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람서원(鳳覽書院)을 이건(移建)할 때의 상량문 이현일
진성(眞城)은 무원(婺源)과 같으니 실로 선사(先師)의 관향(貫鄕)이요,
춘강(春江)에 사당을 세우니 이에 현인을 사모하는 정성을 깃들인다. 그
렇지만 담장이 허술한 탓에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었으며, 게다가 세월이
오래됨에 따라 동우(棟宇)가 훼손되고 말았다. 벽에는 빗자국, 뜰에는
이끼가 끼어 옛 규모를 잃고 말았으며, 티끌에 덮여 서적이 더러워지매
글 읽는 소리가 끊겨 들리지 않으니, 신(神)의 처소가 편안치 못하여
부형께 깊은 근심을 끼칠까 두려웠다. 이에 이건할 계획을 세웠으나
뾰족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때 사액(賜額)의 은전이
내려옴에 또 때마침 이 지세와 경치가 빼어난 곳이 갑자기 발견되었으니,
산봉우리는 우뚝 솟았고 물굽이는 휘감아 돈다. 지경(地境)이 넓고 한적
하니 정사(精舍)를 설치하기에 알맞고 골짜기가 그윽하고 수려하니
선비들이 학문을 닦기에 좋구나. 경사스러운 날에 이러한 좋은 곳을
발견할 줄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생각건대 천공(天工)이 숨겨 두었던
비경(祕境)을 내놓아 고을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곳에 서원을 옮기는
행운을 입도록 한 것이리라.
이에 저 높은 구릉에다 큰 서원을 세우니, 견고한 건물이 완성되매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되었네. 이에 한마음, 한목소리로 사람들이
모여 길가에서 집을 짓는 것과 달랐으니, 기꺼이 돕고 힘을 모으매
어찌 택문(澤門)의 노래가 생기리요. 얼마 시일이 지나지도 않아
건축의 자재가 갖추어졌으니, 공사가 진행되어 신위(神位)를 모실
날이 머지않았다. 그리하여 황량하던 터에 학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들어서니 산천이 더욱 빛을 띠고 이 외진 고장에 문장이 널리 퍼지
도록 하니 훌륭한 선비들이 함께 일어나도다.
이에 서툰 글을 지어서 아랑위(兒郞偉)를 돕노라.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 抛梁東
해 뜨는 맑은 아침에 울창한 저 기운이여 / 旭日晴朝氣鬱葱
그 빛이 학당에 어리어 채색 그림 같으니 / 色暎黌堂如彩畫
새가 날개를 편 듯 높은 집이 반공에 솟았어라 / 翬飛鳥革聳層空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 抛梁西
깊은 밤 찬 달빛이 발 속에 나직이 드누나 / 夜深寒月入簾低
이 가운데 절로 참된 소식이 있나니 / 箇中自有眞消息
늘 마음을 일깨워 사욕에 덮이게 하지 말라 / 提掇毋令茅塞蹊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 抛梁南
산은 사방 들판 에워싸고 나무는 하늘 높이 솟았어라 / 山圍四野樹天參
뽕과 삼은 우로에 젖고 평평한 시내 활짝 열리니 / 桑麻雨露平川豁
구곡의 그 풍광을 다시 찾아가 구경하는 듯해라 / 九曲風煙若更探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 抛梁北
휘황한 저 태일은 군왕의 자리를 지키도다 / 太一煌煌君極軸
이내 마음 수습하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하느니 / 收拾吾心要若斯
분주히 치달아서 사물에 이끌려서야 되겠는가 / 奔馳肯使受形役
들보를 위로 던지니 / 抛梁上
퇴도(退陶) 선생 남은 자취 세상이 모두 앙모하도다 / 陶老遺芬世共仰
사당을 세우는 것만이 그 은혜에 보답이 아니라 / 不獨廟祠是報恩
바른 법에 마음 두는 게 참으로 선생을 숭상하는 것일세 / 存心正法爲眞尙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 抛梁下
성상의 덕화(德化)가 백성들에게 두루 미쳤도다 / 聖化均沾及樵社
청운의 벼슬길에 일찍 못 오른다고 한탄하지 말라 / 莫恨雲程不早騫
학문이 넉넉하면 어찌 초야에 오래 머물까 걱정하리 / 學優豈患長居野
삼가 원컨대 상량(上梁)한 뒤로 서원이 길이 이어지고 학생들이
범절에 맞게 입학할 것이며, 그리하여 이윤(伊尹)의 뜻을 뜻으로
삼고 안연(顔淵)의 학문을 학문으로 삼아 한갓 과거 공부에만
열중하지 말 것이요 명체적용(明體適用)의 학문에 종사하여
경세(經世)의 선비가 되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