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편 1장 :불탄 자리 둘러보며
다음날 우리부부는 차를 타고 불탄 곳을 둘러봅니다.
우리가 가곡면을 지나는데 가곡면 입구에서
불이 멎은 흔적을 보고 놀랍니다.
어느 구석은 흙이 녹아 옹기처럼 된 곳도 보입니다.
산속에는 수많은 귀한 나무와 식물들이 있고 벌레가 있고
새와 곤충이 있고 짐승도 있는데, 나무만 탄 것이 아니라
온갖 생명체들이 수난을 당한 것이라서 마음이 아픕니다.
가곡면에서보이는 아주 높은 산위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나고
헬리곱터가 물을 뿌리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가 호산에 이르러 가곡천을 넘어 경북 울진땅 월천리를 보고
그곳이 새까맣게 탄것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불덩어리가 1000m를 날라갈 수 있는가?
우리는 근덕까지 가 봤는데 멀리 까마득한 곳까지
새까맣게 다 탔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수십배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갈람에 들러 하경이를 만나봤습니다.
"하경아 너 때문에 불이 멎었단다.
하느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신거야 고맙구나"라고하자
하경이가 부끄러운지 엄마 뒤에 숨습니다.
우리는 과자 한보따리를 하경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내려와 호산에서 가곡천을 넘어 월천리로 가 봤는데
불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간 것이 보입니다.
한 줄기는 사곡리로 갔는데 만일 밤에 불이 멈추지 않았다면
우리는 용소골과 덕풍계곡의 양쪽에서 불의 공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울진 원자력 발전소까지 가 봤는데 불이 원자력 발전소
정원에서 꺼진 것을 보며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도 두번이나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날 산 밑의 밭에 마른 잡초가 무성하여 태우려고
가장 자리에는 미리 조로로 물을 뿌려 두었습니다.
만일을 대비하여 산으로 옮겨붙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내가 바람 한 점 없는 오전에 밭에 불을 놨습니다.
그러자 밭의 불이 서서히 타 들어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풍이 확 불어오는게 아닌가?
그러자 밭이 삽시간에 불로 뒤덮힙니다.
나는 깜짝 놀라 조로를 들고 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달려가
불이 다가오기를 기다립니다.
여기에서 불을 막지 못하면 그 불은
산으로 해서 태백산으로 갈 것은 뻔합니다.
불이 점점 다가오면서 마치 거인처럼 불이 곤두섭니다.
불의 거인이 나를 집어 삼킬듯이 악마차럼 손을 벌리고
손톱을 세워 나를 집어삼킬듯이 달려 듭니다.
나는 조로를 마구 휘두르며
"나를 태우고 넘어가거라 나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조로를 바구 흔들었습니다.
나의 머리카락이 타고 눈섶과 수염이 타느라고
"지지직 !"소리가 나며 매캐한 냄새가 납니다.
그러자 그 사납던 불이 나의 기세에 눌렸는지 숙으러 집니다.
나는 몸을 날려 잔불을 모두 껐는데
나는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숨이 가빠 죽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멀리서 보고 있다가 달려왔습니다.
나는 집에 가서 얼굴에 연고를 발랐습니다.
또 한번은 땅꾼이 뱁을 잡느라고 우리집 앞산에서 뱀구멍에
불을 피우다가 불길이 사방으로 번지는 바람에 나는 달려가
불을 끄느라고 또 애를 먹는데 땅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다가 내가 불을 다 끄자 어슬렁 거리며 나타납니다.
올해의 동해안 산불도 땅꾼이 아니면
불만을 가진 정신이상자들의 소행이기 쉽습니다.
산불이라는게 그리 쉽게 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제10편 1장 끝
제10편 2장:우리의 고통의 봉헌을 좋아하시는 하느님
제가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 빼 놨기에 여기 올립니다. 그것은 우리의 희생이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때가 2005년 7월말경입니다. 밤에도 덥더니 아침이 되자 벌써부터 푹푹 찝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가는 호산 공소에는 요셉이라는 나보다 몇살 더 나이먹은 형님이 계시는데 우리에게 늘 친절하신 분입니다. 그는 좀 모자라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장가를 보내고 싶어서 중국 조선족 처녀를 하나 데리고 와서 결혼을 시킵니다. 처녀는 남편이 정신장애자임을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성당에는 열심히 나옵니다. 그해 6월에 요셉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습니다. 요셉씨가 강릉의 아산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한달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야?" "응" "우리 요셉씨 병 문안가자" "이 무더운 날에 거기까지 차로 4시간이 걸리는데" "하느님께서 희생을 좋아하시잖아?" "맞아!" 우리는 아침에 차를 타고 가는데 우리차는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에어컨을 틀 수가 없고 차의 문들을 다 열였습니다. 차는 이미 달구어져 용광로 같이 뜨겁고 , 날씨도 건조하여 숨이 막힙니다. 차는 너무 뜨거워 손을 대면 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물을 얻어 먹으며 가는데 계속 갈증을 느낍니다. 차가 용광로 같아 우리는 차 안에서 익어버릴것 같아 죽을 지경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 이 뜨거움을 , 이 고통을, 저희 가족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봉헌 하며, 또한 지금 병문안가는 요셉님을 위해 봉헌 하오니 그를 낫게 하여 주소서!" + 아멘! 우리는 가면서 계속 기도 합니다.그리고 묵주기도를 올립니다. 드디에 강릉의 아산 병원에 도착을 하였는데 아산 병원은 삼성에서 세운 병원이라서 그런지 규모가 엄청 큽니다. 주위의 주차시설에는 차가 수천대 보입니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자 복도를 지나 문을 여니 사람들로 가득찬 대합실인데 찬바람이 확 덮여 옵니다. "와 살것 같네" 사람들이 수백명으로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앉아 TV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물어 물어 중환자실을 찾아갑니다. 내가 전에 입원하던 원주기독병원의 중환자실은 수십명의 환자들이 한 곳에 있는데 이곳 아산병원에는 한 병실에 6명씩 나누어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씨가 있는 병실로 들어가자 그의 부인이 깜짝 놀라며 "어머나 그 먼곳에서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하시며 반가워 하십니다. "좀 어떠신가요?" "어제 처음으로 눈을 떴는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못해요"라고 합니다. 내가 요셉씨를 살펴 보니 눈이 떠 있지만 촛점이 없고 입도 반쯤 벌려 있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셉 형님 안녕하세요? 저 덕풍에 사는 정세근 임마누엘입니다. 알아보시겠어요?" 그러나 요셉씨는 아무런 감각이 없어 보입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기적성수병을 꺼내어 (나주에서 나오는 샘물을 신부님이 축성한 물)요셉씨와 병실에 뿌리고 요셉씨의 입에 넣어주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 의식이 있구나` 나는 눈에도 넣어 드리고 이마와 얼굴을 씻어 드리고 목과 가슴과 손과 발도 씻어드리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물로 요셉님의 영혼과 육신의 때를 깨끗이 씻어주소서` 라고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아내는 부인과 이야기 하는동안 나는 병실의 5명의 환자들을 살펴 봅니다. 모두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보호자의 허락을 얻고 성수를 뿌리며 기도합니다. "자기야 이제 돌아가자" 우리가 작별하고 밖으로 나와 층계를 내려가려는데 뒤에서 요셉씨 부인이 달려오며 "우리 그이가 말을 했어요 말을 했다고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예? 말을 했다고요?" "네 " "뭐라고요?" "왜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느냐고 했어요 " "오! 저런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도 호산의 집에 좀 가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차 좀 같이 탈 수 있는지요?" "있지만 에어컨이 안되어 무척 뜨거운데요" "괜찮아요"하며 그가 다시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우리가 층계를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진한 장미형기 바람이 훅 하고 불어 옵니다. 우리 부부는 그런 일을 여러번 겪어서 성모님의 장미향기라는 것을 알지만 같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그 형기를 느끼지 못하는 자도 있기에 가만히 있었는데 요셉씨 부인이 "어머나 장미향기가 나네"라고 합니다. "성모님의 장미향기예요"라고 내가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대합실을 지나 복도의 문을 열자 또 장미향기 바람이 훅 하고 불어와 부인이 깜짝 놀랍니다. "성모님이 잘 가라고 하시는 거에요"라고 내가 말 하였습니다. 제10편2장 끝 제10편 3장:두번째 재앙 `루사태풍 (1) 2002년 8월 30일 나는 아침에 일찍 옥수수밭으로 가서 옥수수를 따려 했는데 앞이 훤합니다. 옥수수가 앞에 장막을 치듯 가득히 솟아있어야 하는데 뒷면이 환하게 보입니다. 내가 옥수수 밭에 이르자 옥수수 대가 모두 넘어져 있고 단 한 그루도 서있는 옥수수대가 없습니다. 멧돼지가 떼로 몰려와 완전히 싹 쓸이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께끗이 먹어치웠는지 옥수수 알갱이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야 ,멧돼지들이 옥수수를 다 먹어치워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아" 그러자 아내가 마을 반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옥수수 두 푸대만 보내 달라고 합니다. 반장님이 옥수수를 가져오자 우리는 차에 싣고 바로 대전으로 떠납니다. 우리 두 아이들이 이곳 풍곡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교생이 24명밖에 되지 않고 교육의 질이 너무 떨어지고 중학교도 먼곳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할 지경입니다. 우리집에 오신 손님중에 대전에 사시는 분이 말씀하시길 "아이들을 대전 살레시오 수도원으로 보내세요, 그곳에는 신부님과 수사님들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 아이두명을 대전 살레시오 수도원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는 24명의 학생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옥수수를 차에 싣고 대전으로 갔습니다. 대전 살레시오 수도원은 대전 시내의 한 언덕에 자리잡은 규모가 엄청 큰 수도원입니다. 한쪽에는 아이들이 머무는 방이 길게 잘 지어져 있고 뒤에는 성직자들이 머무는 집도 길게 늘어서 있고 앞에는 큰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 앞에는 큰 2층 건물이 있는데 수련소가 있고 신부님과 수사님의 방이 있고 성당도 있습니다. 뒤에는 또 2층 큰 건물이 있는데 성직자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성당이 또 있습니다. 우리가 대전 살레시오 수도원에 이르러 옥수수를 신부님에게 드리고 우리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두 아이가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마음이 놓입니다. 그날 식당에서 옥수수를 쪄서 신부님과 수사님 그리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아이들과 같이 잠을 잤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늘 같이 있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 늘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이날은 우리와 같이 자게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쏟아집니다. 나는 TV를 틀자 루사태풍의 엄청난 구름이 강원도 덕풍게곡 우리집으로 달려가는게 아닌가? "자기야 이것 좀 봐봐 !" "어머나 ! 우리 빨리 가야겠어" "그렇지? 빨리 가야지?" 우리는 모두 하직하고 대전에서 청주를 향하여 달리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앞이 잘 안보일 정도 입니다. 우리는 충주를 지나 태백에 이르렀고 통리재를 넘어 풍곡에 이르렀는데 우리가 덕풍계곡으로 들어서자 계곡물이 이미 범람하고 마구 요동치듯이 흘러갑니다. "우리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 지 모르겠네 " 아내가 속도를 내는데 군데군데의 길은 이미 물에 잠기기도 하였고 아내가 속도를 내자 물보라가 하늘을 덮습니다. 계곡물이 마치 분노한 것 처럼 파도를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흘러갑니다. 직소에 이르자 그곳의 큰 바위위로 물이 흘렀는데 바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있던 집채만한 바위가 어디로 갔지?" 우리가 가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곳은 우리집 옆에 있는 구룡소 입니다. 그곳에는 넓은 암반이 패여 큰 소를 이루었는데 길이 늘 비가오면 잠겨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까이 이르자 길이 보이지 않고 물에 잠겼습니다. "자기야 전 속을 내 !" 그러자 아내가 전속력으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간신히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 합니다. 물보라가 하늘을 덮습니다. "와 자기 대단해 우리가 5분만 늦었어도 못 들어갈 뻔 했다" 우리가 언덕을 올라 집에 이르니 마당에 있는 큰 물통에 물이 철철 넘칩니다. 나는 물통을 쏟아냅니다.이미 비가 50cm나 온 것입니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 TV를 켜자 시꺼먼 비구름이 강원도 일대를 뒤덮었는데 그 중심이 바로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잠시후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우리집에서 가까운 쌍둥이 아피형의 철제 다리를 바라보는데 물이 이미 다리를 잠기기 시작하고 다리가 기울어져 있습니다. `아 저러다 다리가 넘어지겠는걸!` 비가 이제는 동이째 내려 붓습니다. 바람은 나를 날려버릴것만 같아 나는 무서워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내 다시 나가보니 다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집 밑에는 고목의 가래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도 사라졌습니다. 풍곡에 사는 사람이 덕풍에 와서 친목계 놀이를 하다가 돌아가려고 봉고차를 타고 오다가 구룡소를 건느지 못하고 우리집에 오르는 언덕 가운데에 봉고차를 세워두고 가버렸습니다. `좀 더 위에 세워야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봉고차가 떠내려갈만큼 물이 거기까지 찰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마당의 물통이 넘치기에 나는 다시 쏟아냈습니다.비가 1m나 온 것입니다. 전기가 나갔습니다. 전화도 불통입니다. 깜깜한 밤중에 밖에는 전쟁이라도 일어난듯 몹시 시끄럽고 계곡 물속에서는 바위가 구르는 소리가 우르릉 거립니다. 제10편 3장 끝 |
제10편 4장:天 地 開 闢 (천지개벽)
새벽에 눈을 뜨니 밖이 조용합니다.
밖을 나오니 하늘은 맑고 평화롭습니다.
내가 언덕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지형이 바뀌었습니다.
그 웅장한 쌍둥이 철제다리가 사라졌고,
우리집 아래에 있는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던 고목의 가래나무도 사라지고,
우리집 올라오는 곳에 세워둔 풍곡 사람의 봉고차가 없어지고
봉고차가 있던 그 밑으로 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래의 산밑에 있는 나의 농장 5000평은 바다같이 물에 잠겨 있고
아랫집 옆의 덕풍계곡에 700평의 섬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집을 향하여 800m가 넘는 산봉우리 7개에 흰구름이 휘휘 감아
마치 선인들이 한바탕 놀다간 것 같습니다.
마을로 가는 길도 한뼘도 남아 있지 않고
풍곡으로 나가는 길도 1cm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 천지개벽(天 地 開 闢) 이었구나 !"
이맘때면 산새들의 즐거운 소리가 시끄러워야 하는데 새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오후가 되니 계곡의 물이 빠집니다.사방이 너무 조용합니다.
나는 계곡으로 돌과 바위의 틈바구니를 지나 풍곡 쪽으로 내려가 보는데
봉고차가 보리밭 밑의 한 구석에 남작하게 찌그러져 있는데 아주 작아보입니다.
그곳을 지나 중간에 이르니 기다란 철제 다리위로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나는 곡에하듯이 그 위를 타 넘거나 밑으로 빠져 나가며
덕풍계곡 중간에 있는 언덕의 암자에 올라가 봤습니다.
그곳에 도호스님이 혼자 있다가 나를 반겨주십니다.
"제가 풍곡에 나갔다왔는데 풍곡이 초토화되었고 사람이 4명이 죽었고
학교마당이 물바다이고 주차장도 없어지고 길이 하나도 없어요.
호산에서 태백에 이르는 국도도 중간중간이 다 쓸려나가
차가 불통이라고 하며 삼척과 강릉이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나중에 나온 뉴스에서는 이번 루사태풍으로 죽은 자가 264명이라고 합니다.
"주님 왜 이러십니까?"
`밀레니엄 시대를 주었거늘 어찌 고마워 할 줄도 모르고 기도한 번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4월 7일에 그 엄청난 동해안 산불을 주셨습니까?"
`그래, 그래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구나.
내년에 매미 태풍을 보내주어야 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느님, 저희들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소서 무지한걸 어쩝니까?죄송합니다"
그날이 지나갔고
또 다음날도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셋째날에 헬리곱터 한대가 우리집 머리위로 낮게 떠가는데
마을쪽에서 소리가 사라집니다.
제10편 4장 끝
제10편 5장:다음 해에 매미 태풍이 또 오다
조금있자 마을 쪽에서 군인들과 사람들이 우리집을 향하여 한 무리가 오는데
MBC방송기자가 카메라를 돌리며 오는게 아닌가?
`으악 ! 이거 큰일났네`
나는 그동안 각 방송사와 언론사와 잡지사에서 취재요청을 해 오는 것을
거절하느라고 애를 먹었는데 오늘은 영락없이 걸려들었습니다.
군인들은 우리를 위해 쌀과 먹거리를 가지고 왔고
의사는 나를 진찰을 하고 야단입니다.
나는 마치 손발이 묶인 죄수처럼 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하였습니다.
한참 소동을 벌리고 그들은 돌아갔고그날 저녁에 나의 소식이
TV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곳은 전신주가 다 넘어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나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에서는 호산과 태백의 국도를 잇느라고 총공사를 하고
우리가 사는 덕풍계곡에도 길을 만드느라고 수고를 합니다.
길이 만들어지자 전국에서 강원도 일대의 피해지역에
국민들이 도와주는 구호물자와 성금들이 마구 쏟아집니다.
역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서울 성당과 여러단체에서 풍곡에 많은 물자와 성금이 답지하는데
풍곡 이장이 눈이 어두어져 성금과 귀한 물품들을 `인 마이 포켓` 하다가
법에 걸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유 그게 무슨 돈이고 무슨 물품인데 그런 더러운 욕심을 부리는가?
동해안의 어느 군 부대에서 우리를 위해 50만원을 보내주어
우리는 감사히 받았는데 우리가 받은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농토가 망가지고 우리집에 오르는 언덕이 다 패여나가도
아무런 헤택은 없고 나 역시 그런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2002년이 지나가고 2003년이 돌아옵니다.
9월 13일 매미 태풍 이 또 한 번의 처참한 피해를 주었는데
사람이 `132명이 죽었습니다.
루사보다 더 큰 태풍이었지만 루사때 이미 망가질것은 다 망가졌기에
피해는 작아보이지만 사실은 루사보다 더 큰 태풍이었습니다.
아내는 동네 사람들과 한전 사람들과 산속을 돌아다니며
쓰러진 전신주를 세우느라고 며칠간 애를 먹습니다.
그레도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너무 조용하기만 합니다.
전국에서 들려오는 내가 잘 아는 신자들을 통하여 듣는 소리는
"주일 강론에서 신부님들은 신앙 이야기보다 정치적 이야기로 강론을 한다"
라고 불평을 합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하기야 신을 믿지 않는 북한이 공산주의가 70년이 되도록
하느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자 성직자들이나 신자들은
기적따위는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앙은 가져도 그만, 안 가져도 그만,
이라는 변질된 신앙을 갖게 됩니다.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그렇게 망가져 갑니다.
성당이 점점 비기시작하고 나이든 어른들만 간다고 하며
젊은이들이 없다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북한을 오고가는 신부들이 많이 생겨나고
우리나라에는 북한사상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자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나라의 잘못 돼가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라고 나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
제10편 5장 끝
제10편 6장:수사님 한분이 개인 피정을 하려 우리집에 오시다.
2002년 12월 20일에 서울 정동의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수사님 한 분이
어떻게 우리집을 알고 곧 있을 종신서원을 앞두고, 개인피정을 하려고
우리집을 찾아오셨습니다.(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수사님은 내 아내가 해 주겠다는 밥과 빨래와 방에 불 때는 일들을 다 거절하고
당신 스스로 계곡의 얼음짱 같은 찬물로 쌀을 씻고 밥을 하고,
그 계곡물로 빨래를 하고,손수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다가 방을 덥힙니다.
그렇게 2002년 12월 20일 부터 2003년 1월 20일까지 한달간의
고신극기 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나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하나 내 밉니다.
"수사님 우리는 성직자들에게는 돈 안 받아요, 그러니 그냥 가셔요"라고 하자
수사님은 펄쩍 뛰시며 "아닙니다. 당연히 받으셔야지요"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받은 거나 마찬가지이니 그냥 가셔요"
"안됩니다 꼭 받으셔야 합니다.
"안된다니까요! 그냥 가세요"
"아닙니다. 반드시 받으셔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일단 돈 봉투를 받았고
우리 어린 두 아들의 용돈으로 2만원씩 4만원을 빼고 다시 돌려 드리며
"수사님, 이것은 저희가 드리는 선물이니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수사님은 남의 애덕을 거스르는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고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한대를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헉, 이 깊은 산중에서 이걸 어떻게 하라고?"
여기는 인터넷 선도 없고, 나의 생각은 컴퓨터란 젊은 학생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나는 아직 컴퓨터를 만져 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방구석에 컴퓨터를 쳐박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내가 운전을 배우자 바로 그날 차를 보내 주셨듯이
이번에도 내가 수사님에게 사랑을 베풀자 컴퓨터를 보내 주셨다는 사실인데
내가 이제 나이가 들고 농사일도 힘이 들자, 내가 컴퓨터로 하느님을 전할 수
있도록,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주셨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됩니다.
이날 서울에서는 컴퓨터 도사님 한분이 산을 좋아하여 응봉산을 오르려고
강원도로 가는 밤 열차를 타고 기차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강원도 통리에서
내립니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서 그는 심야다방에 들어가 TV를 보다가
날이 새자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풍곡에서 내립니다.
그는 6km의 덕풍계곡을 지나는데, 나는 마침 우리집 언덕에 나와
우리집을 향하여 마치 읍을 하고 있는 듯한 800m가 넘는 산봉우리 7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밑으로 지나가는 컴퓨터 도사님을 보게 됩니다.
도사님도 위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나를 올려다 봅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예 안녕하시오, 젊은이 !"
"거기에 집이 있어요?"
"그렇소"
그러자 그가 뛰쳐 올라옵니다.
"와 여기에 집이 있다니 ! 저는 그동안 이 밑을 여러번 지나 다녔는데,
여기에 집이 있는줄 오늘 처음 알았어요"
"그러십니까? 나도 서울에서 친구와 지인들이 오는데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 온답니다."
"와 올라와 보니 밑에서 보던 계곡과 너무 다르네요 정말 멋진 곳에 사십니다.
이런 곳에서 며칠 푹 쉬었다가면 참 좋을것 같아요"
"맘에 드시면 그렇게 하시구료"
"예? 그래도 돼요?"
"그럼요"
"그러면 우선 하루만 묵었다 갈께요"
나는 건너방 하나를 내 주었습니다.
그가 우리방에 컴퓨터가 한대 있는 것을 보고
"어? 이 깊은 산중에 웬 컴퓨터 인가요?"
그렇게 하여 나는 컴퓨터가 생기게 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러자 그가 "영감님 걱정하지 마셔요 제가 나오게 해 드릴께요"라고 하며
다시 6km의 덕풍계곡을 뛰쳐나가 풍곡에서 버스를 타고 호산으로 가서
전파사에서 `모뎀`을 하나 사 가지고 다시 돌아옵니다.
제10편 6장 끝
제10편 7장:그는 컴퓨터 도사
그가 컴퓨터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전기줄을 연결하고 모뎀을 설치하고 전화선에 연결을 하자 컴아 되는게 아닌가?
"하 !"
나는 그의 익숙한 손 놀림에 현혹되어 정신없이 그를 바라보지만
뭘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컴퓨터 도사님 같아요"라고 내가 말 하자 그는
"그게 제 직업인걸요"하는게 아닌가?
역시 그는 컴퓨터 도사님이셨습니다.
그는 나를 Yahoo에 가입을 해 주었습니다.
정작 나를 KT에 가입을 해 주어야 하는건데 그가 왜 그걸 안 해주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기에 야후에만 가입하면
다 되는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밤 늦도록 나에게 컴퓨터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그의 가르침을 노트에 꼬박꼬박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문을 여는 방법과 다음장으로 넘어가는 방법과
글씨 쓰는 방법과
내가 찾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과 메일을 보내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이제는 메일로 간단히 보낼 수 있지만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다음날 그 도사님은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하며 돌아갔고
나는 방 값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수시로 컴을 열고 여기저기를 열어보게 되면서,
장면이 바뀔때마다 수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너무 놀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와 이것은 굉장한 지식의 보고이구나 !"
나는 그 정보들을 다 읽으며 나의 머리속을 풍부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나는 마치 컴퓨터대학을 다닌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지식들을
모두 머리속에 집어 넣습니다.
나는 요 조그만 전자기계가 나를 압도하고 마치 나를 가지고 노는것 같았습니다.
야후창 밑에는 세계의 각나라 이름도 나와 있는데 클릭만하면
바로 그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며
"와 내가 안방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를 두루다닐 수 있다니 !"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영국, 세계를 두루 여행하다가 여러 카페를 알게 됩니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에 우리나라 성지도 찾아보고 그때 You tube 도 알게 되어
그곳에서 세계 성지도 찾아보는데
나는 깜짝 놀라운 장면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라남도 나주의 율리아라는 여자 입니다.
그의 말로는 1985년 6월 30일에 성모님이 나주에 발현하였다고 하여
나는 정말로 깜짝 놀라는데
"지금이 2003년인데 내가 어떻게 1985년에 일어난 나주 성모님의 발현을
모르고 있었을까? 너무 놀랍니다.
나는 율리아라고 하는 자식을 4명이나 낳은 부인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메시지를 주신다는 말에 놀라고
나는 그녀가 운영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 사이트어 들어가
그곳에 올려진 모든 글을 다 읽어보고는
"자기야 나주는 참이구나 "라고 말 하자 아내도
"맞아요"라고 합니다.
나는 순수한 보통 사람이기에 의심하지 않고 우리 천주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다 믿는 사람입니다.
나주에서는 예수님의 성혈이 떨어지고 율리아님이 영한 성체가
에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에 나는 충격적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후에는 광주 교구에서는
"나주는 이단이니 신자들은 가지말라!"고 하는 글도 읽습니다.
"어? 진실이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의문 보다는 광주 천주교회에서 나주를 잘 몰라서
그럴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실제로 나주에 가서 확인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10편 7장 끝
제10편8장:하와의 창조
내가 컴퓨터에 또 빠져들어 정신없이 눌러대자
가는곳 마다 미녀들이 나타나서 나를 유혹합니다.
남자들은 누구나 다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여자를 남자와 전혀 다르게 만드시어 남자가 빠져들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이 맨 먼저 아담을 창조하신 후 그가 낙원을 돌아다니며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됩니다.
성경에는 그런 설명이 없지만 아담은 하느님의 말을 알아들을 만큼
매우 똑똑한 천재이기에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다 알게 됩니다.
동식물들이 다 짝이 있어서 종족이 번식하는 것을 다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이름을 지어 붙이라고 할 만큼,
아담의 능력이 어떤가를 보여 주시는데 하느님이 만족해 하십니다.
`나는 왜 혼자인가?`
모든 동식물들이 새로 태어나는 것을 다 봅니다.
하느님이 그걸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아담아"
"예 아빠"
자기를 만드셨으니 당연히 아버지 입니다.
"너에게도 짝을 하나 만들어 주어야겠다"
"와! 아빠 어서 만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너를 잠재우고 네 갈비뼈 하나를 뽑아 살을 붙일 것이다. 이리오너라"
하느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를 하나 뽑아 살을 붙여 하와를 만드십니다.
이런 성경의 모습을 보고 많은 신자들이
"엉터리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며
성경을 하나의 신화나 문학전집이라고 봅니다.
하느님께서 원자에 대하여 설명하고 H2O가 어떻고
천지창조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하면 아담이 이해할까?
그러나 하느님은 먼 훗날 창조성의 신비와
과학의 뜻을 이해 할 날이 올 것을 내다 봅니다.
"아담아"
"예 아빠"
"네 짝을 만들었는데 보겠느냐?"
"예 어서 보여 주세요"
"하와야 "
"네"
"이리 나오너라"
"네"
아담이 하와의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또 하와의 기막힌 모습을 보는 순간
"헉 !"
"뭐 그리 놀라느냐?"
"아 아빠, 이럴수가 ! 지아비인 내 뼈에서 나왔으니 지어미라 부르리라 !"
기가막힌 아담의 대답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은
하와는 아담에게 예속한 존재라는 사실 입니다.
남녀가 동등하다고 하지만 인격적으로 그렇치 사실은 전혀 아닙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예속된 존재라는 사실인데
하느님께서 동등하지 않게 만드신 것입니다.
아담과 너무나 다르게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면에서는 같은 인간이지만
여자가 어디 남자 같은데가 한 군데라도 있는가?
그러기에 성경을 처음부터 읽어보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뚜렸이 나타납니다.
여자를 하느님께서는 하와가 눈을 깜빡이거나, 표정 하나하나, 목소리 조차,
손가락 놀림 하나에 이르기 까지, 지극히 여성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입니다.
아담이 도무지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듯이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
"너희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니라"라고 하시며
하느님은 둘을 짝지어 주십니다.
그것은 '평생을 함께 살라'시는 엄명입니다.
제10편8장 끝
제10편9장:음란 사이트를 보니 22만원의 고지서가 날라와
나는 컴퓨터에 익숙해 지면서 세계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며 그들이 유혹하는 곳을 드나들기도 합니다.
그런 곳을 `음란사이트`라고 하여 나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호기심이 강하여 나도 모르게 자꾸 들어가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자 고지서가 한 장 날라왔는데 컴퓨터를 했으니
돈 22만원을 내라는 것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고 아내 보기에 너무 미안하였습니다.
아내는 나의 또 다른 한면을 발견한 것 같아
실추된 인격을 만회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나는 그 후 다시는 그런 곳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컴퓨터 도사님이 나를 KT에 가입을 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냥 야후에만 가입을 해 준 것입니다.
나는 그 후 KT 인 코넷에 가입을 하자 한달에 2만 2천원의 정액제가 나옵니다.
나는 유튜브에서 나주의 율리아님에 대한 많은 글과 사진을 보고
성모님이 발현하신다는 이야기와 주님의 성혈이 내리고
성체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진위를 가릴 생각도 없이 그냥 믿어버립니다.
"자기야 나주는 참이다"
"맞아요 나주는 참이예요"
아내도 컴퓨터에서 나주에 관한 글을 읽고 나주를 참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주에 순례가자"라고 하자
아내도 "가요"라고 하여
2003년 10월 28일에 1000리가 넘는 나주로 순례 떠나게 됩니다.
제10편9장 끝
제10편10장:나주의 첫 순례길
하느님께서는 제 일생을 보시고 내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제 영혼을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것을 많이 느끼셨을 것입니다.
제가 이단 나주 율리아에게 빠져 들어도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그냥 놔 두시고 오히려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2003년 10월 28일 우리는 새벽 5시 30분에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1000리(400km)가 넘는 멀고도 먼 전남 나주로 향합니다.
우리는 가면서 계속 기도하고 묵주기도하고 성가를 부릅니다.
아내는 운전을 배운 후 이런 장거리는 처음입니다.
우리는 태백을 지나 경북 영주까지 와서 중앙고속 도로로 올라가는데
아내는 고속도로 주행이 처음입니다.
차들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가는데 나도 아내도 깜짝 깜짝 놀랍니다.
아내가 길 가로 차를 몰다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곧 익숙해 집니다.
우리는 대구를 지나 88고속도로를 또 달려 동광주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나주는 바로 코 앞입니다.
우리가 광주를 지나 나주 경계선에 이르렀는데 전에 내가 오지마을을
돌아다닐때인 1985년 경에는 이곳도 한적한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번창하여 광주와 나주가 붙어 있을 정도입니다.
나는 나주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땅에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이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나주로 왔습니다.
율리아님은 전에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여 요한 바오로2세를 알현하였고
그의 미사에서 입에 넣어준 성체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장면을
나는 컴에서 봤는데 이는 상상도 못할 기적이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율리아님이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는
전직,현직 대통령의 환영을 받는 율리아이신데 세계적인 명사가
나주에 살기에 이는 나주의 큰 자랑일 것이고 내가 나주에 가면
그의 집에 이르는 안내판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나주에 이르자 그런 간판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율리아가 누구인지 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럴수가 !"
"자기야 우리 성당에 가보자, 그러면 신부님은 아실꺼야"
그리하여 우리는 나주 천주교회를 찾아갑니다.
제10편10장 끝
(계속해서 제10편11장이 연재되오니 많은 구독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5월24일(금) 형광등등 씀
캐나다 몬트리올 累家에서
청송(靑松) 카페지기 베드로 문 옮김
[청송(靑松)카페 가입 방법]
1.<http://cafe.daum.net/bluepinetreesenior > Click
2. 좌측 상단에 있는 <카페 초대> Click
3. 이메일,비밀번호 입력
4. 닉네임/실명 답변 예) 베드로 문/문신범
5. 가입 인사 글 보냄
2021년6월29일(화)
캐나다 몬트리올 累家에서
청송(靑松)카페지기
베드로 문 拜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