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같이 살아온지가 1년이 드디어 넘었다. 그는 여전히 무기력하나, 그나마 요즘은 많이 나아진거 같다. 채팅이 쉬원시원하니 잘 풀려서 그런거 같다. 집에서 부쳐준 돈을 쓰지도 않고 모으더니만...결국에는 중고 펜티엄 MMX 노트북을 15만원에 구입했다. 인터넷이 되는 최소사양이다. 그는 노트북으로 밤새 채팅을 즐긴다. 그는 공대생이다. 노트북과 방의 작은 카세트를 연결시켜 스피커로도 사용한다. 컴퓨터에 저장된 MP3노래중 '광복절특사'의 송윤아의 18번을 맞춘다. 틀고는 흥얼거린다.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나는 그의 노래소리에 잠이 들었고...1시간뒤 깨어났다.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미치겠다. 여전히 그노래이다. 그는 채팅에 흠뻑 취해서 1시간째 그노래를 부르고 있다. 왜 그노래를 1시간째 부르지?...라고 물으면 대답을 분명 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무시하기를 즐긴다. 아니...나의 말은 듣지를 않는다. 그는 그의 세계에 도취되어 사는 자아도취 인이다. 나는 "미쳤지? 채팅에서 누가 그 노래를 부르라고 그러디? 그러면 그 애가 만나기라도 해준다디?" "몰라. 난 그냥 이 노래가 좋아." 역시 생각대로 였다. 그는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 뭐가 들어 있길래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오랜만에 그와 함께 외출을 했다. 몇 개월 만인가...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예비역을 위한 미팅자리와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바빴었다. 허나 그는 귀찮은지 그동안 학교...게임방...학교...게임방...학교...그리고는 노트북이 집으로 들어 온 뒤 늘 학교 다음에 집에만 있다. 처음에는 예전에 죽어있는 좀비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방에서 뒹굴거리면서(-_-)(_-_)(-_-)(_-_)~~ 천장만 쳐다보던 그의 모습이 사라져서 기뻤다. 허나 채팅만 하면서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는 더욱이 보기 안쓰러웠다. 가끔 우울하니 비가오는 날이면 김광석 노래를 흥얼거린다. "비가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그럴때면 차라리 집에 있기조차 싫다. 차라리 잠이나 자지 밤새워 시끄럽게 채팅하며 노래를 부르다니.....이러던 그를 나는 안쓰러워서 오늘 당구라도 함께 치자면서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는 기쁜 나머지 머리를 다 감았다. 그가 머리 감는 모습을 본지가 언제였던가...나는 그가 씻지 않아도 되는 인간인줄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그와 함께 목욕탕을 간적이 없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첫 코스로 목욕탕을 갔다.
그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여탕은 1층. 남탕은 2층...보통의 목욕탕과 비슷한 구조이다. 나는 그를 데리고 2층 계단을 밟았다. 그는 왜 남탕이 2층에 있어야 하는지...하면서 투덜거린다. 역시 그는 움직이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에이 이런 못난놈아...너같은 놈은 차리리 굼뱅이로 태어났어야 해. 아니면 저기 밀림의 나무늘보처럼 끄적 거리면서 살던가 해야했어!∼...그에게 상처를 주기는 싫다. 나는 이따금 속마음은 이렇게 그의 호박씨를 까고는 한다. 탈의실이다. 나는 옷을 벗었다. 남방을 벗고 바지를 벗고 양말을 벗고 런닝을 벗고 팬티를 벗었다. 그는 남방과 런닝을 같이 벗고 바지와 팬티를 같이 벗었다. 그리고 양말을 벗었다. 역시 그는 다시 옷을 입을 것을 예상. 나중에 남방과 런닝이 합체되어 있는 상태로 같이 입을 것이다. 바지와 팬티 역시나...
탕에 들어갔다. 그는 비누를 머리에 빡빡 문지르면서 머리를 감는다. 또 흥얼거린다.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미치겠다. 나는 그를 피해서 한증탕으로 갔다. 그는 나를 따라왔다. "아∼좋다.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 하며 그는 갑자기 팔굽혀펴기를 시작한다. 하나..둘..셋..넷..지친듯이...간신히...다섯... "아∼덥다.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하며 그는 횡하니 나가버린다. 다섯 번 밖에 할 수 없단 말인가...적어도 약간의 팔에 힘만주면 10개는 할 것을...불쌍하다...예비역 1년차가 저렇게 힘을 못쓰다니... 우리들은 이렇게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이제 당구를 치러 갈 시간이지 싶어서 목욕탕을 나왔는데...비가 온다. 그는 또 흥얼거린다. "분홍색 립스틱을...맞다..야 바나나우유.." 이놈이 실성을 했는가 보다. 짠지보다 지독하게 짠 그의 뇌 속은 빈대로 가득차여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애절한 눈빛을 거절할 방법이 없어서 옆에 슈퍼로 가서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줬다. 나역시 하나 먹었다. 먹을 때는 같이 먹어야 맛있는 법이지...
바나나우유를 먹고는 그와 함께 당구장으로 갔다. 그는 당구를 제법 잘친다. 고등학교때 알아주는 당구메니아 였다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와 당구를 쳐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믿을 수가 없다. 일단 게임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시작한지 30분...나는 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그의 진실...당구하나는 기똥차게 잘 친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그는 나에게 1년동안 거짓을 보였단 말인가...아니다...생각해보니 그는 나에게 자신에 대한 말은 거의 한적이 없다. 나의 관찰을 통해서 보여진 것만이 내가 그를 아는 전부인 것이지. 혹시 그는 권태로운 인간이 아니라...정말 천부적인 무엇인가를 되기 위해서...지금 이렇게 번데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나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당구하나는 끝내주게 잘 치는 것 보니 머리가 텅 빈 것은 아닌 거 같은데...아니다...방심은 금물이다. 관찰을 계속 해야겠다.
우리는 당구를 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자마자.."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미쳐버리겠다. 이놈의 분홍색 립스틱...언제쯤이면 다른 노래가 그의 입에서 흥얼거릴까...나는 그의 목욕비를 내주었으며, 바나나우유를 사주었으며, 당구 게임비를 물렸으며, 오는 길에 라면을 내 돈을로 사왔다. 그에게 끓여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라면 끓여라. 안 끓이면 너 라면 국물도 안준다." 그는 투덜거리며 냄비에 물을 붙고 가스버너에 불을 켠다. 그리고는 역시 물이 끓지도 않은 냄비에 라면 두개를 넣고 스프를 넣고 계란을 하니 깨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는 익을 때까지 그는 방에 들어 누웠다. 물이 끓자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라면이 다됐다면서 나보고 먹자고 하는 것이었다. 냄비뚜껑을 열자 라면은 그럭저럭 맛있게 익었었다. 이거 의외였다. 그는 라면을 잘 끓였다.
게으른 라면,.,.꽤나 괜찮군...라면을 먹고는 그는 아침부터 펼쳐저 있던 이불속으로 숨더니 이내 코를 골아버린다. 억지로 그러는 것인가 싶어서 그를 깨워도 영 시원치 않다. 발로 찼다. 베개로 머리를 때렸다. 그는 여전히 죽어있다. 설거지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보다 싫단 말인가...역시 그는 무기력했다. 나는 설거지를 했다. 1년동안 내가 한 설거지는 그가 한 설거지의 약 100배는 넘을 것이다.
그는 잠을 잔다...뭔가를 흥얼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무엇을 흥얼거리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에 그의 얼굴쪽으로 나의 귀를 가까이 붙였다. 이내 흥얼거리는 것이 연속된다..."으음....으응....오늘...밤 만은...그대를..위해서..∼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다고 지랄을 떤다. 광복절특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아되취인...지금의 나는 그에게 전염이 되었다...나 역시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하면서 무의식중에 흥얼거리고 있다...
첫댓글 권태인과 인터뷰 해보고 싶네요....자기가 권태인인줄 모르는것같아요..(누구나 그럴수 있다는 생각도 해봄..) - 관찰기는 잠시 접고 인터뷰 해보세요..
저 칼럼 가면 권태인의 사진의 있더군요...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