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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로마서 1장 1–7절 / 이찬수 목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2. (이 복음은 그분께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하여 거룩한 성경 기록들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5. 그분으로 통해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7.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롬1:1-7 KJV)
제가 이제 ‘로마서로 설교해야 되겠다.’ 이렇게 결심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제가 읽던 책 두 권에서 ‘참 여기 하나님의 그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제 그런 생각을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읽던 두 책 중에 하나가 이런 제목의 책입니다. [그때 장자를 만났다.] 아! 그 책에서 흥미로웠던 게 서문에서 저자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 저자가 이 [장자]를 읽었던 것이 그 외환위기 때 직장에서 쫓겨나고 난 이후랍니다. 이제 시간이 많아져서 천자문, 논어, 손자병법, 뭐 이런 책들을 그 닥치는 대로 읽는 과정에서 이 [장자]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그때 읽다가 그만두었다는 거예요.
이 [장자]라는 책을 보니까 너무 황당무계(荒唐無稽) 해서 그래서 이제 흥미를 못 느끼고 그 책을 덮어 버렸는데요, 이제 그 이후에 저자가 다시 직장에 복직이 되고 아주 분주하게 지내다가 이제 미국으로 발령이 나 가지고 해외연수를 떠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떠나면서 이제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이 장자를 다시 읽게 됐는데, 아, 이분이 찬찬히 [장자]를 읽다가 보니까 지난번에 그 황당무계하게 느껴졌던 내용들이 자기가 이 곁만 보고 잘못 판단하는 데 오해했던 부분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 깊은 의미를 다시 살펴 가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이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그렇게 이제 서문에서 그러한 내용을 보면서 제가 왜 그 경험담이 흥미로 왔느냐? 하면, 그때 제가 이제 로마서를 준비하고 있을 때니까요. 혹시 제가 지금까지 너무 신학적으로 로마서를 그런 식으로 읽고 있는 건 아니었던가? 그 로마서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내가 파악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로마서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 깨달음을 제가 얻게 된 적이 있었고요.
그런가 하면 그즈음에 읽던 책이 한권 더 있었는데 이 [어린 왕자] 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은 뭐 160 개국 언어로 번역이 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중에 베스트 셀러인데요. 제가 이제 그 새해가 되면서 부쩍 제 마음에 든 생각이 뭐냐? 내가 자꾸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어린 시절의 그 순수함을 잃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가지고 이제 어른들을 겨냥해서 쓴 동화라고 하는 이 어린 왕자를 다시 꺼내 가지고 이렇게 시작했는데요, 이 책을 읽다가 보니까 이런 내용이 나와요.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작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제 그 하는 내용이 뭐냐? 어른들은 이 쓸데없는 질문들을 한데요. “그 친구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야?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데? 아버지 수입이 얼마나 되니?” 이걸 중요하지 않은 껍데기에만 어른들은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고는 그거 아는 걸 가지고 그 친구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어른들의 어리석음이라는 그런 내용을 제가 보면서 또 이제 제가 로마서를 준비하고 있을 때니까요.
‘혹시 제가 앞으로 하게 될 로마서 설교가 이 어린 왕자에서 지적하고 있는 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껍데기에만 마음을 가지고 그것 가지고 설교하는 이런 우를 범하게 되면 어떡하나?’ 그래서 이 로마서에서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자신의 그 내용 그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제 그 두 책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또 생각을 했는데요. 사실 제가 이 로마서를 설교해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작년 4월입니다.
그때 제가 설교 시간에 말씀드린 기억이 나는데요. 어느 날 이제 새벽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로마서를 읽고 싶은 마음에 충동이 막 격동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새벽에 제가 로마서를 꺼내놓고 읽는데, 마치 그 어린아이가 갈증을 느끼다가 물을 벌컥벌컥 막 들이키는 것 같은 해갈의 기쁨이 그 새벽에 저에게 용솟음을 친 겁니다. 너무 마음이 기뻤는데요. [시편 119편 103절]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
이 은혜로운 새벽을 제가 이제 누리면서 그때 제가 마음에 이제 결심을 한 게 “이제 로마서를 설교해야 되겠다.” 왜? 그런 결심을 했냐면 사심 제가 분당 우리교회를 개척하던 그 13년 전에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 제 설교의 최전성기, 제 설교의 가장 전성기에 제가 로마서를 설교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를 지금까지 아껴 뒀습니다. 그런데 그날 작년 4월 달에 그 새벽에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뭐냐? “이 로마서는 너 전성기 때 하는 설교가 아니고, 네가 로마서를 설교하면 전성기가 온다.”는 거예요. 제가 그 마음을 느끼면서 용기가 나 가지고, 사실 뭐 제 설교의 전성기가 될 때 로마서 한다고 그러면 죽을 때까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요.
그 새벽에 하나님 앞에 용기를 얻고 그때 새벽에 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쓰는 그 정책을 아시지요? 이렇게 좀 중요한 게 있으면 속으로만 생각하면 또 거두어 가기가 쉽기때문에 전 이걸 입술로 확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날 낮에 전체 교역자들이 모인 데서 “이제 이런, 이런 일을 내가 새벽에 겪었는데 내가 앞으로 로마서로 설교 할 것”이라고 그렇게 제가 이제 못을 받았는데요. 그렇게 하고 지금 시간이 이렇게 흐른거 아닙니까? 2학기에 들어와 가지고 “원천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주셔서, 그 설교를 또 한참을 하고, 또 2학기에 에스더서를 가지고 설교가 길어져 가지고 또 한참을 하고, 이러다 보니까 이게 해를 넘기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작년 후반부에 이렇게 자꾸 미적미적 해서는 안 되겠다. 하여튼 무조건 내년 초에는 이제 내가 약속대로 이제 로마서를 설교한다.
그렇게 제가 못을 받아놓은 그 즈음에 여러분 지난주에 제가 그 두바이에서 그 윤복희 권사님의 ‘여러분!’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밤에 잠을 못자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뜨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게 이런 배경 때문이에요. 그날 제가 윤복희 권사님의 그 순수한 그 복음으로 감격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렸던 게 뭐냐 하면 문득 깨달음을 주셨는데요. 네가 작년 3월에 로마서를 설교하기로 교역자들에게 입으로 공포 해놓고 이렇게까지 로마서 설교가 딜레이가 되고 늦추어지게 된 원인을, 이유를 네가 아느냐?
두바이에서의 이 권사님의 그 복음에 감격하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감격을 회복하기 전에는 로마서 설교하면은 안 된다는 느낌을 제가 받은 거예요. 가슴은 다 식어 빠져가지고, 무슨 교리 공부하듯이 로마서를 분해하면서 이렇게 설교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실 여러분! 이 기독교 2천년 동안의 로마서는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가지고 거기에 참 잘 정리된 교리가 나왔는데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거 무슨 생명을 죽여서 해부하듯이 분석은 잘 해 놨는데, 거기에 생명력이 없을 위험이 있는 것이 로마서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로마서는 바울이 무슨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가지고 그래서 그 뼈대에 필요한 교리를 정리해서 만든 책이 아닙니다. 로마서는 그야말로 이 복음에 대한 가슴 뜨거운 이 바울의 감격! 오죽했으면 지금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는 로마에 있는 크리스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렇게 이 로마서를 기록하는 그 바울의 심정, 이게 로마서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로마서를 무슨 교리 공부하듯이, 분해하듯이 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바울의 구원의 감격! 이 바울의 주님을 향한 그 십자가 사랑! 이것들이 이 설교에 녹아나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인 네가 먼저 복음의 열정! 복음의 감격! 복음의 뜨거운 눈물! 이걸 회복해야 네가 로마서를 설교 할 자격이 있는 거야! 제가 두바이에서 많이 울었던 이유가 그거예요.
저는 이제 드디어 이제 로마서를 제가 준비를 하고 말씀을 이제 꺼내놓고서 여러분 모두에게 제가 부탁을 드립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모태 신앙, 5대째 예수님 믿는 가정, 장로, 권사, 이런 그 타이틀 다 내려놓고, 그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단독자로서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그 인생이 어떻게 변화가 됐고, 그것이 자기를 얼마나 감격이 넘치는 인생이 되게 했고, 그 넘치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어 가지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로마서를 편지를 쓰고 있는 이 바울의 뜨거운 가슴을 우리가 중심에 놓고, 그렇게 로마서를 살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관점으로 다시 이제 로마서를 1장부터 찬찬히 묵상해 나가는 가운데 이런 관점으로 로마서를 보니까요, 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게 하나 있는 거예요. 본문을 읽고 많은 참고 자료들을 보고 그러는 과정에서 예전에 제가 발견하지 못한 게 있는데 그게 뭐냐 하니까요. 이 로마서에서는 인사말이 유난히 길다는 거예요. 다른 바울이 쓴 편지들을 보면 그 당시 통용되던 그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이 수학 공식처럼 1절과 2절에서 맨 먼저 발신인이 나오고, 그 다음에 수신인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인사말인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게 똑같은 패턴인데요.
로마서만 다른 인사들
유독 로마서에서는 인사말이 1절부터 7절까지 길게 바울이 늘려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거를 문득 발견하고는 참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로마서에서 왜 바울이 로마서에서 인사말을 유독 이렇게 길게 했을까? 그 궁금증을 가지고 쭉 분석해 가다가 뭘 발견했는가 하니까요, 바울의 1절~7절까지 로마서 인사말 가운데 맨 앞에 1절를 똑 떼고, 마지막 7절을 똑 떼 가지고 가운데를 생략하고, 요 두 구절만 안 읽으니까 전형적인 바울의 다른 성경에서 나오는 인사가 고대로 나오는 거예요.
제가 두 개를 따 가지고 1절과 7절만 따서 한번 연속으로 읽어 볼 텐데 한번 여러분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1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여기 발신인이 나오고요. 그다음 7절 “7.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제가 이 1절과 7절만 딱 읽으니까 전형적인 바울의 인사가 거기에 다 담겨 있는데, 그래서 제가 든 생각이 뭐냐면 질문이 2부터 6절에서 없는 그 패턴 속에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고자 한 포인트가 뭐냐? 그거를 제가 찾아낸 거예요. 그걸 보니까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서두에서부터 자기가 편지를 기록하는 데에 있어서 이 3가지를 그가 강조하기 위해서 인사말은 이렇게 길게 늘린 것을 제가 발견했는데요. 여러분이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요.
이제 오는 이 부분을 살펴보면서 바울이 인사말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이 3가지를 가지고 이제 앞으로 모든 남은 시간에 로마서 읽을 때 이 3가지 기준을 가지고 이걸 휠트로 해 가지고 로마서를 읽으셔야 된다는 겁니다. 계속 이것 좀 살펴보고 가는데, 자 첫째로 자 여러분이 바울이 로마서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자 했던 3가지 포인트 중에 첫 번째, 그게 복음을 강조해요. 복음 자 여러분 로마서 1장 1절과 2절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그렇다고 쭉 내용은 늘려가지고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로 첫 번째 2절이 어떻게 시작해 됩니까? “2. 이 복음은 그분께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
지금 2절에서 바울은 이 복음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1절을 다시 보십시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특정함을 입었는데)”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지금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복음을 설명하는데, 이게 중요한가 하면은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 할 때 이 복음은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이라는 이 단어는 이게 신학적인 용어, 종교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복음 [유앙겔리온] 이라는 이 단어는 그 당시에 로마 황제를 칭하고 황제와 관련된 말을 할 때 쓰던 표현이에요.
터키 ‘프리에네’ 라는 곳에서 주전 9년에 새겨진 비문을 발견했는데, 그 비문에서 내용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더라는 겁니다. 한번 들어 보십시오. 비문에 내용입니다. “우리 삶의 전부를 주장하며, 우리에게 열정과 관심을 보이는 신의 섭리는 아우구스트투수를 통해 가장 완벽한 인간 삶의 완성을 주었다. 신은 그를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덕으로 충만케 하였으며, 그는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구원자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를 통해 전쟁이 그쳤으며, 온 세상의 질서가 생겨났다. 그다음에 들어보세요, 그 신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일은 온 세상을 위한 복음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 로마에서 통용되던 유앙겔리온,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복음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해 쓰인 단어가 아니고, 그 당시 최고 권력자 로마 황제를 칭하고, 로마 황제를 묘사할 때 사용하던 단어가 복음, 유앙겔리온 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 1장] 서두에서 그 황제를 칭할 때 쓰는 이 유앙겔리온이 복음에다가 하나님을 넣어서 ‘하나님의 복음’ 이라고 확정을 짓는 겁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는 그 수신인이 어디에 사는 크리스천들 입니까? 로마에 사는 크리스찬 아닙니까? 로마의 사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 사람들 귀에 황제를 칭할 때, 나타나는 ‘유앙겔리온’ 이 복음에 익숙한 그들에게 황제, 세상 황제에 복음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이 복음을 지금 바울이 대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울의 자신감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이것을 드러냈을까요?
크리스챤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이겁니다. ”당신들이 보기에 눈으로 보이는 권력자 눈으로 보여 지는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그 권력자 황제가 진정한 복음이 아니고, 육신만 죽일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좌지우지 하실 수 있는 이 하나님이 능력이시고, 이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가 영양 받아야 될 가장 소중한 복음이다.“ 바울이 지금 이 하나님의 복음과 황제 복음을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이건 3-4절의 그 내용이 내용도 보면 이 바울의 표현법 그대로 나오는데 4절을 한번 보십시오. ➤“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러분 여기 나오는 우리 [주] 라는 표현도 그 당시의 황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세상에 가장 최고 권력자 황제를 가리킬 때 사용하던 ‘우리 주’라는 이 표현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기에 넣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짜 주인 삼아야 될 내 인생의 주인은 겉으로 모이는 권력을 가진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바울은 지금 확연히 대조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 두 바울의 대조법은 오늘 우리 시대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 아닙니까? 오늘 온통 이 세상은 권력, 물질 그래서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이제 돈을 이제 대놓고 ‘맘몬신’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돈은 신이에요. 이 세상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돈이 그 신 아닙니까? 이렇게 황금만능주의에 빠지고 권력만능 주의에 빠져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찬들이 자칫하면 우리 자신들도 그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로마서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는 권력자 황제가 우리 주가 아니라 날 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주가 되신다는 사실 그리고 겉으로 보여지는 권력자 황제가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를 살리는 진정한 복음이라는 것! 저는 여러분이 이제 로마서를 함께 공부해 가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확연히 경험하고 누리는 귀하고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 바울이 로마서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자 했던 3가지 포인트: 1. 복음 2. 그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 3.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능력
바울이 로마서 서두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두 번째 포인트가 뭐냐? 그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겁니다.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자! 여러분 로마서의 흐름을 한번 보세요. 1장 2절에서 이 복음은~ 이렇게 시작했는데 바울이 그다음 3절에 가보니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돼요. 3-4절 “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이 인사말을 그렇게 길게 늘리면서까지 강조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가 “예수님이 곧 복음이라”는 거예요. 현란하고 화려한 그 무엇이 복음이 아니고,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그 분, 그 분이 복음이라는 거예요. 그분이! 여러분 앞에서 제가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24.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
이 바울이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의 열정! 이것이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나온다면 그 다음 ➤[갈라디아서 6장14절] 보니까 “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통하여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통하여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온통 바울 마음속에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오죽했으면 디모데전서 1장14절에서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여러분! 바울이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유일한 도구! 복음 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삶의 원동력 기쁨! 제가 오늘 새벽에 이제 이 대목을 이제 다시 이렇게 다듬다가 문득 제 머리속에 오래 잊고 있었던 한 장면이 떠올려 가지고 입 꼬리가 이렇게 잠깐이지만 이렇게 올라가는 그런 경험을 했는데요. 개척 초기에 경험한 일이에요. 이제 저를 조금 오래 지켜보신 분은 알지만 저는 좀 몸치예요.
제가 대학교 다닐 나이트클럽 이런데 가서 춤추고 이런 거를 거의 하질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경견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몸치라 가지고 그게 제가 흥미가 안 생겨요. 그래서 몸이 뭐 그냥 몸 뼈마디가 이렇게 뻣뻣해 가지고 놀랍고 감사하게 우리 세 아이가 모두 다 저를 닮아가지고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렇게 제가 몸치인데요. 교회를 갓 개척하고 그게 언제쯤인지 기억이 안나요. 제가 그 토요일인건 기억하는데요. 어느 성도와 약속을 하고 제가 학교 여기 정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제가 이렇게 사람들 막 다니고 차 다니는데서 춤을 추었습니다. 저기서..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점이 어떤 때인가 하면은 교회를 금방 개척하니까 뭐 단 이 목사가 뭐 다 하는 거 아닙니까? 새벽기도도 제가 인도하고, 수요예배도 제가 인도하고, 또 제자훈련도 제가 인도하고, 여러 가지 뭐 그때 등록 심방도 제가 다녀오고, 그래 가지고 피곤에 절어 있을때에요.
한번은 정말 웃기는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성도님이 많지 않을 때 이 교회는 그럴 때가 재미있는 거예요. 그 성도님이 많지 않을 때라 가지고 아이디어를 참 많이 했는데요, 이제 남자분들이 그때 새벽기도로 많이 나오실 때에요. 저희 교회로. 해서 이제 새벽에 기도하시고 이제 출근 하셔야 되니까 무슨 아이디어를 했냐하면, 이제 우리 사도행전의 그 나오잖아요. “성도님들이 이제 새벽기도로 오실 때, 닥치는 대로 집에 있는 음식을 다 갖고 오시라” 그래서 어떤 분은 바나나를 갖고 오시기고 하고 어떤 분은 식빵을 갖고 오시고. 교회는 이제 토스터기 두 개만 이렇게 뒤에다 놓으면 은 오시면서 이제 그 아침 먹을 빵이나 또 잼이나 이런 걸 갖고 오시면 이제 남자 성도님들이 기도하시고, 나가면서 거기에 이제 토스터 구어 가지고 쨈 발라서 먹고 뭐 이러면서 이제 아침을 해결하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제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저도 나가가지고, 이제 우유를 한잔하고 토스트를 굽고 있는데요, 어떤 여 집사님이 초보들이 킥킥킥 웃는 거예요. 그러더니 또 옆에 집사님들이 또 눈을 깜빡깜빡 하더니 그 여 집사님들도 절보고 또 웃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는 있는데 이게 뭔지를 내가 몰랐는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까요, 얼마나 경황이 없었는지 오른발에는 구두가 신겨져 있고, 왼발에는 운동화가 신켜져 있는 거예요. 그러던 즈음에 얼마나 정신없이 살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바로 그 즈음인데 그야말로 피곤에 쩔어 있을 때예요.
그런데 제가 이 학교 정문 앞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제 안에 글자 그대로 그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으로 인해가지고, 그 마음속에 풍성히 임한 그 은혜가 임하기 했는데요. 자기 제 마음에서 이 찬양이 하나 나온 거예요. 그래서 정문 앞에 그 수위실 옆에 있는 교문 저 바깥쪽에서 막 춤을 추었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 해. 나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목소리 높여 찬양해. 주님의 크신 사랑 찬양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신 주 나의 모든 삶 변화되었네. 크신 주의 사랑 찬양해”
요새는 이 감격이 식어서 그 춤이 안 나오는데요. 이 찬양을 제가 부르면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상상을 한 번 해 보세요. 길거리 사람이 막 다니고, 차 다니고 그러는데 억제할 수 없는 마음의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주시는 그 기쁨이 너무, 너무 용솟음 쳐 가지고, 막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누구를 기다리면서 그랬던 기억이 오늘 새벽에 문득 떠오르는 거예요. 여러분! 비록 육신은 피곤해 지금 쩔어 있는데 여러분 사람이요. 이런 감격을 갖고 산다는 게 이게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똑같은 고 3인데요 그 마음에 꿈이 있고, 기대감이 있고, 감격을 가지고 입시 고 3, 일 년 보내는 학생이 있고요. 아무 희망이 없어서 그래서 죽을 지경이래서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 하는데요 결과는 달라요.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가 지금까지 이 황제의 복음을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돈을 추구하다가 넘어지고 자빠지고 낙심하고 마음이 무너지고 우울증에 걸리고 이게 다 황제 복음에서 나오는 그 부산물들 아닙니까? 저는 오늘 새벽에 제가 오래전에 그때 교회가 크기를 했습니까? 교회가 알려지기를 했습니까? 누가 저라는 무명의 젊은 목사를 인정을 하기를 했습니까?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나 깔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내 안에 아까 바울이 그대로 고백했던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이 바울이 경험했던 황제 복음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 주는 우리 심령의 풍요로움 이 감격을 반드시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를 함께 공부하는 동안에 이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가하면 세 번째로
우리 로마서 서두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뭐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능력!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4절을 한번 보세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저는 이 로마서를 준비하면서 자꾸 제 머리 속에서 여러분 다 아시지요?
➤[사도행전 3장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성전으로 기도하러 나가는 중에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그 거지가 동전 한 푼을 구걸하고 있는 거기! 베드로가 동전이 없어요. 그래서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줄 수밖에 없는데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여러분 그 선포 이후로 7절에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곧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오늘 교회가 잃어버린 게 바로 이 [사도행전 3장 7절 8절] 아닙니까?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은요 제가 교회 공금을 그냥 어떻게 몰래 어떻게 횡령을 하고, 제가 여러분 몰래 어떤 여자랑 만나 가지고 무슨 연애질을 하고, 그래서 타락의 아니고요 교회의 타락은 은이 너무 많고 금이 너무 많아서 그거 의지하다가 예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그게 타락이에요. 어느 교회가 어느 교회를 정지 하겠습니까? 어느 목사가 어느 목사를 비판하겠습니까? 제가 누구를 정죄하고 누구를 비판하겠습니까? 오늘 우리 모두의 변질과 타락은 황제 복음, 이 은과 금이 교회 안에 너무 많아지면서 하나님의 복음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교회가요.
은과 금만 있으면 예수님 이름 없어도 모든 일 다 합니다. 저는 이 시대 목사로 살아가는 그 자체가 고통이에요. 제가 누가 제 얼굴에 침을 뱉어서 고통이 아니고, 이 시대의 분당 우리교회 목사로 살아가는 이 자체가 고통이에요. 무엇을 회복해야 될까요? 은과 금을 추구하는 강단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복음이 중요하다 떠들면서 실제적으로는 교회에 필요한 건 은과 금이라고 생각하는 이 변질된 생각으로 통하여 오늘 교회 안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복음으로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던 일어서지 못하던, 그 한 인생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춤을 추며 그 심령에 복음의 능력이 자기를 변화시킨 것에 대하여 감격하는 이런 일들! 이것이 교회 안에 로마서 공부를 통해서 반드시 회복 될 줄로 믿습니다. 이 꿈을 우리가 꾸는 거예요.
로마서로 변화한 선진들
여러분! 지난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로마서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제가 이번에 로마서 자료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더라고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성 어거스틴!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요한웨슬레, 이 세 분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더라고요. 어느 책에서나.. 특히 그 중에서 성 어거스틴은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젊은 시절 방탕하고 타락한 자리에 빠져가지고 어머니 모니카 눈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폐륜아에요. 그랬던 어거스틴이 그가 어느 날 [로마서 13장 13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한 말씀으로 그 패륜아, 방탕아 어거스틴이 단번에 바뀌어져서 성 어거스틴이 됐다는 거 아닙니까? 훗날에 자기가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쓴 글에 보니까요, 가슴이 뜨거워요.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그날 그 로마서를 읽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쓴 글이에요. 보세요!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되겠다. 더 이상 읽어 갈 필요가 없다. 이 구절을 잃는 중에 갑작스럽게 찬란한 빛이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추었고, 그 모든 의심의 먹구름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 로마서에 있는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어거스틴의 인생이 바뀌어졌고, 지난 2000년 내내 그런 역사가 일어났고, 오늘 이 시간에도요 여러분! 저에게 한주도 빠뜨리지 않고, 빠지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편지를 통해, 전화를 통해, 눈물을 글썽이며 “하나님의 내가 복음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합니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우리 남편이 바뀌어졌습니다. 우리 자식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까지 들려지는 복음의 능력에 말씀이에요.
여러분 이제 여러분 차례예요. 여러분이 변화될 차례예요. 여러분이 하셔야 될 것, 제가 해야 되는 것! 로마서를 겉핥기로 설교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핵심을 파악하기 위하여 한 주 내내 묵상해야 되는 게 제가 할 일이고, 여러분이 하셔야 될 것! 로마서에 대한 기대감을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어거스틴을 바꾸어 주신 하나님! 우리 아들도 변화시켜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틴 루터를 변화시켜서 위대한 종교 개혁자가 되게 했던 것처럼, 아버지! 우리 가문, 우리 가정 안에 비겁한 인생이 아니라, 한 시대의 타락과 변질을 막아 내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인물이 우리 가정 안에 일어나길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저는 모태신앙인데 오래 예수님 믿었는데 저에게는 이 복음의 감격이 없습니다. 이제 이 로마서 공부를 통하여 내 아내의 식어버린 복음의 감격이 솟구쳐 회복되기를 갈망합니다. 여러분이 기대하고 갈망하는 마음, 이것이 여러분이 하실 일이에요.
저는 오늘 결론을 맺으면서요.
지난 12월 달 수요예배 때 제가 제자 훈련, 사역 훈련 수료 예배를 드리면서 드렸던 그 편지 하나, 여러분에게 읽어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이 편지는 어떤 사연인가 하니까 제가 이제 그 사역 훈련 마지막으로 연합 특강을 했습니다. 다 모여 계시는데요, 한 2백 명이 넘었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근데 참 공교롭게도 요즘에 앉았던 어떤 연세가 좀 있는 어른이에요. 그분이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마침 제가 이제 그 분을 보고 있는데 내걸 생생히 봤어요. 갑자기 이분이 눈이 이렇게 풀어지는 거예요. 눈이 풀어지시더니 옆으로 스르르 쓰러지더니 툭 떨어지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강의를 못하고 중단했습니다. 그 주변에 분들이 이제 웅성, 웅성 하는데 상태가 심각한 거예요.
마침 훈련생 중에 의사 분이 계셔가지고, 이제 한쪽은 인공호흡을 하고, 긴급 조치를 하고 한 분은 또 119에 전화를 해서 연락을 하고, 나머지 분들은 제가 강의를 중단하고 이제 위급한 상황이 지금 발생했는데 ”이 시간 우리 함께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 하자.“ 그래서 그 중보 기도를 요청했더니 참 고맙게도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에요. 일흔이 넘는 모임 안에 그런데 그날 막 엉, 엉 통곡 소리를 내면서 하나님 앞에 막 회개하며, 눈물로 하나님 앞에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그리고는 이제 병원으로 가셨는데, 제가 참 그 이상하게 그날 담대하게 선언했습니다. ”이제 다 회복이 됐으니까 이제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강의 계속하겠다고“ 이 믿음의 선언이 문제가 뭐냐 하면 다 선언하고 제정신 차려서 생각하면, ‘그거 진짜 괜찮을까?’ 이런 부작용이 있는 게 좀 문제가 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 그 생각이 나요. ‘이분 어떻게 됐을까?’ 한 며칠이 지났는데요, 홈페이지에 그분이 글을 올리셨어요. 그걸 제게 읽어드리려는 거예요.
기적의 시간들
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는 12월 6일 사회 훈련 담임목사님 강의시간에 의식을 잃은 모집사입니다. 심장이 멈춘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같은 공간 안에 의사 두 분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에서 다시 소생할 수 있었고, 8층에 저의 아내가 있었기에 함께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혈압은 40-32였습니다. 또한 맥박이 20까지 떨어지는 쇼크가 두 번이나 왔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평소에도 좋지 않았던 심장 기능이 정지되어 소변이 7시간 동안 배출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 당장 투석을 하지 않으면 오늘 밤 안으로 사망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일반 투석 시간이 서너 시간인 것에 비해 저는 특수 투석 24시간을 필요로 했고, 1회로도 부족하여 3-4일 이상을 풀로 투석해야 할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응급실에서 micu 내과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몸에 수많은 호수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특수 투석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제 몸의 모든 장기를 굳히기 시작하셨습니다. 기나긴 혼자만의 싸움을 쉼 없는 기도로 채워 나간지 10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투석은 종료되었고, 신장을 비롯하여 심장과 모든 장기들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투석 후 혹시나 모를 이상에 대비해 특수검사까지 하였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응급실로 이송된 지 6일 만에 때 퇴원을 했습니다.
그날 수료 예배가 있는 그날, 이분의 아내와 함께 저를 찾아왔는데, 제 마음에 무슨 감격이 들었느냐 하면, 이 분이요. 그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런 일이 났으면 이분 돌아가셨어요. 댁에 혼자 계시다 이런 일이 생겼으면 100% 돌아가셨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동역자들과 함께 훈련을 받다가 누구는 은사에 따라 은급 조치를 취하고, 누구는 은사에 따라 병원에 연락을 하고, 누구는 은사에 따라 눈물로 그 영혼 위해 기도하는 이 합작으로 한 영혼이 살아나는, 한 생명이 살아나는 이 사건! 이게 저는 교회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로마서를 공부하는 내내 분당 우리교회 안에 이런 생명이 살아나는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감격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바울이 서두에 그토록 강조하기 원했던 그 분을 이 시간 기도하기 원하는 데요.
기도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모태 신앙이지만 장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권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해서 이 세상에 가치관, 황제 복음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은이 중요하고, 금이 중요하다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놓치고 살아가는 오늘 현대 교회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황제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하나님! 겉으로 보이는 권력과 겉으로 보이는 황제가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로마서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도 바울처럼 확정하는 그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되었으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통하여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반드시 이 말씀이 우리 삶, 우리 가정에 구현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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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