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필 / 문학시대 / 류인혜의 책읽기 19 / 2022년
고추장 담는 아버지
-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돌베개, 2006.
류인혜
어느 해 5월, 중국 문학기행을 가졌다. 일정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따라서」라는 현수막을 펼쳐 사진을 찍으면서 진행되었다. 북경에 도착하여 천안문, 유리창 등을 구경하고 일박 후 피서 산장이 있는 승덕으로 향했다.
버스로 이동을 하며 일행이던 고미숙 선생이 고추장 담는 이야기를 했다. 박지원 자신이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자식에게 보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열하 여행에서 돌아와 그 책,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를 구입했다.
박희병 역으로 「돌베개」에서 발간된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의 원문 제목인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에는 연암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보낸 33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연암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인 2005년에 처음 공개된 것으로, 《연암집》에도 실리지 않은 이 편지들은 연암이 안의 현감으로 재임했던 정조 20년(1796년) 정월부터 이듬해 팔월 사이에 적은 글이다.
연암이 남긴 편지들은 그의 문집 연암집에 수록된 서(書)와 척독(尺牘) 두 종류와 문집에 실려 있지 않고 별도로 전하는 간찰(簡札)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서(書)는 주로 공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편지이고, 척독(尺牘)은 예를 갖추는 형식적인 글이 아니라 문예적인 글이다. 반면에 간찰(簡札)은 서와 척독과는 별개로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고 부탁하는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내용의 편지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 표현에서부터 생활의 낙수와 같은 소소한 내용을 다루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연암의 사소한 일상, 가족 관계, 집안의 살림살이 등 그의 사적 생활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연암의 다양한 면,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성격, 격조 있는 해학을 즐기는 유머러스한 모습, 강직한 성격, 백성을 걱정하는 면모, 주변 인물들에 대한 평가들을 알 수 있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라는 표제에 꽂혀 책을 대하자 고추장에 관한 편지를 서둘러 읽었다. 그의 자식 사랑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감없이 나타난다. 거기에는 연암의 장대한 기골에 날카로운 풍자와 빛나는 유머로 반짝이던 면모가 사라지고, 곰살궂고 자상한 어버이의 모습이다. 연암은 51세에 부인을 잃은 후 재혼을 하지 않았다. 자식들이 ‘어미 잃은 처지’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지 뜬금없이 고추장 얘기를 꺼낸다.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다.”라며 직접 담근 고추장을 자식들에게 보내 준다.
다른 편지에서도 직접 보낸 소고기볶음과 고추장의 맛이 어떤지 알려달라고 독촉하면서, 인편을 통해 계속 보내겠다는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 한 편이 가고 답장을 받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던 시대에 살면서 그는 자식들의 기척이 항상 그립고 간절했을 것이다.
책에 수록된 33편의 편지를 수신인에 따라 분석해보면 맏아들 박종의(朴宗儀 1766년~1815년) 21편, 박종채(朴宗采) 1편, 아이들 1편, 처남 이재성(李在誠)에게 5편, 벗들 4통, 서령군수 1통이다.
종의는 연암의 형 박희원(朴喜源)에게 양자를 갔다. 당신의 형님의 아들이 된 친아들을 공식적으로는 조카로 대한다. 수신자 ‘큰아이에게’이고 발신자는‘중부’이다. 그렇지만 내심은 친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연암은 병진년(1796) 3월 10일 종의의 아들 효수(孝壽)가 태어난 걸 기뻐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오늘은 손자가 태어난 지 삼칠일이 되는 날이다. 관속(官屬) 2백여 명이 아침에 국과 밥을 보내와 몹시 축하해 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경술년(1970) 원자가 탄생하시자 산해진미를 갖춰 몹시 기뻐하시며 억조창생을 고무한 임금님의 마음을 우러러 헤아릴 것 같구나. 이만 줄인다. 병진년(1796) 3월 10일, 중부 - 29쪽
이 편지에서 연암이 손자의 탄생을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적어 아들에게 보냈기에 독자들도 선생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뻐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며느리의 산후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고 있는 면이 참으로 정겹다. 이 편지 외에도 효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려달라는 편지를 종의에게 또 한 차례 보내게 되는데 손자를 귀여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꾸밈없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인물들에 관한 생각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알고 있는 박지원과 그들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낯설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박제가에 관한 것이다. 종의(宗儀)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재선의 집에 있는, 우리나라에 들여온 요즘 중국인의 시필 서너 첩을 만일 빌려 볼 수만 있다면 의당 이 며칠 사이의 불안정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겠건만, 그 사람이 무상무도(無狀無道)한 자니 지보라고 하여 잠시라도 손에서 내놓겠느냐? 그렇지만 모름지기 한 번 빌려 보렴. - 19쪽
여기서 재선이란 박제가의 자이다. 그를 ‘무상무도한 자’라고 표현했다. 무상(無狀)은 ‘버릇이 없거나 무례하거나 경우가 없다’는 뜻이고, 무도(無道)는 ‘도리에 어긋나며 막되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의 인성이 아주 고약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 때문에 번역한 박희병 선생은 “아마도 연암은 박제가의 문예적 재능은 십분 인정하면서도 그 인간성, 그 인격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정민 선생은 「새 발굴 『연암선생서간첩』의 자료적 가치」에서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박제가를 두고 ‘망상무도(罔狀無道)’하다고 했다. 글자 그대로 풀면 ‘꼴같지 않고 무도하다’는 말이다. 물론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쉽게 내주지 않을 거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고는 쉽게 하기 어려운 표현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박제가를 ‘무상무도(無狀無道)’하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민 선생의 견해에 더 공감이 간다. 박지원과 박제가는 스승과 제자임과 동시에 상당히 막역한 사이였고, 박지원이 박제가를 정말로 욕보이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면 박제가가 무상무도한 인사이기 때문에 중국인의 시필을 빌려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만 모름지기 한 번 빌려 보렴”이라고 종의에게 당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친분이 막역한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아버지는 없다.
박지원 선생의 자유로운 인물평은 종의에게 보내는 서른세 번째 편지에서도 보인다.
반드시 유생(柳生)의 무리에게 이를 자랑해서는 안된다. 유(柳)는 깊은 이치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요 진중한 기상이 적으니 단지 책을 빌려 박식함을 자랑하길 좋아할 뿐이다. 모름지기 한증락의 무리와 참구해 가며 읽고, 글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은 네 외삼촌께 여쭤봐 실효를 다하도록 함이 옳다. - 106쪽
이 내용을 보면 유(柳)라는 사람에 대해, “더함을 구하지 않고, 침잠하는 기상이 적어서 단지 책을 빌려 박식을 뽐내기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으며, 공부를 할 때에도 유생의 무리와 어울리지 말고 외삼촌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들 종의에게 유생의 무리를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 같은 편지에서 “이방익 전은 이번 인편에 고대했는데 또 오지 않으니 탄식할 만하다, 탄식할 만해. 혜보는 전연 돌아보지도 않고 초정이 혼자 감당하고 있느냐? 내게 좀 자세히 말해 줬으면 한다.” 쓰고 있다. 여기에서 혜보는 유득공이고 초정은 박제가이다. 따라서 전후 사정을 종의에게 자세히 알려줄 것을 당부하면서 유득공에 대한 답답함과 불만을 표하고 있다.
또 다른 편지에는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8번째 편지를 보면, “영남과 호남의 대나무가 모두 얼었고, 백화(百花) 또한 얼어붙었으니 가을일이 걱정이거늘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몹시 근심된다.”라고 했다. 당시 연암은 안의 현감의 임기를 마치고 곧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날씨가 이상하게 추우니 자신이 떠나고 난 다음인 가을, 백성들의 농사일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고을 원에 부임하자마자 아전들이 백성들로부터 부당하게 돈을 걷는 것을 금했다. 관습적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폐단을 금한 것이다. 백성들을 향한 연암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목민관으로의 모습은 「칠사고」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칠사고는 연암 박지원이 지은 목민서(牧民書)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늦은 나이에 벼슬길을 시작하여 고위직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신의 담당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오랫동안 축적해온 실용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에 수록된 첫 번 편지 <중존에게>는 처남인 이재성에게 보내는 글이다. 연암은 통제사로부터 숭무당기를 써줄 것을 부탁받는데, 승무당은 한산도 충열사의 별각이다. 자신은 건강이 좋지 않아 글을 구상할 수 없으니 대신 글을 써서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그 선작을 바탕으로 숭무당기를 완성하여 통제사에게 보내려고 했다. 당시 환갑을 지난 연암의 노쇠한 상황을 짐작하며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 무렵 연암은 좌우의 어금니가 빠져 고생하고 있었다.
이것은 공식적인 글인 서(書)와 문예적인 글인 척독(尺牘)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내용이다. 이렇게 사적인 편지인 간찰은 읽는 사람에게 인간적인 따스함을 준다. 자식에게 고추장을 담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는 내용을 읽는 독자들은 복이 있다. 조선의 명문장 연암 박지원도 자식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서간첩을 옮긴 역자는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라는 책의 제목을 돌베개 한철희 사장의 작품이라며 감사하고 있다. 편지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지만 한 권의 책은 여러 사람의 안목이 모여 만드는 예술작품이다.
류인혜
1984년 『한국수필』 봄호 <우물>로 추천완료. 한국수필작가회 고문.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계간문예 기획위원
작품집 : 『수필이 보인다』, 『나무를 읽는다』 외 9권
수상 : 한국수필문학상, 펜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송헌수필문학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