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지 갈던 노인
원작 윤오영 (방망이깍던 노인)
개작 랩마스터
벌써 2년 전이다. 내가 갓 스키탄지 얼마 안 돼서 무주에서 죽돌이하면서 살 때다. 구천동 시즌방 들렀다 가는 길에, 무주리조트로 가기 위해 리조트삼거리에서 일단 좌화전을해야 했다. 삼거리 방범초소 옆길가에 앉아서 에지를 갈아 주는 노인이 있었다. 이 기회에 스키날도 세울겸 에지를 갈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에지가는거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갈으슈."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갈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갈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가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다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썬다운 모글코스 닫을시간이 다되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갈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간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모글코스 닫는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정비하우. 난 안 안하겟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주간모글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갈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갈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스키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스키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스키다.
아침에들어와서 주간모글을 못타고 야간에 라이너 리프트앞 20턴짜리 새끼모글을 타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레이더스 상단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야간에 들어가서 라이너리프트앞 새끼모글에서 스키를 내놓으니 주환형은 에지를 이쁘게 잘 갈았다고 야단이다. 자기 스키의 에지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주환형의 설명을 들어 보니, 에지각이 인터스키처럼 너무 예리하면 날이 너무 박혀 컨트롤하기가 힘들고 에지각이 둔각이면 에지가 먹지않으니 모글을 타기힘든데 이걸 정확히 90도로 갈기는 좀체로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스키의 고수들은 한타임 타고난 뒤에는 에지를 손수 정비하고 탓다고 한다. 한번 날을 갈고 마는게 아니라 여러번 계속해서 손으로 밀어서 에지각을 손수 맞췃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계로 에지를 간다 한번에 금방 갈으니 빠르고 쉽다 그러니 남들 눈에 잘 띄지도 않는것을 몇 번씩 갈고 있을 사람이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스키도 그런 심정에서 에지를 갈았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뎅에 치즈덕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무주에들어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방범대원이 묻는다
“여기에는 어인일로 오셧습니까?”
“이곳에서 에지정비하던 노인분은 어디가셧습니까?”
방범대원이 담배를 하나물더니 한숨을 내쉰다.
“지난주 주중에 어느 꽃보더의 보드를 정비해주고 수리비대신 전화번호 달라고 하다가 꽃보더 남자친구한테 멱살잡히고서는 그뒤로는 쪽팔린지 이곳에 나오지 않으십니다.”
“그럼 그분 지금계시는곳이 어디요”
“들리는 소문에는 여성스키어들이 많타는 스타힐로 베이스를 옮긴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무주리조트의 레이더스상단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솟아있는 만선봉 아래로 초보자가 스키를 벗고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슬로프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국내 최고의 경사도인 레이더스 상단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스키장에 들어갔더니 강욱이가 원에이티(180)를 연습하고 있었다. 강욱이의 스키를 보니 에지가 각이 없다. 전에 박스타느라 에지가 다 갈려버린 스키로 원에이티 연습하던 생각이 난다. 조용히 이지튜너를 꺼내서 강욱이의 스키에지를 갈아주면서 2년 전 에지 갈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첫댓글 뭘 패러디 한거냐?
원작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마음에 와 닿는 페러디입니다. 이 페러디로 아예 책을 하나 쓰심이....
고박사 내일 저녁 퇴근할때 우리 삼실좀 들려주게나...뭐 줄것이 있어서....^^
오.. 역시 고박사다운 글이군.. 그런데 패러디?? 그냥 읽어도 너무 멋진 글인데.. ㅎㅎ 여튼 스프링에 보자!!
무슨 패러디인지는 모르겠지만...제이름도 나오고??? 음..
제가 중학교땐가 고등학교땐가 국어교과서에 실린 윤오영의 방망이 깍던 노인 이란 소설이 원작입니다. 원작보다 패러디가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심하군요 스키장못가니까..
뭔 얘긴지????????????????? 음...........나 핵교 다닐땐 저런 이야기 없었는데.....
몽둥이 깍던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