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임’의 약손
ㆍ비움·느림·쉼…경북 풍기 ‘국립산림치유원’에 가다
경향신문 |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0.07.08... 이 글의 출처 ☞ 원문보러 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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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지도사들은 산림에서 참가자들의 오감을 적극 이끌어내려 한다.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댄 채 나무향기나 새소리 같은 숲의 여러 인자를 느끼며 명상에 빠져드는 능동적 행위를 유도한다. 사진은 최근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국립장성숲체원 편백나무숲이다. 단,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장성숲체원은 운영이 중단됐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경북 영주시 풍기역에서 국립산림치유원(이하 치유원)까지 5㎞가량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길 이름 때문이다. 지도 검색을 하니 풍기역 부근 남원천을 건너면 치유원은 ‘테라피로’로 이어졌다. 치유원 주소도 봉현면 테라피로 209. 지난달 26일 오후 풍기역에 도착해 테라피로에 들어설 때만 해도 잘 판단한 것 같았다. 벼가 여름 바람에 물결치듯 휘날렸다. 옥수수는 하늘 위로 힘차게 뻗었다. 수확할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논밭 너머 풍기를 감싼 형국의 소백산맥이 보였다.
여름 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을 걷다 깨달았다. 여기는 국도다. 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둘러봐도 보행자를 위한 ‘치유길’은 없었다. 치유원에 가까이 가서야 테라피로란 이름을 실감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마실치유숲길(5.9㎞)로 향했다. 솔향기치유숲길(500m)에서 산악스포츠치유숲길(12.6㎞)까지 총 연장 43.8㎞의 9개 길 중 하나다.
■비우다
↑ 숲 체험 참가자들이 눈을 감은 채 마실치유숲길을 걷고 있다. 김종목 기자
이날 저녁 식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식당 메뉴는 단출했다. 잡곡밥과 두붓국에 생선, 버섯, 김치 반찬에 바나나 후식이 나왔다. 저염 식단이었다. 앞서 산을 오른 뒤라 단백질이나 기름진 음식에 반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채움’을 갈망하다 마실치유숲길 걷기 프로그램 이름이 떠올랐다. ‘비움’이다.
마실치유숲길 한숨쉼터를 오를 때 참가자들은 짝을 맞춰 걸었다. 눈을 감은 참가자를 동행자가 팔짱을 끼고 이끌었다. 산림치유지도사 김성화씨는 “청각이나 촉각에 집중하면서 다른 생각을 비우는 체험이다. 상대를 전적으로 믿는 신뢰를 북돋는 마음의 체험”이라고 했다.
소나무에서 송진을 긁어내 냄새를 맡았다. 이른바 ‘향기소통법’이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하늘을 봤다. 송진 냄새나 나뭇잎 같은 숲 치유 인자로 오감을 적극 끌어내려 한다.
치유원 프로그램은 ‘비움’ ‘느림’ ‘쉼’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 일반 휴양림이나 산속 캠핑장과 다른 점도 이런 목표다. 치유를 향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공간이다. 치유원 정식 명칭은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이기도 하다.
다스림? 지난 1월 나온 논문(‘산림치유효과의 불교적 고찰’, 서병찬)을 보니, 숲 환경은 오감을 작동시켜 탐욕, 집착, 증오, 성냄, 어리석음 같은 망상을 다스리게 한다고 한다. “사람은 다섯 가지 장애 즉,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 나쁜 의지, 게으름과 나태, 동요와 근심, 의심을 극복하기 위하여 숲속, 나무 밑, 산 중턱, 황야, 언덕의 동굴, 묘지, 숲속의 자주 드나드는 곳, 훤히 트인 곳이나 짚더미 위 등의 외딴곳에 잘 간다”는 <중아함경>의 구절도 소개한다.
■치유하다
↑ 치유지도사 김성화씨가 송진을 참가자에게 맡아보라며 권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숲의 치유 효과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피톤치드’는 유명하다.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보호하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두고 치유원은 “나무의 날숨은 사람의 들숨이 되어 스트레스 완화, 장과 심폐 기능 강화, 항균 작용을 돕는다”고 설명한다.
가장 최근 나온 조사 결과는 치유원이 지난 4월 낸 보고서다. 지난해 10~11월 국립 양평 치유의숲을 찾은 성인 10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참가자들의 ‘긴장’은 프로그램 참여 전 7.36에서 2.78로, 피로는 8.39에서 4.28, 분노는 7.30에서 2.22, 혼란은 8.14에서 5.34, 우울은 5.77에서 2.38로 줄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감소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NK세포가 증가하며, 안정된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나 노화방지에 도움을 주는 항산화 효소가 늘어난다는 건 흔한 건강 상식이 됐다. 숲을 두고 ‘마음의 약국’ ‘숲이 주는 천연 피로해소제’라고들 한다. 목욕에 빗대 풍욕이란 말도 나왔다.
김씨는 치유지도사 전 간호사로 일했다. 그는 “숲과 흙을 가까이하고, 야채 위주의 저염 식단을 챙겨 먹는 사람을 병원에서 본 적이 없다. 도시에서 고기, 술, 담배를 가까이한 이들이 병원으로 왔다. 건강하려면 자연과 가까워야 한다”고 했다.
■가다
코로나19 이후 뜬 여행지 중 하나는 숲이다. ‘3밀’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숲의 치유에 대한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적격인 장소다. 지난 24~25일엔 영남권 국가트라우마센터인 국립부곡병원 의사, 간호사, 심리치료사 등 총 18명이 치유원으로 와 숲나들이, 밸런스테라피(소도구 운동) 체험 활동을 하다 갔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웰니스 관광지를 선정하면서 네 곳의 ‘치유의숲’을 포함했다. 경북 김천의 국립김천치유의숲, 울산 울주군 국립대운산치유의숲, 경남 합천의 오도산치유의숲, 전남 장성의 국립장성숲체원이다.
김천은 ‘치유 두드林’(옛 장단에 맞춰 모듬북 치기) 같은 프로그램을 특화했다. 오도산은 경혈자극 안마, 반신욕이나 족욕 같은 온열 프로그램이 발달했다. 장성은 국내 최대 규모의 편백나무 숲(약 157㏊) 자체가 강점이다.
치유의숲이나 숲체원 프로그램은 본산인 치유원의 그것과 비슷하다. 숲 걷기나 숲에서 시각, 촉각, 청각을 증진하는 명상 같은 ‘아웃도어’ 프로그램이 기본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숲체험 프로그램도 대부분 진행한다. 세종시의 세종유아숲체험원은 이름 그대로 유아를 위한 자연 체험에 중점을 둔다. 시설에 따라 안마나 음파반신욕 같은 장비를 이용한 ‘인도어’ 프로그램을 병행한다. 국립치유원, 숲체원, 치유의숲은 전국 15곳이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 홈페이지(fowi.or.kr)에서 각 시설 개요를 확인할 수 있다. 치유원과 숲체원만 숙박 시설을 운영한다. 진흥원이나 치유원(daslim.fowi.or.kr)에서 횡성, 칠곡, 청도의 숲체원을 예약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2~20인실까지 갖췄다. 가격도 1박 3만원대에서 9만원대(2인실 기준)로 각각 다르다. 치유원은 8주짜리 장기 체류 프로그램도 갖췄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와이파이도, TV도 설치하지 않은 건 공통점이다. 집들은 목재와 황토로 만들었다. ‘복지’를 지향하는 시설이라 휠체어나 유모차 이동이 가능하다. 치유원은 장애인 이용자를 위해 미닫이 화장실을 갖춘 숙박 시설을 새로 짓고 있다.
대전·장성 숲체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확진자가 나온 양평의 치유의숲과 하늘숲추모원, 곡성의 치유의숲도 갈 수 없다. 치유원의 ‘수(水) 치유센터’도 감염 예방 때문에 운영하지 않는다.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숲체원이나 치유의숲은 대부분 산속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 스트레스 훌~훌 날릴 ‘언택트 관광지 100곳’
지역관광기관협의회가 선정
↑ 춘천 의암호 자전거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관광공사와 7개 지역관광공사로 구성된 지역관광기관협의회가 ‘언택트관광지 100선’을 최근 발표했다.
100선엔 코로나19 시대 관광·여행 트렌드가 드러난다. 100선을 꿰뚫는 키워드는 ‘길’ ‘숲’ ‘공원’ ‘캠핑장’ ‘문화재’ ‘섬’이다. 이른바 3밀과의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곳들이다.
서울 지역을 보면 아차산이 서울 시내를 360도 전경으로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꼽혔다. 무장애 둘레길을 갖춘 배봉산, 오래된 골목길의 정취를 갖춘 북정마을도 선정했다. 국립 4·19민주묘지는 솔밭근린공원과 북한산 둘레길과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골랐다.
경기는 동두천자연휴양림, 잣향기푸름숲, 바람새마을소풍정원, 깃골생태공원 같은 숲이나 공원이 뽑혔다.
경북은 호미반도해안길, 금오사올레길, 벌영리메타세쿼이아길, 낙강물길 공원 ‘길’ 위주로 100선에 들어갔다. 대전도 만인산자연휴양림, 뿌리공홈, 채청호 오백리길, 계족산 황토길이 선정됐다.
강원은 논골담길, 의암호 자전거길, 이사부길이 꼽혔다. 전북은 장수누리파크, 고산창포마을, 전남은 광주호호수생태원, 우수영, 펭귄마을 등지가 100선에 포함됐다.
부산? 산과 바다다. 장산과 황령산, 다대포해수욕장, 아미리공원과 평화조각공원, 대저생태공원, 기장 치유의 숲이 들어갔다. 인천은 교동도, 석모도, 동검도, 굴업도, 이작도 등지다.
제주는 서건도, 거문오름, 물영아리오름, 고살리 숲길, 신풍리 밭담길이 뽑혔다. 북촌리 4·3길은 제주도민이 겪은 역사교육 현장으로 조성된 곳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에 들어가면 100선 지역 소개와 주변 여행지 등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공사는 지역관광공사 등에서 각각 추천한 해당 지역 관광지에서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 ‘개별 여행 및 가족단위 테마 관광지’ ‘야외 관광지’ ‘자체 입장객수 제한을 통해 거리 두기 여행을 실천하는 관광지’ 같은 요건을 검토해 정했다고 한다.
경기관광공사,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대전마케팅공사, 부산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인천관광공사, 제주관광공사 등이 추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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