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章 백기표사(百騎 士)
①
금모호 이규대를 꺽은 표풍일수(飄風逸秀) 하지철(河志哲)의 우승으로 비무대
회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건만 세권표국의 표사들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대망의 껍질로 만들어 절세의 신병이기가 아니면 흠집도 낼 수 없다던 노장우
의 묵린편을 썩은 새끼줄로 만들어 버린 사군명.
그의 내공이 심오한 검법에 어울리게 정심했으면 더욱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이어졌을 텐데 그만 멀쩡히 서 있던 사군명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열광하는 중인의 함성이 채 그치기도 전에…….
하나 일개 마구간지기에서 표사가 됐고 표사가 된지 두 달여 만에 일약 대세
권표국의 표두 중에도 강하기로 소문난 노장우를 이긴, 아니 이길 뻔한 사군
명의 놀라운 무공은 아무리 얘기해도 싫증나지 않는 화제였다.
기인이사(奇人異士)가 수두룩하고 태산처럼 이름높은 명문거파가 즐비한 드넓
은 중원천지에서 일개 표국의 표사라는 위치는 미미하기 그지없었으나 최소한
세권표국에 있어서 사군명은 혜성처럼 나타난 기린아였다.
특히, 그에게 적지 않은 배려를 베풀었으며 표국의 존망이 걸린 사태를 맞아
고민에 휩싸여 있는 석백송에게는 작은 희망의 불빛이었다.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푹신한 양탄자가 깔린 방안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오, 어서 오게!"
음성은 반가웠고 말투는 정중했다.
사군명은 이미 마구간지기가 아닌 당당한 표사였고, 사람을 대할 때는 그에
걸맞은 예의를 차리는 석백송이었다.
한 쪽 벽면을 가리고 걸려있는 중화강역도(中華疆域圖)에서 고개를 돌린 석백
송이 표국의 기린아로 떠오른 사군명을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권했다.
"이리로 앉게."
"아닙니다. 이게 편합니다."
감히 국주와 마주앉는다는 것이 불편한 사군명의 사양은 통하지 않았다.
"자네는 사실 표두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니 나와 함께 앉는 것이 마땅한 일이
네."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국주의 말에 사군명은 더 이상 사양하지 못했다.
아직도 자신이 표사가 됐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고 표사들이 누리는 당연
한 혜택과 권리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영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사양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었다.
옻칠을 한 탓인지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팔선탁(八仙卓) 건너편 자리에 앉는
사군명을 바라보는 석백송의 눈길이 묘하게 빛났다.
"나한테 불만이 있을 텐데?"
석백송이 무얼 묻는 것인지 짐작이 갔으나 사군명은 고개를 저었다. 불만을
갖기에는 보환신단과 태극무허검보를 하사하고 그를 표사로 만든 국주의 은혜
가 너무 컸고, 무엇보다 그는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표두라는 지위가 갖는 혜택과 대우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미련은 없었다.
"국주님의 남다른 배려에 늘 감사하고 있을 뿐 불만은 있을수 없습니다."
젊은 사내답게 힘이 느껴지는 굵은 음성에서 거짓은 찾을 수 없었다.
"궁금한 일도 없는가?"
곤혹스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던 사군명은 이내 자신있게 대답했다.
"명령대로 따를 뿐입니다."
일신에 지닌 무공만으로 도산검림(刀山劍林)을 헤치며 살아가는 무림인과 한
푼의 이익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는 장사꾼들을
무수히 겪어왔으며 그 속에서 오늘날의 세권표국을 일군 석백송이었지만 사군
명의 태도에서 한 점의 가식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푸하하핫!"
석백송이 밝은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누구라도 의문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생각 없이 맹목(盲目)적인 충성을 바치는 자거나 신임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자라면 주저 없이 대답했을 것이고 충성보다 자신을 앞
세우는 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의문을 드러냈을 것이다.
하나 사군명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망설임은 솔직함을, 뒤이은 힘찬 대답은 맹목이 아닌 의지에 따른 충성을 나
타낸다는 것을 충분히 헤아릴만한 능력이 석백송에게는 있었다.
"능히 우승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쓰러지라고 했거늘 불만도 의문도 없다?
정녕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로군."
석백송의 기분 좋은 음성이 방안을 메울 때 사군명은 비무대회가 있던 날 밤
의 일을 떠올렸다.
태극위진 일초로 영사신편 노장우의 묵린편을 토막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믿
어지지 않아 멍하게 서 있던 그에게 노장우가 패배를 인정하는 소리가 꿈결처
럼 들려왔다.
그 순간, 하늘이 떠나갈 듯 이백여 사내들이 외치는 우렁찬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는 환호에 답할 생각도 못하고 눈앞에 벌어진 엄청난 사실에 당황할
뿐이었다.
'내가, 내가 영사신편 노장우 표두를 이기다니……!'
국주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여름날 쏟아지는 장쾌한 소나기처럼 요란하게 허공에 울려 퍼지는 중인의 함
성 속에서도 그 소리는 또렷하게 그의 귓가에 울렸다.
말로만 듣던 전음성(傳音聲)이었다.
"공력이 달린 것처럼 쓰러져라!"
틀림없는 국주의 음성이었고 남모르게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때 마주
친 국주의 깊게 빛나는 눈빛은 전음성의 주인이 자신임을 확인해 주었다.
사군명은 망설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승리의 감격이 아니더라도 전신의 혈맥은 힘차게 고동쳤고 사지
백해에 흐르는 공력은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 넘쳐 났지만 국주가 쓰러지라
면 쓰러질 뿐이었다.
사군명은 쓰러졌다.
어설픈 연기가 들통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비록 내상을 입고 쓰러지긴 했으나 분투를 가상히 여겨 상금은 내려졌다는 소
식과 다른 표사들이 능히 백 명을 상대할 만한 표사라 하여 자신을 백기표사(
百騎 士)라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국주의 명으로 옮겨진 표국내 의방(
醫房)의 침상에서였다.
잠시, 이틀 전의 일을 회상하던 사군명이 고개를 들자 석백송의 의미심장한
눈길과 마주쳤다.
충직하기 이를 데 없는 수하를 바라보는 국주의 눈길.
"무리한 공력의 운용으로 기혈이 뒤엉켜 요양하는 것으로 할 터이니 별명이
있을 때까지 의방에서 나오지 말고 이것을 외우게."
국주가 내민 것은 동북로총람(東北路總覽)이라는 붉은 제목이 선명한 책자였
다.
두께는 얄팍했으나 크기는 보통 책의 두 배쯤 되는 책자를 받아든 사군명에게
국주의 나직한 음성이 이어졌다.
"육로(陸路)와 수로(水路), 산중의 작은 오솔길까지 포함해서 항주에서 북경
까지 갈 수 있는 길과 주변에 할거한 모든 세력에 대한 정보를 적은 것일세.
하나도 빠짐없이 암기하게!"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명령을 따르는 게 중요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책자를 소중히 갈무리한 후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사군명의 뒷모습
을 바라보며 석백송의 가슴에는 희망과 자신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숨겨진 패가 생긴 것이다.
쓰기에 따라 운명의 승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숨겨진 패가.
사군명은 방에 들자마자 침상에 걸터앉았다.
아마도 국주의 명이 있는 까닭이었겠지만 그는 의방에 있는 다섯 개의 방중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었고 그가 있는 방 주위로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가 실려온 뒤 고승후를 비롯한 몇몇이 문병을 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문 앞
에서 그들을 막아선 의원이 기혈이 들끓어 혼절한 환자를 치유하려면 안정이
우선이라며 제지하는 소리를 그도 들었던 것이다.
사군명은 국주가 전해 준 책자를 품속에서 꺼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사군명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항주에서 북경까지 가는데 이렇게 많은 길이 있었던가.
장강의 범람으로 고향을 떠나 이곳 항주에 이르기까지 수천 리를 떠돈 그였지
만 부모를 잃은 충격과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린 탓인지 어린 시절 헤매고 다
닌 산천은 기억나지도 않았고, 표국에 몸담은 이후에는 심부름을 겸한 성내
나들이가 고작이었다
표사가 되고서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아서 일곱 번의 표행을 하며 그나마
절강성 일대를 다닌 것이 그가 경험한 '바깥 세상' 혹은 '천하'의 전부였다.
하나 그야말로 구주팔황(九州八荒)을 누비고 다닌 표사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
으며 마음속으로는 이미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그이기도 했다.
약간의 허풍을 감안하더라도 표행에서 돌아온 표사들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는 얼마나 그의 가슴을 뛰게 했던가.
전설과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수많은 산과 강,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
그리고, 곳곳에 자리잡은 거대한 도읍들과 그곳에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표사들이 녹림도와 마주쳐 예물을 놓고 실랑이했다거나 생사의 일전을 치른
이야기를 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불끈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강호를 주유
하며 협행(俠行)하는 무림인들을 만나 교분을 쌓은 것을 자랑할 때면 기필코
표사가 되리라는 결심을 굳게 다지기도 했었다.
길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항주가 속해있는 절강성을 출발해 안휘(安徽), 하남(河南)을 거쳐 북경이 있
는 하북성(河北省)으로 들어가는 길과, 강소(江蘇)와 산동(山東)을 가로질러
가는 길.
그나마 두 갈래 길은 사람으로 치면 등줄기였으니 중간에 지로(支路)까지 합
하면 대략 십여 갈래의 길이 있었고 지로를 택할 경우 거리는 더욱 늘어났다.
어느 길로 가든 중간에 거쳐야 하는 도읍이 수십 곳에 달했고, 관도로만 간다
고 해도 칠천 리에 육박하는 거리였다.
관도라 해도 길의 상태가 같지 않고 표행일 경우 빈 몸이 아닐 터이니 평균
잡아 하루에 칠십 리를 간다고 할 때 무려 백여 일, 세 달이 넘게 걸리는 머
나먼 여정이었다.
물론, 산이나 계곡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공을 지닌 절세의 고수라면 천하가
내집 안마당이요 북경도 코앞이리라. 아니, 보통 사람이라도 중간중간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내달리면 여정은 훨씬 단축되리라.
하나 마차나 수레를 호송해야 하는 표행의 경우 백 일도 넉넉한 시간은 아니
었다.
수로(水路)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
그러나, 항주에서 북경까지 오천 리에 이르는 대운하(大運河)에는 바닥이 높
아 상습적으로 길이 끊기는 산동성 임청(臨淸)에서 제령(濟寧) 구간을 제외하
더라도 오랜 가뭄 탓으로 바닥을 드러내어 물길이 막힌 곳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녹림패들과 달리 수로를 관장하는 수적(水賊)들과는 교분이 없다는 것
을 감안하면 수로를 택하는 것이 어쩌면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몰랐다.
"과연 천하는 넓고도 크구나……."
문제는 비단 칠천 리에 달하는 거리만이 아니었다.
각지에 웅거하여 주인임을 자처하는 녹림당과 토호들이 산이면 산, 고을이면
고을마다 없는 곳이 없었고, 텃세를 자부심으로 아는 속 좁은 무림방파가 도
중에 적지 않았으니 그들을 헤치고 가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경험 많은 표사들이 감숙(甘肅)이나 사천(四川), 운남(雲南) 등지로 떠나는
표행에 비하면 북경 행은 유람이나 다름없다고 떠드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막
상 상세히 그려진 지도를 앞에 놓고 보니 유람길이라는 북경 행도 그리 수월
한 여정이 아니었다.
하나 사군명은 가슴이 뛰었다.
국주가 그에게 이 책자를 건넨 것은 머지않아 북경으로 표행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에게 있어 험난한 여정은 차라리 가슴 떨리는 모험인 까닭이었다
"북경이라……."
말로만 듣던 황도의 번화함을 떠올리는지 나직이 뇌까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
고 있던 사군명은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책자에 고개를 파묻었다.
표행의 성공여부는 출발전의 준비정도에 따라 좌우된다는 표국의 금언(金言)
을 진작부터 가슴에 새기고 있던 그였다.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예측하지 못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표행길에
서 철저한 계획과 준비는 그나마 위험을 감소시켜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람은 물론, 말과 마차를 비롯한 장비를 철저히 살펴 최상의 사태를 유지하
고, 쉬어갈 곳과 지나칠 곳을 점검하여 가능한 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
이야말로 더 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위험은 의지와 관계없이 닥치지만, 표행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은 노력에 따
라 얼마든지 가능했고 그런 노력이야말로 위험을 피하게 하는 지름길임에 틀
림없었다.
지금 석백송이 건넨 책자를 꼼꼼히 살피는 사군명은 어쩌면 벌써 표행을 시작
한 것일지도 몰랐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ㄴ이다~~~~~~~~
즐.독. 하고있읍니다
감사합니다
ㅈㄷ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