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참 빛이 있는 곳! 등 4편의 시 배달
詩 - 참 빛이 있는 곳!
어두워진 세상천지!
어둠 속에서 어둠이 보일 리가 없지!
눈물이 눈물을 덮었으니 보일 것이 없지!
잠시라도 내뿜는 한줄기 빛이라도 보았으면 하는데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더라.’1
이런 빛! 시작의 빛이 그립다.
지난 토요일 오후 미술인 임옥의 ‘마음의 그림’이란
평택문화원에서 오픈한 개인전에 갔을 때,
방명록에다 쓴 글이 떠오른다.
崔炳極 - 높을 최, 밝을 병, 다할 극.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마음이 그려져!’
하늘이란,
가까우면 별 냄새도 조금은 맡을 수 있을 거고
부서지는 바람 소리, 흐르는 구름 소리도
조금은 들을 수 있을 거다.
과거와 지금이 너무도 다른 것처럼,
지금과 나중이 다를 거다.
나뭇잎은 봄여름이 좋다는 자와
가을이 좋다는 자가 있어
각기 다르게 받아 느낄 거다.
그러다가는 흙에서 나는 곡물 맛을 뗄 수 없이
과거와 오늘에 즐기다가 고마움에 못 잊어
입 맞추며 끝내는 미래를 맡기고 말잖아!
낙엽(落葉)처럼 말이요!
천리만리 밖에서 하는 소리로만,
듣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있어라! 되라! 하라! 로만, 질서가 되어 있는 곳!
그 명령 따르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곳!
거기는 ‘해와 달도 쓸 데 없고 눈물도 없다하셨잖아!’2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 한 곳’3이라,
이를 데 더 없어라 서다. 참 빛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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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 창세기 1:3 cf., 2『성경』 계시록 21:4, 23 cf.,
3『성경』 계시록 22:54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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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강약을 함부로 논치 말라
돌을 굴리는 물을 보았나?
물과 돌 어느 것이 힘이 센지는
아무도 쉽게 말하기 어렵다.
이리저리 구르며 모난 것 없이 사는 것
무시 못 할 세월을 겪어 가는 거다.
겉으로는 빨리 흐르는 물이 강하게 보인다.
그 강함이 그 자리를 지켜내지는 못한다.
물살이 약하든 세든 돌은 모서리가 깎인다.
물의 힘 아낌없이 인정해 주고 있었잖아!
물길이 셀수록 빨리 지나가고
아끼듯 느려도 흐르고 말잖아!
강 속에는 물은 지나가고 남아있는 것은 물돌 뿐!
그래서 물돌의 이름으로 그곳을 지켜낸다.
방법을 다해 빠르던 느리던 출세하느라
부산떠는 것 보단, 지킬 것 지킬 줄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왜 모르고 있을까?
센 물살은 빨리 지나가고 약하든 것도 다 지나고
돌만은 그 자리에 물돌로 남는 것 보았다.
근본 알고 그 자리에 머물 줄 아는 자가
우리 시대 왜 이리도 적은고?
천대받아도 그 자리 지켜내던 신앙의 지조 가진 자
좀 배출되었으면 한다.
오히려 깎이던 돌이 자리 지키는 주인걸 왜 모를까? 다.
센 물살은 간 곳 없고!
천천히 흐르는 물마저 머뭇거리다가 지나고!
아무나 자리 지킴이가 되는 것 아니고,
진리 지킴이로 맡는 것 아님을 역사에서 보아오고 있다.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강한 것 같으나 약하다고 경험한 이들이
한 둘뿐이었을까? 다.
물돌은 실제로 강해서 물에 깎여도 남아 있고
물은 강한 힘 다 쓰고는 지나가 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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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주님이 내 짐은 가볍다 하셨다
우리 모두 짐 꾸려 본 경험이 있을 거다.
짐 꾸러미가 다 되고 운반이 시작되면
그 짐이 때로는 등 뒤에 얹히기도 하고
리어카에 실리기도 하고
때론 짐차에 실리기도 했을 거다.
가을철 이사 짐차를 같이 타보면
지나는 길가의 억세 잎이
색 잃고 흔들리는 것 보면
우리 자신도 얼마나 구멍이 숭숭 뚫린
삶을 살고 있나가 뼈저려진다.
자신을 바로 알면 우주만한 무게를 의식케 될 거다.
자신을 돌 볼 기회 주신 말씀이 있으시다.
자신 있다는 것,
끗발 나가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것
비로소 알게 될 거다.
‘내 짐은 가볍다’1하신 주님 어떤 짐을 준비해 두셨을까?
주님의 짐 지고 살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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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 마태복음 11:30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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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역사(歷史)란 이런 차이(差異)다
양심(良心)의 힘 - 거절한 것과 받아 드린 차이(差異)!
1.
모 여대 교수며 학생과의 추문 일으킨 이야기가 있다.
또 경향신문(京鄕新聞)이 50년대(年代) 초기(初期)에
폐간(廢刊)조치될 무렵, 죄짓고 감옥살이 한 이가
온 세계에 우리 국민을 망신시키는 이가
요사이 교주(敎主)가 된
모 종교(宗敎)의 탈을 쓴 조직(組織)이 있다.
그래서 당시(當時) 야사(野史)가 아닌
정사(正史)가 있어 알리는 거다.
2.
또 하나의 색(色) 다른 정사(正史)다.
고해성사(告解聖事)에 얽힌 사화(史話)!
양심(良心)과 양심(良心)이 합(合)해지면서 생(生)겨진
정사(正史)가 있다.
언어의 혼란기(混亂期)가 가시기 전에
북한의 괴뢰정부의 6. 25 남침으로
서울이 폐허된 남산 기슭에
궤짝이 상자(箱子)며, 하꼬(はこ)로 통하든 시절,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소위 하꼬방(はこばん)집이 빽빽이 들어서 있던
가난한 시절, 미국의 농산 잉여물로 연명하던 시절,
이 지역 하꼬방(はこばん)집 전체가
방화범(放火犯)에 의해 소진(消盡)돼
전국적으로 언론이 동원되고
수사망이 좁혀져도 범인 체포가 막연할 때,
모 종교에 출입 경험 있었던
양심이 조금 남은 방화범(放火犯)이 있었다.
모 종교의 종교 지도자 신부(神父)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한 사실이 있었지!
양심관리를 한 방화범(放火犯)이
이제 양심의 바통을 신부에게 넘긴 셈이다.
역사적(歷史的)으로 처음 신부(神父)의 양심(良心)이
언론(言論)에 공개(公開)되었다.
50년대(年代)의 양심은 이 정도였다.
양심(良心)은, 제도(制度)보다 오래고 그 힘도 크다.
최소한도의 양심(良心)이 오늘날에도
여러 분야에서 발동했으면 한다.
여러 분야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심지어, 종교도 예외로 보기에 힘든 때라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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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後 二千十年 十月 五日, 於果川, 牧師 崔炳極之詩. 곱씹은 날,
주후 2021년2월2일, 화요일, Ex-Prof.,『사상과 문학』誌 등단, ‘한우물同人會’ 제1대 회장, 同人詩集,『막사발詩』,등 5집, 신학대학 교재용 교양, 전공 서적 번역 및 편저서 20여종 출간, 韓國文人協會'會員', ‘문학생활화 위원회 위원’, 『한국문학인』『문학세계』『純粹文學』『스토리문학관』한국시인연대『한강의 설화-사화집 제29집』등등 청탁투고,
영남신대, 대전신대, 부산장신대 전임교수, 한남대, 침신대 외 10개
신학 출강, 교단총회 ‘기독교용어전문위원’, 시인 목사, 최병극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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