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 넘는 긴 시간동안 나는 무릎에 테이핑을 감고, 진통제를 삼키고 있다. 한달 전과 달라진 점은 이젠 눈물도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한달 전에는 아파서 눈물이 났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러워서, 억울해서 한달 내내 눈물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도, 서러워도 눈물이 나질 않는다.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는 나는 오늘도 무릎에 테이핑을 칭칭 감고, 진통제를 삼키고, 수액을 맞으며 다시 뛸 준비한다.
아시안게임까지 앞으로 3주, 다시 돌아가자! 예전의 나아름으로... 다시 돌아가자! 내일이 없는 원래의 나로...
8월의 어느 날, 선수촌을 오가다 "소백산 희방사에서의 1박 2일 탬플스테이 참가 신청 안내글"을 보았다. 탬플스테이는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기에 자연스럽게 안내문에 눈길이 갔다.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주말에 쉬어야지, 이 몸으로 어딜 간다고?!'
버킷리스트라고 말하면서도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스스로를 보며 쓴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래도 일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미 다 마감됐을 거야!'
그렇게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마음에서 지우고 잊어버렸다.
9월 8일 저녁, 친구이자 여자복싱 국가대표 오연지 선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름아~ 내일 탬플스테이 같이 갈래?"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몸이 아닌 마음의 회복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그래! 같이 가자!"
연지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는 탬플스테이를 위한 간단한 짐 정리를 시작했다. 여행 가방을 싸는 동안 내 가슴에는 미약하나마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느껴졌다. 무릎 부상 이후 내 마음은 지쳐있었다. 좋은 일도, 기쁜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돌덩이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다시 두근거린다. 같이 가자고 제안해준 연지가 고마웠다.
(생략)
쉽지 않았고, 잘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때 내 마음은 '명상은 처음이잖아. 잘하지 못하면 어때?!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괜찮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잘하고 싶었다.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혜오스님과 함께 했던 '별보기 명상' 시간, 누워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는 동안 문득 자전거 선수로 입문했던 나의 '처음'이 떠올랐다. 클릿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해 넘어지기 일쑤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웃음이 났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또 언제나 잘하는 사람도 없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명상을 통해 비워낸 마음에 이 마음이 들어왔다. 지금 나는 아프고, 힘든 사람이란 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친 내 마음이 다시 힘을 얻어서일까? 아팠던 내 몸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안게임을 13일 앞둔 지금, 나는 열쇠를 되찾은 기분이다. 그 열쇠로 나는 담담하게 '선수 나아름'의 마지막 상자를 열어볼 생각이다.
걱정하지 마! 아름아! 지금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생략)
하지만, 비록 개막식이라는 축제는 즐길 수 없어도, 아시안게임이라는 축제는 가능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즐기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설레고, 즐거운 저의 마지막을 위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