같으면 버스 안에서 시동을 걸어 놓고 쉬기도 했지만 최근엔 ‘자동차 공회전 제한에 관한 조례’에 따라 주차장 내에서 5분 이상 공회전하지 못한다. 버스회사 측에서는 이같은 조례와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공회전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한 시내버스 운전원은 “버스를 운행하기 위해 시동 걸고 5분 이상 대기했다간 회사 측으로부터 질책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며칠 전에도 동료 한 명이 공회전을 하다 걸려 시말서를 썼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버스 운전원은 “시동 건다고 곧바로 실내가 따뜻해지는 게 아닌데 공회전을 무작정 제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실내가 데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면 시민들도 춥고 유리창에 성에가 끼어 운행도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편의시설을 확충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버스운송사업조합은 ‘그린벨트’와 ‘유지·관리비용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차고지가 그린벨트 지역이라 대기실용 건축물을 짓기 어려운데다, 짓더라도 냉·난방시설과 전력, 수도 등을 추가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그린벨트에 건축물을 지을 경우 ‘불법’이라는 이유로 말썽이 생긴다”며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임대료만 2억 원에 시설 관리·유지 비용이 별도로 들어가기 때문에 대기실 설치의 필요성은 알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박준배 기자 nofate@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