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學道伴(후학도반)과 함께 다시 도솔암에 쉬엄 쉬엄 오르다가 점심시간이 되다.
해서 山天祭(산천제)를 山行 途中(산행 도중)에 먼저 奉行(봉행)하라고 指示(지시)하다.
儀典擔當 後學 道伴(의전담당 후학 도반)이
祭(제)의 稱號(칭호)를 어찌할까를 묻기에
山天祭 名稱(산천제 명칭)을 兜率山 天祭(도솔산 천제)로 하라 했는데
그 산 명칭이 맞다는 것을 兜率庵 修道僧(도솔암 수도승)을 통해 알게 되다.
뒷산명이 兜率山(도솔산)이란다.
나는 直觀(직관)으로 알아냈던 것이다.
오늘 牧牛堂(목우당)에서 아침 07시가 지나서
乘用車(승용차) 1대와 스타렉스 乘合車(승합차) 1대로
총 12명이 동행하여 출발하게 된 날이다.
자동차 목적지는 弘濟寺(홍제사)이다.
一次目的地(1차목적지)이다.
홍제사에는 오전 10시 반경에 승용차가, 10시 40분에 승합차가 到着(도착)하다.
그리고 10시 50분부터 홍제사에서 함께 도솔암에 오르기 시작하다.
弘濟寺(홍제사)는 이번이 3번째이다.
弘濟(홍제)란 檀君聖祖(단군성조)께서 내리신 宗旨(종지)로
弘益人間 濟世理化(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줄임말의 뜻이다.
山行(산행)이 益熟(익숙)치 않은 후학이 同行(동행)하고 있어
登山行步(등산행보)를 천천히 하게 되니
목적지에 이르기도 전 深山谷中(심산곡중)에서 점심시간을 맞았기로
오르막 介谷 路上(개곡 로상)에서 휴식을 취할 兼事(겸사)로
山天祭(산천제)를 優先 奉行(우선 봉행)하고
祭需 飮食(제수 음식)과 함께 가져온 飯饌(반찬)으로 中食(중식)을 하다.
그리고 드디어 1차 目的地(목적지)인 도솔암에 이르다.
오늘은 兜率庵子 主人(도솔암자 주인)인 修道僧(수도승)이 맞이해 준다.
어제 올라왔다는 佛子(불자)도 있다.
大田(대전)에서 왔단다.
전날에 계룡산에도 머물러 있었다고 말한다.
求道子(구도자)이니
이곳 奧地(오지)까지 명당 암자터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을 것이다.
茶接待(차접대)를 받다.
서로 道談間(도담간)에 이곳 도솔암 터에 대한
나의 風水秘訣(풍수비결)을 듣고난 수도승이 대꾸한 말 한 마디에 나는 화가 난다.
'나는 믿는데 요즘 중들은 풍수지리를 미신이라 한다' 는 것이다.
요즘 山寺(산사)에는 참 스승이 없다는 말을
여러 僧侶(승려)들로부터 이미 들은 바 있고
듣지 않았다 해도 나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풍수지리를 미신이라고 믿는다는 그 말에는 화가 난다.
전날 高僧大德(고승대덕)이
깊이 깨달은 眼目(안목)으로 산중 明堂(명당)터 들을 잡아서
寺刹(사찰)을 어렵게 建築(건축)하고 수도터 庵子(암자)들을 지었건만
그 하늘 같은 스승이요, 先輩高僧大德(선배고승대덕)의 덕을 입고
중노릇 하며 더우기 은택을 입고 지내건만
그 선배 고승대덕의 智慧(지혜)를 발 아래로 깔아 뭉개고 辱(욕)되게 하니
내가 어찌 아니 화를 내지 않겠는가?
元曉大師(원효대사), 義湘大師(의상대사), 慈藏律師(자장율사),
道詵國師(도선국사), 舞鶴大師(무학대사) 같은 고승들은
모두 풍수지리의 이치를 깨달아 지혜가 높았다는 것을
일반 불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건만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律(율)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는 커녕
參禪修行(참선수행)의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술, 고기에 계집질까지 예사로 行(행)하며
信徒佛子(신도불자)들의 誠金(성금)을 함부로 흥청망청 쓰고 다니고
惑世誣民(혹세무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제 중놈의 末年(말년)이나 便安(편안)히 지낼까
그 方便(방편)에만 汨沒(골몰)하고 手段(수단)을 부려 돈이나 모으고자 힘쓴다.
그리고 비싼 乘用車(승용차)나 購入(구입)하여 遊覽(유람)이나 다니면서
절간 안까지 고개 제끼고 편히 드나 들고들 있다.
一般信徒(일반신도)들은 십리 밖 주차장에 차 세워 두게 하고서 말이다.
苦行(고행)으로 修道(수도)해야 된다는 실천은 고사하고 불한당 같은 짓을 한다.
또 한가지는 수도승의 한 마디 말이 또한 심히 불쾌하다.
修行(수행)을 잘해야 神仙世界(신선세계)에 들 수 있다 말하였더니
그의 대답인 즉슨 神仙(신선)되어 무엇하느냐고 反問(반문)한다.
산중 오지의 높은 암자터에 올라 앉아 수행의 목적도 모른다면
산중 수도승 노릇은 무엇하러 한단 말인가?
한 목숨 편히 입에 풀칠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俗世生活(속세생활) 하기 싫고 제 몸하나 便安(편안)하게
중노릇으로 一生(일생)을 그대로 보내겠다는 心算(심산)인가?
그도 아니면 佛子(불자)들 앞에 君臨(군림)하여
그들을 手下(수하)노릇 하게 하여 尊稱語(존칭어)의 '스님' 소릴 듣기 위함이련가?
그도 아니라면 중노릇의 세월을 케세라 쎄라로 보내겠다는 말인가?
精神(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달음의 길로 改心(개심)하여
求道(구도)에 邁進(매진)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도솔암터의 뒷산을 비룡산맥으로 말한다. 얼토당토 않다.
靑玉山(청옥산) 자락이라 해야 옳다.
비룡산은 도솔산 혈처를 감싸고 도는 外靑龍(외청룡)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脈(맥)을 잘 짚어내야 한다.
첫째는 道脈(도맥)을 잘 이어 받아야 하고,
둘째 血脈(혈맥)이 絶孫(절손)되지 않게 해야 하며,
셋째 山脈(산맥)을 제대로 觀(관)해야 한다.
넷째는 사람의 診脈(진맥)을 잘 짚어야 참 醫術(의술)에 能通(능통)한 인재이다.
일찌기 1,300餘年前(여년전)에
元曉大師(원효대사)가 明堂修道(명당수도)터로 자리잡아
전해 내려온 庵子(암자)터라 여기였기로 後學道伴(후학도반)들을 待同(대동)하고
어려운 발걸음을 하였건만 修道僧(수도승)의 그 한마디 말이
내 길 안내가 無色(무색)하게 되지나 않았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