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선생 10주기를 추모하는 시론
이 어 령
윤이 나는 빨간 바탕 혹은 주황색 바탕에 크레용으로 칠 한 것 같이 까맣고 동그란 점 화려한 옷을 입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당벌레라 하고 서양 사람들은 아시아의 숙녀 딱정벌레*라고 부르는가보다.
하지만 원색으로 너풀대는 무당 옷을 생각하기 전에 농장 속에 개켜둔 누나의 나들이옷을 보기 전에 생각해보자. 칙칙하고 단조한 무당벌레의 애벌레 모습 나무줄기나 어느 이파리 뒤 조용한 곳을 찾아 자신의 몸을 녹이고 있는 깜깜한 번데기의 꿈
보아라. 음산한 집에서 어둠을 비집고 나오는 변신의 기적 구겨진 날개가 펴지면서 차츰 윤택이 나고 제 색깔을 찾는 아. 거짓말처럼 아롱진 무당벌레의 딱딱한 앞날개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또 하나의 다른 안쪽 날개의 비밀
대체로 시인은 무당벌레를 닮아 많이 잠자고 꿈꾸고 그러다가 어느 날 앞날개 뒷날개를 얻어 무당 옷 같은 혹은 아시아 숙녀의 깜짝 놀랄 색깔과 땡땡이 점을 얻는다. 그리고 맨 아래 땅바닥에서부터 차츰 위로 기어오르다가 하늘과 맞닿은 식물 줄기의 꼭지 점에 이르면 비로소 난다.
무당벌레와 시인은 세상을 사는 습관이 같아서 진딧물처럼 한곳에 붙어살지 않는다. 곤충학자와 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지만 이때만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꼭지점에 이르면 허공에 맞닿은 그 순수한 꼭대기의 경계선을 발견하지 않으면 결코 날개를 펴고 날지 않는다. 정점에 이르지 않고서는 무당벌레와 시인은 그냥 기어 다닐 뿐 딱딱한 날개 속에 숨겨둔 날개를 펴지 않는다.
조병화 시인은 어느 눈부신 날 우리 몰래 날 수 있는 그 꼭지 점에 이르러 그리고 감춰둔 속 날개를 펴고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보지 않았는가. 그가 피우든 파이프에서 오르던 보랏빛 연기 조금씩 색갈이 변하면서 허공의 어느 정점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을 지금 시인의 딱딱한 날개에 찍힌 땡땡이 검은 동그란 점만 세고 있지만 기다리자. 우리도 언젠가는 무당벌레가 날아간 그 꼭지 점을 보게 될 것이다.
*영어로는 무당벌레를 Asian lady beet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명으로는 Harmonia axyri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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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에 대하는 이어령씨글에서 고교시절 이분의 모든글을 찾아 읽으며 지식의 폭과 감서의 폭을 넓히던 때가 떠오르네요~! 또 한번 지난 시간으로 되돌아 가봅니다 감사~! ^ ^
맞아요...추억의 강의.
지금도 이어령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주관, 의지, 잣대등이 세월을 비껴가지 않는다 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