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德亭(인덕정)
舊亭移建邑南皐 구정이건읍남고
畫榭飛甍日下高 화사비맹일하고
放牧野開仰湯武 방목야개앙탕무
宰臣山屹想蕭曹 재신산흘상소조
錦袍競奪當時士 금포경탈당시사
柳葉能穿一代豪 유엽능천일대호
君子其爭從禮飮 군자기쟁종례음
主賓揖讓百盃醪 주빈읍양백배료
春岡 辛洪烈
옛 사정(射亭)를 고을 남쪽 언덕에 옮겨지으니
단청한 사정(射亭)의 나는 듯한 용마루가 태양아래 높이 솟았네.
방목(放牧)하듯 큰 들판은 탕무(湯武)를 앙모하는 것 같고
우뚝 솟은 재신산(宰臣山)은 소조(蕭曹)을 생각게 하네.
비단도포 차림에 활쏘기를 쟁탈하는 당시의 선비들은
유엽전(柳葉箭)으로 과녁을 능히 꿰뚫은 한시대의 호걸들이네.
군자(君子)들이 활쏘기를 다투다가 모여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하는데
주인과 손님이 예를 다하여 술잔을 사양하면서 백잔 술을 마시네.
<시 음미>
이 시의 제목과 시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시의 제목이 인덕정이고, 구 활터에서 남쪽 언덕 높은 곳으로 이설하다 하였는데 그곳은 재신산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나주 병원 동쪽에 있었던 인덕지(仁德池) 주변에 인정덕이 있었다는 구전이 있었는데, 그 인덕정이 어떤 이유로 문을 닫게 되니, 그 건물을 해체하여 재신산 주변에 활터를 만들고 인덕정이라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 같다.
재신산의 활터도 마침내 남산공원으로 이설하여 인덕정 명칭이 그대로 이어져온 듯하다.
신홍열의 시 한수로 활터의 영고성쇠(榮枯盛衰) 자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해설자료>
⚊탕무(湯武) :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무왕(武王).
⚊재신산(宰臣山) : 신증동국여지승람 나주목편에 보면 “州의 남쪽 9리에 있다”라 하였는데 오늘날 나주시청 북쪽편 산이다. 宰臣은 임금을 돕는 宰相의 신하란 뜻이다.
⚊소조(蕭曹) :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의 병칭이다. 두 사람 모두 유방(劉邦)을 보좌하여 칭제(稱帝)하게 한 개국 공신으로서, 입국(立國) 후에 서로 연달아 상국(相國)이 되었다
⚊향음주례(鄕飮酒禮) : 고을의 선비들이 모여 읍양(揖讓)하는 절차를 지키어 술을 마시고 잔치하던 행사
⚫辛洪烈은 누구인가?
본관은 영산(靈山). 전라남도 함평에서 한학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필적은 나주의 「義烈閣」 현판에 春岡이란 호가 새겨졌으며
풍영계(風詠契) 제7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풍영계(風詠契)는 풍영정에서 결성된 계로, 풍영정은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된 정자다.
풍영정은 광산 출신 칠계(漆溪) 김언거(金彦据,1503~1584) 선생이 홍문관교리, 중앙의 승무원 판교 등의 벼슬을 마치고 낙향해 지었다. 당시에는 12동이나 될 만큼 규모가 컸지만 병화에 불타고 지금은 한 채만 남았다.
신홍렬(辛洪烈)은 2남 2녀를 두었는데 막내가 신기하(辛基夏,1941-1997)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에 변호사를 개업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2 · 13 · 14 · 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5대 국회에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7년 8월 6일 괌에서의 대한항공 여객기(KAL) 추락사고로 부인과 함께 유명을 달리하였다.
趙化元(1874-1957)의 송재실기(松齋實記)에도 신홍열의 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