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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로마서 12장 14-18절) 자료
‘인간관계 O2O’라는 표현이 있다. O2O는 Online to Offline의 약자인데, 온라인에서 맺는 관계가 오프라인의 관계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밥을 먹거나 스터디 할 사람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함께 할 친구까지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일회성 만남에 그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휴지처럼 한번 쓰고 마는 것이기에 이런 관계를 ‘티슈인맥’이라고 한다.
‘랜선이모’라는 말도 알게 되었다. 유튜브나 블로그에 공개된 남의 집 아이를 보며 마치 친조카인듯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라 한다. 오프라인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랜선으로 맺어진 관계에 더 편안함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과거에는 관계에 쏟는 에너지를 어느 정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SNS를 통해 충족하면서 진짜 관계에 대한 필요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이다.
코미디언 조지 칼린은 세상에 두 종류의 운전자가 있다고 말했다. 바보 운전자와 미치광이 운전자다. “나보다 느리게 달리면 바보고,나보다 빨리 달리면 미치광이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사모(이영도 목사, 하나로교회)
아직 목회자가 되기 전 남편은 사업을 하고 있었고 거래하던 대리점 사장이 부도를 내고 도망가 3억을 손해 보게 되었답니다. 그 절망의 나락에서 남편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삶의 절망의 나락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 남편을 생각하게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주님!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는데 저는 따뜻한 집도 있어요. 저에게는 아직 너무 많아요. 주님이 분을 품고 잠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매일 밤 분을 품었어요.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을 벗어 주라 하셨는데, 저는 그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어떻게 다시 빼앗아 오나 매일 궁리했어요. 매시간 그를 저주하고 미워했어요. 그러나 이젠 됐어요. 남편을 예수 믿게 해준 것으로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그 이튿날 우리 매장 근처 다방에서 대리점 사장을 만났다. 그 또한 우리에게 빚진 죄인이어서 초췌한 얼굴을 깊이 숙이고 교도소로 가는 것이 편하니 어서 보내 달라는 말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3억의 부도 수표를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찢었다.
“3억의 부도 수표에서 자유하세요. 당신은 우리에게 빚이 없어요. 이 돈이 당신에게 빚이었다고 생각되거든 나중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갚으세요. 우리는 하나님께 이 돈을 받았으니 당신은 하나님께 갚으세요.”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주님께서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주님은 그 사람을 3억에서 자유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부부를 3억의 굴레에서 자유하게 하신 것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 원수는 때로 축복의 가면을 쓰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양주군 신암리. 초년병 시절 아들을 면회하러 군에 갔습니다.
씩씩하게 보이던 아들이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사실은 저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요. 저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상관이 저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한 번 붙고 말 거예요. 매일 연병장을 뛰고 자기에게 와서 보고한 뒤 밥을 먹으래요. 제가 천식이 있어서 아침 일찍 뛰는 것이 고통스럽고 다 뛰고 가면 시간이 끝나서 밥을 못 먹어요.”
아픔 마음에 엄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 상관이 아무래도 자기가 졸병일 때에 비해 네가 편해 보여서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연병장을 더 잘 돌아라. 괴로워하며 억지로 돌지 말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며 돌아라. 다 돌거든 상관에게 고맙다고 해라. 어쨌든 많은 사람 중에 너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고마운 것이 아니냐. 그 어떤 것보다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이잖니?”
그러던 어느 날 아들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어머니! 저는 오늘에서야 하나님의 축복이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연병장을 뛰면서 때로는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날로 단번에 끝장을 낼 생각마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 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면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구보 때는 천식으로 숨이 막혀 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뜬히 다 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상관을 통하여 저의 지병인 천식을 다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상관이 매우 고마워서 고맙다고 경례를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부터는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내일부터는 저 스스로 뛰겠습니다. 어머니께 이 기쁨을 ‘할렐루야!’ 소리쳐 보내 드립니다. 어머니! 제 목소리 들리면 기뻐해 주세요.
결혼 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이웃집에 갔다가 안방 화장대에 놓인 진주 반지를 보고선 순간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훔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이웃집 아주머니는 자신의 반지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새댁이 범인이라고 생각한 아주머니는 새댁을 찾아와 반지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새댁은 ‘자신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지만, ‘우리 집 안방에 들어온 사람이 새댁밖에 없었는데 거짓말을 할거냐?’며 새댁을 몰아붙였습니다. 결국 아주머니는 경찰까지 불렀고, 온 동네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마침 퇴근하고 돌아 온 새댁의 남편이 그 상황을 보게 됐습니다. 남편은 구경꾼들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제 아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왜 내 아내에게 그런 누명을 씌우는 겁니까? 저는 제 아내를 믿습니다. 그러니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강한 어조로 말하는 남편의 말에 기가 죽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났고, 경찰은 물론 이웃집 아주머니도 할 말을 잃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후 남편은 아내가 안정을 취하도록 침대에 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잠이 들자 전날 밤 화장대 서랍에서 보았던 그 반지를 꺼내 들고 조용히 이웃집을 찾았습니다. 남편은 아주머니에게 반지를 건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제 아내가 한 순간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아내와 저는 한 마음이고 한 몸입니다. 그러니 아내의 잘못은 제 잘못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저를 벌해 주십시오.”
남편의 진실한 사랑에 깊이 감동한 아주머니는 말없이 남편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남편의 행동을 모두 지켜본 새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의 강한 믿음과 깊은 사랑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새댁은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아주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깊이 사죄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새댁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새댁이 부럽네요.”
화풀이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수를 원수로 대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원수’를 ‘친구’로 부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유대 랍비의 가르침에 보면 뺨을 때리는 것은 모욕을 주는 행위다. 모욕을 받았을 때, 복수나 분노로 대하지 말고 왼편 뺨까지 돌려댈 만큼 여유로 대하라는 것.
그런데 생각보라. 오른뺨을 때리려면 어떤 손을 써야 할까? ‘상대방의 왼손’일까?
“오른뺨을 치거든”이라는 말은 상대방이 ‘오른손 등’으로 때렸다는 말. 당시 유대인에게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 단순한 뺨을 맞은 것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의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행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중상과 모략이다. 그때 참을 수 없어서 우리의 분노를 표출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 그저 누구에게 변명하려고 얼굴이 새파래져 되어 흥분하지 말라는 것.
1980년 8월 육군본부 법정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군법회의 6차 공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문익환 목사님, 한완상 전 부총리 등 법정에 선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내란음모를 꾸몄다’는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수사과정에서는 가혹한 고문 때문에 ‘김대중씨로부터 지시를 받아 내란을 기도했다’고 진술했지만, 법정에서는 그 진술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내란 음모를 인정하면 김대중 씨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70여일 동안 계속된 가혹한 고문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취조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내란음모 사건은 조작된 사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법정에서는 한 사람의 진술로 인해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확정지어졌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함께 붙잡혔던 심재철이란 학생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20만원을 받았느냐”는 군 검찰관의 심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해찬 씨로부터 현 정부를 타도하고 김대중이 정권을 인수하도록 가두시위를 감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했습니다. 물론 그의 말은 거짓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내란음모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가 거짓을 진술하는 사이에 법정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가져올 엄청난 결과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너 미쳤어? 너 왜 그래?’라고 울부짖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피해를 당하게 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심동지, 고생 많았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를 거짓 증언을 한 젊은 학생을 향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거짓말을 하겠느냐?’ 하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모습입니다. 어쩌면 그분 안에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간판예능 놀러와, 무한도전 권석 PD가 쓴 책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세밑의 방송국은 유난히 바쁘다. 연말 시상식 시즌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질병’이란 표현이 딱 맞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도 손대지 못하는 병이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방속국마다 시원하게 밝힐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 됐지만, 수상자는 자신이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시상식장에 나타난다.
수상식에 대한 보안이 중요하다 해도 상 받는 사람이 없는 시상식을 만들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에둘러 암시해 준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뭐 이런 식이다.
대놓고 묻지는 못하겠고 간접적으로 확인하려는 부류도 있다. 후보가 누구누구냐고 묻는다. 명단을 불러주면 그중에서 상 받을 것 같은 유력 후보자가 참석하느냐고 다시 물어온다. 그가 참석한다면 자기 쪽이 못 받는 거란 계산이다. 결국, 경쟁 후보자가 불참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수상을 확신하고 출연을 약속한다.
그런데 시상식 당일 일이 터졌다. 배우 A가 생방송 직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작가가 매니저에게 연락해보니 방송국 근처 공원을 차로 빙빙 돌고 있단다. 그러면서 대상 수상 여부를 알려주지 않으면 돌아가겠다고 떼쓰기 시작했다. 결국, “시상식 이후에도 저랑 좋은 얼굴로 계속 볼 거예요.” 하고 수상을 암시해주고 방송국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또 일이 생겼다. 스튜디오에 안 나타나는 거다. 배우 B가 나타난 것에 불안을 느낀 그는 대상을 못 타는 것 아니냐며 방송국 지하 주차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마지막 광고가 끝나기 직전 배우 A가 드디어 스튜디오에 올라왔다. 물론 수상 사실을 확인받은 다음이다.
그리고는 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도 이런 꼼수가 남아 있으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던 거다. 그 후로 작가와의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의 이야기.
오래전 칸 영화제에 작품을 내고 최종 심사를 남겨놓았는데 유명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과 함께 경쟁 부분에 올라가게 되었답니다. 최종심사 발표 전에 수상작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연락이 온답니다. “이번 시상식에 참석해 주세요.”
그렇게 연락을 받고 참석을 했고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객석에서 정장을 입고 자신을 축하해 주는 임권택 감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틀림없이 수상하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후배를 축하해주기 위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그렇게 감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았답니다.
“나 같았으면, 하늘 같은 선배도 존경하는 사람이 수상하는 자리도 아닌데, 내 친구와 후배를 위해 남아서 축하해 줄 수 있었을까?”
그의 삶에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
친구
즐거울 때 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슬플 때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답답할 때 속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이런 친구가 있다면 우리 인생은 행복할 겁니다.
실제로 친구가 있으면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의 보험회사(Evercare)에서 84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장수 비결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요인이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가족이나 친구와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또 친구 관계가 좋은 사람은 발병률이 낮다고 합니다. 심지어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혹 받아도 금세 풀 수 있어 면역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랍니다.
“친구란 이 세상의 최고의 걸작품이다.”(R. W. 에머슨)
“친구란 이름만큼 흔한 것이 없고, 진솔한 친구만큼 희귀한 것도 없다.”(라 퐁텐느)
작가 이철환 <행복한 고물상> 中, 육성회비
주인공이 초등학교 시절 육성회비를 못 냈습니다. 선생님이 육성회비 안 낸 사람 일어나라고 해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안 일어나는데, 잠시 후 뒤에 앉아 있던 친구 영수가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호통을 칩니다. “언제까지 낼 수 있어?”
아무 대답도 못하니까 재차 호통을 칩니다. “언제까지 낼 거냐고? 내일까지 꼭 가져와! 아니면 엄마 모셔오든지!” 그리고 이어서 소리칩니다. “오늘 교실 청소는 니들 둘이 해!”
교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 영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언제 낼 수 있어?” 영수는 말이 없습니다. “ ...... ”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도 우리 둘만 남아서 청소하겠다. 그치?” 그러자 영수가 대꾸합니다. “그까짓 것 하면 되지 뭐.” 그리고 빙긋이 웃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알았습니다. 친구 영수가 벌써 육성회비를 냈다는 사실을. 영수는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함께 해 주기 위해 육성회비를 안 낸 척했던 겁니다.
고대 안암병원 박관태 교수 이야기.
15이 넘는 기간동안 몰골을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시는 분. 4년 동안은 아예 몽골에 머물면서 의료선교사로 사역을 하기도. 4년 동안 2천회 수술, 2만 명 환자 진료하는 진기록도 남겼다. 그분이 이렇게 헌신한 이유는 예수님의 유언적 말씀을 실천한 것.
그리고 또 하나 의대 동기생인 친구가 공부 마치고 의사 되면 함께 몽골에 가서 의료 봉사 하자고 했는데, 그만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숨지기 이틀 전 이렇게 말했다. “친구! 나는 틀린 것 같아. 몽골에 가서 내 몫까지 해 주게!” 그 친구의 유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 이게 바로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가 좋은 친구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받고 온갖 은혜를 받지만, 이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도 예수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단편 <세 수도사>
러시아의 외딴 섬에 세 명의 수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주교가 이 섬을 찾아가서 보니 이 수도사들이 주기도문조차 모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에 셋 다 주기도문을 알도록 가르쳐 주고 만족하며 섬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참 배를 타고 가는 중에 보니 세 수도사가 바다 위를 걸어서 따라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배에 올라와서 말하기를 주기도문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주교는 이들의 단순하지만 심오한 믿음을 깨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노인들이시여, 여러분의 기도는 이미 하나님께 닿았습니다. 당신들을 가르칠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의 죄 많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톨스토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세 수도사가 자연스런 삶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인위적인 윤리적 실천보다 자연스런 인간적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2016년 8월20일 연합신문, 장현구 특파원
학교에 물건 대신 가져온“헬리콥터 부모 돌아가세요!”
美고교 방침 화제…학생 자립심·책임감 신장 노력에 대다수 반색
미국의 한 남자 고등학교가 학생들의 자립심을 고취하고자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의 학교 출입을 막아 화제에 올랐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 주변을 헬리콥터처럼 맴맴 돌면서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과잉보호하려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19일(현지시간)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아칸소 주 리틀록에 있는 '소년을 위한 가톨릭 고등학교'는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지난10일 학교 현관에 헬리콥터 부모에게 보내는 공지문을 한 장 붙였다.
아들 물건 대신 가져온 부모에게 돌아가라는 공지문이 붙은 미국 아칸소 주 한 고교.
"아들이 학교에 가져오는 것을 잊고 나온 점심 도시락, 교과서, 과제물 등을 대신 가져오셨다면, 몸을 돌려 학교 건물 바깥으로 나가세요. 당신의 아들은 당신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겁니다"라는 내용이 공지문에 적혔다. 학교 측은 운전할 때 무조건 정지해야 하는 도로교통 표지판인 '스톱 사인'을 공지문 위에 붙여 출입 금지를 강조했다.
스티브 스트래슬 교장에 따르면, 사립학교인 '소년을 위한 가톨릭 고교'는 오래전부터 학생들이 까먹은 지참물을 부모가 가져다주는 것을 금지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침을 잊고 최근 학교로 오는 부모가 늘자 스트래슬 교장은 공지문을 붙였다. 스트래슬 교장은 "도시락을 안 가져온 학생은 친구에게 돈을 빌려 학교 식당에서 배를 채울 수 있고, 책이나 체육 비품 등은 학교에 여분이 있는 만큼 선생님에게 말해 대여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엄마나 아빠가 없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립 능력과 책임감을 키워주는 우리 학교의 여러 방침 중 하나"라면서 "우리 학교 학부모 중에선 불만을 터뜨린 이는 없지만, 모든 학교에 이 원칙을 권유하진 않겠다"고 덧붙였다.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에 나오는 프란체스코의 이야기
서양의 기독교 제국들이 동양의 이슬람 제국들과 충돌했던 13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세상을 살았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1219년 이집트에서 십자군이 술탄 말릭 알 카밀의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일 당시, 프란체스코는 십자군 사령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술탄을 찾아갔다. 다들 술탄이 무자비한 괴물이며 적진에 들어갔다가는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한 프란체스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무기도 신발도 없이 달랑 겉옷 하나만 걸친 채 전선을 건넜다. 놀란 이슬람 병사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를 술탄 앞으로 인도했다.
“주님의 평안이 왕께 임하기를 원합니다!”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인사하며 자신을 십자군이나 유럽의 왕 혹은 교황의 사자가 아닌 “예수님의 사자”로 소개했다. 프란체스코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왕은 그를 귀빈으로 초대해 그곳에 머물게 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며칠 동안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술탄은 미개한 폭군이 아니라 마음이 꽤 열린 철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프란체스코에게서 예수님에 관해 더 배우기를 원했고, 프란체스코도 겸손한 자세로 술탄에게서 배웠다.
두 사람은 환대와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피의 시대 한복판에 평화의 오아시스를 세웠다. 종교가 성벽을 세우고 전쟁을 촉발시키는 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은 장벽을 허물고 치유를 가져온다.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유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참 믿음 온전히 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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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귀한 은혜의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울때
제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분쟁이 아닌 화해....
나와 나,
나와 이웃,
나와 또다른 인격,
.....
도전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