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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宣王問曰 齊桓 晉文之事可得聞乎
(註) 齊宣王 姓田氏 名辟彊 ○ 趙氏曰 田氏本陳公子完之後 初以陳爲氏 後改姓田氏 至田和始簒齊 而有之辟彊 和之曾孫 是爲宣王 조씨가 말하기를 전씨는 본래 진나라 공자 완(完)의 후손이다. 처음에는 진을 성으로 삼다가 후에 전씨로 성을 바꾸었다. 전화(田和)가 처음 제(齊)라는 나라이름을 사용했고 왕권을 강화함이 있었다. 전화의 증손이 바로 선왕이다.
(註) 諸侯僭稱王也 齊桓公 晉文公 皆諸侯者
孟子對曰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 是以後世無傳焉 臣未之聞也 無以則王乎
(註) 道言也 董子曰 仲尼之門 五尺童子羞稱五 爲其先詐力而後仁義也 亦此意也
新安倪氏曰 董子名中舒 西漢廣川人 此語見漢書本傳 對江都易王問粤 有三仁而曰 仁人者 正其誼 不謨其利 明其道 不計其功 是以仲尼之門 五尺童子 羞稱五伯 爲其先詐力 而後仁義也 신안예씨 말하기를 동자의 이름은 중서이고 서한 광천인이다. 이 말은 한서 본전에 나타나는데 강도역왕이 세 가지 인에 대하여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진 사람은 그 옳은 것을 바로 하고 그 이익을 꾀하지 말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꾀하지 말라. 이는 공자의 제자로써 오척 동자도 五佰이라는 칭호를 바쳤는데 그렇게 먼저 사력을 하고 다음에 인의이다.
○ 西山陳氏曰孟子後能深闢五伯者惟仲舒爲然 서산 진씨 말하기를 맹자의 뒤에는 능히 五佰을 깊이 열었는데 오직 중서가 그렇게 했다.
(註 계속) 以已通用 無已 必欲言之而不止也 王謂王天下之道
程子曰 得天下之正 極人倫之至者 堯舜之道也 用其私心 依仁義之偏者 覇者之事也 王道如砥 本乎人情 出乎禮義 若履大路 而行無復回曲 覇者崎嶇反側於曲徑之中 而卒不可與入堯舜之道 故誠心而王則王矣 假之而覇則覇矣 二者其道不同 在審其初而已 정자 말하기를 천하의 바름을 얻어서 인륜의 지극함을 극복할 것은 요순의 도이다. 그 사사로운 마음을 써서 인의의 편협함에 의지하는 것은 패자의 일이다. 왕도는 숫돌처럼 인정에 근본을 삼고 예의에서 나오니 대로를 걷는데 걸음이 비뚤비뚤하지 않는 것과 같다. 패자는 기구하면서 구불구불한 가운데로 반측하여 끝내 요순의 도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왕도정치를 하면 왕도가 되고, 거짓으로 패도정치를 하면 패자가 된다. 두 가지는 그 도가 같지 않고 그 처음부터 살필 수가 있을 뿐이다.
○ 龜山楊氏曰 齊宣王見孟子於雪宮曰 賢者亦有此樂乎 而孟子答以晏子之言 則覇者之事非無傳也 孟子務引其君以當道 則桓文之事特詭遇而已 大匠不爲卒工改廢繩墨故曰無已則王乎 구산 양씨 말하기를 제 선왕이 설궁에서 맹자를 보고 말하기를 현자도 또한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 하니 맹자는 안자의 말로써 대답했다. 곧 패자의 일은 전하지 않았다. 맹자는 그 임금을 마땅한 도로 이끄려 노력했는데 곧 환공 문공의 일은 특히 사람을 현혹케 하는 말일 뿐이다. 큰 장인은 하찮은 일을 위해 먹줄을 열고 닫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무이즉왕호라고 했다.
○ 范氏曰 按論語 孔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率 管仲之力也 微管仲吾其被髮左衽矣 孔子美齊桓管仲之功如此 孟子言 仲尼之門 無道桓文之事者 聖人於人 苟有一善無所不取 齊桓管仲有功於天下 故孔子稱之 若其道則聖人之所不取也 범씨 말하기를 논어를 살피면 공자 말씀에 환공이 아홉 제후를 합치면서도 군대를 통솔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다. 관중오는 자질구레하여 그 머리모양과 옷모양이 오랑캐일 것이지만 공자께서 제나라 환공과 관중의 공을 좋게 여기는 것이 이와 같았다. 맹자 말에 중니의 제자들은 환공 문공의 일을 말하는 자가 없다고 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성인은 진실로 한 가지 善도 취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제환공과 관중이 천하에 공이 있는 때문에 공자께서 칭찬하셨다. 만약 그런 도였다면 성인의 입장에서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 朱子曰 無道桓文之事 事者營覇之事 儒者未嘗講求如桓公 覇諸侯 一匡天下 則誰不知至於經營覇業之事 儒者未嘗言也 주자 말하기를 환공 문공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의 일이란 패도의 일이다. 유학자는 일찍이 환공같이 제후를 제패하여 천하를 하나로 한 것을 구하여 강의하지 않았다. 곧 누가 경영하여 제패한 일을 모르겠느냐만 유학자는 일찍이 말한 바는 없었다. 曰 德何如 則可以王矣 曰 保民而王 莫之能禦也
(註) 保 愛護也
慶源輔氏曰保如保赤子之保 ○ 新安陳氏曰王道甚大其要只在保民保民而王一句爲此章之綱領 경원 보씨 말하기를 보는 적자를 보호하는 보이다. ○ 신안 진씨 말하기를 왕도가 매우 큰 것은 그 요체가 다만 백성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다. 백성을 보호한다는 왕도정치의 한 구절은 이 장의 강령이다.
曰 若寡人者 可以保民乎哉 曰 可 曰 何由知吾可也 曰 臣聞之胡齕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 曰 牛何之 對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束 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廢釁鐘與 曰 何可廢也 以羊易之! 不識有諸?
(註) ○胡齕 齊臣也 釁鐘 新鑄鐘成 而殺牲取血以塗其釁郄也 觳束恐懼貌. 孟子述所聞胡齕之語而問王 不知果有此事否
曰 有之 曰 是心足以王矣 百姓皆以王爲愛也 臣固知王之不忍也
(註) 王見牛之觳束而不忍殺 卽所謂惻隱之心 仁之端也 擴而充之 則可以保四海矣 故孟子指而言之 欲王察識於此而擴充之也 愛 猶吝也
雲峯胡氏曰 孟子一書 言心學甚詳 此是第一箇心字 是心何心也 人之本心也 卽此本心而推之 所謂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者也 須看集註 察識擴充四字 察識屬知擴充屬行 운봉 호씨 말하기를 맹자 한 권에는 心學이 매우 상세하다. 이는 바로 제 1개 心자이다. 사람의 본심이다. 곧 이 본심을 받든 것이다. 이른 바 선왕이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이는 사람으로서 차마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잠깐 집주를 살펴보면 察識擴充 넉 자는 屬知를 察識하고 屬行을 擴充한다는 말이다.
王曰 然 誠有百姓者 齊國雖褊小 吾何愛一牛 卽不忍其轂束 若無罪而就死地 故以羊易之也
(註) 言以羊易牛, 其吳似吝, 實有如百姓所譏者. 然我之心不如是也.
雙峯饒氏曰 論語小不忍 朱子兼婦人之仁 匹夫之勇 說婦人不能忍其愛 匹夫不能忍其念 這箇又是要忍得了 쌍봉 요씨 말하기를 논어에는 不忍에 관한 내용이 작다. 주자는 부인의 인과 필부의 용을 겸하여 말하기를 부인은 그 아끼는 것을 참기 어렵고 필부는 그 하고싶은 일을 참기 어렵다. 이렇게 하여 또 이런 忍의 요체를 얻는 것이다.
○ 雲峯胡氏曰 饒氏發明兩不忍字甚好 孟子所謂不忍者 如齊宣王見牛之觳束 將死一念之發 非有所勉强 自然而然者也 君子爲之仁 論語所謂小不忍者 如婦人匹夫 一念之發 不能有所禁止而一聽 其自然者也 君子不能之義 운봉 호씨 말하기를 요씨가 不忍 두 글자를 발명한 것은 매우 좋다. 맹자의 이른 바 不忍은 제나라 선왕이 소의 불쌍한 모습을 본 것과 같이 장차 죽는다는 한 가지 생각 만 나타났고 힘써 노력한 바가 있지 않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군자가 仁이라고 하는 것은 논어의 所謂 小不忍이라는 말이다. 부인과 필부가 한 생각이 떠오르면 금하여 그칠 수가 없고 한 번 들으면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니 군자는 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新安倪氏曰 論語之小不忍 云者 不忍之念 發於私小常人之所不能禁止者也 孟子之不忍 云者 不忍之念出乎正大君子之所當擴充者也 신안 예씨 말하기를 논어의 小不忍이라고 말한 것은 不忍의 생각이 사사롭고 작은 것에서 나오고 언제나 사람에게는 금지할 수 없는 바의 것이라는 것이고, 맹자의 不忍이라고 말한 것은 不忍의 생각이 공명정대한 군자가 마땅히 확충되어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曰 王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 以小易大 彼惡知之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何擇焉 王笑曰 是誠何心哉 我非愛其財 而易之以羊也 宜乎百姓之謂我愛也
(註) ○異, 怪也. 隱, 痛也. 擇, 猶分也. 言牛羊皆無罪而死, 何所分別而以羊易牛乎? 孟子故設此難, 欲王反求而得其本心. 王不能然, 故卒無以自解於百姓之言也.
曰 無傷也 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 不忍見其死 聞其聲 不忍食其肉 是以君子遠庖廚也
(註) ○無傷, 言雖有百姓之言, 不爲害也. 術, 謂法之巧者. 蓋殺牛旣所不忍,釁鐘又不可廢. 於此無以處之, 則此心雖發而終不得施矣. 然見牛則此心已發而不可遏, 未見羊則其理未形而無所妨.
朱子曰 見牛未見羊也 未字有意味 蓋言其體則無限量 言其用則無終窮 充擴得去 有甚盡時 주자 말하기를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 未자는 의미가 있다. 대개 그 몸체를 말하자면 한량이 없고 그 쓰임새를 말하자면 곧 끝이 없다. 확충하여 얻어 가면 매우 극진할 때가 있다.
(註계속) 故以羊易牛, 則二者得以兩全而無害, 此所以爲仁之術也.
朱子曰 齊王見牛觳束 而不忍之心萌 故以羊易之 孟子所謂無傷 乃護得齊王仁心發見處術猶方便也 주자 말하기를 제나라 왕이 소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마음이 싹터서 양으로 바꾸라 했다. 맹자 소위 無傷은 대개 이에 제나라 왕의 어진 마음이 발현하는 곳을 얻음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 術字本非不好底字只緣後來把做變詐看了便道是不好却不知天下事有難處須看有箇巧底道理始得當齊王見牛之時惻隱之心已發乎中又見釁鐘事大似住不得只得以所不見者而易之旣周旋得那事又不抑遏了這不忍之心此心乃得流行若當時無箇措置便抑遏了這不忍之心遂不得而流行矣此乃所謂術也 ‘술(術)’자는 본래 좋지 않은 글자가 아니다. 다만 후세에 ‘變詐’로 봄으로 인하여 문득 ‘좋지 않다.(不好)’고 하게 되었다. 도리어 천하의 일에 난처(難處)한 것이 있는 줄 모르는 것이니, 모름지기 이런 교묘한 도리가 있는 것을 보아야 비로소 터득할 것이다. 제선왕이 끌려가는 소를 보았을 때를 당하여 측은한 마음이 이미 마음속에서 생겨났고, 또 흔종(釁鐘)의 일이 중대하여 그만 둘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단지 보지 못한 것(양)으로 바꾸게 할 수 있었으니, 이미 주선 하여 이 일을 할 수 있었고, 또 이 ‘不忍之心’을 억제하여 막지 않을 수 있어 이 마음이 유행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시에 이런 조치도 없고, 문득 이 ‘不忍之心’을 억제하여 막았다면 드디어 유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술(術)이다.
(註 계속) 聲, 謂將死而哀鳴也. 蓋人之於禽獸, 同生而異類. 故用之以禮, 而不忍之心施於見聞之所及. 其所以必遠庖廚者, 亦以預養是心, 而廣爲仁之術也.
朱子曰 君子於物 愛之而已 貧以時用 以禮不身翦 不暴殄 旣足以盡吾心矣 其愛之者仁也 其殺之者義也 齊王之不忍施於見聞之所及正合愛物淺深之宜若仁民之心則豈爲其不見之故而忍以無罪殺之哉 주자 말하기를 사물에 있어서 군자는 아끼는 것일 뿐이다. 가난하면 때에 따라 예로써 사용하고 몸을 가위질하지 않고 심하게 하질 않는다. 이미 내 마음을 다함으로써 만족한다. 그(끌려가는 소) 아끼는 것은 仁이다. 그(소를 대신한 양) 죽이는 것은 義이다. 제나라 왕의 아끼지 않음은 보고 듣는 것에 대하여서만 베푸는 것이니 사물을 아낌이 얕고 깊음의 마땅함이 바로 부합되는 바이다. 만약 백성을 어진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곧 어찌 보지 않았던 때문이겠으며 죄 없이 죽는 것만 참지 못할까.
○ 慶源輔氏曰唯其不忍之心止施於見聞之所及故古之君子知學問者必遠其庖廚乃所以預養是不忍之心不使之見其生聞其聲以推廣其爲仁之術不必屑屑然以其所不見而易其所見也孟子言此以見宣王之初心本無不善以羊易牛然後仁義之心得以兩全而無害也 경원 보씨 말하기를 오직 그 不忍之心은 보고 들어서 미치는 바에만 그쳤다. 그러므로 옛날의 군자가 학문을 안다는 것은 반드시 그 부엌을 멀리 하고도 이 不忍之心을 미리 길렀다. 그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그 소리를 듣고서 하지는 않았으며 미루어 그 仁義의 마음을 확충하였다. 반드시 세세한 것까지 보고 들은 연후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보지 않은 바의 것으로써 그 본 바를 바꾸었다. 맹자 말은 선왕의 처음 마음을 보았을 때 본래 양을 소로 바꾸고 그런 후에 인의의 마음을 둘 다 온전하면서도 해가 없게 터득한다.
○ 雲峯胡氏曰一本心也已發在於擴充未發在於預養 운봉 호씨 말하기를 한 본심이다는 이미 발현된 것은 확충한 곳에 있음이요, 발현되지 않음은 미리 양성된 곳이 있음이다.
王說曰 詩云 他人有心 予忖度之 夫子之謂也 夫我乃行之 反而求之 不得吾心 夫子言之 於我心有戚戚焉 此心之所以合於王者 何也
南軒張氏曰 宣王問孟子之言 有得於心 而說謂已 雖行之及反而求之 則有不能以自得者 及孟子抽其端緖以告 則戚然 有動於中 當時不忍之意 宛然而形 남헌 장씨 말하기를 선왕이 맹자에게 물은 말은 마음으로 얻은 것이 있어서 자신에게 이른 말이다. 비록 행동함이 반성하여 구하는 데 미쳤으나 곧 스스로 얻지 못함이 있어 맹자가 그 던서를 던져서 고한 것이니 곧 戚然하다. 가운데의 움직임이 있어 당시 아끼지 않은 뜻은 완연한 형태이다.
○ 慶源輔氏曰 戚戚心動而有所慘傷也 孟子所言曲盡其理 故宣王前日之心 復動于中 而委蛇曲折之意 莫不盡見 而亦莫非吾心 本然之善 非從外而得也 向非孟子據理之極 知言之要深得 夫開道誘掖之術 則亦何能使宣王前日 不忍之心 復萌也哉 宣王此心 雖發動 而其端 尙微其體 未充而又未知 所以用力推廣之方 故孟子此下復 以用力用明用恩之說 以曉切之 경원 보씨 말하기를 가깝게 하여 움직이는 마음은 심하게 상처입는 바가 있다. 맹자께서는 그 이치를 완곡을 다해 말씀하신 바이다. 그러므로 선왕의 지난 날의 마음이 다시 중심으로 움직여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뜻이 있어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또한 내 마음이 아님이 없다. 본연의 선은 밖을 따라 얻어지지는 않는다. 방향은 맹자가 준거한 이치의 극은 아니다. 말씀의 요체를 깊이 얻어 알고 있다. 대저 남을 이끌어 도와주는 기술로 도를 연 것이며 또한 어찌 선왕의 지난 날의 마음으로 하여금 능히 다시 싹 틔울 수 있으랴. 선왕은 이 마음이 비록 발동했으나 그 단서는 오히려 그 몸체보다 미약하여 충만하지도 못하고 또 알지도 못해서 미루어 넓히는 방도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의 이 아래는 다시 써 힘쓰고 밝게 하고 베풀어 주는 말씀이다. 曉로써 절절하게 하였다.
○ 雲峯胡時曰齊王於其本心略能察識自此以下孟子皆敎之以擴充 운봉 호씨 말하기를 제왕은 그 바탕에 있어서 마음을 생략하고도 능히 살펴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이하는 맹자가 다 가르쳐서 확충시킴이다.
○ 新安陳氏曰此心之所以合於王者何也王此句亦問得賢切與孟子是心足以王矣一句相照應 신안 진씨 말하기를 이런 마음이 왕도정치에 부합되는 까닭은 무엇이냐. 王의 이 구절은 또한 물어서 맹자와 함께 현절을 얻고 이런 마음이 왕도정치로 만족한 것이니 이 한 구절은 서로 비추고 응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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