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코스(축산항~고래불해변) 16.1km
축산항~대소산봉수대~괴시리전통마을~대진항~덕진해변~고래불해변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22코스는 “영양남씨 발생지”표석이 있는 축산항에서 시작하여 블루로드의 마지막 C코스 “목은이색사색의길”을 걸어 괴시리 전통마을과 대진항, 덕진해변을 거쳐 고래불 해변에 이르는 16.1km의 길이다.
행정도시 건설로 처음 시작된 세종시는 우리가 사는 천안시와 경계를 같이하는 인근 도시이다, 세종시가 진정한 세종시가 된다면 행정수도의 정동진은 어디일까? 바로 축산항이 정동쪽에 있다고 해서 ‘신정동진 프로젝트’로 인해 축산항은 부각되고 있고 영양남씨로 국무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국무총리의 글씨로 표지석을 만든 “영양남씨발상지” 계단을 따라 해파랑길 22코스는 시작된다.
사람은 그 근본을 잊어서는 않된다, 나무도 싹에서 시작하여 열길 스무길의 아름드리로 자라고 이윽고 천 길에 다다를 수 있다, 천 길도 한 푼에서 시작하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일까? 오로지 동해안 2천리를 걸어보겠다고 시작된 해파랑길 이어걷기! 그 시작은 워킹여행클럽이고 또 스페인 산티야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듯이 모든 일에는 그 근원이 있기 마련으로 “영양남씨” 발상지는 그들의 근원지이다.
남민(南民)을 시조로, 남민의 둘째아들 남군보를 파조로 하는 영양남씨는 종당으로 영해 축산항 부근에 표착하여 신라에 귀화한 당나라 사람 김충이 시조라고 한다. 이렇하듯 모든 만물에는 그 근원이 있기 마련이다. 축산항이 이웃의 고장 세종의 새로운 정동쪽으로 각광받기 바라며 2021년 8월22일 22코스 정복에 나선다.
변이종 발생으로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는 시들어 질줄 모르고 일년 감염자가 2천명을 육박하고 있다보니 거리두기도 강화된 4단계와 비수도권 3단계로 통제되고 있음에 더욱 조심을 하며 길을 간다, 해파랑길 영덕구간은 영덕블루로드 D,A,B,C구간을 통과하는 구간으로 22코스는 블루로드 마지막 C코스를 지나는 “목은이색사색의길” 등산로를 해발 282m의 대소산 봉수대에 올라 사진구름다리, 목은이색기념관, 괴시리전통마을을 거쳐 대진해수욕장을 지나고 고래불해변이 있는 병곡지구에서 끝을 맺는다.
며칠간 줄기차게 내리던 비소식이 우리 워킹여행클럽의 트레킹을 출발하는 날이면 회원들께 축복이라도 주듯이 비가 오지 않았던 날이 허다하다. 이는 회원들의 복이라 생각한다. 지금가지 10여년을 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우천으로 일정을 취소한 경우는 거의 없고 비를 맞으며 진행한 경우는 3~4번지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다행스럽게도 뜨거운 여름을 살짝 피하여 가을로 가는 날씨를 고맙게 생각하며 솔향기 풍기는 완만한 숲속을 오르자 대소산 봉수대 0.4km 이정표가 반긴다. 뒤를 따라 천천히 오르는 장애우를 기다린다, 우리는 ‘천천히’ 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오르고 있을 것이다.
대소산 봉수대를 오르고 내리는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르기에 0.4km 이정표 지점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하고 더욱 싱그러운 녹음속으로 들어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장애우는 보이지 않는다, 아차 싶어 되짚어 갈림길에 다다르니 능선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부인과 그냥 오르겠다고 실랑이를 하는 것 같더니 인솔자의 말을 듣지 않고 봉수대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되짚어 봉수대에 오르니 앞에 장애우가 정상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고집센 놈! 넌 순전히 마나님 복으로 산다! 네놈의 닉이 복이듯이 그건 너의 억지고 순전히 마나님 복으로 사는 놈! 네가 이겼다’ 외쳐주고 싶지만 기상과 의지를 꺽고 싶지 않아 나를 처다보며 썩소를 보내는 그를 뒤로하고 먼저 봉수대를 내려선다.
산 속길 10여분을 알바하고 나니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솔자의 말을 잘 듣기로 하고 거역하는게 벌써 몇 번이야! 은근히 알라를 하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위험구간에서 멀찍이 기다려 주며 “목은이색사색의길”을 간다, 이 길도 벌써 세 번째, 하지만 매번 새롭고 어렵게 오르내린다, 다시 급격히 내려서는 내리막을 내려오면 ‘사진구름다리’ 이다. 목은이 살았던 괴시리 마을과 사진리 해변을 잇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중간의 탈출기점마다 기다려주는 고마운 버스가 기다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학자들 사이에 ‘은(隱)“자를 호를 삼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 이성계의 조선개국에 반기를 든 정몽주는 ’포은(圃隱)‘, 길재는 ‘야은(冶隱)’, 이색은 ‘목은(牧隱)’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라 한다. ”목은이색사색의길”을 처음 찾았을 때는 우을증을 알고 있던 아내에게 도음이 된다하여 두루 돌아다니던 시절에 찾아보고 클럽에서 축산항 죽도산 해맞이로 두 번을 더 왔었으니 이번이 세 번째가 아니고 네 번째 인 셈이다.
선두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완주하고픈 욕망은 버리자고 장애우를 달래가며 버스를 타고 사진구름다리에서 괴시리전통마을까지 이동한다, 괴시리 마을에 도착하여 장애우는 계속 버스로 이동하여 고래불로 가도록 조치하고 나는 그늘 밑 벤치에 홀로 앉아 허기진 점심식사와 준비해간 ‘이슬이’로 컵으로 들이킨다. 힘들게 야근을 하고 나와서 상쾌한 길을 걷는 기분을 간직하고 고래불까지 종주하기로 하고 전통마을을 겉으로 둘러보며 고래불로 향한다.
고시리전통마을을 떠나면서 후미에 있던 나는 선두로 앞으로 전진한다, 점심사를 마치고 출발한 일행들이 살짝 앞으로 와 버린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따라올 것이다. 가자~~ 하나님이 보우하서 내리쬐는 햇빛은 없어 다행이니 고래불해변까지 약 8km를 걸어보자 출발한지 잠시 후 손이 허전해짐을 느낀다. ‘아불싸! 스틱을 놓고 왔다’ 500m를 되짚어 돌아서서 식사를 하던 곳에 오니 그래도 다행히 스틱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고래불해변까지는 평지길 도로를 걷는 길이다. 귀찮은 스틱을 접어 배낭에 꼽고, 오늘은 알바로 시작해서 알바로 끝나는 날인가 보다 조금은 진정하고 이제 천천히 걸어보자 고질병인 경련이 일어나지 않게,
햇빛을 막아줄 가로수도 없고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없는 길을 따라 동해안의 시골어촌마을 대진항으로 들어간다, 대진2리항을 지나고 대진1리항에 들어서니 시원한 음료가 생각난다, 사방을 둘러보니 멀리 ‘1박2일 촬영 정슈퍼’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반가움에 달려가 아이스크림 통에서 쭈쭈바 2개를 짚어드니 50대가 넘게 보이는 주인장이 이 더운 날씨에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오늘은 고래불해수욕장이 목표라고 했더니 ‘다 오셨네요, 조금만 가면 되네요’ 하신다.
뒤의 일행을 기다릴까 하다가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한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배낭을 메고 걷는 모습이 안쓰러워 할 것이다, 한 코스 한 코스 진행하는 해파랑길의 완주에 대한 욕망이 그저 발길을 옮기게 한다. 다리에 이상이 오기 전에 목적지 까지, 대진해수욕장을 지나고 고래불대교를 건너니 송림이 좋은 곳과 넓은 땅덩어리는 모두 “000해양휴양소” 또는 “000해양연구소” 등의 간판이 붙어있는 있다, 과연 1년에 몇 번이나 사용할까? 지자체 또는 기관단체마다 서로 경쟁하듯 건립한 수많은 해양휴양시설은 요즈음 불고 있는 필요없는 관사 매각 같은 바람으로 빨리 없어져야 할 세금낭비의 현장이라 느끼며 고래불해수욕장 병곡지구에 도착하니 해수욕장 입구 광장에 울퉁불퉁 커다란 고래한마리가 콘크리트 바닥에서 노닐고 있다, 고래가 하얀 분수를 내 뿜으며 노니는 것을 본 이색이 ‘고래뿔’이라 불렸다는데서 얻은 지명이라 한다.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 한날 한 코스, 한날 한 코스를 걸어온 해파랑길의 여정은 고래불해변에서 영덕구간을 마무리 하니 상하권으로 된 지도책은 상권을 마무리하는 책바지를 한다, 버스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시원한 캔맥주와 음료를 서늘한 그늘을 찾아 마련해 놓고 기다린다. 단숨에 한 캔을 들이키고 나니 속은 짜릿하고 갈증은 도망간다. 오늘의 회원님의 협찬으로 산을 넘는 16.1km의 긴 거리의 갈증을 마무리하고 c에 오른다, 귀가길이 막히지 않고 잘 가기를 바라며 시계를 보니 16시 05분, 신발끈과 허리띠를 풀고 의자를 살짝 뒤러 제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눕힌다.
첫댓글 22코스 다녀온지가 1년이 지났네요.우리들이 걸었던 그길들 그추억들 다시한번 꺼내어봅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