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천외무애처(天外無涯處)의 무림천존(武林天尊)
무산(巫山).
사천성(四川省)의 동쪽에 위치하여 호북성(湖北省)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명산(名山)이다.
특히, 초(楚)나라 장왕(長王)의 전설이 얽혀 있는 무산십이봉(巫山
十二峯)의 절경은 필설로도 형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열두 개의 봉우리가 각기 특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
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흔히 지상의 무릉도원이라 일컬어
져 왔다.
그 중 검첨봉은 무산십이봉 중에서도 가장 험한 곳이었다.
이름 그대로 칼날을 거꾸로 박아 놓은 듯 천공(天空)을 향하여 날카
롭게 치솟아 올랐다.
너무나 험해 인적조차 없는 이곳은 만년림만이 안개에 사시사철 휘
감겨 있어서 밑에서 보면 항상 구름이 봉우리의 정상을 감싸고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풍기고 있었다.
무산삼협(巫山三峽).
무산십이봉의 절경과 천험을 끼고 흐르는 무산삼협의 격류는 중원
십팔만 리의 어느 곳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험한 곳은 구당협(瞿唐峽)이다.
구당협은 양쪽이 단애(斷崖)로 이루어진 채 급격한 굴곡을 이루고
있으며, 크고 작은 폭포를 거치며 내닫고 있는 물살은 가히 살인적
이라 할만 했다.
한데, 십여 리에 달하는 구당협 중에서도 가장 험한 절벽의 한 모퉁
이에 한 명의 죽립을 쓴 일 인(一人)이 앉아 있었다.
격류가 흐르는 위쪽은 깎아지른 듯한 단애였고, 하류 쪽으로는 울창
한 숲으로 이루어진 널찍한 바위 위에서 죽립인은 낚싯대를 드리우
고 마치 석상인 양 앉아 있었다.
태양을 가리려 함인가?
깊숙이 죽립을 쓰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뿐인가?
죽립인이 드리우고 있는 낚싯대에 입질이 있음에 그는 죽립 속에서
졸고 있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탈속한 선인처럼 죽립인의 지극히 한가로운 모습은 주위의 절경과
어우러져 경건함조차 느끼게 하고 있었다.
한데, 죽립인의 뒤로부터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긴 그림자는 죽립인의 낚싯대까지 뒤덮어 버렸다.
일순, 움직임이라고는 없던 죽립 안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용제(龍弟)…… 벌써 갔다 왔는가?"
백의 죽립인 뒤로부터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형님! 많이 낚으셨습니까?"
"낚기는…… 그저 무료한 시간을 소일하기 위해 나온 것뿐일세."
그는 담담한 음성을 흘려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향한 뒤쪽에는 한 명의 청의인이 서 있었다.
한데, 청의인 역시 낚시를 하고 있던 백의인과 마찬가지로 죽립을
쓰고 있었다.
나는 새도 피해 간다는 이 천험의 구당협에서 낚시를 하고 그를 찾
아 온 두 사람은 어떤 인물들인가?
어깨에 커다란 보따리를 둘러메고 있는 청의인을 바라보며 백의인은
낚싯대를 들고 일어섰다.
"많이 사 왔는가?"
청의인은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형님 좋아하시는 화엽편주(花葉片酒)를 세 근이나 사
왔는데…… 안줏거리도 못 잡은 것 아닙니까?"
"그래? 그럼 몇 놈만 꺼내 볼까?"
백의인은 꺼내 들었던 빈 낚싯대를 휙 던져 넣었다.
한데, 그의 낚싯바늘은 수면에서 삼 장 정도나 떨어진 채 뻣뻣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그때였다.
파다다다닥―!
한 마리의 삼사 척이나 되는 금빛 잉어가 꼬리로 수면을 차며 허공
의 낚시바늘을 향해 튀어 올랐다.
너무나 거대한 금빛 잉어의 꼬리에 수면의 거친 물결이 갈라지며 허
공으로 물방울이 비산했다.
뿐인가? 허공에서도 전신을 뒤틀고 있는 것이 승천하는 용이 용트림
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나, 그 신비로운 광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놈의 뒤를 이어 너댓 마리의 금빛 잉어가 줄줄이 승천의 용트림
을 하는 것이었다.
금빛 잉어의 승천(昇天)!
그것은 진정 신비로운 기경(奇景)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금빛을 사방으로 뿌리며 요동치고 있는 금빛잉어들
이 모조리 낚싯줄의 끝으로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때 청의인의 죽립 안에서 놀라움이 깃들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호오! 형님의 대승섭물신공(大乘攝物神功)은 이제 십이성까지 완성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렇다면 금빛 잉어는 백의인이 낚싯줄로 끌어올렸다는 말인데, 과
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보이지 않은 고기를, 더욱이 사방에서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가는 낚싯줄 하나를 이용해 한꺼번에 그 여러 마리를 끌어올리다니
그것은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백의인은 누구이기에 이토록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하나, 백의인의 죽립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성은 자랑스러운 것
과는 거리가 먼 허탈한 웃음이었다.
"후후후……! 축하해 준다니 고맙군. 하나…… 하늘을 뒤덮고 땅을
무너뜨릴 재주가 있으면 무엇 하나? 아아!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오
년의 세월이 흘렀군."
백의인은 진한 회의의 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죽립 속 얼굴이 향하고 있는 하늘에는 한 송이 흰 구름이 유유
히 천공을 흘러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청의 죽립인도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떠도는 구름이 그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흐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아빠! 많이 잡았어?"
두 사람이 서 있는 뒤쪽의 숲 속에서 영롱한 소동의 음성과 함께 오
륙 세 가량의 아이가 놀란 토끼처럼 튀어나왔다.
하나, 소동은 돌연 말과 동작을 일시에 멈추며 그 자리에 딱 멈추어
섰다.
그의 출현으로 인해 주위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무겁던 침묵은 그 아이로 인해 돌연 화기롭게 변했다.
한데, 앙증스런 소동의 모습은 실로 귀엽기 그지없었다.
전신 구석구석에서 사랑스러움을 뿜어내고 있는 그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여아인가? 너무나 귀여운 그의 모습은 여자아이를 방불케 하고 있었
다.
하나, 소동의 씩씩한 기상은 분명 남자 아이였다.
그는 시선을 청의인에게 던진 채 발그레한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뒤이어, 방금 전의 발랄한 모습과는 영 딴판인 점잖고 의젓한 태도
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숙부님, 다녀오셨습니까?"
그의 의젓한 모습은 오히려 앙증스런 귀여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
"……?"
두 사람의 죽립인은 그의 돌변한 태도에 서로를 향해 마주보았다.
한데, 정중하게 숙였던 허리가 펴지며 맑고 초롱초롱한 소동의 시선
이 머문 곳은 청의인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보따리였다.
소동의 기대에 찬 시선이 자신의 어깨에 닿아 있는 것을 알아챈 청
의인이 대소를 터뜨리며 백의인을 쳐다보았다.
"하하핫! 형님,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점잖을 빼나 했더니 딴 생각이
있었군요?"
"허허헛! 이제 보니 자네는 효아에게 뭔가 사다 준다고 약속한 모양
이군?"
"예."
청의인이 어깨의 보따리를 내려 작은 뭉치를 꺼냈다.
"자, 우리 효아가 좋아하는 천분당(엿)이다."
"와아! 역시 용숙부가 최고야!"
효아라 불린 소동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두 팔을 치켜들고 팔딱팔딱
뛰어와 청의인의 손에서 뭉치를 빼앗으려 했다.
하나, 청의인은 그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손을 치켜들었다.
"이 녀석!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대가 없이는 안 돼!"
아미를 곱게 찌푸리며 소동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청의인을 흘겨보며 응석 어린 음성을 터뜨렸다.
"치이……! 용숙부는 너무 철저해. 좋아, 뭘 해야 하는 거야?"
"하하핫……! 아버님이 잡은 잉어를 어머니께 갖다 드리면 된다."
순간, 소동의 시선이 거대한 잉어들에게로 향했다.
그는 돌연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두 팔을 벌렸다.
"어휴! 저걸 다……?"
짐짓 청의인의 음성이 장난스럽게 변했다.
"녀석 꾀를 부릴 셈이냐? 그럼 천분당은 이 숙부가 먹을까?"
순간, 소동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잉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갖다 드릴게."
소동은 재빨리 주변에서 칡넝쿨을 뜯어오더니 잉어들을 줄줄이 묶었
다. 그리고는 어깨에 짊어지고는 낑낑거렸다.
이윽고 잉어를 둘러멘 소동이 청의인에게로 다가와 앙증스런 손을
내밀었다.
"줘!"
청의인은 고사리 같은 그의 손에 천분당을 얹어 주었다.
"야호……!"
소동이 환호성을 지르고는 바람처럼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뛰어가는 그의 엉덩이를 어깨에 둘러메져 있는 잉어의 꼬리가 철썩
철썩 두드리고 있었다.
둘러멜 때의 낑낑대던 모습은 간데온데없고, 소동의 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소동의 모습이 숲 속으로 사라지자 청의인이 백의인을 향했다.
"형님, 다시 강호에 나가고 싶으십니까?"
"……!"
백의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청의인이 맑은 계류물이 흐르듯 맑고 낭랑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하긴…… 형님의 호협하신 성품으로 이곳에서 견디시기는 힘드실
겁니다."
백의인의 죽립 안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우……! 솔직히 말해서 그렇네. 하나, 자네도 이곳에 은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참고 있는 것이네. 참고 있노라면 가슴속의 뜨거운
피도 차차 식겠지……."
그의 음성에는 강한 체념과 자탄의 빛이 어려 있었다.
청의인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형님……! 저를 보아서라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형수님과 효아
를 위해서라고 하십시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형님께서 또다시 강호에 가신다면 형수님과 효아는 옛날의 불
안한 생활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
"그것이 어찌 일가(一家)를 거느린 가장이 해야 할 도리겠습니까?
형님! 너무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상생상극하는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강호도 역시 그런 원리 속에
스스로 살아갑니다."
"……!"
백의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의인의 음성이 부드러워졌다.
"형님……! 가십시다. 형수님이 근사한 안주를 준비해 놨을 겁니다.
순간, 백의인은 모든 것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호탕한 웃음
을 터뜨렸다.
"허허헛……! 그러세. 하긴, 효아 어미의 음식 솜씨야 일품이지."
"소제는 벌써 침이 넘어갑니다."
"하하하핫……!"
침울했던 분위기는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멀리 사라져 갔다.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가며 두 사람은 죽립을 벗어들었다.
일순, 백의인의 죽립 밑으로부터 강인한 인상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천풍신검 사마위였다.
한데, 청의인의 용모는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옥같이 해맑은 얼굴에서는 신비스런 광채가 은은히 뿜어져 나오고
있는, 진정 인중용(人中龍)의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지옥대전장에 나타났던 남의인이었다.
지금의 그는 그때의 수려했던 모습에 더욱 성숙한 기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헌앙한 모습에서는 남성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었
다.
나란히 걷고 있던 사마위가 청의인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동생, 나는 이곳에서 그런 대로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네. 한데 자
네를 보기가 민망할 때가 많네."
"형님!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아닐세. 이제 자네도 약관(弱冠)의 나이가 되었으니 어서 속히 가
정을 꾸며야 하지 않겠는가?"
청의인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
사마위는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침중한 음성을
흘려냈다.
"지난날에도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때도 자네는
고개를 저었지. 하나…… 그때 자네가 말한 지난날의 상처는 이제
아물 때가 되지 않았나?"
사마위의 말인 즉, 청의인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순간, 청의인에 두 눈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광이 뿜어졌다.
그것은 원한과 증오가 뒤엉킨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전신으로부터도 싸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와
온 숲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렸다.
'으음……!'
너무나 초탈하여 평범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의 기도가 돌연 엄청난
한기(寒氣)를 뿜어내자 사마위는 침음성을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마위는 자신의 얼굴에 떠오르는 놀라움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청의인은 결코 가볍게 격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그가 사마위조차 감당하기 힘든 냉기를 전신으로 뿜어내다니
…….
그것은 그의 과거의 상처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가를 단
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청의인은 침중한 음성을 흘려냈다.
"형님! 그 말씀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마십시오!"
사마위는 시선을 앞으로 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체 이 친구에 관해서는 얼마의 기간을 함께 살았으면서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으니…… 더욱이 무림사존(武林四尊) 중
의 으뜸인 그가 이런 곳에 은거하고 있으리라고는 천하의 그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무림의 사존 중 으뜸이라면, 이 젊은이가 무림천존(武林天尊)이라는
말이 아닌가? 한데, 그가 은거라니?
― 무림사존(武林四尊)!
무림천존(武林天尊) 무영신협(無影神俠).
강호지존(江湖地尊) 천혜금봉(天慧金鳳).
정도백존(正道白尊) 천풍신검(天風神劍) 사마위(史馬威).
대륙흑존(大陸黑尊) 수라신군(修羅神君).
이들은 당금의 무림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무림사상 최고의 신비인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분 내력이며, 나
이, 용모 등 알려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무림천존 무영신협과 강호지존 천혜금봉에 관해서는 더욱 신
비로웠다.
정도백존 천풍신검과 대륙지존 수라신군은 여러 차례 강호에 출현한
적이 있었다.
하나, 무영신협과 천혜금봉은 단 한 차례도 강호에 나타났다는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강호에서의 위치는 뒤의 두 사람을 앞서
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강호에 통용되고 있었다.
한데 그 무림사상 최고의 신비인 무영신협이 청의인이라니!
진정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이 순간, 무영신협의 눈 속에 희미한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소녀.
그녀를 떠올리는 순간 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란지(蘭芝)! 천하에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인은 오직 너뿐이다.
하지만 너는 나를 기만하고, 내 가슴을 일그러뜨리고, 내 사랑을 짓
밟고 떠나갔다!'
무영신협의 빈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꽉 쥐어진 그의 주먹 등으로 푸른 힘줄이 튀어나오며 부르르 떨렸다
'이 용소유(龍 儒)가 너를 용서하리라고 생각지 마라! 이제 네가 나
에게 입혔던 독상(毒傷)은 거의 치료가 끝나간다. 란지! 기다려라…
…! 너에게 나 무영신협의 진정한 무서움을 보여 주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란지!
무영신협이 사랑했다는 그녀가 누구이기에, 감히 무림천존 무영신협
에게 독상을 입힐 수 있었단 말인가?
일순, 무영신협은 손에 들고 있던 죽립을 숲으로 휙 던져버렸다.
사사사삭―!
죽립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는 아름드리 나무를 스치듯 자르
며 쏘아 나갔다.
순간이었다.
꽈스스― 쿠아아앙―!
무성한 나무 앞의 마찰음과 함께 거목들은 일정한 높이로 잘려진 채
순식간에 수십 그루가 무너져 내렸다.
아아! 연약한 죽립이, 그것도 가볍게 뿌린 것이 이토록 가공할 수
있단 말인가?
사마위는 되돌아오는 죽립을 받아드는 무영신협 용소유를 쳐다보며
급히 물었다.
"용제! 무슨 일인가?"
무림천존이자 무영신협인 용소유는 자신이 실태를 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멋쩍게 웃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잠시 공력을 운용해 본 것뿐입니다."
하나, 사마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으음……! 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그토록 침착한 용제가 자신의 감
정을 드러낸단 말인가? 그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건만 나는 그를 위
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구나…….'
그는 죽립에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사마위는 위용을 자랑하던 거목들이 나뒹굴고 있는 것이 불쌍해 보
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픔을 가슴속에서 삭이고 있는 용소유와, 그의 아픔
을 알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아픔으로 변해
갔다.
그때였다.
"어서 가십시다, 형수님이 기다리시겠습니다."
용소유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사마위는 아픔이 배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뒤를 따랐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분노의 잔재만이 푸른 숲에 허연 반점을 남기
고 있을 뿐이었다.
신비(神秘)!
무림천존 용소유는 누구인가?
또한, 그가 사랑했고 그 사랑만큼이나 깊은 원한을 남긴 란지라는
여인은 누구인가?
운명(運命).
그 서곡은 이렇게 신비 속에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