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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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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배도/카톨릭 스크랩 [새벽을 깨우는 소리(3)] 상상을 초월하는 천주교의 두 얼굴
새언약 추천 0 조회 1,619 12.01.05 01:1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천주교 단체로서 1882년 미국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자선사업, 협동, 박애, 애국심의 기치를 내세우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콜럼버스 기사단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필리핀, 괌, 사이판, 일본, 쿠바, 폴란드 등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콜럼버스 기사단은 대내적으로는 종교재판을 주도한 예수회와 동일선상에 있는 바티칸의 하수조직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맹세문이 1913년 2월 15일 미국 의회 제62회 회의록 3,215쪽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원문은 미국국회 도서관 소장문서 66-43354로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맹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Knights of Columbus oath
콜럼버스 기사단의 선서

 

 

   I will place Catholic girls in Protestant families that a weekly report may be made of the inner movements of the Heretics. That I will provide myself with arms and ammunition that I may be in readiness when the word is passed or I am commanded to defend the church either as an individual or with the militia of the Pope.

 

   ? 나는 개신교도 사이에 카톨릭 종교의 여자들을 투입시켜 매주 그 이단자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보고서를 받고 내 스스로 무기와 총들을 항상 준비해 있으며 명령이 전달되었거나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명령을 받았을 시 개인이나 교황의 군대를 동원해서 명령을 수행한다.”

 

 

   In testimony hereof, I take this holy and blessed sacrament of the Eucharist and witness the same further with my name written with the point of this dagger dipped in my own blood and sealed in the face of this holy sacrament.

 

   ? 여기서 맹세하기를 나는 거룩하며 은혜로운 성체 성사를 받들어 상체 성사 안에 저장된 단도로 피를 내어 채운 내 자신의 피를 가지고 쓴 내 이름 앞에 맹세한다.

 

 

   I do further promise and declare that I will, when opportunity presents make and wage relentless war, secretly and openly, against all heretics, Protestants and Masons, as I am directed to do, to extirpate them from the face of the earth, and that I will spare neither age, sex, nor condition.

 

   ? 더 나아가 나는 약속하고 맹세하기를, 일단 명령을 받으면,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모든 이단자들과 개신교도들과 메이슨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무자비한 전쟁을 벌일 것이다. 불명예스러운 이단자들을 척살하기 위해서라면 나이나 성별이나 다른 조건들에 전혀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And that I will hang, burn, waste, boil, flay, strangle, and bury alive these infamous heretics; rip up the stomachs and wombs of their women, and crush their infants' heads against the walls in order to annihilate their execrable race. That when the same cannot be done openly I will secretly use the poisonous cup, the strangulation cord, the steel of the poniard, or the leaden bullet, regardless of the honour, rank, dignity or authority of the persons, whatever may be their condition in life, either public or private, as I at any time may be directed so to do by any agents of the Pope or Superior of the Brotherhood of the Holy Father of the Society of Jesus.


   ? 나는 이들 이단자들의 목을 졸라 죽이고 태워죽이고 말려죽이고 끓여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질식시키고 생매장할 것이다. 열등한 종족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여자들로부터는 창자와 자궁을 드러내고 그들의 신생아들의 머리를 벽에다가 쳐 박아 박살낼 것이다.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할 상황이 되지 못한다면 비밀리에 독약이 든 컵이나 교살용 노끈이나 강철 단검이나 납으로 된 총알을 은밀하게 사용하여 척살할 것이다. 어떤 때이건 내가 교황의 대리인이나 예수회의 상부로부터 명령을 하달받기만 하면 사냥감의 명예나 권위나 지위나 기타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반드시 처단할 것이다.

  

   Should I prove false or weaken in my determination, may my brethren and fellow militia of the Pope cut off my hands and feet, cut my throat from ear to ear, may my belly be opened and sulfer burned therein with all the punishment that con be inflicted upon me on earth and my soul shall be tormented by demons in eternal hell forever. That I will in voting always vote for a Knight of Columbus in preference to a Protestant, especially a mason.


   ? 내가 내 확신에 대해 부정이나 우유부단하게 될 때 내 형제나 교황의 군사는 내 손과 발과 내 입을 귀에서 귀까지 째고 배를 가르며 염산으로 나를 태우고 지구상의 모든 형벌을 가함받고 나의 영혼은 악마에게 고통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빠질 것을 안다. 컬럼버스의 기사로서 개신교들이나 특별히 메이슨을 향하여 맹세한다.

 

 

 

   이 맹세문과 관련하여 바티칸에서는 개신교 광신자들이 천주교를 음해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자료라고 반박했으며 천주교 친화적인 언론사에서도 이를 옹호하는 기사도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에 대한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해본 결과 이 맹세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천주교가 종교재판을 통해 개신교도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위 맹세문과 정확하게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앞에서 기술한 바벨론과 관련된 내용들이 제아무리 객관적인 자료들로 뒷받침되고 있을지라도 죄다 개신교의 천주교에 대한 악의적 모함이라고 일축하며 무조건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신화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신화로 치부할 수 없는, 불과 수백 년 전의 그들의 행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중들에게 심어진 좋은 이미지와는 달리 예수회는 중세 말, 교황권의 부정과 죄악상을 고발하며 일어난 종교개혁을 박해하기 위한 종교재판을 부활시킬 목적으로 수도사 로욜라(Ignatius de Loyola)가 창설한 악명 높은 수도회입니다. 로욜라가 1542년에 설립한 종교재판소는 이른바 세계사 속에서 ‘종교암흑기’리 불리는 16세기부터 18세기 말 교황권이 몰락하기까지 무려 5천만 명 이상을 온갖 잔인한 고문과 화형으로 학살했습니다. 단지 천주교로의 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개신교 크리스천들을 죽였습니다.

 

   교황청의 손에 의해 순교한 크리스천들의 숫자는 무려 5천만에서 8천만 사이에 달한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교황의 거짓 주장들을 반대하고 구원과 진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고귀한 영혼들은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혀 로마교회(천주교)에 의해 소름끼치는 박해와 환란을 당했던 것입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서울:도서출판예루살렘, 2009), 98-99.] 5천만 명이라면 남한인구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사실 천주교 측에서도 과거에 그들의 교회가 저지른 박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새 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은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종교 재판, 특히, 중세의 막비지에 스페인에서 자행했던 종교 재판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기록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Ibid., 118.]


   다만, 천주교 측에서는 5,000만 명이라는 수치가 지나친 과장(2,800만 명 정도로 추산)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개신교 보수진영에서는 이것도 많이 축소한 것(6,8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수치는 대척점 사이의 평균 정도라는 겁니다. 실제로 교황권이 존재한 기간 중 해마다 평균 4만 명의 종교적 살인이 자행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John Dowling, History of Romanism, 541-542.]


   역사를 바로 아는 프로테스탄트라면 로마교회가 인류 사회에 존재했던 어떤 단체보다도 무고한 자를 많이 죽였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교회에 의해 희생된 자의 수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W.E.H.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the Sp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2, 1920 ed, 32.]


   그 당시의 자료가 워낙 철저하게 훼손된 탓에 바티칸이 죽인 개신교도들의 숫자가 5천만 명보다 더 적은지 더 많은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개신교도들을 고문하고 죽였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이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악명 높은 히틀러조차도 바티칸이 개신교도들을 죽이듯이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바티칸에서는 천주교의 타락에 항거하여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필설로 형언키도 힘들 정도로 참혹한 고문에 이은 살인을 자행해왔습니다.


   교황은 이단을 제거하고 정통신앙을 수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교구마다 종교재판소를 설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공의회의 결정이 내려지면 세속군주들은 무력을 사용하여 이단자를 처단했습니다. 1179년에 모인 제3차 라테란공의회를 비롯한 몇몇 공의회들은 세속군주들이 무력을 동원하여 이단을 탄압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교회의 종교재판법은 1184년 교황 루시우스 3세가 제정했습니다. 모든 교구가 최소한 1년에 한번 이상 교인들을 조사하여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를 색출하도록 했습니다. 이단자를 보호하는 사람은 불고지죄의 책임을 물어 이단자와 동일한 처벌을 받게 했습니다.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는 이단들을 진멸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수도사들도 감독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도록 했습니다. 1229년의 툴루스 종교회의의 결과에 따라 십자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의 뒤처리를 위한 종교재판소가 개설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강제개종을 위한 무시무시한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의 권력을 인정하고 철저한 통제를 받아들이며, 교황의 정책을 영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조차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성직주의와 교황권력에 항거하는 사람은 생존이 불가능했습니다. 서방교회는 이단자를 징벌하는 십자군을 일으켰습니다. 팔레스틴으로 쳐들어간 십자군이 이교도를 진멸하는 것처럼 새로운 발상이나 신앙을 가진 자국 백성들을 징치했습니다.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하거나 팔다리를 찢고 물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사상의 씨까지도 말리려고 했습니다. 이단색출 정책을 강격하게 지지하던 버나드조차 “이단자들은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설복에 의해 개종시켜야 한다.”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최덕성, 『종교개혁전야』(서울:본문과비평사이, 2003), 59-61.]


   1252년 교황 이노센트 4세가 고안하여 발표한 《박멸에 관하여》(Ad Exstirpanda)라는 문서는 이단자들(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잡아서 “독 있는 뱀을 누르듯 눌러서 짓뭉개라.”고 선동합니다. 이 문서는 이단자들에 대한 고문을 사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으며, 이단자들을 곱게 죽이지 말고 화형 시킬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단을 한 명이라도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그들의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이단사냥을 독려했습니다. 이 교서는 그 이후 종교 재판소의 기초 문서로 전수되어 몇몇 교황들, 즉, 알렉산더 4세(1254-61), 클레멘스 4세(1265-68), 니콜라오 4세(1288-92), 보니파시오 8세(1294-1303) 등이 쇄신하거나 강화시켰습니다. [랄프 우드로우, 안금영 역, 『로마가톨릭주의의 정체』(서울:할렐루야서원, 1989), 195.]


   12세기 말까지 벌금, 투옥, 노예 봉사, 유배, 재산 압수, 공민권 박탈, 교수형, 화형 등 이단에 대한 광범위한 형벌들이 있었습니다. 고문은 원래 민사 재판소가 행했으나 1252년부터는 교황 이노센트 4세의 공인에 따라 종교 재판소에서 본격적으로 고문을 집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다가 처참하게 화형에 처해졌으며 이단으로 유죄 선고된 자들의 시체는 사후에도 파헤쳐 불살라졌습니다. 또한 그 후손들의 재산은 몰수당했습니다. 종교 재판관들은 실로 야만에 가까운 가혹한 집행을 행하였습니다. [J. G. 로우, 『아메리카나 백과사전』(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15권, 191-194.] 이러한 로마교회의 개신교 박해 관련 발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115.]

 

 

   “이단자란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믿지 않으려고 고집스럽게 버티는 침례 받은 신자이다… 예를 들면 다양한 개신교 분파들이다… 개혁주의인 프로테스탄티즘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단들의 총집합이다. 물론 그 이후에 일어났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혼들을 파괴할 수 있는 이단들의 본산이다.”

 

   “공공연히 이단임을 공언하고 말이나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을 그릇되게 인도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은 절대적으로 말하노니, 출교뿐만 아니라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

 

   “교황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프랑스의 선을 위하여 위그노교도가 마당히 처형될 것을 원했다.”(교황 그레고리 1세)

 

   “지난 1200년 동안에 침례교도들이 칼로 끈어버림을 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모든 개혁자들보다 더 많은 수효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트렌트 공의회 의장 호시우스 추기경, 1524년)

 

   “옛날 무서운 알비젠스 이단을 몰아내신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우리들의 간청에 감명되시어 오늘의 오류도 없이 하실 것입니다.”(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1937년)

 

   “교회는 신성한 권위에 의하여 이단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감금하고 화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형벌들과 사형까지도 내릴 권리가 교회에 있다… 그러므로 이는 근절되어야 한다.”(교회 공범 2권, 142)

 

 

   바티칸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문방법과 고문도구를 개발했습니다. 그들로부터 일단 이단으로 규정된 성도는 온갖 종류의 끔찍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막달린 칼리지 특별연구원이 되어 교회사를 연구했던 존 폭스의 『기독교 순교사화』(생명의 말씀사)에는 1229년 이후 바티칸에 의해 자행되었던 무시무시한 악행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비단 교회사 자료뿐만 아니라 세속사 자료에서도 바티칸이 개신교도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고문하고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랄프 우드로우, 『천주교의 유래』(인천:그리스도예수안에, 2011), 148-154. /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99-113.]

 

   바티칸은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장 심한 고문과 고통을 가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문법을 고안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긴 평판의 고문대(rack)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뒤로 눕힌 다음, 사지를 결박한 상태에서 끈을 잡아당기는 고문기구였습니다.

   천주교의 사제들은 이 기구를 이용하여 고소당한 사람의 손과 발을 묶고 뒤로 눕힌 뒤 밧줄로 사지를 감아 죄어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면 고문당하는 사람의 사지가 찢겨져 나가면서 극심한 고통이 가해졌습니다. 이는 실로 능지처참과 비슷한 형태의 악랄하고도 끔찍한 고문방법이었습니다.

 

 

  또한 바티칸의 고문자들은 무거운 집게로 손톱을 뽑아내기도 했고, 눈동자나 성기, 항문과 같은 신체의 민감한 부분들을 불에 달궈진 꼬챙이로 뜨겁게 지져대기도 했습니다.

 

 

   예리한 칼과 송곳들이 달린 롤러 위에 이단자들을 올려놓고 그 위로 롤러를 굴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뼈마디를 부수기 위해 엄지손가락 고문기구를 사용했으며 다리와 발가락을 짓뭉개기 위해 ‘스페인 부츠’로 알려진 고문기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중세시대의 고문기구를 대표하는 것은 소위 ‘철갑처녀 고문기’였습니다. 이는 사람의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제작된 관의 내부에 철침이 가득히 박혀 있는 고문기구였습니다. 사람을 집어넣고 문을 닫으면, 온몸에 굵직굵직한 철침이 박혀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캐비닛의 형태였으나 후일 마리아의 형상으로 의인화되면서 ‘철갑처녀 고문기’(Iron maiden)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입니다.

 

 

   도르레를 이용한 고문도 사용되었습니다. 손을 등 뒤로 묶은 후 그 손을 다시 밧줄로 묶은 다음, 도르레를 사용하여 몸뚱이를 일단 위로 들어 올립니다. 그 이후에는 떨어뜨리기도 하고 갑자기 줄을 확 당겨서 어깨의 관절을 골절시키거나 신체의 다른 관절들을 탈골시킴으로써 극렬한 고통을 가하는 고문방법입니다.

 

 

   유다 요람이라는 고문기구도 사용되었습니다.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에 끈으로 묶인 대상자의 항문이나 여성의 성기가 위치하도록 앉힌 다음 줄을 천천히 풀어서 체중에 의해 서서히 파고들게 하여 극심한 고통을 가했습니다.

 

 

   바티칸의 고문자들은 희생자들의 옷을 벗긴 후에 단단한 줄로 그들의 팔을 등 뒤로 묶었고 발에 큰 추들을 달았습니다. 그런 다음, 도르래를 사용하여 그들의 몸을 공중에 매달거나 혹은 떨어뜨렸다가 갑자기 들어 올림으로써 신체 부위의 관절들이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고문을 실시하는 동안 사제들은 십자가를 들고 이단자들이 자기들의 주장 혹은 교리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천주교의 가르침을 거절한 사람들의 귀와 입 속에 끓는 납을 부어넣기도 했습니다. 눈알을 도려내는 사례도 있었고, 채찍으로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긴 대못들이 죽창처럼 박혀 있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려졌으며, 핀셋에 꽂힌 박제곤충처럼 못에 온 몸이 꿰뚫린 채 처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살 조각과 소변과 배설물들로 인해 질식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종교재판소에서 고문을 당하는 희생자들의 경우 야간에는 마룻바닥이나 벽에 쇠사슬로 묶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피로 가득 찬 고문실 안에 서식하고 있던 쥐나 해충의 먹이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페인에서만도 종교재판에 의하여 고난당한 사람들 가운데 산 채로 화형당한 사람이 31,912명으로 헤아려졌고, 복종하도록 강요된 참회자가 291,450명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알비젠스인들에 대한 대학살에서는 백만 명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교황 인노센트 3세가 1208년 알비젠스인과 왈덴스인의 박멸을 위해 일으킨 십자군 당시 30년 동안에 무려 900,000명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살해당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천주교 신자인 알바 공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하게 사형에 처해졌는데 알바 공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르인들, 곧 지금의 벨기에의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 프랑스 북부를 포함한 많은 지역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생매장의 형태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Guinness, Key to the Apocalyps, 92-93. / Albert Barnes, Notes on Daniel, 328.]


   1209년 베지에르즈(Beziers)는 이단자들을 박멸하는 운동에 가담하면 연옥을 거쳐 즉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교황의 말을 굳게 믿은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에서 6,000명이 칼로 살육되어 거리에는 피가 강같이 흘렀다고 합니다.


   1211년 라바우어(Lavaur)에서는 총독을 교수대에서 처형하였고 그의 아내를 우물 안으로 쳐 넣어서 돌로 짓뭉개버렸습니다. 약 400명은 산 채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단사냥꾼들은 아침에 대미사에 참석한 뒤에 다른 지역의 고을들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했습니다. 이 포위 공격으로 인해 10만 명이 넘는 알비젠스(Albigenses) 교도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시체는 산더미처럼 쌓아올려진 상태에서 그대로 불태워졌습니다.


   1400년 알프스 프라겔라(Pragela) 골짜기에 은신했던 왈덴스 교도들이 로마교회가 보낸 토벌군에 의해 기습을 받아 짓밟히고 살해당한 뒤, 피하여 도망친 사람들은 엄동설한에 심산유곡에서 수도 없이 얼어 죽었습니다. 1488년 교황 이노센트 8세의 왈덴스 교도 박멸령에 따라, 프랑스 군대들이 알프스의 로이스(Loyse) 골짜기에 덮치자 왈덴스 교도들은 동굴로 피신했으나, 입구에 불을 놓아 3,000여 명이 질식해 죽기도 했습니다.


   1544년 롬바르드 사람 개신교도 프란시스 감바(Francis Gamba)가 밀라노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처형 장소에서 한 수도승이 그에게 십자가를 제시했는데, 감바는 그에게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참 공로와 선하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시기 위해 무의미한 나뭇조각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때문에 그의 혓바닥은 도려내졌으며 얼마 후에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메린돌(Merindol) 대학살 때에는 5,000명의 여인들이 창고에 가두어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뛰어내린다고 해도 그 아래에는 뾰족한 창들이 직립한 채로 그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공개적으로 비참하게 폭행을 당했으며 어린아이들 역시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부모들 앞에서 처참하게 살육을 당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절벽에서 밀려서 떨어졌고 옷이 벗겨진 채 거리를 질질 끌려 다니는 고통을 당하며 죽어갔습니다.


   1562년의 오렌지(Orange) 대학살에서도 유사한 방법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교황 비오 4세는 이탈리아 군대를 파견하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척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군인들은 이러한 교황의 명령을 잔인하게 수행했고, 사람들은 혹독하고도 다양한 고문에 따른 큰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원래 프랑스는 대표적인 천주교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들이 급증하여 급기야 전체 국민의 3분의 1에 육박할 정도였는데 이들을 위그노 교도(칼뱅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개신교도)라고 합니다. 이 무렵에는 개신교도들 역시 제대로 무장을 했기 때문에 그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개신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천주교의 군대와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1570년 양자 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지면서 각각을 대표하는 프랑스 왕 샤를 9세의 동생과 나바르 왕 엔리케 사이에 혼담이 오갔습니다.


   바로 이 혼담을 빌미로 로마교회는 개신교도들을 진멸하기 위한 사악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둘 사이의 혼인식은 성 바들로메를 추모하는 날에 치르기로 정해졌습니다. 여기에 참석하고자 찾아온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무방비상태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콜리그니 장군은 총살되었고 잘린 머리는 교황청에 선물로 보내졌으며 몸통은 거리로 끌려 다녔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내의 모든 개신교도들에 대한 학살령이 내려졌습니다.

 

 

  긴급 소집된 천주교 시민군에 의해 탈출할 수 있는 성문이 굳게 닫히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는 그야말로 생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천주교 시민군들은 “프랑스와 천주교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개신교도들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모든 거리는 그들의 피로 질펀해졌습니다. 천주교 신부들은 “친척이나 친구들도 봐주지 말라!”고 그들을 독려했습니다.


   오렌스에서는 1,000명이, 로렌에서는 6,00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펜나와 사마로브리지에서는 평화를 약속한 다음에도 각각 200명과 10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멜디스에서도 200명이, 안티시도에서는 100명이, 오리언즈에서는 감옥에 투옥된 100명이, 리용에서는 80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또한 로첼레에서는 무려 18,000명이 학살당했습니다.


   투린의 수장은 죽기 전에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적출되어 강에 던져졌습니다. 브로이스에서 구이세 공작은 휘하의 군인들에게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개신교도들을 척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수많은 여인들을 겁탈하고 살해했습니다. 안쥬에서도 수많은 여인들이 더럽혀지고 살해당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두 자매는 아버지 앞에서 추행당한 후, 동시에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논네에서는 안전을 조건으로 항복한 남녀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했습니다. 군인들은 사방에 불을 질러댔고, 숨어있던 곳에서 남편과 함께 끌려 나온 아내를 겁탈한 다음, 남편을 찌르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마티스콘 시에서는 개신교도들의 팔과 다리를 자르고 죽이는 것이 스포츠로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바레에서도 극악무도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어 씹어 먹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밖에도 항복한 거의 모든 개신교도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오거스토보나에서는 파리에서의 학살소식을 듣자마자 개신교도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서 야만적인 살상을 시작했습니다. 아바리콤, 트로이, 토울로우스, 로엔과 다른 많은 곳에서도, 온 나라 전체에서 그와 같은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불과 일주일 사이에 무려 8만 명 이상의 개신교도들이 프랑스 전역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잔인한 살상행위로 손꼽히는 1572년 8월 24일의 바돌로메 제일의 대학살이 천주교의 사주에 의해 저질러졌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프랑스의 어린 왕 찰스 9세의 섭정 태후였던 캐더린은 강력해져가는 개신교도들인 위그노파를 제거하고자 위계를 사용했습니다. 혼인식을 빙자하여 그들을 한데 모아놓고 졸지에 살상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위고노면 모두 죽여!”라고 외치며 파리 시내에서만 일주일 이내에 8,000명을 살상했습니다. 두 달 동안 전국으로 확대한 살육을 통해 8만 명 이상을 죽였음은 가공할 만한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J. A. Wylie,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I, 16.]

 

 

   이때 프랑스 왕은 많은 이단자들을 살육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돌아와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교황청은 이 소식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고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축하를 위해 장엄한 행렬과 더불어 성 루이스에 있는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황의 조폐소에 명령을 내려 이 사건을 기념하는 동전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동전에는 한 손에 칼을 쥐고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천사와 그 앞에서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도망치는 위그노 교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후 1572년에는 위그노 교도들의 살육을 의미하는 'Ugonottorum Stranges'라는 글귀가 동전에 새겨졌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학살당했습니다. 스페인에서만 해도 종교재판에 의해 고난당한 사람들은 산채로 화형당한 사람이 31,912명으로 헤아려졌습니다 알비젠스 교도들의 대학살에서는 무려 백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수이트(예수회) 제도가 확립된 이후 30년 동안에 900,000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도면밀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알바공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보통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하게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르인들과 독일 사람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생매장으로 살해당했습니다.

 

 

   실로 현세적 통치자로서 전 세계의 독재군주가 된 로마 교황 치하의 대낮은 세상의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J.M. 캐롤 목사는 교황권이 신실한 성도들에게 자행한 그 소름끼치는 박해에 대하여 그의 책 『피흘린 발자취(The trail of blood)』에서 다음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J.M.캐롤, 『피흘린 발자취』(서울:혜남사, 1988), 52.]


   “나는 또다시 잔혹한 박해의 손길이 닥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만약 암흑시대라 불리었던 1,200년 동안 5,000만 명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 죽었다고 하면 ? 역사는 확실히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는 100년마다 평균 400만 명 이상의 비율로 죽은 셈인데, 이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잔악한 핍박의 쇠망치는 순교의 피바다를 이루면서 바울파, 아놀드파, 헨릭파, 베드로-부르시안파, 알비젠스파, 왈덴스파, 그리고 재침례파의 사람들 위에 가해졌다.”


   “…외길로 되어 잇는 구라파의 일등 도로가에 30마일의 거리를 두고 이 신작로를 따라 두서너 자의 간격으로 화형의 말뚝이 하나씩 세워지고 그 뾰족한 말뚝 끝마다 순교당한 재침례교도들의 피 묻은 머리가 달렸던 것도 바로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간의 상상으로서 이렇게 무서운 광경을 그려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Ibid., 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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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1.05 06:16

    첫댓글 예수님으로 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에 초대교회가 생겼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초대교회들,,,, 이것이 카톨릭들이 말하는 개신교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개신교는 중세시대에 카톨릭에서 나온 곁가지가 아닙니다..
    카톨릭에서는 그들이 오리지날이라고 하지만, 본래 원줄기는 기독교입니다..

    카톨릭은 태양신 숭배, 태양신을 낳은 여신숭배의 이교도와 혼합된,
    기독교로 위장된 사단의 회입니다..

  • 작성자 12.01.05 06:16

    기독교, 즉 예수교는 초대교회시절부터 이러한 사단의 회에 의해
    핍박과 고문과 순교의 역사를 이어갑니다..
    로마시대 황제들에 의해, 중세시대의 카톨릭에 의해,,,
    지나온 역사들에서 얼마나 많은 순교의 피가 뿌려졌는지,,
    이 땅에서도 마귀들은 이와 같은 고문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현 시대에서는 카톨릭의 음모에 의해,,
    카톨릭이 매우 선하고,거룩한 교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피와 해골과 사단숭배가 가득차 있습니다..

  • 작성자 12.01.05 06:16

    역사는 반복됩니다..
    카톨릭이 사단의 도구이며 사단의 교회인 것이,, 역사적으로도 이미 증명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현대의 카톨릭은 중세시대의 카톨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세 시대보다 더한 핍박과 고문과 살육이,, 조만간 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 사단에게 잡아 먹힐지,,
    깨어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12.01.05 10:19

    카톨릭이 이렇듯 잔인한지 얼마나 알고들 있을까요...
    모두 가리워져 있으니 카톨릭에 몸을 담고 있는 영혼들이 불쌍합니다...

  • 작성자 12.01.06 00:40

    카톨릭이 음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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