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한가로운 오전이었다. 정원의 분수대에서 솟아나는 물은 햇살을 받아 별처럼 반짝였고 화단 주위에는 벌들이 붕붕 날아다녔다.
정원 잔디위에는 스프링쿨러가 물을 방사형으로 뿜어대고 있었고 그 사이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드넓은 잔디 위에 스프링쿨러가 일제히 물을 뿜어대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파라솔이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아멜리아는 리나가 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리나를 바라보았다.
리나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는 아멜리아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이런. 아멜리아. 내가 중요한 일을 깜빡 잊고 오늘 양로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약속을 해버렸지 뭐니.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니?”
리나의 말에 아멜리아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물론 도와드리고 말구요. 외로우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상대가 되어드리는 것은 정의를 위한 일이니까요. 지금 당장 갈게요.”
그 때 접이식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잡지를 보던 제로스는 여전히 시선을 잡지에 고정한 채로 리나에게 말했다.
“가우리씨와 함께 양로원에서 데이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모님? 사랑과 봉사가 함께 어우러진 데이트.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제로스의 말에 당황한 리나는 도끼눈을 뜨고는 양 소매를 걷어붙였다.
“뭐가 어째??? 이걸 그냥 콱!!! 당장 아멜리아와 같이 가지 못해?!!!!”
아멜리아는 제로스에게 주먹을 쥔 채로 다가가려는 리나를 말렸다.
“제로스. 그러지 말고 우리 가요. 봉사활동을 하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제로스는 아멜리아와 리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양 손을 꼬옥 맞잡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아멜리아와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손가락 관절을 하나씩 꺾고 있는 리나.
빠져나갈 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자 제로스는 고개를 숙이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양로원에 있는 동안 제로스는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화장실에 데려다 주고 산책하고 싶다고 하면 휠체어를 밀어드리고 말을 걸면 대답해 주면되니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할머니께서 귀가 잘 안 들리신다는 게 좀 문제이긴 하지만 까다롭게 구시지는 않으셨다.
제로스로서는 아무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너무나 따분해서 짜증이 나기까지 한 상황을 신문에 있는 퍼즐 맞추기를 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 때 아멜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로스. 봉사활동 시간 다 끝났어요.”
제로스는 아멜리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사우나 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개운한 맛은 없었다.
제로스는 아멜리아와 함께 차를 타고 리나의 저택으로 가고 있었다.
“제로스. 봉사활동은 즐거웠어요?”
제로스는 아멜리아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아주 즐거웠어요.”
아멜리아는 미심쩍은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정말요?”
“정말이라니까요.”
아멜리아는 집요했다.
“그렇게 즐거웠다는 사람이 봉사활동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이 가버리나요?”
아멜리아가 계속 집요하게 굴자 제로스는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끝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군요. 솔직히 말하면 아주 지루했어요. 이제 됐나요?”
아멜리아는 제로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제로스. 화났어요?”
제로스는 계속 시선을 앞으로 둔 채 말했다.
“화 안 났어요.”
“정말요?”
“화 안 났다니까요. 됐어요? 이제 그만 두죠.”
제로스는 순간 아멜리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멜리아를 대하다 보면 평소 자신의 모습과 어긋나 버리고 만다. 제로스는 자신이 마음을 너무 놓아버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제로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아멜리아는 제로스에게 우스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로스는 아멜리아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아멜리아는 멈추지 않고 혀를 낼름거리며 도깨비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로스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겨우 참으면서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큭큭.........그만해요. 그만하라니까요. 운전하고 있잖아요.”
아멜리아는 계속해서 우스운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제로스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그만 두었다.
첫댓글 와 재밌게 잘 읽었어요;ㅁ;! 둘 사이가 그래도 좀 가까워진 느낌이네요. 9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제르가 티스는요...^^; 슬슬 나타날때가
쉬피드님..제르가디스는 유학갔어요-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