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대 모니터링.
드라마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개연성이다. 드라마는 분명 픽션이지만 개연성이 결여되어서는 시청자와 공감할 수가 없다. 드라마는 순수문학 또는 순수예술이 아니다. 시청자의 호응 또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대중 문화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연성이라는 것은 작가 또는 프로듀서와 시청자를 유대시키고 이해시키는 요소이다. 서정시대는 개연성이 그것도 많이 결여된 작품이었다.
작가는 알고 연출자도 알고.. 그러나 시청자는 모르는 것. 서정시대에는 그것이 너무 많았다. 물론, 단막극에서는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은 이해시키고 지나가야 했다. 인걸의 행위. 연욱의 행위, 하다못해 그들의 대사에 대한 뜻이라도.
극본이 길었다. 그러나 길었음에도 대사에 그런 당위성을 이입시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길었던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압축시키지 못하고 동강내었던 것은 또한 연출의 문제였다. 다른 시청자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이해했을까. 대본을 봤기에 이해한 부분들은.. 이해했을까.
인걸은 왜 정애의 딸을 따라다녔을까. 인걸은 왜 첫사랑을 다시 만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것을 작가는 왜 고백이라고 이름지었을까. 도대체가 이해 안 되는 것 뿐이다. 적어도 극본에는 나와 있는 것은 드라마에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 눈엔 인걸이 성추행범으로 보였다. 다 잘려나가 버린 드라마에서는 그가 첫사랑의 감정을 정애의 딸에게 다시 느끼게 된 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가 정애의 딸에게 느낀 감정이. 따라 다닌 것이 그와 별개의 감정이라면 그것에 대한 명백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인걸이 바라는 그 "필"이라는 것과 소녀에게 느낀 파랑새의 동경은 분명히 달랐겠지만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전해지지 못해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화면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으면 대본에 있는 내래이션이라도 넣었어야 했다.
두번째 테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욱은 테마 전반에 "나는 책 속에 갇혀버렸다"라고 했다. 책 속에 갇힌 연욱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고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사는 모습을 보였다. 차라리 "생활의 균형을 잃었다"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어쨌든 책속에 가두어져 있다,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었다.
세번째 테마에서 인걸과 연욱이 만난다. 이들의 만남도 어딘가 어색하다. 이사오자마자 친근감을 표현하는 이웃에게 매몰차게 문을 닫고 들어간다거나..그러다가 다급하자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고 그 집에서 잠들어 버리는 연욱의 모습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인걸이 연욱에게 전반부에 말했던 "필"을 느끼는 것도 억지스럽다. 당위성이 없다. 인간의 모든 삶이 당위적일 필요는 없지만 시청자들이 용납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은 있어야 했다.
그 후에 벌어지는 인걸과 연욱의 행위도 상당히 시청자와 유리되어 있었다. 작품 전체의 설정도 그렇고 연출도 상당히 어색했다. 그리고 정태였던가.. 그 후배의 어설픈 연기도 그랬고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연욱의 선배(?) 도 쓸데없이 많이 나와서 작품 전체의 톤을 흐렸다. 차라리 두 인물에 집중을 하는 편이 좋았을텐데..
그렇다고 좋지 않은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소재자체가 매우 신선했고 구성도 좋았다. 극본을 보면서 마지막 앤딩 부분에서는 사랑의 인사를 깔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비록 엘가의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인사 리믹스곡이 깔려서 좋았다.(기분이^^;) 또한 사랑의 시작과 끝이 아닌 끝과 시작을 보여준다는 발상도 좋았던 것 같다. 단지 극본을 보면서 가진 기대가 드라마로 상당부분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에 이렇게 많은 비평을 쓰게 된 것 뿐일 것이다. 지난번 모니터링은 칭찬이 많았는데..--;
소설에 있어서는 단편이 집중력이 높다는 장점을 가진다. 짧은 만큼 작가가 집중해서 쓰고..그래서 전체적인 톤이나 감정이 고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 있어서는 단막극이 이런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단막극을 유심히 봐왔는데, 작가들은 시간의 한계에만 매달리면서 긴 줄거리를 다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번 서정시대도 그랬다. 짧은 시간에 다 풀어내려면 내용만 나열하게 되고 드라마가 얕아지고 끊어진다. 차라리 가장 표현하고 싶은 부분만을 깊고 완벽하게 만들어야 진짜 좋은 단막극이 나오지 않을까.
아직 드라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내가 내 힘으로 완벽한 단막극 극본을 완성하지도 못했고 그나마 작업중인 작품도 이렇게 신선한 발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까지 비평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내가 글을 완성한다는 고통을 다 모르기 때문인 거 같다.. 좀 더 그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 내 모니터링이 좀 더..관대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