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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
쉬어가는 이야기
갑자기 모처 에서 연락이 왔읍니다. 나의기계에 대하여 제의를 한 것이 연락내용인데
사실 나로서는
빛과 에너지라는 타이틀을 윤곽하여 명색이나마 확 하고 머리에 들어온것이 있는데, 이 모뎀이 나의 입지를 세우게 한후 여러 인연과정을 통하여 (주로 책과, 경전말씀, 그리고 인연있는분) 발견하였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잘 되새기고 있읍니다.
이후 약 33년 전부터 연구하고 있던 이 기계를 실험운영하였던 사실을 말함인데 이 목적을 위하여 , 조금 번다는 돈이라는 것은 거의 다 쏟아붓고 올인지락을 추진하는 과정이였는데....이번에 모처에서 연락이 온 것이며 일종이 러브콜이였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나이에 러브콜 아니면 받겠읍니까, ㅎ)
해당 기계는 말입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계입니다.
현재 주어진 이론 논리와 과학적 사물의 이치개념으로서는 정의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현실적 논리로서는 비논리적이치의 기계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런고로 퍼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서나의 입장을 마주하고 대면해서 바라본다면 조금 돌아버린 인간으로 타락하여 되지도 않는 것에 열중한다! 이렇게 보눈 관점이 보편적으로 정의 될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웃어야 합니다. 그냥 言中無骨(언중무골) 입니다, 할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러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친구들의 카페 에 소개하는가에 대하여는 아주 자명합니다.
그것은 나의 머리부터 발 끝가지 저의 장단점을 다 아는 인연이 바로 고향친구이고 동창이라는 사실이고
선후배라는 사실입니다. 살아오는 소식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다 알고 있는 고향동기들을 상대하여 주절 주절 떠 들어대는 소개글들속에 이를 압축하여 풀어내게되면
빛과 에너지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이 내용이 다 들어가 있어 산재해서 분포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읍니다.
성인이신 예수, 석가모니, 공자, 복희 ,주문왕, 등의 경전을 축약하여 풀어내면 역시 빛과 에너지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치가 있기때인데 모든 경전을 일일이 소개하며 그 까닭의 전모를 해의할 수 있는 시도를
친구들에게 시도하는 것도 이 이유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성인들의 말씀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 근거전제는 빛과 에너지라는 것에 대한 내용은 모두 경전의 말씀이니 모든 진리의 이치는 성인들의 권리이며 이를 재 발견하게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진지하게 경전의 말씀을 항상 소개 하는 것이
아니며 제 이야기가 아닌것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 틀을 세우기 위함도 목적이 됩니다.
모든 경전은 빛의 맥락에 대하여, 성인게서의 온존하신 말씀을 확실하게 밝혔으나 경전말씀이면에 주어진 象(상)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소이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본인으로서는 경전 소개말이다 할 수 있읍니다
달리 어떠한 의도도 없는 것입니다.
경전중의 일부분의 발견된 말씀이 빛과 에너지 가 된다는 사실을 전해주고자 하는 뿐이고 이를 연구하자는
것을 말합니다.
성인들께서는 빛과 에너지 이치를 말씀해 놓으신 것에 대하여 이를 발견한 것이 죄가 되면 죄가되는 일이고
도라이가 되면 도라이를 자처해야 한다는 사실만 전제하게 되는데 이를 짊어지고 가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이것도 개인적으로는 사명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도 가능하기도 합니다만.... 이를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내탓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빛과 에너지 말씀에 대하여 어떤 잘못된 점을 소개한다면 그것은 전척으로 제 책임입니다.
하지만 이를 거듭전제합니다만 ,,, 발견함이란 사실에 전제하고 근거해서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발명이라 한다하면 이것은 실패를 전제하는 것을 유발반복하는 것이므로 발견을 주장하는 저로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것입니다.
저는 사실인 것입니다, 보고 말한다 입니다.
그러므로 제 경전의 소개글이나 주역의 의미를 접근하는 방법은 발견이 난해한것을 새롭게 발견지점을 소개하므로서 유별날 것입니다.
이는 빛을 모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전의 맥락을 우회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고로 전 지구상의 보편적인 상식의 정의와 진리라는 명목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 될 수도 있는바 (실제로는 맥락이 같지만 생소하게 이해될 수 도 있음)
나의 현재의 지론과 주장이나 진리의 면면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처드는 것은 마치 객관적인 현 주소의 상식적인 잦대를 비견하여 표현한다면
九牛一毛(구우일모) 이고 燕雀之辯(연작지변) 밖에 안 될 것입니다.
<아홉마리 소 가 있는데 그중에 소 털의 터래기 한개 이고 제비와 참세가 떠드는 말 밖에는 아니된다는 뜻>
그런데 터래기 하나도 소에 붙어 있는 것이고 제비와 참새가 떠들어도 떠드는 흔적이라도 증빙해나야 하는
것이 나로서는 최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구들이, 이 해당 풍우회 57 카페글이 결국 나의 부적이 되는 것입니다.
소 아홉마리와 비견된다 이 말입니다.
결국 친구들을 최후적으로 해당 빛과 에너지의 모든 소식을 다 풀어놓고. 그리고 부대하여
우리 친구들이 다 입증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다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 결국 말을 바꾸어 말한면
전 세계에서 저의 이 도라이변을 가로채려 하여도 친구들이 입증자가 되고 다 확보한 증거력을 발판으로 되어졌으므로
도저히 이 소급점의 이미 밝힌 내용을 전도시킬 재간이 없다 이 말입니다,
읽든 안읽든간에 이미 카페란에 다 소개된 족적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적이란 용어를 감히 쓰는 것입니다.
어떻든간에 욕망이 아니라 빛과 에너지의 이치를 보호하고자 하는 차원이된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강한 부정의 위치에서 이 명백한 가치가 바람따위에 휘둘려 날아가거나 변형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허라 함은 발명이지 발견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보장성을 확립한 수단도 현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러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어떤 누구라 할 지라도 (단체나 개별적인 전문가 행세를 하는 분들 , 정치가나 성직자)
이러한 빛과 에너지 논리를 스스로 자기네들이 세웠다라는 반론을 제기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이 되는 인식의 공유선상이 올때까지는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고, 또한 함께 친구들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어느 일면의 계기로 자리잡아 시퍼런 딩딩 노다지 보물을 발견하는 자리도 될 것이라 의심치 않기
때문에 57 풍우회 등 선후배들이 이용하는 페이지는 저의 부적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희망으로 가져도 좋읍니다, 나의 일면적인 지식 자산도 역시 친구들이 자산이기도 하고
친구들이 이해하고 포용해준 도라이 변이므로 서로 결부지어지므로서 다른 의도를 품을
여러가지 현실세계의 응용사업과 변수를 능히 차단할 수 있는 연역의 확고한 시간적 승계의 울타리를
이미 확보학4ㅗ 소이를 잡아쥐고 있음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자만은 아니며 교만은 아닙니다.
오로지 발견한 발견자가 있을 뿐입니다.
아직은 이 발견된 장소가 어딘지는 어누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았읍니다.
말 할 수도 없는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발견한 이야기만 하는 곳은 고향 의 모임 동아리 인 친구카페란이라는 것입니다.
소중한 마당입니다.
만에 하나 나의 이론이나 이치 그리고 입증할 수 있는 것을 기계로 다른 세력들이나 단체 및 개별적인 전문가들이
이를 이용하여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거기에는 부적이 된 20 년이 넘게 기록한 저의 소개글 앞에서 자기네들이 해 놓았다고 주장할 까닭도 전혀 용인되지 않는 장치가 바로
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실 있는대로 유지되고 변형되거나 남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개별적인 욕심있는가? 전혀 아닙니다. 공존의 법칙으로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성인들께서 경전으로 다 말씀하신 것이므로 저의 몫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며 드러내므로서 저의 관할도 아닌 것이 됩니다.
오로지 남은 것은 시간의 계승점을 확보하고 그 계기에 때를 잡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와 논리는 전부 성인의 말씀이므로 성인들께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곤곤하고 힘들고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부처님 예수님게 맡기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는 것이 바로 발원을 하는 자세를 정립하는 것임이 종교인 것입니다
이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니 성인들의 소관자리가 되는 것으로서
지평을 열어야 합니다.
단 빛은 생명이요 진리라는 사실에 대하여 이 빛을 운용하는 자 들이 바로 인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야 합니다.
그 까닭은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 부처님의 성품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그런고로 발명이 아니고 발견인 것입니다.
성인들게서 창조하신 것이고 우리들은 단지 발견한 것 이지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은
빛을 운용하는 지위를 지니는 능력을 품수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돌이켜 깨어나라 하신분이 예수님의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전문가와 의논하면 안되는가? 하고 의문 할 수도 있읍니다. 어차피 공유 이니까...
저는 전문가는 못 믿읍니다, 소양도 실력도 성인의 말씀을 이해하는 그 어떤 소양가치의 전모에 대하여는
전혀 믿을 수가 없읍니다. 그러한고로 자기의도로 발전시킬 영향이 있고 이러한 우려는
많은 여파를 세상에 혹세무민 하게 되는 도리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쉽게 됩니다.
모든 진리는 와전되어 역사물줄기를 잡고 멀리 멀리 흘러갔다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 합니다.
손을 펴면 무엇이고
손을 오무리면 무엇이며
손을 주먹처럼 지으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실제적으로 의미를 살펴본다면
이재명이가 개별적으로는 정치를 때려 치우고 싶지 않겠읍니까?
하지만 놓을 수 도 없고 포기할 수 도 없는 함정에 빠져버리고 말았읍니다.
이미 세력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개별적의 의지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갈때까지 가 보는 것으로만 인생의 일정을 묶어 놓은 것이 현 이재명 정치인의 숙명이 된 것입니다.
돌 하나 던지는 일입니다.
이재명이는 좋은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숙명이 그렇게 만들어 놓지 못한다...
이것이 세상인심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잘못하여서 죽임을 당했읍니까?
부처님게서 잘못하여서 자기 나라 석가국을 등졌읍니까?
진리의 발견자리를 밝히는 것도 사실 상당하게 위험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옛적이나 근대사나 지금이나 똑 같다 이 말입니다.
이미 이재영의 종합적인 정치운명관이라 한다는 것은 자석에 끌려가는 식으로
역사적이 추이로서 김대중 의 영향지하에 주어진 좌파식 운동가와 휩쓸리지 않으면
아니되는 상태이고 서로 결부된 세력의 추이는 어떤 세력을 구축하고 이미 목적반응이
자기 합리화로 세상을 평가하는 의도로 권력을 차지하고자 한다 이 말입니다
이재명의 청지적 의지는 이처럼 뜻 하지 않게 뭉쳐서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브레이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재명은 개인적으로 혼자 어떻게 자기 의지를 끌고가는 입장이 못된다 하는 형편을
숙명적으로 받아쥐어야 합니다. 이와 같읍니다.
진리를 논 하는 것은 그렇데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댜
그러므로 성인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라는 소임을 행할때는 언제나 성인들의 이름으로 행하라 하셨읍니다.
진리이기 때문이지요.
이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성인들께 모두 맡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와 진실은 성인들께 나옵니다. 섭사나 섭리라 오로지 성인 말씀에 기인해야 합니다.
이를 성인의 이름으로 행한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합장-
부처님의 이름으로 발원합니다 - 합장-
이 뜻입니다.
어떠한 진리의 발견은 공유의 틀을 발전시키는 문명의 정직한 태도로 모험하는 일련의 정의적 의미이지만
더듬거리며 예방주사를 맞으면서 가야할 가치에서 성인들 말씀에 지침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빛과 에너지의 증명과 말씀은 성인들께서 이미 다 만들어놓은 것이 되고
저는 이를 발견한 자 밖에 아니된다는 사실을 전제하므로 성인의 이름을 주장하는 것이므로 안심할 수 는 있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소욕은 이미 관계가 떠난 입장이므로 떳떳하다... 도라이가 되어도 떳떳하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궤변적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현주소의 실정 선상에서 이 이치는 빛과 에너지를 해결하는 소이점을 늘어놓는 방법은 우선 부적이 최고 의 가치가 되는 고유명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인의 말씀을 입증하려고 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자 들로서는 제일먼저 인연이 우리 친구들이 된다 이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읍니다.
카레란의 글이 어디 도망다닐까요? 글이 도망간다 칩시다, 다들 공존할 수 있는 마음거량에 진구들한데
선의적이든 감정적이든 간에 어떤 견해이던지간에 다 물고 다 들어가 마음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변경이 불가능하다 이 말입니댜, 나의 소개목적의 부분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힘의 세력권을 쥐고 있거나 경제력으로 확보한 권한의 큰 힘이라는 배경은
진리를 슬로건으로 내 걸지는 않읍니다.
오로지 정의마져도 힘으로 합리화 시키는 성격이 있다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혼재된 정의 앞에서는 오로지 이익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익을 초월한다는 것을 표현할때는 사리(捨利) 라 이름합니다.
버리는 이익 을 사리라 함인데 부처님 생존시에는 십대제자중 사리자 라는 이름이 있읍니다.
반야경에 " 사리자여!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고 관자재 보살이 사리자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득을 초월한 자 입니다,
요즈음 선지식인을 다례로 화장하여 태우시면 "사리"가 나옵니다.
영롱한 구술같은 것을 말합니다, 불에도 안타고 영원한 족적 사리로서 선지식인을 판단하는
거량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 사리가 捨利(사리) 로 한자어를 써야 합니다.
이득을 초월하는 어떠한 주장은 변하지 않읍니다ㅡ,, 빛과 에너지 의 진리말씀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 말씀과 같읍니다. 그러한고로 저의 성인의 말씀 소개글은
사리어가 되기를 발원하는 것이므로 이익을 초월하는 정신을 유지하려 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라이 변은 감추면 감출수록 죽읍니다. 그런고로 개방해야할 여지를 남겨야 합니다.
그런데 인적 및 주변의 인지도가 전혀 없는 다른 객체상대들의 외부에 개방 해 봅시다, 누가 날 사람 취급하겠읍니까?
지금은 웬 개가 짖노 정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를 이해한다 하여도 목적의 취할바가 다르게 변형되게 되어있을 우려가 있으므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이 있어도 그나마 사람 취급안하는 입장을 타방들은 오직하겠읍니까?
하지만 친구들은 그냥 이해하고 포용하지 않읍니까?
뭐! 우애노? 친구인데, 그냥 놔 둬라 ! 하는 정도는 될 것 아닙니까? 그러한 이해와 관용의 지정이
바로 진구라는 것이고 고향인연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대상이지요.
그러므로 고향은 중요한 거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정보를 모든 친구나 동창들이 이미 확보했다는 사실을 나는 부적이라 이름합니다.
읽으신 분이나 안 읽으신 분이나 매양 똑 같읍니다.
이 카페란을 이용하는 나는 분명하게 여러분의 친구이며 선 후배가 될 것이며 공유자가 된다는 사실의 전제없이는 할 수 도 없는 일입니다,
또한 내 꼬라지 장단점 그리고 역사적 연역 등에 대하여 다 보고 다 아는 분들이 나의 동기여려분 아니겠읍니까?
제가 스스로 카페란이나 불로그를 형성하지 못 하겠읍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말하건데
나의 치부들이 나를 이만큼 어떤 한 곳으로 집중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친구들은 스스로의 어떠한 치부나 단점, 불리함등이 있어도 절대로 상관하지 마십시요.
그것을 도리어 밖으로 내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염려는 일 도 없기 때문입니다. 별거아닌 것입니다.
어느누구에게나 있는 단점이나 불리한 점에 대하여 이를 드러내지 못하므로서
더욱 위축되고 비굴해진다는 사실을 분명 깨달아야 합니다.
(실로 실생활을 함께 도모해야 했던 내자 입장에서는 기가막히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나이 25 세 결혼해서 28세에 아버지사업 부도내고 쫄딱 망해서 실패자로 낙인찍혀 살다가, 무신 혁명운동가도
아니고 방황하며 객지판을 돌아당기다가 제 나쁘다는 사람 다 사귀고 그나마 지만 잘났다고 꾀도 없이 돌아당기다가, 갑자기 뜻 한 바 있다고 하면서리 멀쩡하게 돌아당기지도 못하게 노바닥 집주변에 형사들이 왔다갔다 하는 상태인지라 이는 도저히안되겠다고 하면서리 무신 경건한 목소리 한번 하더니만 코 맹맹이 소리 한번 내 지르고 지 살겠다고 경찰서에 자수하여 끼 잡혀 들어가서는
징역까지 한 오년 꿉고 나오더니만 말입니다, 그것도 좋다 이 말입니다 , 그렇게 해서 정신차렸다면 살림살이나 잘 일구고 자식 새끼 들을 잘 돌보고 잉여 인생 참회 나 하고 살아도 받아줄까 말까, 시원하지 않는 판에, 또 정신 안차리고 돌아댕기는 것이 개우 무신 기계만든다고 설처대는 꼴이라는 것은 같은 인연으로 살아가는 입장으로는 얼매나 한심할까 이 말입니다. 누구나 인생지락 펴게되면 한편의 드라마이겠지만 나의 드라마도 극적인 꼬라지를 많이 연출한것은 아닌가 이 말입니다,
결론은 버킹검입니다. .
도저히 너 같은 인간하고는 다시 살아내는 계획조차 지니는게 더 없는 사치다 하며 보따리 하나에 묵어진 내 옷보따리 내어주고 잘 살아내라 하며 자식이나 지켜야겠다 하고서는 이별통고의 일방적인 판결을 하고 저를 쫓아낸 내자에 대하여도...그럼에도 뒤를 돌아보면 히죽하고 그 와중에도 싱거워 빠질 정도로 기계이론에 정신이 없었던 일이 있었는데,
돌아다니는 역경의 굴곡짐도 그렇게 즐거웠다는 사실이 늘 내 정신머리에 앉아 있었읍니다 그것은 빛과 에너지라는 원리를 내버릴 수 없는 것이였기에 이를 시도한 기계실험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이 돌았지요. ㅠ
이 와중에 70 년 의 연구과정이 인생살이 과정을 모두 점유하고 말았읍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존재한다 이 말입니다,
실패하여도 나는 성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인가? 발명이 아니고 발견이기 때문입니다.
발견은 사실을 근거하는 것이며 특별한 것은 아닌까닭이므로 소유할 수 도 없는 그런 자유로윤 권원입니다.
이 와중에서 모처가 나에게 제의를 하였던바, 긍정적으로 검토한후 공동연구의 분야로 할당해서 같이 연구 검토실험하는 단계를 허락하고 함께 연구실과 공간의 생활부분을 여럿이 하게된 연유로
갑자기 소개하던 글에 대하여 약 3 개월간 중단 말씀을 올린것입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한자 적는 것입니다.
주역, 황극책수 하락상수 육효, 음양오행의 전반적인 소개는 위의 성인말씀중에 동양철리를 밝혀내는
성인의 말씀을 비롯하여 우주관을 이야기하며 소개하는 것입니다.
사람의정신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모순과 대립의 이질적인 두기운이 마주하는 작용으로 운동이 나타나면서 나타나고 지각하는 현상(現象) 을 변화
라고 하는 것이니
전반적으로 우주에서 무궁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음과양의 두 기운이 지닌바의 승부작용을
변화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라는 것이 변화작용을 하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은 그와 같이 추진하는 어떤 힘의 근원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변화작용의 본체를 일단 파악해보자 하는 것이 위 주역 황극책수 하락상수
육효 음양오행의 전반을 소개하는 것이 된다 이 말이 됩니다.
뭉텅구리 윤곽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서양철학은 말입니다 무법칙적인 바를 지적당하여 늘 지금은 쇠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양철리는 법칙을 전제하는 진리의 본체를 밝혀놓아야 하는 전제에 충실하다는 사실입니다.
법칙이 전리입니다.
법칙없는 진리가 어디에 있읍니까?
법칙이나 진리라는 것은 그것에 뿌리박은 규칙을 밝혀야 합니다.
달과 해의 일월의 규칙적 운행은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며 인간이나 만물은 어떻게 화생하였다가
무엇때문에 죽는가?
정신의 본질은 무엇인가ㅑ?
칠정육욕은 왜 생기는가( 칠정: 기쁨, 분노함, 사랑함, 두려움, 우울함, 증오함, 욕심, 6욕: 안 이 비 설 신 의 에대한 욕심)
진실로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것이 우주변화의 결과이므로 그 결과를 사람의 길인 인도적인 면으로
요약하여 보면 선과악의 투쟁인 것입니다.
그런즉 그 결과를 인간의 순수이성에 의하여 가장 정확하게0 파악하는 것이 동양처리를 밝혀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말입니다.
우주운동에 대하여 서양에서는 F= ma(힘, 운동= 질량곱하기 가속도) 라는 공식으로 데카르트이 5 공리로 수학과 물리를 함축하여
주장하고 있고 이로서 증명하여 수학의 발전을 일으켰지만 반쪽 밖에는 아니된다 이 말입니다
대수학을 보지 못하는 측면으로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읍니다.
음양오행 본론에 들어가서 상술할 것이지만 문제의 향방을 바로게 지시하고 일반적인 예비지식을 제시하여
본체와 변화를 구별하지 않고 한번 논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설명하면 본체는 저절로 해명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변화 하는 본체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우주는 본래 지정지무한 상태에서 부터 생겨났던 것입니다.
지정지무 (至靜至無: 고요하고 아무것도 없는 ) 한 상태에서부터 생겨났다 이 말입니다.
다시 말한다며는 우주는 본래 삼라만상을 장식하는 모든 유형물체는 (형태가 있는 물체) 그 시초부터
형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우주는 적막무탈 하여서 아무런 물체도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연기 같기도 하여서 무엇이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없는 듯 하기도 한 진공(眞空)이 아니고 허공(虛空)이었던
것입니다.
이 상태가 바로 불이라고 생각하면 불이고, 물이라고 생각하면 물 같기도 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象(상)이라 합니다.
이 象(상) 이라는 개념은 형의 (모습)의 반대인즉 有(유: 있음) 의 반대인 無(무) 와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즉 象(상) 이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상계에서 무와 유의 개념은 절대적인 無(무) 라든지 절대적인 (有) 라는 개념은 아닌것입니다.
왜그런가 하며는 절대적인 무라든지 절대적인 유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유형은 언젠가는 무형으로 소멸될 운명에 놓여 있고, 무형의 象(상) 도 언젠가는 형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므로
形(형)과 象(상) 으로 되어있는 것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던 적막무탈한 상태가 그와 같은 유무의 화합체 였기
때문입니다.
상수학의 연구대상은 형상 속에 일어나는 변화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형상계라는 개념은 공기층을 뜻하는 것과 같으므로 , 유무의 개념도 상대적이고 절대적인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이목의 (耳目: 퀴와 눈) 경험에 느껴지지 않는 것을 無(무 ) 라고 하는데 그 개념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성질의 無(무) 를 象(상)이라고 하고 有(유)를 形(형)아라 하여 형상(形象)이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와같은 象(상) 이 바로 우주의 본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상을 송나라시대때 성리학은 적막무탈 하다고 하였고, 일부(一夫) 김항 은 묘묘현현 현묘중 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변화성은
우주의 본체가 통일하였다가는 분열하고 분열하였다가는 다시 통일 하는 그 <中> 인즉 이것을 우주운동의 본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자가 말한 무극은 그와 같은 中(중) 을 의미하는 것인즉 이것은 우주창조의 中 이며 천지의 본체다
라고 역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빛의 본질을 읽은 일부 (一夫: 정역의 창시자) 는 삼극의 (빛운동) 道 를 세워서
우주의 운동과 고요함의 본을 윤리화 하여 놓았던 것입니다.
윤리화란 굴러간다는 O 의 운동을 말합니다.
그런고로 무극은 中 이며 또한 空의 (O) 의 모체로서 중용지덕을 지니고 삼극운동으로 빛의 운동이 개시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인이신 예수님의 빛의 말씀을 하지 않고 오로지 동양철리로 빛을 규명하고자 소개하여 같음을
토론 해 보고자 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이 나이들어 못 할 말이 어디에 있읍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음양오행 하락상수학 개념을 알고 육호로 넘어가고 다시 주역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두서없이 쉬어가는 까닭과 연유를 소개하였읍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다시 소개하기로 하고 2024,9,15일 부터 새롭게 만나기를 기다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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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어려울때 부인과 애기들 힘들게 고생하는거
잠깐 봤어 지금 잘살고 있으니 듣기 좋다
곧 세상에 명성 듣길 기대해~^^~
아이고 야야! 말도 말아라. 어느남정네도 그러하듯이 "밤 깊은 마포종점 갈곳없는 밤전차" 신세 노바닥 겪었다," 남정네가 철없어도
여성의 빛 운동은 항상 모든것을 안고돈다는 사실이없으면 지구상에서 이탈될 위험속에만 있었지 않겠나 싶다. 이는 마치 지구상의 만유인력 법칙인데, 연구를 해보면 음전자가 양전자를 튕겨나가게 하기도 하고 안고 돌기도 하는 빛 운동을 볼 수가 있어요, 지금도 항상 내자가 나에게 斧瞳射(부동사) 를 한다 하여도 (도끼눈을 뜨시고쏜다 하여도) 안고도는 중력의 빛 운동을 구사하는 위대한 힘 덕분에 내가 까불고 있다는 사실은 정확하다 할 수 있겠지... 속말로 난생 처음고백하는데, 나의 내자도 그렇다는 것이지.. 여자들은 하여간 대단혀요...
친구한테도 동창아인가베? ㅎ 튕겨나가지 않은것에 대하여 늘 감사하게생각하는 바이네.. 영광있으라. 빛이 지난함을 안고 돌아갈때 양자의 자기장을 지닌 숫컷들이 여전히 까불수 있다는 사실이고.. 어쨋든 남정네들은 말이다 치마속의 범주에 벗어날 수 는 엄다.
결국은 댄서의 순정이 남자의 운명아이겠어? 바깥에 나와 어깨노릇하고자 하는 넘들도 집구석 가면 다 댄서의 순정이고 벨 볼일 엄따!
명성은 둘째이고 우리가 그러하듯이 온전한 일상이 되어지길 바라고. 우리동창생 여성들도 모두 치맛속 범주에 들어있는
남정네들을 사랑해주기를 바래! 여성이 남정네를 분리시키려는 힘을 발휘하면 그 날부터 남정네는 제삿날이 된다는 사실이제..
우리 동창여성들을 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중력의 힘이 괴력이야 ㅎ 노력해야겠지.. 인간은 어차피 기초적 일상의 온존함을
유지하게 하는것이 사명이라 생각하고는 있다. 친구가 많이 기도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