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진 1집 - 착한 노래
01. 그대에게 가는 길
윤미진 2집 - 회로
01. 회로
윤미진 3집 - Fly My Song
01. 노래여 날아가라
윤미진의 1집 '착한 노래', 2집 '회로', 3집 'Fly My Song' 전곡은 위의 각 제목을 딸깍(클릭)하시면 개별듣기 및 저장 가능합니다. 모든 노래의 가사는 곡이 너무 많아서 올리지 않습니다.
윤미진 1집, 2집, 3집 음반 전곡 듣기
노래랑 살아가기, 사랑하기
윤미진 (삶이 보이는 창 33호)
안녕하세요? 윤미진입니다. 저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추상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좋은 노래가 사람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는 사람이죠. 예전에 저도 문학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몇 줄 인사도 하기 전에 두려움이 앞서네요. 가볍게 읽어주시길….
작년에 우연히 친구와 그 친구의 오빠를 만나게 됐습니다. 스무 살 시절에 단짝으로 붙어 다니던 친구라 가족과도 친분이 있었죠.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오빠와 나눈 대화는 녹녹치 않았습니다.
“그래, 미진이는 무슨 일을 하지?”
아마도 장르나 활동무대가 궁금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그 ‘무슨 가수’가 그게 무슨 가수야아…? 이렇게 들리는 거예요. 결국은 이 모두가 즐거운 대화 중의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제겐 여운이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흔히 우리들을 민중가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민중가수가 확실하다면 민중들이 모르고 있어서는 안 되는 거니까요. 대중과 민중에 대한 논쟁을 하고자 함도 아니고 표현의 빈곤함에 대한 것이죠.
표현의 빈곤함에는 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집회공연을 할 때 사회자는 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투쟁의 현장이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와서 힘찬 노래로 함께 하는 노동가수 윤미진…’. 제 노래들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다지 당찬 노래도 아니고 특정한 정치성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노동자가 원하는 투쟁의 현장에 언제나 달려가고 있지도 않습니다. 달려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집회라면 의례히 이런 노래, 이런 가수가 필요해…’라는 생각이 주최하시는 분들의 사고 속에 은연 중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집회에는 한두 건의 문화공연이 요식 행위처럼 존재해야 할까요? 왜 어떤 가수의 어떤 노래가 듣고 싶은 게 아니고 어떤 풍의 노래를 불러줄 아무나가 필요한 걸까요? 왜 스스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걸까요? 제가 스물한 살때부터 고민했으나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위험한 일 아닙니까? 이런 자체 검열이…?
우리의 집회는 무척 중요한 의사소통의 통로입니다. 그리고 가수들에게도 직접 사람을 만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식상하거나 형식적이라면 과감히 그 틀을 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가수 불러! 식은 아니어야겠죠.
이런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난번에 들어보니까 이런 노래가 있데?’, ‘우리 조합원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 같은…. 그래서 앞으로는 노조 집행부가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대에서 노래하려는데 앰프를 철수해버리는 등의 불미스런 폭력은 절대로 없어져야겠죠. 사과할 면목도 없어져 버리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죠.
좋아하는 선배의 노래가사 중에 ‘내가 철들어 간다는 것이 제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노래를 읊조리며 정신을 맑게 가지던 때가 있었는데 문득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제가 좀 쓸쓸해지네요. 노동자도 살며 사랑하고, 노동가수도 살며 사랑하고 그 모두는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의 삶은 존중되어야 하지 획일화된 공산품이 아니라는 것을 잊진 말았으면 좋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낭만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 낭만적인 생각은 노래 속에서 ‘푸른 물처럼 푸른 섬처럼 이렇게 하나가 되’기도 하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세상의 짐을 마다 않으며 헛된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다가 ‘노래여 날아가라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 평화의 바람으로 노래여 날아가’게 되는 것이죠.
어떤 분들은 ‘도저히 못말리는 희망’이라고도 하시지만 이런 낭만마저 없다면 아마 저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겁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이 착해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구요. 그래서 ‘착한 노래'를 부릅니다.
제 생각에 귀 기울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기를….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은 없다면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만나기를 저는 바랍니다. 우연히 폭력적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말이죠. 그게 아마도 제 노래의 솔직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도 제 노래 속에는 또 다른 이레네가(<이레네>는 2집 수록곡), 상실의 시대에서도 빛이 되어주는 수많은 빛들이 등장할 겁니다. 제 노래 속에 많이 출연해주세요. 여러분 반가웠습니다.
'착한 노래' 부르는 꽃다지 가수 윤미진
권복기 (한겨레21 1999년 12월 30일 제289호)
노동현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노래패 ‘꽃다지’의 윤미진(나이???)씨가 솔로로 독립해 첫 음반 <착한 노래>를 냈다. 파업현장과 여러 집회에서 서글서글한 눈망울을 가진 청순한 겉모습과 달리 터질 듯한 목소리로 <불나비> <김순동 할아버지> 등을 불러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그가 낸 첫 음반은 노동가요들과는 달리 팝발라드풍의 노래들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뜻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노래말과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맑은 음색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이상하게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힘이 있다. 꽃다지 때 한손에 마이크를 불끈 쥐고 다른 주먹을 치올리며 불렀던 노래들이 폭포수의 함성이라면, <착한 노래>는 잔잔하지만 힘있게 흐르는 큰 강의 물결이라고나 할까. 비록 음반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희망은 있다>는 빠른 박자의 노래로 벌써 대학가 뒷풀이장에서 이전에 윤씨가 자주 불렀던 <바위처럼>과 같이 불리고 있다. 또 <영혼의 인연 다하는 날까지>나 <눈>은 발라드의 고전처럼 고운 소릿결을 띤 노래들로 주목받고 있다.
대학에 다닐 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연 ‘전국 대학생 통일노래 한마당’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그뒤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을 만들어 학생운동의 노래 수준을 한 단계 높였고 94년 가을 꽃다지에 들어가면서 학생에서 노동자로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폭을 더욱 넓혔다.
윤씨는 “사람들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로 이어지는 여러 갈림길에 서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노래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미진의 2집 <回路>
조남혁 (작곡가)
그리 진하지 않은 회색빛 바탕에 어떻게 보면 조금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또 어떻게 보면 조금은 익살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그란 얼굴이 전면을 장식한 자켓....
윤미진 2집 음반, <回路>를 들으며, 내가 처음 떠올린 생각은 바로, ‘이 여자가 벌써 인생을 이야기 할 나이가 되었나?’ 였다.
라틴풍의 리듬과 기타의 슬라이딩 기법연주가 낯설지 않게 어우러지는 편곡...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라틴리듬의 흥겨움과는 잘 어울릴지 않을 것 같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흘러가 버린 청춘과 그 시간 속의 사람과, 그 사람들과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아픈 내용의 가사....
그리고 또 한술 더 떠서 이런 가사내용과는 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하게 부른 가창.... 곡명 ‘회로(tr01)’ ....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문득 30살로 넘어서는 마지막 20살의 겨울을 떠올렸다. ............. 사람들은 20대에서 30대로 넘어설 때 적지않은 고민을 한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누가 그랬나?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고... 그래, 확실히 20대는 청춘의 한 복판이자, 그 자체이다.
나에게도 20대의 푸른 시절은 세류에 휩싸이기 보다는 그것을 거슬러 가는 당당함의 열정이 내 가슴을 뜨겁게 하였고,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순과 사회변혁에 대한 토론으로 잠을 못이루던 시간이었다. 때로는 다른 이들이 무모하다고 할 만한 일에 목숨을 걸었고, 나의 이런 뜻과 행동을 함께 하는 이들을 나 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20살 시절은 어느 덧 30살 시절로 변해 버렸다. 만 30살로 넘어서는 그 해 12월, 나는 몹시도 깊고 긴 방황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남아 있을까 ....’
20대에 동료들과 술한잔 하며 불렀던 노래!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에도 나는 내 인생에 30살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늘 20대의 청춘으로, 그 푸르른 이상과 꿈으로 자유롭게 영원히 남아 있을 것 만 같았다.
헌데, 현실은 달랐고, 나는 그런 현실을 눈치채며, 20대를 정리하고, 30대를 맞이하는 서글픈 의식의 일환처럼 깊고 긴 방황의 시간 속에 홀로 술과 함께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나에게 있어 그 방황의 한 복판의 느낌이 아니라, 이미 그 방황의 긴 터널을 지나온 이의 성숙함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렇기에 더욱 공감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이런 가사가 애조 가득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작,편곡이 되었다면, 나는 정말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내 아프고 쓰린 기억은 나 자신에게 조차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아마 생각컨데, 윤미진이라는 가수 또한 방황쪽에 가까운 심각하고 오랜 고민과 아픔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고민과 아픔을 잘 이겨내고 정리해낸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 그녀의 정신적인 나이는 이미 30대의 문턱을 넘어선지 한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회로(tr01)’에서 보여지는 리듬과 가사와 가창의 이런 부조화가 이리도 성숙한 자연스러움으로 느껴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곡, ‘상실의 시대(tr03)’가 이런 나의 추측을 확실하게 해 주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절망을, 허무를, 상처를, 인생을 말한다.... (내가 그랬다!) 열심히 살았다면, 열심히 싸웠다면, 열심히 사랑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사실, 이것을 몸으로 체화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름 드높아 산다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이지...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사는 이유는 단지 이것때문은 아니지.... (나의 느낌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 윤미진은 다른 트랙의 노래들, ‘고개 숙인 남자(tr04)’, ‘빛이 되는 사람(tr05)’, ‘이레네(tr06)’, ‘명동성당(tr07)’, ‘길 위에 서서(tr09)’에서
그녀의 삶을 둘러 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어떤 곡에서는 그녀에게 변함 없는 사랑과 믿음이 되고 있는, 하여 그녀 또한 그들에게 그런 사랑과 믿음이 되고픈 사람들의 이야기... 또, 어떤 곡에서는 이미 그녀 곁을 떠나 간 이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 속에 더더욱 깊어지는 사랑과 그 사랑의 고귀함이 오히려 그녀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이렇게 그녀의 인생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 속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삶의 가치와 방향을 돌려 이야기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내가 20대의 청춘에서 목에 힘줄을 돋우며 외쳤던 함성이나 구호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많은 방황과 고민의 터널을 지나온 성숙한 이의 가슴에 소리없이 내려앉는 눈송이 같은 느낌으로 다가 온다.
그렇기에, ‘우릴봐요(tr02)’나 ‘멀리 가는 물(tr08)’,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tr10)’에서 그녀가 말하고 있는, 더욱 깊어지고 넉넉해진 자기 삶의 과거와 현재 대한 이해와 확인.... 그리고 더욱 굳건해진 미래에 대한 신념.... 들이 결코 생경하게 들리지 않으며, 그녀가 노래하는 마지막 사람,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 ‘무대위에(tr11)’는 그녀의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까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 나는 윤미진을 사실 잘 알지는 못한다. (진짜루!) 가까운 듯 하지만, 또 가깝지 못하다.나는 다만, 그녀의 노래를 통해 그녀를 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어느 때에는 그녀에게는 통 관심이 없고, 단지 그녀의 노래만을 볼 때도 있다.
나는 이번 음반을 처음 들을 때, 그녀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이 음반을 들으면, 나는 그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노래만을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 노래를 듣고 있는 곳은 가을 걷이가 얼추 끝난 충청도의 어느 해지는 들녘에서 이다. 차를 세워 놓고, 차 안에서 아주 조그마한 볼륨으로 그저 음악소리가 들릴 정도로만 듣고 있다. 커다란 볼륨으로 들었을 때와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든다. 아주 조용한 들판을 앞에 두고, 서산으로 기우는 저녁놀을 배경삼아 듣는 윤미진의 2집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 네 번째곡 ‘고개숙인 남자’를 듣다가 눈물이 나올뻔 했다...)
술 생각도 난다. 아무말 없이 그저 혼자서 술 한잔 하고 싶다. 이 노래들을 벗삼아서 말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큰 볼륨으로 들을 것이다. 그녀의 이번 음반의 노래들은 ‘카멜레온’ 같아서 큰 볼륨으로 다른 환경에서 들으면, 또 색다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밀레의 만종이 떠오르는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조국의 어느 들녘에서 마치 내 인생의 가을걷이에는 어떤 것들을 내 이름의 보자기에 담을 수 있을까를 떠올려 보며, 내가 보고픈, 내가 그리운 몇몇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등학교적 첫 사랑은 지금 몇 명의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을까?...) 콧 속 깊이 느껴지는 가을 한 복판의 내음을 이 노래들에 타서 마셔 보련다. 적어도 오늘 저녁 만큼은 말이다.
어디 한 번 취해 보자꾸나. 내 인생에 건배! 위하여!!! 하하하....
윤미진 2집 음반 [回路]
장기호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하루종일 하나의 노래가 입안에서 맴도는 경우가 있다. 아침에 나오면서 차안에서 또는 길에서 흘려들었던 노래의 한마디를 멈출수 없이 반복하는 경우다. 그만하고 싶어도 멈출수가 없다. 이번 [윤미진2집에 실린 <우릴봐요>]가 그런 노래다. 발랄하면서도 친숙한 멜로디. 윤미진 2집은 그렇게 편안하면서도, 강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노동가요가 당면의 투쟁을 노래하며, 더욱 강한 결의를 모아내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투쟁하면서 치치고 상처받은 심신을 어루만져 주고, 도닥이면서 한구석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이 있기도 하다. 자본과의 기나긴 싸움속에서 얻어 터지고, 찢기우고, 또 함께 싸우던 동지가 떠나가 뻥 뚫려버린 마음을 윤미진은 어머니의 품처럼 감싸안아 준다.
하지만, 무조건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따뜻함의 이면에는 이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힘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려한다. 또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더 든든하게, 함께 [서]있으라고 밀어붙이기도 하고, 비비적 거리고 잘된 것 하나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많이 온 것을 자랑하며, 용기를 내라고 꼬시기도 한다.
거기에 윤미진이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윤미진과 우리.... 상처받은 영혼들을 감싸안고, 조금더 나아가는 [회로]. 같은 선에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고, 조금더 나아가는 [나선형의 회로]... 그 돌아가는 길목에, [사랑][우리]가 있다.
굳이 노래가사를 인용하지 않으려 했다. 들어보면 느끼실테니까...
윤미진 3집 'Fly my song'
안석희 (대중음악평론가)
윤미진 3집을 들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 나오는 두 여주인공을 떠올린다. 적지 않은 생의 굴곡을 겪은 호텔 아드리아나의 사장 지나와 한창 피어오르는 젊은 엔지니어 피오. 돼지 포르코를 사이에 두고 만난,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두 여자 사이에 생겨나는 자매애가 이 <붉은 돼지>의 숨은 주제라고 말하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연륜과 성숙함을 보여주는 지나와 소녀에서 이제 막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하는 피오. 지나와 피오 사이에 윤미진이 있다.
이번 3집 《Fly my song》은 싱어송라이터 윤미진의 또 다른 성장기이며 길 찾기다. ‘조국과 청춘’, ‘꽃다지’ 노래운동의 대표적인 팀을 거쳐 1999년에 1집 《착한 노래》를 내며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걸어온 윤미진은 매 앨범마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쉽지 않은 여정을 해왔다. 그 시기 사회 진보적인 이슈와 민중들의 삶을 다루며 쉽게 사람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민중가요의 한 지향이라 볼 때 이 지향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잔뼈가 굵은 창작자가 독자적인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기란 쉽지 않다.
예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솔로로 독립한 안치환이 3집 음반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스타일을 찾은 것처럼 팀에 소속된 한 구성원에서 개인으로 자신의 개성을 확립하는 일종의 길찾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윤미진의 세 번째 길찾기는 이런 강력한 자장을 뚫고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하는 모색의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1집과 2집의 곡을 다시 편곡한 3곡과 널리 알려진 <민주>의 리메이크를 합해 총 12곡이 실려 있는 이 음반은 예전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가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노래들 사이에 균형이 부족한 느낌을 주었던 지난 1집과 2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트랙인 <인간과 꽃신>에서 윤미진의 지나가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워킹 베이스와 전형적인 재즈 피아노가 캬바레 뮤직의 분위기를 만드는 이 곡은 같은 <조국과 청춘> 출신이면서 재즈 아카데미를 거쳐 세션 및 편곡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현정의 솜씨 있는 조율과 또 한사람의 공동 편곡자인 조윤섭의 일렉 기타 솔로가 더해지며 빛을 발한다. 이 든든한 두 조력자를 뒤로 하고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테이블 사이를 부드럽게 유영하며 인생의 덧노래하는 윤미진의 지나가 있다. 절도 있는 왈츠 리듬에 실린 또 다른 트랙 <영웅> 역시 이런 분위기를 진하게 풍겨주는 데 <인간과 꽃신>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윤미진의 지나와 피오의 이중창에 가깝다는 점이라고 할까.
나는 이 스타일이 윤미진이 앞으로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음악적 방향의 하나라고 본다. 윤미진이 보컬리스트로 가지고 있는 특징의 하나인 중저음과 고음의 분위기가 상이한 모습도 이 스타일 속에서는 매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많다. 윤미진의 결 고운 고음과 나직하며 호소력 있는 저음 모두 상생하는 조화가 가능하다. 이번 음반에서 고음의 볼륨감이 필요한 몇몇 곡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이런 스타일을 취하며 커버되지 않을까.
허나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반드시 희망과 긍정으로 채워지는 게 아님을 생각해보면 이런 스타일의 가능성은 외려 더 넓을 수도 있다. 처연함도 때론 하나의 위로가 되고 인생의 덧없음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온몸으로 겪은 인생의 뼈아픈 진실을 이해하며 배우는 일 아닌가.
이 순간, 이번 음반에 리메이크되어 실린 <민주>의 작곡자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안혜경이 살짝 떠오르는 건 아마도 클래식 전공자로 시작해서 밴드 마고를 통해 록을 거쳐 최근 라틴 음악 요소를 적극 수용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한 안혜경의 경험이 윤미진이 지금 가고 있는 길과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선 이의 성과를 딛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선택해온 최선의 방법이다.
이처럼 팀에서 활동하다가 개인 가수로 독립한 가수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성과를 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얼마 전 신작을 더블 음반으로 내는 무모함(?)을 감행한 노래마을 출신의 이지상과 대구 '좋은 친구들' 출신으로 주로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2집 음반을 낸 지민주가 그렇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문진오, 꽃다지의 서기상, 박향미 노래마을의 손병휘 등을 모두 하나의 군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팀 활동 속에서 얻은 자산과 부채를 모두 온진히 껴안고 자신의 길을 내는 이 모색들이 모여 민중가요의 허리를 튼튼히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붉은 돼지>의 두 여인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 바에서 인생의 비애를 노래하는 가수이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으로 겪은 개인의 아픔을 레지스탕스의 비밀 연락원으로 승화시키며 포르코와 커티스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공적(空賊)들을 둘러싼 모든 소동을 일거에 정리해버리는 여장부 지나의 모습이 있다. 밝은 에너지로 모두를 끌어들여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거침없이 의견을 드러내고 열정적으로 엔지니어로 실력을 쌓아나가는 피오의 모습이 있다. <이름>을 들으며 윤미진의 지나와 피오가 부드럽게 손을 잡는 모습을 본다. 여성들만으로 기운차게 돌아가던 비행정 수리공장이 슬그머니 오버랩 된다. 이제 윤미진의 노래가 날아갈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