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님 재미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이런 흥미와 추리가 많은 발전을 가져 오기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접근방법에서 본인의 생각은 상당부분 다르기에 어설프게 생각을 적어봅니다.
(레전드님을 비판하는 글이 아님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관점의 차이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는 경남+전남+제주의 상기 샘플로는 알아 낼수 있는게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성씨와 본관도 모르뿐더러 어떤 집단(가족공동체)에서 중복 샘플검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즉 지역의 소수의 무작위 하플러 비율로 무언가를 예측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아주 아주 어렵겠지만, 설득력있는 결과를 도출하려면
본관, 성씨, 지역을 우선 알아야 하고 최소한 샘플을 측정하자면 족보상에 올라와 있는 장손격의 파시조 집성촌에서 동일한 수의
샘플을 측정하여 비교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허씨의 경우 양천허씨는 장손격인 김포지역(= 공암)에서 10촌이내에서 동일산 수를 샘플
김해허씨는 장손격인 경남 고성에서 "
하양허씨는 장손격인 경북 경산에서 "
태인허씨는 장손격인 전북 정읍에서 "
----> 솔직히 모든 허씨의 상계는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김해허씨도 허황옥의 성씨를 주었다고 하지만 35세 허염이
그 후손이라는 정확한 증거물은 없어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경기도 장단군 대강면 독정리 강원도 이천군 안협면 지전리, 퇴탄리
경기도 파주군 고하면 일원 평북 구성군 동산면 남산동
충북 청원군 부용면 일원 평북 구성군 사기면. 방현면 창동
전북 임실군 삼계면 덕계리 전남 승주군 해충면 일원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산 일원 함북 학성군 학서리 일원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촌1리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쌍동리 함북 길주군 덕산면. 장백면. 양사면 일원
< 양천 허씨 집성촌> &. 인구수 : 약 130,000명
전북 정읍군 정우면 일원 전남 곡성군 겸면 현정리, 가정리
전북 부안군 보안면 일원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운곡리
전북 부안군 행안면 신기리 전남 화순군 북면 일원
<태인 허씨 집성촌>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인허씨(泰仁許氏)는 남한에 총 1,305가구, 5,95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경산군 하양읍 금호동 전북 고창군. 정주시 일원
경북 경산군 와촌면 용전리 전북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경남 합천군 일원
<하양 허씨 집성촌>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양허씨(河陽許氏)는 남한에 총 3,596가구, 14,78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모평리 경남 의령군 칠곡면 도산리. 봉수면 죽전리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야시대리 경남 합천군 가회면 덕촌리, 오도리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갈산동
강원도 홍천군 동면 속초리, 후동리 경북 포항시 일원 경기도 용인군 일원
경남 진주시 승산리 경남 고성군 장산리 경북 고령군 구곡리 구실
<김해 허씨 집성촌 > 인구수 : 120,000명
가락국 후손이라 칭하는 허씨도 그 속내용을 보면 집성촌이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 지도를 펴 놓고 허씨 주요 집성촌별로 분포시키면 본관별로 모여서 지역적으로 분포됩니다.
상기의 허씨별 집성촌 분포도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1. 집성촌의 거점을 보면 제가 양천허씨를 O3계열의 한반도 북서부 지역등 으로 흘러들어온 구 발해,고구려 유민계통이라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2. 허황후의 비문을 보면
허황후는 선조들의 명에 따라 동쪽 땅에 있는 가락국(駕洛國)의 임금이었던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것이다.
그녀는 바다와 같은 강을 타고 떠내려가 이른 곳이 가락국이다. 그리하여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
호왈 보주태후(普州太后) 또는 황옥부인(皇玉夫人) 보조(普照)라고 한다.
동한(東漢:後漢) 광무제(光武帝, A.D.25∼56년) 24년이다. 김수로왕이 등극한 지 7년이었다.
동한(東漢) 영제(靈帝, A.D.168∼172년) 6년 3월에 태후는 죽었다. 이때 나이는 157세였다.
태후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태후의 성을 직접 받은 아들은 두 사람이었다.
후에 각각 봉작을 받은 땅에서 살았다. 공암(孔巖)과 하양(河陽)의 성씨는 다른 부족으로 느껴졌으나, 실은 같은 성씨인 허씨(許氏)였다. 태후의 묘지는 수로왕릉의 묘지에서 1리에 있었다.
상기의 보주태후에 나타난 공암(양천), 하양허씨 !!! 이 글의 의미는 참으로 애매하다.
허태후의 성을 직접 받은 두 아들은 김해허씨인데, 김해허씨 말은 없고 그 뒤에 양천허씨와 하양허씨가 나온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 아들이 양천허씨와 하양허씨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리고 태인허씨(허사문)는 양천허씨(허선문)와 김수로 30세손으로 형제라 한다.
3. 김해허씨는 한반도 남부와 강원도에 걸쳐 있는 듯 하다.
본인의 김해허씨 족보를 보면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가 선조가 있는데, 엄청나게 번성한 모양새다.
이러한 경우 본인은 특정 인물이 낙향하거나 유배, 도주하여 번성하였다기 보다 본래 해당 지역적 색채가 강한 곳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집단이 결국 김해허씨 집단으로 뭉쳐지게 된 것이다. 타 성씨도 비슷하리라 본다.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등 특히 인구 800만을 넘는 성씨는 하플러 집단의 샘플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 만큼 다양한 하플러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800만 김해 김씨에서 80000명의 샘플을 본다해도 1% 밖에 되지 않는다.
몇 십명의 샘플로 김해 김씨의 주류 하플러를 예측할 수 있나?
금관가야 김수로가 C3F일수도 O2B1B일수도 있다. 하지만 02B나 O3일수도 있다. 왜냐면 그는 김수로라는 단일체이기 때문이다.
금관가야의 대성동고분군이나 부산인근 고분군을 보면 전기와 후기로 그 색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지도층의 변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대가야의 멸망으로 인한 가야인의 충주 이주정책에는 "신라가 북진 때에 가야계 유민들을 동원하여 선봉에 서게 하는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을 맡기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논문도 있다. 우륵등 가야지도층이 충주로 많이 이주되었
다고 한다.
상기를 보다시피 과거의 본관은 해당 성씨가 사는 지역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씨여도 지역에 따라서 자기가 나는 창녕의 허씨, 안동의 허씨를 자칭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예는 모든 성씨에 적용된다고 본다. 조선시대 특히 구한말엔 허씨라는 성만 아는 사람 중에선 김해허씨가 양천허씨로 갔을 수
도 있고 양천허씨가 김해허씨로 갔을 수도 있다. 이건 자기가 유리한 쪽 가문으로 갈아 탔다는 의미이다.
상기의 본관별 다양성에서 변화하는 현대에서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갈아타는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천 허씨와 태인 허씨를 보라. 같은 30세손 형제지만 양천허씨는 현재 13만, 태인 허씨는 6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관과 지역, 집성촌등을 잘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본인의 선조가 살아온 삶터의 기록은 경남 고성 -> 경북 고령 -> 경북 성주 이다. 500년의 역사이다.
그 이전에는 알수 없지만, 본인의 하플러는 M176(O2B*)이며 족보전체에 분포된 김해 허씨의 집성촌 거주지가 가야제국 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경향을 보여 개인적으로 가야주민으로 생각된다.
내가 김해 허씨라고 김수로왕의 후손이라 100% 단정할 수 없는 역사적 상황이다. 김수로왕의 개별 하플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기 금관가야국의 김수로 철기세력과 후기 금관가야국의 철기세력은 철기를 다루는 방법등에서 틀리다고
본다.김수로왕이 토착세력의 혼인을 거부하고 먼 곳에서 허황옥이 올것을 알고 있었다면 과거에 자신이 살던 지역의 동일 민족
이거나 잘 아는 민족일 가능성이 높다.
보주태후 허황옥이 왔다는 쓰촨성=사천성 안악현이다. 현재 사천성의 인구는 한족 95% 소수민족이 5%(415만 명)를 차지하는데,
이족(彛族)-212만 명, 티베트족(장족. 藏族)-127만 명, 창족(강족. 姜族)-30만 명, 먀오족(묘족. 苗族-15만 명), 후이족(회족. 回族
(이슬람교를 신봉함)-11만 명 순이고, 나시(Nahsi)族도 살고 있다.
이 민족 중에서 김수로왕과 보주태후의 선조들이 있을 수 있다.
철기만 들고 내려 오면 힘으로 지역세력을 제압하는 북방민족이라 생각하는데,
(김수로왕등 가야지역 왕들이 철기의 무력으로 지역세력을 제압했다는 문헌은 어디에도 없다. 평화적으로 추대되었다.)
본인은 누차 말하지만 철기를 잘 다루는 선진문물을 가진 세력이라 보는 것이 더 합당 할 것이다.
이 처럼 각 성씨별 역사적 사실과 고찰이 없이
무작위로 성씨별 더 나아가 지역별로 나뉘어 지는 하플러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역사적 추리는 더 신빙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설득력도 떨어 질 것입니다.
본인은 휴먼패스에서 나온 결과로 M176(O2B*)을 본 카페에서 예상해 주셨는데, 저 또한 하플러를 더 깊이 자세히 분석해 보면
또 다른 것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여기서도 판단하는 것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누구는 과일까지 분석하고 누구는 과일에서 더 나아가 사과라 칭한다면...
본래 그것은 과일이 아닙니까!
제가 느낀 그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오해나 편견은 가지지 마시고...
본인의 경남 고성 및 고령 문중에선 어르신들이 알면 쫒겨날 판입니다. 시조인 김수로왕과 각 허씨를 적어 놓았으니...
아무튼 가볍게 보셨으면 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다른자료에서도 남도지방에서 C3f가 높게나오는게 입증되었고 O2b1b가 전남,거제에 많이나온것도 몇몇STR자료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정도 샘플로 결과를 도출하기가 무리라보실지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에는 C3f,O2b1b, O3a1c나 여러하플로에 가장 현실적인 수치가 나오지않았나봅니다.
엉뚱한 답변일 수 있지만, c3와 o2b계열은 역사적으로 같은 공동체일 가는성이 높습니다.아시다시피 설화에 의하면 환웅은 마늘을 먹고 버틴 곰과 결혼해서 단군을 낳습니다. 환웅의 부족 집단과 곰토템 부족의 하플러가 결합하게 되는데 하프러가 같았을까요? 한민족의 c3와 o2b의 공동체 결합은 더 오래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o3는 고구려, 발해유민이고. . 개인적 생각입니다.
한국인 부계 Y 게시판에 쓴 C3f하플로 분석을 보시면 한국의 C3f는 Z1300예하에 꽤 큰 sub-group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가면 더 세분화된 하위 하플로로 나뉘어질 것으로 보이며, 최소한 C3f 밑으로 10개 이상의 하위하플로가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말은 다양한 C3f집단이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세거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O2b와 결합된 C3f1도 있을 것이고, O3a1c와 결합된 C3f1도 있었을 것이고, F444와 결합된 집단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anthro님이 주장하시는 토착 C3f1가설이 레전드님의 분석으로 상당한 타당성을 갖게 되었는데, 아마 율원님이 생각하시는 O2b+C3f1의 공동체결합가설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 중남부에 토착세력으로 자리잡았던 O2b+C3f1 공동체 결합가설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건 경북 경산에 집성촌을 둔 영순 태씨가 발해 대조영의 후손을 자처하며 족보 또한 삼국사기등에 없는 많은 기록을 전하고 있는데, 태씨 몇 명의 하플러 검사결과가 o2b로 나왔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가족을 검사한건지 풍문인지 모르나. . .대조영이 o2b??? c3나 o3계열이 아니고.. .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저도 소문중, 대종중, 가락문중의 어른들을 뵙지만, 전통적 유교사상에 조선왕실에서도 보듯이 적통장자라는 의미는 상상초월입니다. 그런데 하플러 검사시 소종중,대종중 결과가 다르다면. . .
유교적 전통과 관점에서 수용할 수 없는 근본이죠.하프러 검사결과에 따라 논란과 더불어 전통적 유교가 뿌리채 뽑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때로는 입을 다물고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더 좋기에... 사실 이러한 무작위 개인 생각의 방출은 분자유전 카페이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가벼이 봐 주시길~
네. 영순 태씨(순응 태씨)의 부계하플로 결과는 non-o2b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발해 태씨계열인 상주 태씨와 영천 태씨는 o2b-sry465였습니다. http://cafe.daum.net/molanthro/I4mi/34
상주 태씨와 영천 태씨분의 o2b 하위하플로가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참고로 70여개의 지역별샘플들끼리도 큰차이를 안보이는데 259샘플이면 정확한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랑 친한 친구 중에도 김해 김씨가 있는데, 유전자 검사에는 전혀 흥미를 안보이네요. 누가 $49를 기부하시면 내일이라도 FTDNA 검사(12좌위)를 신청하겠습니다. ^^
김해김씨는 6개 가야의 후손으로 판단되지 않는지요?
가야는 최대 12가야까지 분류가 가능하다 하며 6가야는 현재 잘 알려진 분류법입니다. 김해 김씨의 수가 800만에 이르고 시대에 흐름에 따라 성씨 갈아타기가 가장 빈번 했을 김해김씨의 주류 하플러 검사는 신뢰성이 낮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