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adang21.or.kr%2F2002_11%2F0211%2FT-04%2Fimage%2Fp-01.jpg) |
교육가족의 땀으로 탄생시킨 ‘해들숲’에서 현원철 교사가 가지치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강원도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 홍천정보과학고등학교(교장 이동진). 너른 운동장과 나무숲이 우르르 손짓하듯 취재진을 반긴다. 구상나무, 주목, 소나무, 왕벗나무 등 우리 고유식생이 줄지어 있는 가운데 구석구석 잔디와 야생화가 터를 잡고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만든 연못에서 토종물고기가 유유히 노닐고 포석정 모양으로 난 물길을 따라 바위나리, 미나리 등 습지식물이 살고있다. 그야말로 청정한 푸른 숲을 그대로 떠다가 학교 안에 옮겨놓은 모양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사연 없는 게 없고, 정성 안든 게 없습니다.” 정갈한 교정에서 현원철(49·국어) 교사가 걸어나오며 말을 건넨다. 너털웃음에 부스스 흰 머리칼을 날리면서.
전근갔다 다시 초빙교사로 돌아와
올해로 교직경력 25년째인 현원철 교사는 소위 ‘소방수’로 불린다. 이곳저곳 다급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 문제해결에 나서기 때문이다. “학교일이란 것이 한번 하려고만 하면 끝도 한도 없어요. 그러나 어쩝니까. 애쓰는 만큼 아이들에게 더 좋을 거라는 걸 아는데요.” 그에게 교사로서의 일과 잡무를 가리는 유일한 기준은 ‘아이들’에게 있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면 땅을 기며 잡초를 뽑는 일도 마다하지 않지만, 교육활동을 떠난 형식적인 문서작성 등은 불필요한 일로 꼽는다. 지난 2000년 3월 초빙교장으로 부임한 이동진(57) 교장은 “현 선생은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다한다는 뜻은 아니란다. 사흘 밤낮을 해야할 일도 자신의 원칙에 맞으면 기꺼이 나서지만,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한 걸음도 떼지 않는 게 현원철 교사다. “아시다시피 실업계학교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든 탈바꿈하고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돼요. 초빙교장으로 부임한 후 학교발전계획을 세우는데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과 동창회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일을 하려거든 먼저 현원철 교사를 모셔와야 한다고.” 이동진 교장의 설명이다. 사실 현원철 교사는 97년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이 학교에 근무하다 인제군에 있는 원통고등학교로 전근을 간 터였다. 그 후 이동진 교장이 부임하자마자 학운위와 동창회에서 현 교사를 초빙해 오자고 나섰으니 근무당시 현 교사의 활동과 역할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케 한다. 인문계학교에 있으면서 실업계학교로 다시 오라는 제의를 받고 현 교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똑똑한 제자를 만나 국가경쟁력에 크게 기여할 인재로 키우는 것도 교사로서 보람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 기간이 길어야 5년이라고 봤을 때, 그 시간만큼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었어요. 내 힘이 필요한 곳에서 내민 손을 기꺼이 맞잡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adang21.or.kr%2F2002_11%2F0211%2FT-04%2Fimage%2Fp-02.jpg) |
현원철 교사가 지도를 맡고있는 ‘오뚜기클럽’학생들(파란색 조끼)이 무의탁노인 수용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adang21.or.kr%2F2002_11%2F0211%2FT-04%2Fimage%2Fp-03.jpg) |
큰 사람으로 살라는 뜻에서 현 교사는 근무지마다 사비를 털어 나무를 심어오고 있다. |
불모지에 토종식물 중심 ‘학교숲’ 조성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포근히 교사 校舍 를 감싸고 있는 지금의 학교숲은 이 학교 교직원과 지역주민, 학생들이 흘린 땀의 결실이다. 이태 전 만해도 드문드문 심어진 잣나무 사이로 돌더미와 잡초만 무성했고 학교부지를 가로지르는 고압용 대형전주가 버티고 있어 황무지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때맞춰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실시하는 ‘학교 숲 가꾸기 사업’에 응모한 결과, 지난 2000년 시범학교로 지정돼 4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에 들어갔다. 학교구성원과 지역사회단체 등은 숲을 만들고 가꾸는 데 힘을 모았다. ‘생명의 숲 춘천지부’가 2천4백만 원, ‘생명의 숲 춘천 및 홍천지부’가 나무벤치 30개, 동창회와 어머니회에서 기금, 홍천군에서 2천만 원 등을 지원했다. 또한 지역인사와 주민들이 소나무, 진달래, 철쭉 등을 기증하고 나섰다. 현원철 교사는 이 과정에서 숲 가꾸기 위원들과 함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고 관련단체를 방문해 협조와 동참을 호소했다. 사업비를 아끼기 위해 홍천~속초간 44번 국도 확장공사 현장을 찾아가 30~40년생 소나무를 구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도로를 통제하고 늦은 밤과 새벽시간에 큰 나무들을 실어 날랐다. ‘해들숲은 불모의 땅에 복원한 생명의 터전이며, 바람과 물소리, 새소리는 우리가 흘린 땀의 보람이다. 이 숲에서 삶을 배울 젊은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해들숲의 생태계는 토종을 위주로 한다. /학교는 숲의 생육과 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교사는 숲의 교육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학생은 숲을 아끼고 즐기며,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해들숲 헌장- 올 5월 불모의 땅은 ‘해들숲’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현원철 교사가 기초한 ‘해들숲 헌장’이 비석과 사람들의 가슴속에 알알이 새겨졌다.
어려운 학창시절 받은 ‘개근상’ 잊지 못해
나무를 심으면서 얻은 것은 해들숲만이 아니다. 힘과 뜻을 모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현원철 교사는 “실업계 출신 학생들은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거나 대부분 불완전 고용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며 “대부분이 저소득층인 실업고 학생들이 또다시 가난을 겪게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한다. 그는 실업교육을 활성화하려면 장기적으로 한 분야에 정통한 마스터를 양성하는 독일의 직업교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성화고등학교를 과감히 확대하고 2년제 대학의 교육과정과 연계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학교가 올해 3월 미용예술과를 신설함과 동시에 양덕상업고등학교에서 홍천정보과학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특성화를 꾀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특히 올해 자율학교로 지정됨에 따라 학교실정에 맞는 교육과정 편성권과 우수교사 확보 우선권이 주어지고 모집단위도 전국으로 확대돼 제2의 개교를 꿈꾸는 전기가 마련됐다. “저는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도 야간, 대학도 야간에 다녔어요. 특히 시골에서 상경해 고학을 하다보니 제 시간에 학교를 갈 수 없어 거의 지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1때 담임선생님이 격려의 뜻으로 주신 개근상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학창시절 선생님에게 많은 격려와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교육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찍이 체험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사표로 삼는 분은 고교 1학년때 담임인 한기영(현재 제주대 사학과 교수) 선생이다. 은사의 흉내라도 내고싶어 교직을 택했다는 현 교사는 학생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해마다 ‘가정방문’과 ‘야외나들이’를 빼놓지 않는다. 학생의 사는 환경을 들여다보거나 함께 땀 흘리며 등산을 하게되면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단다. 사무적인 인간관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대화가 풍부해져 그가 있는 상담실로 학생들이 스스로 모여든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adang21.or.kr%2F2002_11%2F0211%2FT-04%2Fimage%2Fp-04.jpg) |
|
“ 똑똑한 제자를 만나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우는 것도 교사로서 큰 보람입니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남은 시간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하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옴을 느낍니다. 가르치는일은 하면 할수록 참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
|
선생은 개울바닥에 엎드린 징검다리
최근 현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경사가 생겼다. 제1회 강원도청소년자원봉사대축제에서 이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동아리 ‘오뚜기클럽’이 단체부문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오뚜기클럽은 봉사활동을 체계적으로 생활화하기 위해 지난 97년 결성된 이래 매달 한차례 무의탁노인 수용시설과 독거노인, 거택보호자들을 방문해 청소, 빨래, 취사 등을 돕고 있다. 특히 봉사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노동을 통해 자체 조달한다. 지역잔치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인근학교 동문체육대회에서 도우미로 일해 받은 일당을 교통비, 기증품, 점심식사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그 후 여력이 있으면 남을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만 위하다 죽는 사람이에요. 소, 닭, 돼지는 남을 위해 살 줄 몰라요.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어요?” 그는 자신의 월급을 쪼개 불우이웃을 도와 온 일이나 딸이 받아온 성적장학금을 제자의 장학금으로 내놓은 일 등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그와 함께 세 학교 째 근무하고 있다는 안병찬(41·영어) 교사의 말을 통해 어림만 해볼 뿐이다. 한창 젊은 나이에는 아이들을 인격으로 감화시키지 못하고 매로서 변화시키려고 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는 그는 당시의 시행착오를 씻기라도 하려는 듯 옛 제자들에게 쏟는 정성이 각별하다.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제자에게 늘 버팀목이 돼주는 한편, 그들과 뜻을 모아 장학회도 설립할 계획이다. 또한 평생토록 교육을 위해 헌신한 분들과 교내·외 활동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요절한 어린 학생들을 위해 강원도 내에 ‘교육의 묘’를 조성하고 싶다고 한다. 북한에 파견교사로 나가는 것도 그의 희망이다. 선친의 고향인 평양이나 모친의 고향인 함흥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싶어 상담교사와 한문교사 자격증까지 준비해 둔 상태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하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되돌아옴을 느낍니다. 과연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르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참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모름지기 선생은 개울바닥에 엎드려 있는 징검다리와 같다고 말하는 현원철 교사. 기꺼이 몸을 낮춰 제자의 앞길을 열어주는 현 교사는 재직했던 학교마다 사비를 털어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어왔다. 크게 자라는 나무를 보며 큰 사람으로 살라는 뜻에서다. 가슴에 아이들을 키우는 그야말로 늘 울창한 숲을 품고있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