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축축 늘어지네요....
23회에서 끝내야 겠네요.....
그동안 읽으시느라 수고들 하셨어요....
23回..........#
민우의 등에 업힌 혜원의 팔다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민우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슬픔
이 목젖을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면서 갈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민우는 안방을 나가려다 다시 돌아서 혜원을 침대에 눕히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올 때 논현
동 소방서건물을 얼핏 본 것 같았다. 가는 동안 구급차 안에서 응급조치라도 할수 있을 것
이기 때문이었다.
"여...여보세요? 119죠? 지금 사람이 개스에 중독 되었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급해요! 어
서요! 여기 어디냐구요? 논현동 신동아 아파트 102동 402호입니다. 제발 빨리좀 와주세요!
급해요! 빨리좀 와주세요!"
민우의 목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민우는 입술을 깨물며 참담한 심정으로 뭔가에 홀린 듯 혜원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어느순
간 정신이 드는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지씨! 빨리 좀 들어와 보세요!"
"아저씨, 창문 다 열었어요. 언니 어떻게 되었어요?"
민지가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숨이 멈춘 것 같아요. 내가 언니 입으로 숨을 불어넣을테니까 민지씨는 두 손바닥으로 혜
원씨의 가슴을 반복해서 눌러요. 알겠죠?"
"아..알았어요. 아저씨."
민지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혜원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검붉게 변한 민우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민우가 혜원의 목에 베개를 받치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는 혜원의 코를 막고 입에다
숨을 불어넣었다. 민지는 침대옆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혜원의 가슴을 눌렀다.
"좀 더 세게 눌러요! 자 다시 해봐요!"
민우는 다시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혜원의 입에다 바람을 불어넣었다.
"어서 눌러요! 계속!"
소리를 지르는 민우의 눈에 핏발이 서고 있었다. 혜원의 흉부를 누르는 민지의 이마에서도
땀이 맺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반복을 했을까..
"쿨럭,쿨럭...."
어느순간 혜원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언니 살았...어요!"
민지는 민우와 혜원을 번갈아보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민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두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민우의 입술에서는 얼
마나 심하게 입술을 깨물었던지 피가 흥건히 맺히고 있었다. 그가 손으로 입술을 닦았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소방대원들이 투박한 연고동 작업화를 신은채 거실로
들이닥쳤다.
"아무도 없어요?"
그중 고참인 듯한 남자가 거실을 두리번 거렸다.
"아저씨! 여기예요!"
민지가 방문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됐습니까? 환자는 어때요?"
"아직 모르겠어요. 의식은 있는 것 같은...데요."
소방대원들은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능숙한 동작으로 혜원을 들것에 싣고는 방을 나갔다. 민
우는 긴장이 풀리는지 침대에 풀썩 주저 앉았다.
"민지씨, 어서 따라가요. 난 방좀 둘러보고 갈테니까요."
"아..알았어요. 아저씨..제가 이따 전화 할께요."
민지와 소방대원들이 나가자 민우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스렌지 주변을 살피기 시작
했다. 렌지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쪽 벨브도 잠겨있었다. 그의 시선이 벽에 붙은 중간벨
브에 머물렀다. 중간 벨브도 잠겨 있었다. 민우의 눈동자는 다시 중간벨브부분에서 가스렌
지로 연결된 고무호스를 따라 움직였다. 벽과 렌지사이가 어두워서 잘보이지 않았다. 민우
는 가스렌지를 살짝 몸쪽으로 비틀었다. 민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가스렌지 연결
부위 10센티미터정도 못미친 부분에 찟긴 듯 한 상처가 나있었다. 그것은 마치 예리한 무
엇으로 몇 번이고 짓이겨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사이로 시커먼 구멍이 생겨있었다.
`중간 벨브는 민지가 아까 들어와서 잠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제밤에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단 말인가?`
자신과 헤어질때만 해도 미소를 지어보였던 혜원이었다.
민우의 바지 호주머니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민지예요."
"병원에 도착했어요? 언니는....?"
"아뇨, 아직 구급차 안이예요. 곧 병원에 도착할거예요. 병원은 신사동 사거리에서 한남대교
쪽으로 오시면 되요. 오시다가 왼쪽으로 리버사이드호텔 반대편에 있는 남서울 병원이래요.
그 병원으로 간대요. 언니가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요..."
"저...정말이예요?"
"예..그렇다고 그러네요. 아저씨들이..."
민우는 낙담한 듯 고개를 쳐든채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민우 아저씨 잠깐만요....아저씨....가스렌지 옆 호스에 구멍이 나있었어요. 보셨어요?"
"알아요...."
민우는 괭하니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
"창문과 베란다 문은 다 잠겨 있었거든요. 아저씨...설마..언니가..."
"민지씨, 이따 갈테니까 가서 얘기해요. 그리고 박정재씨한테는 내가 갈때까지 연락하지 말
아요."
"아..알았어요 아저씨."
민우는 전화를 끊고는 마른 진흙처럼 굳은 얼굴로 도시가스 호스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민우가 응급실로 들어섰다. 한명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들이 있었지만 혜원과 민지
는 보이지 않았다.
"저, 이봐요. 여기 아까 어떤 여성환자분이 소방대원들과 들어오지 않았나요?"
민우가 한 남자환자의 안면을 만지고 있는 의사의 팔을 붙잡았다. 의사가 눈을 부라리며
민우를 돌아보았다.
"이봐요! 무슨 짓이예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민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까 어떤 여성응급환자분이 들어오지 않았냐구요!"
민우의 목소리는 싸움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응급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제정신이 아
닌 것 같았다.
"아...아까 3층 중환자실로 갔..어요."
민우의 서슬에 간호사가 주눅이 들었는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응급실 안쪽문을 가리
켰다. 민우가 응급실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민우가 301호실 문을 벌컥 열었다.
"아저씨...."
민지와 간호사가 돌아보았다.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쓴 혜원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민
우는 문에 기대어 의사의 뒷모습을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는가 싶더니 들어오지도 않고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아저씨!"
민지가 뛰어나갔다. 민우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쿵! 쿵! 쿵!...."
그가 주먹으로 벽을 여러번 미친 듯이 쳐댔다.
"아...아저씨.."
민지는 잔뜩 겁에 질린채 커다란눈으로 민우를 쳐다보았다. 민우의 손등에서 시뻘건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저...씨...손에 피나요..."
민지가 청바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민우에게 내밀었다.
"민지씨..."
민우가 손수건을 받아 피가나는 손을 감으며 민지를 불렀다.
"......."
"혜원씨 반드시 깨어날거예요. 그러니 아무걱정 말아요."
"전.....아저씨가 더 걱정되는데요...."
"........."
민우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있었다.
"그리고 언니집 가스렌지 호수를 낡은걸로 바꿔놓았어요."
"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밤에 혜원씨한테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민지씨 말대로 혜원씨가 자살을 하려
했었던건 분명해요. 만약 이런 사실을 박정재씨가 알면 절대 안돼요. 곧 혜원씨와 박정재씨
가 결혼할지 몰라요. 그러니 정재씨한테는 이번 일에 대해서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만약에
가스렌지 호스가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손상을 입었다는 걸 정재씨가 알면 의심을 하
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낡은 것으로 바꿔놓았어요. 정재씨가 그 호스를 보면 새것으로 바
꿔줄겁니다. 내말 무슨 뜻인지 알겠죠?"
민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민우에게 내밀었다.
"이거 아까 거실 탁자위에 있었어요. 병원에 도착해서 읽어봤어요. 언니가 정재아저씨 앞으
로 쓴 것 같은데 정재 아저씨한테 드리면 안될 것 같아요. 언니가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민우가 접혀진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는 종이를 한번 보더니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저씨는 언니가 반드시 깨어날거라고 믿으시는군요."
"누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를 바라겠어요."
"........."
"그리고 난 나가 있을테니까 민지씨가 수고스럽지만 혜원씨 상태를 저한테 전화로 얘기좀
해줘요."
"녜, 알았어요."
"어서 정재씨한테 연락해요. 그리고 장미씨한테도 연락해요. 오장미씨라고 알죠?"
"예, 아저씨.....알아요. 대풍아저씨와 우리가게 가끔 왔어요."
`오빠....
세월은 모든걸 변화시키나봐.
나...이렇게 변했어....오빠가 믿지 않을 만큼 변했어.
오빠한테 응석 부리며 천진난만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세월의 무게 만큼 오빠
를 향한 내마음의 벽도 이렇게 두껍게 쌓여버렸어.
오빠,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어. 오래전의 나는 이세상 어디에도 없어. 오빠를 그렇게 좋아
했었는데...오빠를 그렇게 따랐었는데....
오빠..하지만 내가 오빠하고 결혼할거란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어. 정재오빠는 내게 영원
히 오빠로 남길 바랬어. 그냥 오빠로서 말이야. 그런데 오빠도 그렇고 아저씨 아줌마도 우리
가 한창 자랄때부터 오빠와 내가 당연히 결혼을 해야하는 사이처럼 여기기 시작했어. 내 의
사와는 무관하게 말이야. 3년전에 약혼식하려했던것도 솔직히 난 내키지 않았어. 오빠의 일
방적인 결정이었잖아....3년전에 있었던 결혼식 헤프닝도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낼수 수밖
에 없었던 나로서는 어쩔수 없었던 선택이었어...미안해 오빠...
알고보면 오빠와 나사이는 한치의 양보없이 기차의 레일처럼 평행선을 달려왔었어. 내가 의
사표현을 주저하는 바람에,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 때문에 오빠를 너무나 힘들게 했어. 그리
고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오빠가 혼자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된거야.
오빠, 내가 고등학생때 심장병때문에 삶의 희망을 내다볼수 없을만큼 암담했을때 항상 품어
오던 생각이 있었어....
내가 어른이 된후에도 내 심장이 뛰어준다면 나는 꼭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을 할거라고..... 그리고 그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다 달려볼거라고.....
또 반짝이는 비가 오는날 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거라고 다짐을 하곤 했었어.
그리고 어른이 된후 어느날....내 심장을 뛰게하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그 사람을 만난
후부터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게 없었어. 그 사람은 어느순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잡
기 시작했었어. 오빠 입장에서 보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꼴이 돼었을거야.
그때부터 오빠는 서서히 내 가슴에서 더욱더 멀어지기 시작했었어......오빠, 나 정말 못됐
지....이렇게 못된애가 어디있겠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내인생을 몇 번이나 흔든셈이 되었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난 그 사
람을 진정으로 사랑했었어. 그래서 후회하지 않아.
오빠....내가 며칠전 오빠한테 결혼하자고 얘기했을 때 왜 갑자기 결혼하자고 하는지 물어보
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었지...
3년동안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그사람을 보면서 내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어....난 나 자신도 모르게 3년동안 그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어. 그리고
내 심장을 뛰게하는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기다린다며 오빠가슴에 비수를 들이대곤 했었어.
그래서 3년동안 오빠한테 결혼얘기를 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오빠한테는 그사람을 잊었다고
했지만 막상 그사람이 한국에 오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 만나고 싶기도 했지만 도
저히 그사람을 볼 자신이 없었어... 그사람과 다시 시작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어....또 다시 마음아파할 오빠를 생각하면 그사람을 반드시 잊어야한다고 다짐도
했었어....내마음은 그렇게 갈피를 못잡고 있었어....
오빠를 보면 가슴이 미어오고 민우씨를 보면 켜켜히 쌓였던 그리움과 아픔이 되살아나
고.....오빠...내 마음속에 또하나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빠하고 결혼하면 그사람을 잊을수 있다고 생각했었어.....결혼이란 울타리에 갖히면 그 사
람을 잊을수 있을 것 같았어....그리고 나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은 오빠에게 빚을 갚는 길일
거라든 생각도 들었어....그래서 결혼을 하자고 했었어...나 편하자고 오빠를 이용한거야....
오빠....나 이렇게 나쁜 기집애야....내 마음속에 악마가 존재하나봐...
민우씨는 의외로 쉽게 나를 놓아주었어.....그사람 심정이 어떤지 짐작은 갔지만 난 나의 선
택을 후회하지 않을거라고 다짐했었어....
대체 나같은 기집애가 뭔데....오빠가슴에 이렇게 못질을 하는지....
오빠.....이런 나를....오빠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하자고 하는 나를 용서해주고 같이 살아
줄수 있겠어? 단지 민우씨를 잊자고....그리고 오빠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결혼을 하자고 하
는 나를 오빠는 용납할수 있겠어? 결혼하자면서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못하는 나를 이해하
고 용서할수 있겠어? 내가 오빠같으면 절대 못해.
아줌마가 그렇게 나한테 역정을 내시는것도 무리는 아냐.
오빠....나도 아줌마가 반대를 하실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그리고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완고한 아줌마를 대하니 눈앞이 캄캄했었어. 오빠 말대로 나 오
늘 충격많이 받았어. 더군다나 강변에서 오빠가 아줌마한테 왜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느냐
고 다그칠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오빠...난 내가 이렇게 속이 좁고 마음이 허약한
여자인줄 몰랐어....
오빠.....아줌마가 그렇게 심하게 반대를 하시는데 어떻게 결혼을 한단 말이야...난 아줌마 말
씀을 들으면서 도저히 오빠와의 결혼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오빠는 아줌마가 반
대를 한다고 결혼을 못하겠느냐고 했지만 오빠 뜻대로 하면 오빠나 나나..그리고 아줌마 모
두 의 불행은 불을 보듯 뻔해...축복받지 못하는 결혼은 불행해... 오빠 미안해....난 선택의 여
지가 전혀 없어.....
오빠...제발 나를 용서해줘....미안해 오빠.....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정아한테도 미안하다고 전
해줘....부디...날 용서해달라고....오빠....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해야 해......`
정재가 병원으로 들이닥쳤다.
"혜원아!"
정재는 참담한 심정으로 혜원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인공호습기를 쓴채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녀의 가늘은 숨소리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재는 왼손으로 혜원의
손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민지는 한쪽에 비켜선채 정재를 쳐다
보았다. 정재가 민지를 돌아보았다.
"민지씨,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가스 중독이라니?"
"가스배관 호스가 낡아서 가스가 밤새 새어나온거 같았어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언니는 지
금쯤....."
민지가 두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가늘게 떨었다.
"......."
"가셔서 의사선생님을 만나보세요. 일단 고비는 넘겼다는데...."
"맥박과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늘 저녁이 고비입니다."
의사가 도수높은 안경너머로 눈동자를 굴리며 정재에게 말했다. 정재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
져나가는 것처럼 다리가 떨려왔다.
"그래도 환자가 맥박이 살아있었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뻔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게 됩니
다. 이점 분명히 알고 계십시오. 저는 만약을 위해서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말썽의 소
지를 없애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언짢게 생각지 마십시오."
"뇌사상태에 빠질수 있다구요?"
"그래요.....의식불명상태가 장시간 계속되면 뇌사상태에 빠져듭니다."
"뇌사상..태라면....?"
의사가 안경을 고쳐쓰며 정재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심장은 살아있지만 뇌는 죽은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를 말하는거
죠. 뇌사상태가 지속되면 심장박동상태가 유지되고 있어도, 그리고 심장박동을 유지하려는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짧으면 수일내로 길면 2주 이내로 심장박동은 결국 멈추게 됩니
다."
정재는 의사가 앉은 책상에 두손을 짚고 구개를 떨구었다.
정재가 다시 병실로 돌아오자 병실은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정재부친, 정아, 대풍과 장미가
와 있었다. 정아와 장미는 울고 있었다.
"의사선생이 뭐라더냐?"
정재부친이 침통한 표정으로 정재를 쳐다보았다.
"오늘이 고비래요....오늘중으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정재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빠, 혜원이 죽는데. 응?"
정아가 흐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볼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
정재는 정아를 쳐다만 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대풍은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가 병실을 나갔다.
"대풍씨..."
장미가 작은 목소리로 대풍을 불렀다. 밖으로 나온 대풍은 휴대폰을 꺼냈다.
"민우야. 나다."
".........."
"민지씨한테 들었다. 너 오늘 출국안하거 알고 있다. 지금 집이니?"
"그래.... 형..."
민우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너, 괜찮니?"
"........."
"너 오늘 저녁에 병원에 안올래? 혜원씨, 오늘이 고비란다. 지금 정재씨와 정재씨 가족들이
와 있거든, 장미씨와 내가 혜원씨 곁에 있을테니까 저녁에 병원에 오도록 해라."
"..........."
"민우야..."
"나 혜원씨 볼 면목이 없어....내가 혜원씨를 그렇게 만들었어. 내가 혜원씨를 만났기 때문
에 혜원씨가 그렇게 된거야."
전화기너머로 갑자기 민우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혜원씨 가스중독된게 왜 너탓이야?"
대풍이 소리를 질렀다.
"형, 나 혜원씨 깨어나든 그렇지 않든 이제 혜원씨 안만날거야.....나 만나면 혜원씨는 불행해
져. 3년전도 그랬고 지금도 나 때문에 혜원씨의 불행은 계속되고 있어...내가 혜원씨 안보면
깨어날지 몰라...."
"더 이상 어떻게 더 불행해 진단 말이야!"
"뚜뚜뚜......"
민우는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민우씨예요?"
"놀래라...."
언제 나왔는지 장미가 고개를 내밀자 대풍이 화들짝 놀랬다.
"오겠데요?"
"지금 어떻게 오겠어. 정재씨 가족이 저렇게 와있는데...자기 때문에 혜원씨 저렇게 됐다고
후회하고 있나봐."
"그게 무슨소리예요? 민우씨가 뭔 잘못이 있어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겪이죠."
"당신 머리와 얼굴이 그게 뭐야. 꼭 잠자다 금방 깬 사람처럼.."
대풍이 장미를 아래위로 훓어보며 인상을 잔뜩 찌뿌렸다.
"메이크를 안했더니...그렇게 더러워 보여요."
장미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아, 그럼 혜원이가 저렇게 됐는데 화장할 여유가 어디 있어요!"
장미가 듣고보니 억울한지 소리를 질렀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 소리가 새벽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병원은 밝은 달빛아래 자욱한 새
벽안개에 잠겨있었다. 병원은 적막과 고요 그 자체였다. 민우가 3층 중환자실로 올라왔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301호실 문을 살짝 열었다. 달빛이 병실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한동안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제서야 병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오른쪽 침대에는 혜원이
인공호흡기를 쓴채 누워있었고 오른쪽침대에도 누군가 자고 있는듯했다. 그는 누군지 관심
이 없다는 듯 혜원의 침대로 다가갔다. 그는 가만히 침대앞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가 영양
주사바늘이 꽂혀있는 혜원의 왼손을 가만히 잡았다.
"혜원씨....그만 일어나요....제발.....이제 다시는 혜원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께요."
민우는 다시 그녀의 볼을 만졌다. 볼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
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혜원의 손을 만지며 침대에 머리를 숙였다. 그는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민우는 자신의 손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
에 쥐고있던 혜원의 손을 놓고는 그녀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
었다.
"혜원씨...."
민우의 눈길이 혜원의 얼굴로 옮겨갔다. 그녀가 눈을 뜨고 있었다.
"혜원씨...."
민우가 그녀와 눈을 마주칠려고 일어났다. 그녀의 눈동자가 민우에게 쏠렸다. 그녀가 눈을
한번 껌벅거렸다.
"혜원씨....내말 들리면 고개를 한번 움직여봐요."
그가 다시 혜원의 볼을 손으로 가만히 만졌다. 그녀의 볼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민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미세하게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래요. 이제 됐...어요...."
민우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혜원씨.....나 그만... 갈께요."
민우는 왼쪽 침대에 모로 누워있는 사람을 한번 보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가면서 소리
가 날정도로 문을 세게 닫았다. 정재가 문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혜
원의 침대와 문을 번갈아보고는 병실문을 열고 문밖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다시 병실로 들
어와서는 불을 켜고 혜원이에게로 다가갔다. 혜원이 자신을 보고있었다.
"혜원아, 깨어났니?"
정재가 혜원의 손을 꽉 쥐었다.
아침이 되자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간호사가 혜원의 맥박과 체온을 재었다.
의사는 혜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냈다.
"어때요? 숨쉴만해요?"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말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의사는 옆에 서있는 정재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는가 싶더니 간호사와 병실을 나갔다.
"혜원아..."
정재가 혜원을 애뜻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볼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니...깨어났어요?"
9시경이 되자 민지가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에는 혜원이 혼자 있었다. 민지는 믿기지 않는다
는 듯 혜원을 환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언니, 천만 다행이예요. 전 언니가 혹시 잘못될까 싶어서 밤새 한숨도 못잤어요."
민지가 혜원의 손을 만지며 코를 훌쩍거렸다.
"민지야....."
혜원이 간신히 말을 꺼냈다.
"언니....왜 그랬어요...왜 그런짓을 했어요."
"........."
혜원은 민지를 쳐다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 정재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모른채 하세요. 정재아저씨는 언니가 그냥 새
어나온 가스에 중독된걸로 아시고 있어요."
"민지야....너 혹시..."
"언니가 쓴 종이쪽지 얘기하시는 거예요?"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세요. 그거 제가 먼저 발견했어요. 정재아저씨는 몰라요. 그리고요....."
민지는 말을 멈추고는 문쪽을 한번 쳐다보았다.
"유민우 아저씨가 언니를 살렸어요. 오늘 아침에 아저씨가 가게로 오셨어요. 언니보고 정재
아저씨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만약에 언니가 또 이런짓을 하면
민우아저씨도 죽어버리겠다고 하셨어요."
혜원은 눈에서 주체할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마 지금쯤 인천공항에 있을거예요. 오늘 오전 비행기로 떠난다고 했어요.
언니, 그리고 이거...."
민지가 혜원의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이게 뭐니?"
"언니와 민우아저씨가 3년전 언약식때 쓰려고 했던 커플링이래요. 3년동안 갖고 있었대요.
언니거니까 가지래요. 아무런 의미는 없다구 오해는 하지말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혜원은 반지를 꼭 쥐었다. 그녀는 새벽에 보았던 민우의 모습이 떠 올랐다.
"민지씨 왔어요?"
정재가 문을 밀며 들어왔다.
"녜, 아저씨."
"출근않고 바로 왔나보죠?"
"녜, 아저씨."
민지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혜원아, 오늘 중으로 퇴원해도 된다고 의선선생이 얘기하더구나. 오후에 퇴원해서 집에가
서 편안하게 몸조리를 하자꾸나. 도시가스 배관이 낡았으면 빨리 얘기해서 교체를 하던지
해야지 하마터면 니가 죽을뻔 했잖아."
"미안해 오빠..."
"아저씨, 언니, 저 그만 가볼께요. 할 일이 많거든요. 일이 잔뜩 밀렸어요."
"그래요. 수고했어요 민지씨, 민지씨가 혜원씨 살렸어요. 이은혜 잊지 않을께요."
"참, 아저씨도...언니를 구한건 제가 아니라 유...."
민지는 말을 하다가 왼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아녜요 아저씨...언니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살아난거예요. 언니 몸조리 잘해요. 갈게
요."
민지가 문을 열고 나갔다. 정재는 민지가 나간 문쪽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혜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혜원아, 오빠가 그저께 강변에서 너한테 너무 심한말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집에가서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한것 같더구나. 가뜩이나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었는
데 나까지 그랬으니....어머니가 꾸중한신것도 니가 이해좀해라. 어머니가 좀 그렇잖니."
"오빠...나 괜찮아....아줌마 심정도 이해하고 오빠 심정도 이해해. 내가 나빴어. 갑자기 불쑥
결혼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혜원아, 무슨일이 있어도 우리 결혼은 꼭 한다는걸 알고 있어라."
"........."
"여보, 혜원이 깨어났다는데 한번 가봐야지."
정재부친이 넥타이를 매며 자신의 뒤에 서있는 거울속의 부인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정재
모친은 뭔가를 생각하는지 팔장을 하고는 아랫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리고 두사람 결혼시키도록 하자구."
"결혼 시키든지 맘대로 하세요."
정재모친이 살살맞게 대꾸했다.
"원참 사람도..."
이태리 앙코나 공항은 여명이 트오고 있었다.
"민우씨!"
민우가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끝내고 케리어 가방을 끌며 출구를 빠져나오자 로비 저만치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수연이었다.
"아니...수연씨....?"
"뭘 그렇게 놀래요?"
수연이 자연스럽게 민우에게 팔장을 끼었다.
"이 팔장 풀고 얘기합시다."
민우가 팔을 뺐다. 수연이 머쓱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입이 한자나 나왔다.
"새벽부터 기다린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정말 너무하네요."
"난 설마했죠. 누가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래요?"
민우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정말 이렇게 매너 빵점이 남자가 뭐가 좋다구 내가 이른 아침부터 이러나 몰라."
"수연씨, 그렇다구 저욕은 하지 말아요. 전 수연씨한테 이제껏 아무말도 안했어요. 수연씨
기 언제 오냐구 하기에 대답했을뿐이고 몇시에 도착하냐구 묻길래 이른 아침에 도착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 승강장쪽으로 걸었다.
"민우씨,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어제 온다던 사람이..."
"일이 좀있어 비행기를 놓쳤어요."
"심혜원씨 만났어요?"
민우가 수연을 물끄러미 쳐다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민우씨는 이상하게 혜원씨 얘기만 꺼내면 묵비권으로 나오내요?"
"........."
"완전히 크레물린이라니까....
수연이 툴툴거렸다.
"민우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 로마로 바로 갈거예요?"
"수연씨는? 묵고 있는 곳이 어디예요?"
"전 여태껏 로마 멜리아 호텔에 묵고 있었어요. 민우씨가 거주하는 로마 시내에서 바티칸
쪽으로 10분거리에 있는 호텔이예요. 정우도 함 만나고 민우씨 살던 곳도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일은 어떻게 됐어요? 공연협상 말입니다."
"아..잘 됐어요. 사실은 오늘 떠나는 날이예요. 이따 9시 비행기예요. 민우씨 보고 갈려구 조
금 일찍 나왔어요."
"오늘 떠난다구요?"
"그래요. 오늘 출국하는 날이예요. 왜 섭섭해요? 설마 민우씨가 나 떠난다구 섭섭해 할려
구....."
수연은 입을 숙 내밀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조금은 섭섭해요. 외국땅이라서 그런가 봐요."
"정말 왜 저렇게 솔직하지 못하실까...."
그녀가 민우에게 눈을 흘겼다.
그녀는 민우와 기약없이 헤어져야 하는 사실때문인지 곧 침울해졌다. 민우가 걸음을 멈추었
다.
"수연씨, 어디가서 아침이나 먹죠? 배가 출출 하네요."
"그...그래요. 전 아직 시간이 많아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민우씨, 오늘 헤어지면 만날일이 없겠죠?"
민우가 수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흠...그렇겠죠...딱 하나 방법이 있어요."
민우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수연을 쳐다보았다.
"녜?"
"세종문화회관 리모델링 공사를 한번 더 하도록 해보세요. 어차피 재리모델링 공사였는데
두번하나 세번하나 그게 그거죠."
민우가 워낙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수연이 킥킥거렸다.
"그렇게 되면 민우씨의 회관공사는 실패했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그렇게 되나요? 그럼 안돼죠."
민우가 싱긋히 웃었다.
"한국에 언제 돌아올거예요?"
"........."
"마냥 여기 있을건 아닐거잖아요."
"3년좀 넘었는데 한 8개월정도 더 있다 영구귀국할겁니다."
민우는 8개월정도면 혜원이 결혼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민우씨, 전화하면 전화받아요."
수연이 민우에게 눈을 흘겼다.
"혜원아, 정말 이쁘다. 그 드레스가 딱이다."
장미와 정아가 화이트톤의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을 혜원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디자인이 봄햇살처럼 싱그러워 보인다. 정말 이쁘다. 정재오빠가 보면 좋아하겠다."
"그렇게 이쁘니?"
혜원이 낯을 붉히며 입고있는 드레스를 훍어보았다.
"혜원아, 웨딩드레스가 왜 흰색인지 아니?"
혜원은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정아를 보았다.
"아니, 그냥 생각나서 하는 말이야."
"그...글세...."
"음...흰색인 이유는 순결과 깨끗함을 나타내기도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도 내포
되어있지."
"그..그래..."
"너 모르고 있었구나..바보..."
정아가 장난스레 웃었다.
"혜원아, 그 드레스로 하자. 정말 이쁘다."
장미는 옆에서 연방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혜원아, 너 그 반지 아직도 끼고 있니?"
정아가 혜원의 손에 낀 반지를 보며 입을 실룩거렸다.
"응....버리기 아까워서...."
혜원이 오른손으로 반지낀 왼손을 가렸다.
"얘, 이제 그만 버려라. 며칠후 결혼하면 아주 근사한 반지를 낄텐데...."
"그래 혜원아 그거 이리주라. 버리게....촌스럽게 그게 뭐니...꼭 커플링 같이 생겼는데..."
장미도 정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아냐 언니, 됐어...버리기 아깝잖아...."
혜원이 손을 등뒤로 뺐다.
"여보세요. 지대풍입니다."
"대풍이야? 나 민우애미야."
"아..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자주 연락못드려서 미안해요."
"아니, 괜찮아..."
"근데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내가 이런얘길 대풍이에게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말씀해보세요."
"은혜라고 알지? 소은혜말이야..."
"소은혜씨요...? 참 어머님도 당연히 알죠.....그런데 왜요?"
"그래...근데 그 은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
"저....정말이예요?"
"응....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어...그 동안 몸이 많이 안좋으셨거든...."
"어머니, 은혜씨 아버지는 건강이 어떠세요?"
"응...그분도 많이 늙으셨지..."
"어머니, 제가 내일이나 모래 내려 갈께요."
"그래...고마워...."
"근데 어머니, 민우는요? 민우한테 연락하셨어요?"
"응...그런데 민우가 좀 바쁜가봐, 이번에 올지 안올지는 민우도 모르겠대."
"알았어요 어머니, 내려가서 뵐께요."
대풍이 전화를 끊었다.
"대풍씨, 누구예요? 민우씨 어머니예요?"
언제 들어 왔는지 장미가 핸드백을 들고 옆에 서있었다.
"응, 민우어머니야."
"근데 무슨일 있어요? 갑자기 왜 전화를 하셨죠?
"당신 소은혜라고 알지? 민우와 결혼하려던사람....아니 참....혜원씨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
말이야."
"예, 알아요. 근데요?"
"그 은혜어머니께서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데....
"그...그래요...그집에도 우환이 겹치는군요. 대풍씨 내려가봐야 겠네요?"
"잠깐만요 언니왔어요. 언니 바꿔드릴께요. 언니 전화받아봐요. 장미아줌마예요."
혜원이 가게에 들어서자 민지가 혜원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언니 왜?"
"혜원아, 소은혜씨 알지?"
"소은...혜씨...?"
"왜, 4년전 너한테 심장기증했던 사람말이야."
"응, 언니. 그런데 왜?"
"그 은혜 어머니께서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대..."
"그..래...."
"혜원아 그냥 소식이 와서 너한테 얘기하는 거야. 니가 굳이 알 필요까진 없지만 말이야. 그
만 끊는다."
혜원이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언니, 결혼식 준비는 다돼 가요?"
민지가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소파에 앉았다.
"응...."
"언니 드레스 입은 모습 생각만 해도 이뻐요."
민지가 해맑게 웃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곧 눈이라도 올것처럼 하늘은 진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버스
는 혜원을 내려놓고 먼지를 날리며 비포장길을 뒤뚱거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혜원은 코트깃
을 여미며 차 뒷꽁무니가 내뿜는 먼지를 피할 생각도 않고 서 있었다. 그녀는 차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서있다가 뒤돌아 왼쪽길로 걷기 시작했다. 끝없이 뻗은 곧은 비포장길을 그
녀는 한발짝씩 걸음을 떼어놓았다. 오랜만에 와보는 길이다. 그녀는 3년전 은혜의 집과 묘
에 마지막으로 다녀오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민우와 두 번째로 우연히 만났을때도 이길
을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겨울의 중턱에 들어선 길 주변의 논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
다. 멀리 보이는 산은 아직도 알록달록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마치
발걸음을 세듯이 조심스레 걸음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뒤에서 자동차 소리가 나는것 같았
으나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한쪽으로 비켜서며 걸었다. 차는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혜원
을 스치듯 지나갔다.
자동차는 혜원을 지나쳐 그냥가는가 싶더니 몇십미터 앞에서 멈췄다. 자동차 바뀌에서 묻어
나는 먼지가 자동차를 덮고 있었다. 자동차는 마치 혜원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꼼짝도 하
지 않았다. 혜원이 자동차와 가까워 지자 자동차 운전석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내렸다. 혜원은 좁
은길에서 자동차 운전석문이 길을 막자 그 자리에 섰다.
"민우..씨...."
차문을 닫으며 돌아서는 남자, 민우였다. 그는 아무런 표정없이 혜원에게 다가왔다. 혜원은 마
른침을 꿀꺽 삼키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여긴 웬일이에요?"
"민우..씨는요?"
"아는 사람이 돌아가셨어요."
"저두요."
두사람은 피식 웃었다.
"민우씨, 얼마만이죠?"
혜원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와 창문을 하얗게 덮었다.
"4개월만이죠."
"또 갈거예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몇 개월 후면 딱 4년쨉니다. 4년채우고 완전귀국할겁니다."
"........"
"혜원씨 결혼했어요?"
"이틀후에.....할... 거예요."
"이틀후에요? 혜원씨 결혼한후에 들어오려 했었는데...."
민우가 먼산을 쳐다보았다.
"결혼하면 민우씨가 저 살린거 후회 안하도록 잘 살도록 할께요."
"혜원씨가 힘들게 살아도 나 혜원씨 살린거 후회안할거예요. 그건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잖
아요. 혜원씨가 그때 잘못돼었더라면 나도 지금쯤 살아있지 않을거예요. 혜원씨 살아있음과
혜원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예요."
"........."
혜원이 고개를 푹숙였다.
"어떤때는 내가 이렇게 쉽게 혜원씨를 포기했나 싶어 놀랄때도 있어요. 우습죠?"
민우가 씁쓰레하게 웃었다. 그의 눈이 혜원의 손에 쏠렸다.
"혜원씨, 그 반지 계속 끼고 있었어요?"
"이거요?"
혜원이 손을 들어보였다.
" 결혼하면 버려요."
"아뇨, 버리지 않을거예요. 이반지에 대해서 아무도 몰라요. 민지밖에 몰라요."
"..........."
차안 휴대폰 거취대에 꽂혀있는 민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민우씨, 수연이예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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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 제가 처음이내요 ㅋ 1시 15분에 들어왓는데 요개 쓰여져 있어서 .. 근대 너무하십니다 . 요기서 끝어 버리면 어떻게 해요 .. 아쉽게 시리 저는 진짜 여름향기에서 민우랑 혜원이랑 결혼하지 못하고 끝나서 정말 아쉬웠는데 그래서 가상 대본에서 라도 소견으로 두리 결혼해서 잘 ~살앗음 하는 희망햇는대 ..
이거 결말이 꼭 20회 마지막회랑 비슷한것 같내요 ~ㅋㅋ 해피앤딩으로 추가편 ... ;;;
데스님 마지막이시군요.. 이제서야 쭉 봤네요 글쓰느라고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끝내 혜원이와 민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정재에게 자꾸 상처를 주면 안될거 같다느 생각이 드네요. 혜원이만 더 나쁜여자가 되고,,, 그런데 왜 자꾸 혜원이를 죽이려고 하는건지 흑흑,,,
어떤때는 내가 이렇게 쉽게 혜원씨를 포기했나 싶어 놀랄때도 있어요. 우습죠 이 대사는 혜원이를 편하게 해주려고 한 말이겠죠? 헤원이 또한 반지를 꼐속 끼고 있을거라는건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거구,,, 정재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이겠네요. 데스님 아쉽지만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 . ~
deathcard 의 취미....심혜원 주겼다 살리기.....????????? 그리고 다시 주기기??????
전 이전의 후기를 가슴에 담아 둘레요....누군가 말하더군요...갈 동화에선 둘이 함께 죽었기 때문에 사랑이 이루어진거라고요....영원한 사랑을요...비극은 희극보다 강한 힘이 있음을 아시지요...?ㅎㅎ 수고하셨어요...가을에 짧은 휴가라도 다녀오세요...
너무 애절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민우,혜원 사랑의결실이 맺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숨죽이고 읽어 내려갔는데....또 진한 여운이 남겨집니다. 너무너무 수고하셨고요,감동적으로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