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의 3업
신구의 3업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곳은 [정행품], [범행품], [10주품]의 동진주(童眞住), [10회향품]의 제9회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행품]에 대하여는 앞장에서(Ⅲ장 3.[정행품]에 나타난 계상과 그 의의)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에 간단히 다루기로 한다.
[정행품]은 지수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신구의 3업이 무엇인가를 묻는 열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며, <보살본업경>의 불(佛)본업과 관련지어 볼 때, [정행품]에서는 여래의 신구의는 어떠한 행(行)인가 하는 것이다. 여래로서 가지는 한량없는 원행(願行)이 계(戒)로서 모두가 일체승묘공덕이 된다. 그리고 불(佛)의 신구의정(身口意淨)을 따르는 지계란 율장의 조목이 아닌 일상생활의 위의였다.
어떻게 과실이 없는 신어의업(身語意業)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함이 없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훼(毁)함이 없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괴(壞)함이 없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퇴전치 않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동함이 없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수승한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청정한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염(染)이 없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지혜로 먼저 이끄는 신어의업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래와 같이 [범행품]에서는 신구의를 염의출가자(染衣出家者)의 범행청정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10법으로 소연(所緣)을 삼아 작의관찰'해야 한다고 하며, 관(觀)의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정행품]의 불(佛)의 신구의를 닮으려는 원(願)과는 다른 내용이다.
작의(作意)란 <전식론>에 의하면 '종심법상응(種心法相應)은 촉(觸), 작의, 수(受), 사유, 상(想)이다. 근(根), 진(塵), 식(識)의 세 가지로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 촉(觸)이며, 마음이 항상 움직이는 것을 작의라 하며, 수(受)는 다만 그것을 사수(捨受)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작의란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범행(梵行)을 닦을 때에 마땅히 10법으로 소연을 삼아 작의 관찰해야한다. 이른바 신, 신업, 어, 어업, 의, 의업, 불, 법, 승, 계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觀]할지니, 신(身)이 이 범행인가 내지 계(戒)가 이 범행인가.
[범행품]에서 범행(梵行)이란 결국 움직이는 마음을 어떻게 관찰하느냐 하는 지관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장은 <탐현기>에서 다음과 같이 인과로 해석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다만 10법에만 나아가서 관하는가? 법을 섭하여 간략히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 구, 의는 유위의 과(果)이며, 3업은 저 인(因)이 되며, 불(佛), 법은 출세의 과(果)이며, 승(僧), 계(戒)는 저 인(因)이라 할 수 있다. 또 출가한 사람이 출세의 행을 닦고자하면 이 10법에 의지하여 만 범행을 이룰 수 있으니, 말하자면 3보(寶) 및 계(戒) 네 가지는 무너뜨릴 수 없는 깨끗한 경계로 곧 소신이며 소입(所入)이다.
신, 구, 의 이는 능히 닦아 행해야 하는 도구이니 능신(能信)이며 능입(能入)이다. 3업은 대경(對境)으로 소수(所修)이며 소성(所成)의 행(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범행은 무슨 법 가운데 있는 것을 추구하는가? 이미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으니 곧 상(相)이 다하고 이(理)가 드러나야 비로소 진실한 범행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중(文中)에 10법을 간략히 하여 오직 범행만을 논의하고 나머지 법은 논의하지 않았다.
신, 구, 의는 유위의 과(果)이며 불(佛), 법은 무위의 과(果)로, 3업은 유위의 인과이며 승(僧), 계(戒)는 무위의 인(因)으로 보고 있다. 불, 법, 승 3보와 계(戒)의 청정한 경계를 믿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신, 구, 의란 도구에 의해 3업의 상(相)이 다하고 이(理)가 드러나는 범행일 때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3업을 닦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징관은 '오직 10법으로 관한다고 하는 것은 첫째는 원만한 수가 되며, 둘째는 범행한 연(緣)의 체(體)가 이 열 가지를 여의지 않기 때문이니, 말하자면 신(身), 구(口), 의(意) 세 가지 이것은 행(行)의 의지한 바의 곳이며, 3업은 행(行)의 인(因)이며, 3보는 행(行)의 연(緣)이며, 계(戒)는 행(行)의 체(體)라 한다.'고 하여 계(戒)를 모든 행(行)의 체(體)라 하고 있다. 법장은 인과로 해석하였지만 징관은 계(戒)의 청정함으로 관하는 관법으로 해석한 것이다.[본장 '4)범행으로서의 계(戒)' 참조]
이 가운데 어느 법이 범행인가? 범행은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에게 있으며......이와 같이 관찰하면 범행법을 얻을 수 없으며, 3세의 법이 모두 공적하며, 뜻에 취착함이 없으며,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행하는 바에 둘이 없으며, 방편이 자재하며, 상(相)이 없는 법을 받으며, 상(相)이 없는 법을 관하며, 불법의 평등함을 알며, 모든 불법을 갖추기 때문에 이를 청정한 범행이라고 한다.
범행이란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하며, 자재하고 평등한 부처님의 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닦는 법은 '처비처지(處非處智)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업보의 지(智)이며......모든 법 가운데 2해(解)를 내지 아니하며, 모든 불법이 빨리 현전하여 처음 발심할 때에 아뇩다라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 일체법을 아는 것이 곧 심(心)의 자성이며 혜신(慧身)을 이루는 것으로 다른 이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법이 마음, 경계 등과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心)과 경(境)이 하나인 모습으로 60권 <화엄경>에서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고 하는 것이다.
범행의 행체(行體)가 무분별인 처비처지(處非處智) 등의 10지(智)는 [10주품] 제1발심주의 소연인 처비처지(處非處智), 선악업보지(善惡業報智) 등의 10종난득법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신구의 3업의 업은 [10주품] 제8주인 동진주(童眞住)에 나타난다.
[10주품]의 특징은 10주의 각각에 대하여 인(因)이 되는 것과 연(緣)하는 것, 그리고 부처님의 공덕을 배우며 귀의해야할 곳이 되는 10가지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진주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인(因)과 연(緣)의 귀의처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동진주인가? 이 보살이 10종업에 머무름이다. 어떠한 것이 10이 되는가? 이른바 신(身)의 행동에 잃음이 없고, 어(語)의 행동에 잃음이 없고, 의(意)의 행동에 잃음이 없으며, 의(意)를 따라 받아 생함이 중생의 갖가지 욕(欲)임을 알며, 중생의 갖가지 해(解)임을 알며, 중생의 갖가지 세계임을 알며, 중생의 갖가지 업임을 알며, 세계의 성괴(成壞)를 알면, 신족(神足)이 자재하여 행(行)하는 바에 걸림이 없다.
업이란 신구의의 행(行)에 잃음이 없이 의(意)에 따라 생(生)이 있는, 즉 업에 따라서 중생의 모습 그대로가 행(行)하는 바에 걸림이 없는 무애자재함을 말한다. 이러한 귀의처의 총(總)으로 법혜보살에게 주는 것이 '무애지(智), 무착지(無著智), 무단지(無斷智), 무치지(無癡智), 무이지(無異智), 무실지(無失智), 무량지(無量智), 무승지(無勝智), 무해지(無懈智), 무탈지(無奪智)'인 것이다.
또, [10회향품]의 제9회향인 무착무박해탈(無著無縛解脫) 향(向)에서는 인(忍)에 수순하는 보현행의 신구의 3업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忍)은 무생법인으로, [10지품] 제6현전지의 12연기관으로 10평등의 공(空), 무생(無生), 무성(無性)의 3해탈문[또는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해탈문]을 가르킨다.
말하자면 무착무박해탈한 심으로 보현의 신업(身業)을 성취하며, 무착무박해탈한 심으로 보현의 어업(語業)을 청정하게 하며, 무착무박해탈한 심으로 보현의 의업(意業)을 원만히 하며, 무착무박해탈한 심으로 보현의 광대한 정진을 일으키며, 무착무박해탈한 심으로 보현의 무애한 음성의 다라니문을 구족하여 그 음성이 광대하여 시방에 두루한다.
보현행이란 무착무박해탈한 지(智)가 3해탈문에 의해 신구의로 현현한 바로 그 모습이다. 또 무착무박해탈심으로 하는 회향만이 분별이 없는 것이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무착무박해탈로 향함에 세간과 세간법에 분별이 없으며, 보리와 보리살타에 분별이 없으며, 보살행과 출리도에 분별이 없으며, 불(佛)과 모든 불법에 분별이 없으며, 조복한 중생과 조복하지 않은 중생에 분별이 없으며, 선근과 회향에 분별이 없으며, 자타에 분별이 없으며, 시물(施物)과 받은 자에 분별이 없으며, 보살행과 등정각에 분별이 없으며, 법과 지(智)에 분별이 없다.
지금까지 경문을 중심으로 신(身), 구(口), 의(意)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정행품]의 신구의는 불(佛)본업의 신구의를 따르고자 하는 원(願)의 위의행(威儀行)이었다. 동시에 이것이 계행(戒行)이였다. 그러나 [범행품]의 신구의는 계체(戒體)로 관(觀)하는 범행(梵行)으로서의 관법이다. 밖으로는 계(戒)의 위의를 행(行)하여 공덕을 쌓고, 안으로는 계체로서 관(觀)하여 지혜의 해탈을 얻는 것이다.
이 평등에 의한 공무상무원해탈문은 불자체(佛自體)의 보살행이며 바로 보현행이다. 그리고 경문에 나타난 신구의는 보살의 한량없는 원행도, 작의관찰하는 범행(梵行)도, 결국에는 무분별지(無分別智)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무애자재한 모습이다. 따라서 <화엄경> [세주묘엄품]에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고, 여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시는 모습을 신구의를 통해 있게 된다.
징관은 이 모습을 3업보주(業普周)의 신구의 3업으로 설명하며 10신(身)이라 하였다. 성최정각(成最正覺)을 덕용(德用)으로 하여, 10신을 융3세간과 불상(佛上)에 배대시키고 [10지품]과 [이세간품]에서 두 가지 모양의 10신으로 나툰다고 한다.
1해행(解行) 2종10불(佛)로 이해되는 이 보리신과 중생신의 신구의 모습은 둘이 아닌 하나로 불(佛)임과 동시에 보살, 중생인 것이다. 깨달은 모습은 신구의의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깨달아 가는 것도 신구의인 것이다.
<화엄경에 나타난 계에 관한 연구/ 이선이(태경)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