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관심뉴스는 배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왜냐고요? 저는 제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배고품을 해결하기 막연히 진학하여 지금에 직장에서 30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과연 적성에 맞았고, 능력을 100% 발휘하였는지 의문을 던져보면 그것은 아니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사이버 대학이라는 곳을 다니고 있는데 이선임 할머니(아니 누님이라 해도 될 것 같은데)의 배움을 갈망하시는 것을 보니 지금 생활이 더욱 진지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회원님들도 기사를 읽어보시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시면 어떠 하실런지요.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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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의 대학생 할머니 "배움에 끝이 있나요" [파이미디어 2007.03.20 16:31:36]
예순 한 살의 나이에 대학생이 된 할머니가 있다.
9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나 배움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이선임 할머니.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살아오는 세월 동안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결혼 후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육남매를 키우다보니 내 배움에 대한 꿈은 또 다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던지 여섯 자식들을 대학까지 다 가르치기 위해 토큰하나, 양말하나까지 아끼고 또 아껴가며 살아 왔다.
자식들이 반듯하게 자라 가정을 꾸리고 막내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어느덧 예순 하나. 배움에는 끝이 없고, 인생은 육십부터 라는 말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선임 할머니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준 곳은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그이에게 4년이라는 시간은 대학생의 꿈을 꿀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뒤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게 된 건 영어 때문이었다. ‘언더스탠드’란 단어를 알지 못해 스스로 초라해짐을 느꼈다는 이선임 할머니에게 이제 영어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됐다.
솔직히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공부를 늦은 나이에 시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공부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여러 차례. 하지만 그 순간마다 이선임 할머니를 버티게 해 준 것 또한 바로 공부였다.
그가 바라보면 바라 본 만큼 아는 척을 해 주던 글자들. 공부는 꾀부리지 않고 노력한 만큼의 기쁨을 나에게 맛보게 해 주었다. 자식들은 커서 자기 갈 갈을 가기에 바쁘고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던 무뚝뚝한 남편사이에서 느꼈던 외로움... 그에게 공부는 가장 소중한 애인이 되어주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던 이선임 할머니.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이름이 쫒아 다니겠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오늘도 ‘스터디 하드’를 외치는 이선임 할머니의 만학 열정은 21(수) 저녁 9시 20분 EBS TV `다큐 여자`를 통해 공개된다.
[파이뉴스 진선미 기자] suwoomi@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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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새 인류조상 `케니안트로푸흐 플라티오프스` 케냐서 발견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루시`) 보다 현대인에 더 가까운 직립 원인(猿人) 화석이 케냐서 발견됐다. 케냐 국립박물관은 북부 로메크위 강 인근 350만-300만년 전 지층에서 발굴된 화석을 2년 이상 정밀 검사한 결과 얼굴 모양이 루시보다 현대 인류에 더 가까운 직립 원인으로 판명됐다고 2001년 3월 21일 발표했다.
이 직립 원인 화석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루시와는 달리 입 주위가 앞으로 돌출되지 않았으며 특히 어금니 부위가 작아 현대인에게 근접한 형태를 띄고 있어 `평평한 얼굴을 가졌던 케냐의 인간`이란 뜻의 `케니안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로 명명됐다. 이번 발견으로 비슷한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직립 원인이 살았던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인류의 계통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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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별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겸 전 명예회장이 2001년 3월 21일 오후 10시 서울중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였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이 구절은 그의 인생관을 잘 축약한 것이다. 정주영씨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큰 족적을 남긴 시대의 거목이었다.
그는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졸업 후 4차례의 가출로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19세 때 경성(서울)의 쌀가게 `복흥상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특유의 근면·성실로 신뢰를 얻고 마침내 손수 가게를 인수해 1938년 `경일상회`를 개업하면서 자수성가의 꿈을 이루었다. 광복 후 1년이 지난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운영하던 그가 건설업의 잠재력에 눈을 뜨고 `현대토건사`(현대건설의 전신)를 설립한 것은 1947년. 그는 곧바로 발발한 6·25 동란으로 인한 전후복구사업에 참여, 한국 경제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현대건설은 이후 다리·도로·부두시설 등 전후복구사업을 도맡아 수행하면서 국내 건설업계 1위로 올라섰고, 해외건설시장 진출이라는 모험을 다시 단행한다. 창조적 도전의식, 불굴의 개척정신, 강인한 추진력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공사, 현대조선소 신화, 포니엑셀 신화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을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려 놓는 데 일조했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전후복구사업→공업입국→중화학공업화→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우리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이었다.
말년에 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대북사업이었다. 1989년 민간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그는 이후 머지않아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신념을 피력해왔다. 첫 방북 9년 만인 1998년 6월 16일 그는 판문점 `소떼몰이` 방북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평생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던 그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기력이 쇠해 자식간 경영권 분쟁인 `왕자의 난`(2000년 3월)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고, 2000년 8월 이후에는 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기력이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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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발표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N.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공포.
1685년 독일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출생
1762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라카유 사망
1763년 독일 시인.소설가 J.리히터 출생.
1790년 토마스 제퍼슨, 초대 미국 국무장관직 취임.
1804년 나폴레옹 법전 공포
1806년 멕시코의 대통령(1861-72 재임) 후아레스 출생
1821년 독일의 통계학자 C.L.E.엥겔 출생.
1829년 스페인에 대지진, 6천여명 사망
1839년 작곡가 무소르크스키 출생.
1884년 프랑스, 노동조합법 공포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교도와 농민군, 백산 봉기-4대 강령 발표.
1902년 경부철도청부회사 설립
1904년 일본군 주력부대, 진남포 상륙.
1910년 철도사고/그린 마운틴(미)사망 55명
1918년 제1차 세계대전/미군과 독일군, 프랑스의 솜강에서 격돌.
1919년 헝가리 공산당, 소비에트 정부수립.
1935년 페르시아, 국호를 이란으로 개칭.
1941년 광주방송국 설립.
1943년 소설가 현진건 사망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연합군, 폭격기 7천대 동원 독일을 맹폭.
1947년 미국-필리핀, 군사기지협정 조인.
1947년 테러단, 천도교구당 폭파.
1950년 조용필 출생
1954년 국군 제1군 발족
1954년 한국, 표준시 135도에서 127.5로 변경
1957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피고 이덕신, 최훈, 김상붕 사형언도
1962년 국립극장 전용공연장 개관
1962년 소련-미국의 우주공동개발 제의에 동의
1963년 케네디 미국대통령, 기자회견서 한국에 민주적정부 복귀를 열망
1963년 한국-르완다 국교 수립
1963년 헝가리 대사면 단행
1964년 인도 종교폭동 확대
1967년 현충사, 사적 115호 지정
1973년 남북적십자 5차 본회담 (~23일 평양)
1978년 장징궈, 자유중국 총통에 선출
1980년 한국-프랑스-가봉, 가봉의 우라늄광 공동탐사계약 체결
1981년 금융자율화방안 마련
1982년 진주에 첫 가구장식박물관 개관
1983년 일본-중공 여객기 한국비행정보구역(FIR)통과 시험비행
1990년 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 나미비아, 남아공으로부터 독립
1990년 한국-나미비아 국교 수립
1991년 말라카해협 동북부공해상에서 원양참치어선702호 베트남 해적선에 피랍
1995년 김철수 전상공부장관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차장에 선출
1996년 영종도 신공항 이름, 인천국제공항으로 확정
1996년 한국 올림픽 축구팀,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예선에서 중국과 싸워 4강 진출
1997년 한보건설 최종 부도 처리
1998년 소련 최초의 최고 수석 발레리나 울라노바 사망
2000년 미국-인도, 관계 강화 협정 체결
2001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별세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방한
2003년 19세 임동혁군, ‘세계 피아니스트 100인’에 초청
2003년 미 대사관 앞에서 ‘이라크 침략 규탄, 한국군 파병반대’ 교수 800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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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고령에 못다한 공부를 하는 할머니-실버문화가 아직 정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노인이 급증하니 퇴직후에 무엇을 하며 오랜시간을 보낼것인가가 사회는 물론 나에게도 닥친 문제가 됩니다. 이병철을 제치고 최고의 경영인이란 평가를 받는 불굴의 정주영이 별세하네요. 62년 국립극장 개관-장충동 국립극장보다는 명동 국립극장 같기도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가 있었네요... IMF의 시발점인 한보건설이 최종 부도처리 되었네요... 이후 기아, 대우 등 줄도산으로 위기가 왔습니다... 현대사의 최고장사꾼인 정주영회장의 별세도 보입니다.
글을 못올리겠어요. 입력이 안되는 이유가 시스템 문제인지 내 PC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점 이해 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