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예전부터 국내에서 편안하기 최고인 十勝地(십승지)를 지정하였습니다.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입니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입니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입니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지만 책마다 약간 달리 지목합니다.
1. 풍기(豊基)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으로, 소백산 두 물곬 사이에 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2. 화산(花山) 소령(召嶺) 고기(古基)로 청양현(靑陽縣)에 있는데, 봉화(奉化)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갔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報恩) 속리산 사증항(四甑項)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4. 운봉(雲峰) 행촌(杏村)이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5. 예천(醴泉) 금당실(金塘室)로, 이 땅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6. 공주(公州) 계룡산으로, 유구(維鳩) 마곡(麻谷)의 두 물곬의 둘레가 2백 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7. 영월(寧越) 정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만하다. 그러나 수염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8. 무주(茂朱) 무봉산(舞鳳山) 북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扶安) 호암(壺岩)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합천(陜川) 가야산(伽倻山) 만수봉(萬壽峰)으로, 그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위에 열거한 십승지지 가운데 3번째인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용유리일대를 牛腹洞(우복동)이라고 지칭하는데 화북면은 크게 2개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용유리(龍遊里)와 장암리(壯岩里) 지구. 이곳은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견훤산성에서 현재 '우복동사적비' 가 있는 병천의 입구까지가 해당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45F244D565D2F821A)
「택리지」에도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화양구곡과 쌍용·용유계곡이 있고, 또한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경치 좋고 사람살기 그만인 복지가 있다"라는 문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청화산(靑華山) 이 진산(鎭山) 이고 서쪽에 속리산, 동편에는 속리산에서 갈라져 나온 도장산(道藏山), 또 청화산이 남쪽으로 뻗어와 이곳의 앞산이 된 승무산(僧舞山) 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 모양은 마치 속세를 떠난 유(儒). 불(佛). 선(仙) 의 대가들이 모여 앉아 담론하는 형세이기도 합니다.
牛腹洞天(우복동천)이란 소의 뱃속(자궁을 뜻함)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말로 예부터 영남 일대에서 전해오는 피란지의 이름으로 상주에 있다고 하며 상주에서도 속리산에 둘러싸여 있는 화북면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으며, 전란, 굶주림, 천재지변을 피할 수 있는 예언의 땅 십승지(十勝地, 열 군데의 유명한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꼽습니다. 속리산 동쪽 상주시 화북면의 7개 동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동네가 진짜 우복동이라 주장합니다. 실제로 화북면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한국전쟁(6.25사변) 당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