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의 가치와 계승
1. 나누고 싶은 말씀
지난 주말 ‘명량대첩축제’ 현장인 해남과 진도를 다녀왔다. 제가 상임이사로 있는 (사)이순신리더십연구회가 ‘명량대첩기념사업회’ 주최 학술심포지엄에서 지정토론을 맡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2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 참여했는데 여기에 우리 이배사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한 달 전부터 모든 일정을 꼼꼼히 준비해주셨던 해남현감님, 이순신의 족적을 따라 우수영지, 울돌목, 벽파진, 이진, 괘도포, 어란진 까지 답사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던 망해루님, 기념사업회의 중책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세심하게 챙겨주셨던 비격진천뢰님 그리고 토론참여를 기획하고 또 함께 참여하셨던 금이님 등 여러분의 배려가 있었기에 참으로 보람 있는 1박2일이었다. 덕분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명량대첩의 가치와 계승에 대하여, 명량의 웅장한 물 울음에 대하여, 진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받았다. ‘이배사’ 가족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2. 토론에서 전해 드렸던 말씀
먼저 훌륭한 연구내용을 발표해주신 노기욱 교수, 노병천 원장, 박창규 교수님의 감명 깊은 말씀에 감사를 드린다. 다만 발표 중에 제기하셨던 내용들이 더 많은 연구와 노력으로 역사적 사실로 규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토론주제인 명량대첩의 가치와 계승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
명량해전의 승리는 정유재침으로 다시금 조선을 먹겠다는 일본군의 야욕을 확실하게 꺾어놓은 혁혁한 전투였다. 당시 이순신이 처해있던 상황은 임진전쟁 초기 일본군의 북상을 좌절시킨 한산대첩보다도 더 힘든 전투였다. 과연 그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순신의 탁월한 전술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즉 명량의 좁은 물목, 빠른 조류 그리고 강한 바람을 이용한 지략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 승리의 배경에는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 이어가야할 정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의 불굴의 정신과 섬김의 정신이다.
먼저 불굴의 정신이다.
정유년 9월16일 울돌목에서 싸웠던 이 명량해전은 이순신에게 있어서는 임진왜란 7년 전쟁 40여회의 해전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전투, 가장 힘들었던 전투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전투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순신은 통제사 파직, 의금부 투옥, 사형에 직면, 백의의 종군, 모친의 죽음, 칠천량 패전, 수군의 궤멸, 통제사 복직 등등 신하로서, 자식으로서, 장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4월19일 정유일기에 “나하나하(奈何奈何)!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천지간에 나 같은 사정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하고 통곡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순신은 이 명량에서 패한다면 자신도 무너지고 조선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군을 폐하라는 임금의 명령에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를 간(諫)할 수 있었고, 겁에 질린 장졸들에게 필사즉생(必死則生) 족구천부(足懼千夫)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생일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분연히 일어섰던 이순신의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할 숭고한 가치이다.
다음은 섬김의 정신이다.
영화 ‘명량’에 정말 기가 막힌 명대사가 있었다. 즉 “의리는 충을 쫒아야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그러나 제가 연구한 바로는 그 어디에도 이런 어록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순신에게 백성은 하늘이었다. 이순신에게 백성은 주인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명량해전 이틀 전에 군령선을 급히 띄워 피난선들을 대피시켰다. 이는 다음날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이진(移陣)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상되는 위험한 격전장에 백성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은 이 명량해전은 물론 앞서서 벌어졌던 8월28일 어란진해전에서도, 9월7일 벽파진해전에서도 지휘관인 자신이 앞장서 솔선수범 선두에 나섰던 것이다. 언제나 백성들을 먼저 배려했고 부하들을 먼저 생각했던 이순신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순신의 휘하로 수많은 지휘관, 참모, 의병, 승병,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호남의 백성들이 의곡, 의복, 의병 등으로 희생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예컨대 생사를 함께했던 핵심참모 즉 좌(左)정운 우(右)희립으로 꼽히는 해남(海南)의 정운, 고흥(高興)의 송희립, 조총을 개발했던 순천(順天)의 정사준, 판옥선을 건조했던 고흥(高興)의 정걸, 거북선을 창제했던 나주(羅州)의 나대용 등등 가히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모두 호남의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호남의 수많은 해상의병들 예컨대 마하수, 오익창, 김안방, 백송호, 정운희 등등 더하여 일백여척의 피난선, 향선까지 호남 백성들의 기여는 너무나도 컸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일찍이 “절상호남 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竊想湖南 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곰곰이 생각해도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자 장벽이니 만일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 라는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백성과 함께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였다. 그래서 ‘지도자는 백성을 섬기고 백성은 나라를 섬기는 섬김의 정신(servant spirit)’ 이야말로 바로 명량해전에서 배우고 계승해야할 숭고한 가치일 것이다.
3. 드리고 싶은 말씀
짧게 배정된 토론 시간으로 또 잔칫집의 가열된 분위기로 미처 드리지 못했던 말씀이다. ‘명량대첩축제’를 통해서 명량해전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국난극복의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재)명량대첩기념사업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참여했던 학술심포지엄과 전투장면을 재현하는 해전 현장에서도 모두 많은 연구와 철저한 준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이 행사를 치루기 위해 몇 날 몇 밤 수많은 날들의 노고를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탓인지 조금은 아쉬움도 있었다.
예컨대 학술심포지엄에서 제시된 철쇄 설치의 근거, 귀선(龜船) 출현의 근거, 김억추, 황대중 등 역할의 근거 등에 대해서 나의 과문한 탓이겠지만 현무공실기, 양건당집 그리고 내용 확인이 안 되는 이충무공전서 등에 대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발제자의 광범위한 참고문헌 등으로 보아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진 점 높게 평가하지만 참고자료에 대한 사료적 가치와 각주의 명확한 기술이 없다는 점 등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명량해전 재현에 대해서도 물론 예산과 인력 등등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럼에도 무려 1,800만 국민에게 조성된 ‘명량의 열풍‘을 이어가고,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이순신의 구국정신‘을 구현하기엔 조금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는 이순신을 흠모하는 연구자로서 과욕의 기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도 사후평가를 통해서 보완 개선점을 찾아내고 발전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믿는다.
또다시 ’2015년 명량대첩축제‘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이다. -끝-
첫댓글 노고가 크시었사옵니다!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옵니다!
너무 급하지 않게,
너무 느리지 않게,
차근히 고쳐가며,
계승하는 것도 저희들의 몫이겠지요?
늘 이리 짚어 살피시니
조금씩 나아지는 축제가 되리라 보옵니다!
읍!
이배사를 지키는 하성군님, 감사합니다.
과유불급해서는 안될 우리이지만 충무공 이순신을 향하는 열정만큼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감사드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당연히 과유불급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방진님,지정토론자로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배우고,
또,배우고 갑니다
당연히 아산으로 갔어야 했는데요.......죄송합니다.
방진님의 글에는 꼭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올해도 많의 의견들이 제시되고, 토론 되었군요..
항상 노력하고 연구하시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충성! 부회장님, 진해에 부는 바람이 대단하겠군요. 서울에도 강한 바람이 이는 걸 보면 말입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바쁜 일정으로 피곤하실텐데도 이배사 회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시고 교훈의 말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이번 세미나는 방진님께서 버팀목 역할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부족한 점이 많다보니 의혹만 자꾸 생깁니다. 日新又日新, 배우고 또 배워야 새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산에 다녀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 고향인데 제가 모셨어야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중책을 맡지도 않았답니다.
그냥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신 자리 제 위수지역이라 사수하고저....의전등에 많은 헛점은 점점 고쳐갈것이고 발표자의 자료들은 서로서로 다시 공부하는 기회가 될수 있을겁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잔칫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그 푸짐한 오찬, 오래오래 기억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발표자료의 의문은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지요. 우리는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이니까요....감사합니다.
@방진 오찬!!!
잔칫집의 막국수 한그릇 먹은 것으로ㅠㅠ 쥐구멍없나?
명량대첩제 참가하지 않아도 방진님의 글을보며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 편하게 보고 나갑니다. 감사합니다^^
제 고향 아산엘 오셨는데 모시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감사합니다.
ㅡ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백성과 함께여야 승리한다ㅡ는 감명깊은 말씀과 함께 명량학술심포지움에서의 토론 내용을 널리 알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충성 명예회장님, 너른 들녁 황금 벌판에도, 최참판댁 처마 끝에도 가을이 주렁주렁 열렸겠습니다. 아, 다시 가보고 싶어라.....감사합니다.
저는 아산에도 못갔고, 명량대첩 세마나 못갔구..도리를 못해서 송구스럽스럽네요..방진님의 글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접목시킨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운 맘입니다..좋은 말씀 잘 배웠습니다.
얼마나 바쁘셨으면 그랬겠습니까, 감사드리고요. 안그래도 한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했었는데요. 덕수이씨 족보에 이순신의 서자 두 분인 훈과 신 그리고 서녀 두 분(사위: 임진, 윤효전)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서자 중 첫째 훈은 해주 오씨 소생이 맞는 것 같고 둘째 신과 서녀 두 분은 부안댁 소생이라는 말도 있고,.....족보부분을 카피할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아니면 그냥 사실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미리 감사^^
먼저 죄송 하다는 말씀 부터 드립니다. 수고많이 하셨읍니다, 공부잘하고갑니다.
죄송하다니요. 같이 모시지 못한 제가 안타까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9일 오시지요. 일심님 강의하시니까요.......
@방진 네~~참석합니다.감사합니다.
명량을 통해본 이순신장군의 불굴의 정신을 주제로 어제 초안을 완성해서 군사저널11월호에 저의 기고문을 보냈습니다. 방진님과 통하는 부분입니다.
또 한번의 큰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이심전심이군요. 기분 좋습니다.
아산의 좋은행사로 인하여 같이 참석하여 듣지 못함을 아쉬워합니다...
이번 학술심포지움에도 몇몇 자료가 새로이 나왔나봅니다. 새로발견된 사료가 그 당시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그 사료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회장님 역할에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자료라기 보다는,....그렇다고 견강부회라 할 수는 없지만 일차사료도 아니고..... 아전인수식? 글쎄요. 좀 더 전문가들의 고견을 들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과문한 탓에 저는 좀 이해가 안가더군요. 감사합니다.
방진님 말씀처럼 명량해전을 앞둔 1597년은 이순신에게 개인적으로 최악의 해였겠지요. 몸도 마음도 추스리기 힘든 극악의 상태...그런 상황에서 극복하고 승리한 명량전투라고 생각하면, 방진님 말씀처럼 그 의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29일 54회 이순신리더십연구회가 있습니다. 지난 번과 같은 장소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시각 18:00입니다. 이번 주제도 명량해전과 관련된 임원빈 소장의 강의가 펼쳐집니다.
명량해전 하늘이 도왔다고 하셨나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남은 배냐고 온전한 배 였겠습니까?
또한 장졸은 과연 이순신의 뜻대로 움직였을까요?
남은 병사들도 배설의 부하가 대부분이었을 것인데 배설이 통제사가 안되고
백의종군 하던 이순신을 통제사로 명하였으니 병사들도 생각해 보면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리라
장군님은 이런 상황에서 믿을 것이냐고는 자신 뿐이니 죽을 각오로 선봉에 나섰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순신의 훌륭했던 점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불리하면 유리하도록, 부당하면 온당하도록,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원칙대로 사고하고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감사합니다.
참여하지못해서 아쉽습니다.....방진님과 귀선님...비격진천뢰님등의 수고로움이 이배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고 엔진입니다.............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꾸벅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簡明한 설명의 글 잘 읽었습니다. 완곡한 표현으로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미있는 행사 그리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공부가 되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올립니다^.^
부족한 글을 일일이 읽어주시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