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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8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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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명산트레킹후기 스크랩 2017년08월04일(금)~16일(수)13일/뚜르드 몽블랑라운딩트레킹 프랑스, 안시(Annecy) - 43
정상고집(배연희) 추천 0 조회 369 17.11.22 12: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70804()~16() 1213

 

대상지 : 뚜르드 몽블랑라운딩트레킹

제1일차(08월04일) : 인천-모스크바-취리히 이동 후 휴식


2일차(08월05일) :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위한 빈사의 사자상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카펠교

                               스위스 최고의 휴양지 체르마트로 이동


3일차(08월06일) : 체르마트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고르너 그라트(3089m)까지

               세계 3대미봉 중의 하나 마테호른(4478m) 조망 / 리펠베르그까지 트레킹 후 샤모니(프랑스)로 이동


4일차(08월07일) : 에귀디미디(3.842m) - 폴랑 데 에귀(Plan des Aguilles 2317m) - 몽땅베르(1.913m)트레킹


5일차, TMB 1일차,(08월08일) : 레우슈-벨뷔- 히말라얀브릿지 - 트리코트고개 - 미아지산장-트룩산장- 레콩타민-트레 라 떼떼


본격적인 TMB 첫날 장대같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야간 소강상태를 틈타 트레킹 시작

TMB 1일차 : 23km


6일차, TMB 2일차,(08월09일) : 트레 라 떼떼 - 발발산장 - 발메고개 - 본옴므고개- 본옴므산장 - 레사피유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첫날의 비속 운행과 시차로 조금은 피곤한 상태로 트레킹을~~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25km


7일차, TMB 3일차,(08월10일) : 레사피유 - 빌레 데 글라씨에 - 모테산장 - 세느고개 (이탈리아국경) - 엘리자베타산장 - 메종에피뉴산장

                                          - 꾸르마예르

라 빌르 데 글라씨에(La ville des Glaciers) 마을로 이동하여 트레킹 ~~

TMB구간 중 힘든구간 하지만 경치는 최고의 풍광을 자랑 /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35km


8일차, TMB 4일차,(08월11일) : 꾸르마예르 ? 보나티산장 ? 엘리제산장 - 페렉고개 (스위스국경) - 라폴리

 

TMB구간 중 힘든구간 // 눈보라를 맞으며 이탈리아에서 스위스국경을 넘는 페레고개

꾸르마예르 ? 베르토네산장 - 보나티산장 까지는 차량 이동

( 체력적인 부담 줄이기 위하여 전체 171km구간중 약 8km 점프 )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30km


9일차, TMB 5일차,(08월12일) : 라폴리 - 프라즈 드 포르 ? 셩벡쓰 (Lac de Champex 1466m) 호수 ? 샴페당오 ? 플랑도르 ? 보빈목장 -라폴크라즈


TMB라운딩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반대로 체력은 힘들어지는 구간

트레킹 도중 스위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20170804()~16() 1213

 

대상지 : 뚜르드 몽블랑라운딩트레킹

제1일차(08월04일) : 인천-모스크바-취리히 이동 후 휴식


2일차(08월05일) :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위한 빈사의 사자상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카펠교

                               스위스 최고의 휴양지 체르마트로 이동


3일차(08월06일) : 체르마트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고르너 그라트(3089m)까지

               세계 3대미봉 중의 하나 마테호른(4478m) 조망 / 리펠베르그까지 트레킹 후 샤모니(프랑스)로 이동


4일차(08월07일) : 에귀디미디(3.842m) - 폴랑 데 에귀(Plan des Aguilles 2317m) - 몽땅베르(1.913m)트레킹


5일차, TMB 1일차,(08월08일) : 레우슈-벨뷔- 히말라얀브릿지 - 트리코트고개 - 미아지산장-트룩산장- 레콩타민-트레 라 떼떼


본격적인 TMB 첫날 장대같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야간 소강상태를 틈타 트레킹 시작

TMB 1일차 : 23km


6일차, TMB 2일차,(08월09일) : 트레 라 떼떼 - 발발산장 - 발메고개 - 본옴므고개- 본옴므산장 - 레사피유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첫날의 비속 운행과 시차로 조금은 피곤한 상태로 트레킹을~~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25km


7일차, TMB 3일차,(08월10일) : 레사피유 - 빌레 데 글라씨에 - 모테산장 - 세느고개 (이탈리아국경) - 엘리자베타산장 - 메종에피뉴산장

                                          - 꾸르마예르

라 빌르 데 글라씨에(La ville des Glaciers) 마을로 이동하여 트레킹 ~~

TMB구간 중 힘든구간 하지만 경치는 최고의 풍광을 자랑 /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35km


8일차, TMB 4일차,(08월11일) : 꾸르마예르 ? 보나티산장 ? 엘리제산장 - 페렉고개 (스위스국경) - 라폴리

 

TMB구간 중 힘든구간 // 눈보라를 맞으며 이탈리아에서 스위스국경을 넘는 페레고개

꾸르마예르 ? 베르토네산장 - 보나티산장 까지는 차량 이동

( 체력적인 부담 줄이기 위하여 전체 171km구간중 약 8km 점프 )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30km


9일차, TMB 5일차,(08월12일) : 라폴리 - 프라즈 드 포르 ? 셩벡쓰 (Lac de Champex 1466m) 호수 ? 샴페당오 ? 플랑도르 ? 보빈목장 -라폴크라즈


TMB라운딩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반대로 체력은 힘들어지는 구간

트레킹 도중 스위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셩벡쓰 (Lac de Champex 1466m)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잠깐의 여유도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약 30km바라보며


10일차, TMB 6일차,(08월13일) : 라폴클라즈 ? 르페티마을 - 콜 데 발므 - 발므고개 (프랑스경게) - 르투르(버스이용) - 샤모니


TMB라운딩(171km) 마지막 구간 알피니즘의 고향 샤모니로 귀환하는 날  6일간 TMB라운딩 마무리


체르마트 고르너그라트 ~ 리펠베르그

몽탕베르 플랑데에귀 ~ 몽탕베르

TMB(171km) 161km


11일차, TMB 6일차,(08월14일) : 샤모니 - 안시(Annecy),아네씨 호(Lac d′Annecy)  - 샤모니


프랑스 동부, 론-알프(알프스 근교) 지방의 오트사부아 주의 주도.  인구는 고작 5만명이지만 메트로폴리탄 권역 인구를 포함하면 20만 정도.

중세이래 스위스 제네바의 땅이었다가 15세기 이래 사보이 공국(샤르데냐 왕국)의 땅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 기간 잠시 프랑스에 속했으며 1860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성공리에 끝나자 사보이, 니스 등과 함께 루이 나폴레옹(3세)의 프랑스 제국에게 귀속되었다. 이탈리아는 후에 이 땅을 찾으려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남프랑스 전선에서 탈탈 털리다가 비시 프랑스코르시카, 마르세유 등과 함께 간신히 잠시 이탈리아의 감독하에 남았지만 곧 토해냈다.

알프스 산맥 권역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때 경쟁국으로 있었으나 내부 시민단체의 반발 등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7표로 광탈한 경력이 있다.

알프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로 만들어진 안시 호수를 끼고 있으며 아름다운 올드타운이 있는 유수의 관광도시이다.

스위스와 인접한 지역이라 지역 명물 음식으로 퐁뒤가 있다. 스위스 요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위스 불어권과 프랑스 사보이 지방의 공통 식문화라서 그렇다. 프랑스 물가가 전반적으로 스위스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안시에서는 스위스보다 좀 더 저렴하게 정통 퐁뒤를 먹어볼 수 있는 가게가 많이 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인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매년 6월경에 개최된다. 그랑프리를 수상한 마리 이야기, 오세암 등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간간이 이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회사인 유비소프트 안시 스튜디오가 이 도시에 있다.


이후 프랑스에선 파리2024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지원했다.

세계적인 생수 브랜드 에비앙의 수원지가 안시와 아주 가깝다.


TMB라운딩트레킹 후 프랑스 휴양도시 안시 시티투어로 일정 마무리 트레킹 후 만깍하는 여유로운 하루

안시투어를 끝으로 14일간의 TMB일정 마무리 하고 제네바 / 모스크바 / 인천 귀국















너무나 이뻐서 한컷







위의 물은 사람들이 먹고 아래 물은 애견이 먹는 단다.

유럽인들의 따뜻한 배려가 보인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이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루소는 1712년 당시 시공화국인 제네바의 그랑 뤼 40번지(Grand'rue 40)에서 시계공인 아버지 아이작 루소(Issac Rousseau)와 쉬얀 베르나르(Suyanne Bernard)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열흘 뒤에 사망했다. 아버지가 제네바 시와 불화로 말미암아 1722년 베른 시 공화국의 니옹(Nyon)으로 주거지를 옮겼으며, 제네바 근교의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10세 때 아버지 마저 집을 나가 여러 직업에 종사하며 각지를 돌아다녀야만 했다. 1724년부터 루소는 법원 서기가 되기 위한 직업 교육을 받았다.


1728년 제네바가 우연히 들른 루소를 거부하자, 그는 이탈리아토리노로 발길을 돌려 그 곳에서 로마 가톨릭 세례를 받았으며, 장 조세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여기서 루소는 드 베르셀리(de Vercellis) 부인의 시종과 구봉 백작의 서기를 겸직했다. 바랑 부인의 후원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사제가 될 의향이 없어 신학 공부를 포기하고 르 메트르의 지도하에 음악을 공부한다. 1730년 로잔으로 이주하여 가명으로 음악사 생활을 했다. 다음 해 루소는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한 후 리옹을 거쳐 샹베리 등지에서 생활했다. 1732년부터 1740년까지 샹베리와 샤르메트에서 바랑 부인 곁에 살면서 음악에 몰두하고, 많은 독서를 하며 다방면에 걸쳐 교양을 쌓는다. 1742년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정리하고, 파리로 가서 그것을 아카데미에서 발표하지만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1743년 (Dissertation sur la musique moderne)이 출판된 후 베네치아로 이주하여, 몽테귀 백작의 서기직을 맡지만 1년도 채 못 되어 백작과 의견이 맞지 않아 사퇴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1745년 루소는 여러 귀족부인과 사귀었지만, 결국 23살 세탁부 하녀, 테레즈 르 바쉬에르와 오랜 동거를 거친 후 결혼했다. 루소는 그녀가 낳은 5명의 아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1749년부터 루소는 디드로와 친교를 맺은 후, 그의 권유로 프랑스 아카데미의 학술 공모전에 <학문 및 예술론>이 1등으로 당선되어 이름을 떨쳤으며, 작사·작곡한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공연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디드로달랑베르의 <백과전서> 편찬에 참여해서 음악과 정치경제 항목에 할당된 글을 쓰고 다음해에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학문예술론》을 출판한다. 1752년에는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작곡하였다


1754년 디종의 학술원에서 "무엇이 인간 불평등의 근원인가?" 라는 주제로 학술연구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 정치,사회제도에 관해 골몰, 소유권 제도와 사회 조직의 발전으로 생긴 불평등과 비참함을 자연 상태의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와 대립시켜 설명했다. 이는 이후 《사회 계약론》의 바탕을 이루었다. 1762년에 저술한 《사회 계약론》에서 자유와 평등의 자연권을 국가 상태에 있어서 확정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서 사회 계약론을 전개하고 인민주권의 이론을 완성하였다. 권력 행사가 정당화되는 유일한 조건으로서‘항상 정당한’ 일반 의지를 설정하고, 실제에서는 그것이 직접적인 다수결(多數決)에 의하여 확인될 수 있다고 하였다.


1756년 에르미타주에 정착해서, 《사회계약론》, 《신 엘로이즈》, 《에밀》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757년 연극의 사회적 기능의 문제 때문에, 디드로와 의견 충돌이 있은 후 1년 뒤 절교했다.


1761년에 《신 엘로이즈》가 파리에서 간행되어 큰 성공을 거둔다. 1762년 《에밀》과 《사회계약론》등 18세기 사상계를 자극한 대작을 계속 발표하였다. 《에밀》에 서술된 자연 종교의 이론과 그의 피해 망상적 행위로 각 방면에서 박해를 받았다. 특히 성직자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노를 사, 그에 대한 체포장이 발부되어 1762년 스위스로 피했다.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고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타파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던 작품인 에밀은 예수회의 출판 방해 공작으로 외국인 네덜란드에서 출간되고 4개월이 지나서야 프랑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루소는 1762년부터 8년간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데, 1764년 《시민들의 감정》이라는 익명의 작품(나중에 볼테르였음이 밝혀진다)이 제네바에 나타나 루소를 공격한다. 이것에 응수하기로 결심하고서 《고백》을 집필하기 시작해서 1769년에 완성하고, 1770년 파리로 돌아와 1772년부터 1776년에 걸쳐 《루소가 장자크를 판단한다》를 쓴다. 1777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쓰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명상하지만 집필을 끝내지 못하고 1778년 7월 2일 죽는다.


그의 최대의 문학적 걸작 《참회록》과 《루소는 장자크를 이렇게 생각한다》 등은 만년 작품으로 사후에 발표되었다.


루소에게 의지는 추구하거나 회피하고, 긍정 또는 찬성하거나 부정 또는 반대하려는 마음(mind)으로서, 감정, 이성과는 별개로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능력의 하나이다. 사회계약론에서 언급된 일반의지는 "모든 공동의 힘으로 개인과 각 연합자의 이익(les biens)을 방어하고 보호하며, 그에 따라 각자는 전체에 결합함에도 오직 자신에게만 복종하여 전처럼 자유롭게 남게 되는 연합 형태"를 추구하려는 의지이다. 이런 의지를 가진 개인이 모여 사회계약행위를 함으로써 국가를 창설한다면 국가 자체는 물론 국가의 모든 권력은 일반의지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되며, 그 국가는 "개인과 각 연합자의 이익" 즉 "공공선"을 추구하게 됨과 동시에 "전체에 결합"되는 것 외에는 어느 개인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구성원 모두의 "동등한 자유" 즉 평등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계약행위를 하는 당사자들 중에는 이전의 국가체제를 고수하거나 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사적인 개별의지를 가진 사람도 존재하므로, 모든 인민의 의지의 합인 전체의지는 일반의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계약에 의해 국가가 성립되고 난 뒤에, 의회에서 표출되는 국가(정치형태)의 존립, 정부구성, 기타 인민의 요구사항에 관한 다양한 의견(법, 또는 사안) 중에서 어느 것이 "공공선"과 "동등한 자유"에 해당 또는 가까운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된다. 루소는 의회의 심의(투표)에 의해 표출된 의견이 가진 공공선과 자유에 관해 넘치는 부분과 모자라는 부분을 가감하고 남은 의견(다수득표)에서 일반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단, 의견을 공유한 의회구성원들이 파당을 형성하여 개별의지에 불과한 자신들의 의견을 다수득표의견으로 만들어 일반의지로 둔갑시키는 일이 발생하지 않거나 제도적으로 방지되는 상황에서, 의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내면의 빛에 따라 심의(투표)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루소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있는 일반의지는 마치 공자의 사상이 간단히 인(仁)으로 상징되어 논란이 끊이지 않듯이 논쟁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루소는 비교적 일관된 자기철학을 전개하고 있어 이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루소는 사상 최초로 인간평등문제를 실천적으로 파고든 철저한 평등주의자다. 계몽철학자들도 평등을 주장했지만 당위적 차원에서이고, 사실상 엘리트주의였다. 천재 철학자 칸트조차도 철저한 엘리트주의를 자처했다. 칸트는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고는 번개를 맞은듯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나는 천성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로 지식만이 인류의 영광을 이룬다고 믿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대중을 경멸했다. 루소를 읽고는 이런 맹목적 편견이 사라졌다. 나는 인간성에 대한 존경심으로 도덕적 평등주의자가 됐다"라 했다.


이렇듯 루소는 삶 자체도 그렇거니와 철학자체도 평등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평등에 골몰했다. 루소는 모든 사회악과 사회갈등의 근원이'경제불평등'에 있다고 단언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사회문제가 만연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를 '일반의지론'으로 풀어나갔다. 마키아벨리가 분열된 조국을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위정자가 어떠한 절대적 권한도 행사할 수있어야 한다고 했듯, 루소도 수천년에 걸쳐 고착화된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근본적인 사회구조의 변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철학이념으로 일반의지의 필연성을 역설한 것이다. 원래 일반의지신의 의지을 원용한 말이고 이는 또 플라톤이데아에 연원하며 칸트의 선의지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일반의지는 상식과 달리 단순히 보편적 생각이 아니고 진리와 선을 전제하는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일반의지가 만인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고 일인의 견해라도 일반의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루소가 철저한 평등주의자라는 것에 비추어 일반의지는 진리이되 신비적,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현실속에서 구현되는 정의공공선이 된다. 정의와 선은 당연히 평등이고 평등은 경제적 평등으로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보장해서 공존, 공영하는 공화주의의 근본이념이다. 루소는 사회의 변혁을 도모한 사상가로, 일반의지는 관념에 그치지않고 반드시 실천을 전제하고 동시에 일반의지는 방향성을 갖는다. 선한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일반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보통사람, 평범한 사람의 의지로 읽힐 수는 있으되 반드시 평등(경제) 공화주의라는 좌표를 향한, 평등실현을 위한 합일된 의지 바로 그것이어야 하는 이유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세상에 널리 알려진 루소의 이 명언[4]은 일반적으로 문명이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그 정확한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함으로써 그 철학의 본질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데, 루소는 문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자유롭고 평등하지 못한 문명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자연철학자도 아니고 사회계약론을 쓴 민주주의자이자 사회철학자인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을때는 자연의 중층적 의미도 새기지 않을 수 없다. 자연(natura)은 서구어로 본성이라는 의미도 있는 만큼 인간의 천부적 자연권인 자유평등의 보장을 무엇보다 강조한 것으로 볼 수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말을 통해 자연낭만성과 야성이 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등한 사회의 원형을 복원할 것을 세상에 강력히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루소에 대한 평가는 다채로운데, 평생 루소의 초상화를 서재에 걸어놓고 그를 흠모했다는 대철인인 칸트에 의하면 "나는 인식에 대한 무한한 갈증을 느낀다. 그것만이 인류에게 명예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나를 루소가 옳은 길로 인도했다... 나는 그로부터 인민을 존경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함으로써 왜 그가 《에밀》을 읽는 데 몰입해 한번도 빠지지 않은 산책을 걸러야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의 특색은 18세기적인 사회 윤리를 가장 독창적으로 탐구한 점에 있으며, 근본 사상은 "자연은 인간을 선량·자유·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회가 인간을 사악·노예·불행으로 몰아넣었다"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그가 쓴 모든 저작도 이 원리에 기초하여 개인과 사회를 회복하는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영향은 철학·정치·교육·문학 전반에 걸쳐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문학적 지위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자 볼테르와 함께 19세기의 대표적 작가로서, 계몽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천주교성당







아들도 아이스크림을~~




안시의 매력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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