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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만보계’를 쓰는 이가 있을까. 하루에 1만 걸음 정도는 걸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 때 만보계가 유행처럼 퍼져나간 적이 있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허리춤에 하나씩 차고 다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구하기조차 힘든 물건이 됐지만 말이다. 유행이 돌고 돌듯 IT 기술도 진화하며 옛 것을 변주한다. 만보계가 돌아왔다. ‘스마트’ 시대에 맞게 온갖 스마트 기능으로 무장했다. 위상도 변했다. 허리춤에 감추고 다니던 만보계를 이제 사람들은 당당하게 손목에 차고 다닌다. 진짜 만보계가 맞냐고? 사람들은 이 기기를 설명하기 위해 ‘웨어러블(Wearable)’이라는 새 카테고리까지 만들었다. 손목 위의 주치의 ‘스마트밴드’ 얘기다. ![]() 스마트밴드는 사용자의 손목에 감아 쓰는 제품을 말한다. 보통 시계 기능도 함께 품기 마련이지만, 하루에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등을 알려주는 기능에 집중한 제품이 많다. 열량 소비량을 계산해주기도 하고 수면 시간을 측정해 알려주기도 한다. 모바일 건강관리 영역에서 사용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제품이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스포츠용품 전문업체 나이키다. 나이키는 지난 2012년 ‘퓨얼밴드’를 내놨다. 손목에 차는 스마트밴드로 만보계와 열량 계산 기능이 탑재된 제품이다. 퓨얼밴드의 가장 큰 특징은 동기부여다. 사용자가 운동 목표치를 설정하면 퓨얼밴드의 LED 조명이 목표치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알려준다. 아무 생각없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가 문득 퓨얼밴드를 들여다보고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는 체험기를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나이키는 퓨얼밴드 하나로 패스트컴퍼니라는 미국 기술전문 미디어가 선정한 2012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두 번째 제품 ‘퓨얼밴드SE’를 내놨다. 이후 스마트밴드 시장은 독자적인 제품과 솔루션을 갖춘 밴처업체의 몫이 됐다. ‘핏빗’과 ‘조본업’이 대표적이다. 모두 손목에 두르는 제품으로 사용자의 활동량과 열량 소비를 측정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조본업은 사용자가 잠을 자는 동안 수면 패턴을 측정해 아침에 진동으로 알람을 울려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잠에서 깼을 때 가장 상쾌한 시점이 언제인지를 분석해 자연스럽게 기상을 유도하는 기능이다. ‘미스핏샤인’도 모바일 헬스케어와 스마트밴드 분야에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제품이다. 애플의 전 CEO였던 존 스컬리가 창업한 ‘미스핏샤인 웨어러블’이라는 스타트업에서 개발했다. 보통 손목에 두르는 다른 제품과 달리 미스핏샤인은 목걸이로도 쓸 수 있다. 100원짜리 동전보다 작은 크기로 무게나 크기에 부담이 없다. 클립형 보조도구를 쓰면, 주머니나 옷깃 안쪽에 끼울 수도 있다. 미스핏샤인이 측정한 운동량은 ‘샤인’ 전용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LCD 화면은 없지만, 소형 LED 전구가 탑재돼 있어 운동 목표치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는 모바일기기에 집중한 축제다. 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는 행사다. 하지만 2014년 ‘MWC 14’에 새 주인공이 등장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초대형 기업이 스마트밴드 시장에 눈독을 들이며 판을 키웠다. 스마트밴드는 스마트시계와 함께 모바일기기 보조용품의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우연인지, 한국과 중국, 일본의 대표 IT 기업이 동시에 뛰어들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기어핏(Gear Fit)’이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기어핏 안에는 사람의 심장박동수를 잴 수 있는 센서가 들어가 있다. 쓰는 이의 움직임을 감지해 만보계 기능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잠을 자는 동안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기록하는 수면 모니터 기능도 기어핏의 핵심 기능이다. ![]() 스마트밴드 제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곡면 화면이 쓰였다는 점도 기어핏이 내세우는 점이다. 손목에 시계처럼 두르는 제품인 만큼 착용했을 때 어색함을 줄이기 위함이다. 부드럽게 휜 화면 덕분에 액세서리로 써도 손색이 없다. 기어핏은 스마트폰과 연결하면 더 유용하다. 스마트폰에 도착한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기어핏이 알려준다. 모바일헬스케어의 첨병인 스마트밴드에 스마트시계 일부 기능을 더한 셈이다. 중국 기업 화웨이가 MWC 14에서 소개한 ‘토크밴드 B1’도 스마트밴드의 기본에 집중한 제품이다. 움직임을 측정해 열량을 기록해주고, 운동 진행 상황을 관리해주는 것이 토크밴드B1의 주요 기능이다.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하면, 스마트폰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고도 전화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토크밴드B1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로 동작한다. ![]() 구글이 개발 중인 구글 글래스는 아직 정식 출시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다. 스마트시계는 삼성전자와 소니, 그 외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잠깐 시도만 했을 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마트밴드는 안경과 시계를 따돌리고, 가장 매력적인 웨어러블 제품으로 떠올랐다. 헌데, 스마트밴드는 '다 되는’ 기기가 아니다. 모바일 영역에서 건강관리 기능에 선택∙집중한 제품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수면 모니터나 만보계 기능은 지금 쓰는 스마트폰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코스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등도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마트밴드의 제한된 기능과 불분명한 목표 앞에서 사용자는 멈칫할 수 밖에 없다. 웨어러블 기기 트렌드가 모바일 헬스케어 쪽으로 쏠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문제다. 유행처럼 ‘반짝’ 빛나다 이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스럽다. 소니가 삼성전자, 화웨이와 함께 MWC 14에서 발표한 ‘SWR10’을 보자. 스마트밴드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이정표가 될 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독특한 시도가 엿보이는 제품임에는 틀림없다. SWR10은 스마트밴드의 역할에 사용자의 ‘감성'을 더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소니가 주장하는 ‘SWR10’의 개발 콘셉트는 '사용자의 삶을 기록하라’이다. SWR10은 사용자가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기록해준다. 어디를 가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SWR10이 대신 담아둔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찍은 장소와 시간 등도 함께 저장한다. 위치정보와 스마트폰 연동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하루 일상을 대신 기록해준다는 얘기다. 방문했던 장소를 기록하려면, SWR10을 두 번 두드리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록하려면 SWR10에 연결한 모바일기기에서 전자책을 읽으면 된다. 삶을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디지털 다이어리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까. 소니가 스마트폰 앱으로 만든 '라이프로그(Lifelog)'와 함께 쓰면 된다. 물론, 다른 스마트밴드처럼 수면 모니터와 만보계, 열량 계산 기능도 쓸 수 있다. 사용자의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는 e메일이나 페이스북 메시지도 SWR10이 알려준다. ![]() 발행201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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