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좀솜 → 따또바니 → 포카라 → 카투만두)-11day
좀솜→포카라:지프차이동
포카라 → 카투만두:비행기 이동
2024.04.25. 목/ 맑음
좀솜(2720m)-따또베니(1200m)-포카라(820m)
좀솜 경비행기 결항
10시 지프차로 포카리로 출발
12:30 따또베니에서 현지식 식사
오후 5시 포카라 공항 도착
오후 7시 30분 국내선 비행기로 포카리 출발
오후 8시 카투만두 도착 후 저녁식사
오후 10시 카투만두 호텔 도착 휴식
좀솜(Jomsom 2,720m)에 도착, Moonlight guesthouse 숙박
객실이 넓고 객실 내에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서 온수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 객실은 화장지 및 세면도구는 개인 것을 사용해야 한다
비교적 깨끗하고 주인이 친절하다
맥주 3캔에 14달러 좀 비싼 편이다
긴 여정을 통해 토롱라패스를 넘어서 좀솜에 도착했다
이제 모든 트레킹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서 포카라까지 이동하고 포카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가야 한다
<<좀솜의 풍경>>
숙소 앞에서 바라보이는 설봉들
왼쪽 틸리초(Tilicho, 7134m)와 오른쪽은 닐기리(Nilgiri, 7061m)
네팔에서 ~ri는 봉우리를 뜻한다
손에 잡힐 듯 위용을 자랑하는 닐기리(Nilgiri, 7061m)
고봉의 웅장함 때문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익숙지 않은 지역이름을 외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여러 번 듣고 바라보노라니 이제 익숙해질 만한데
이곳을 두고 포카라로 떠나야 한다
설맥으로 이어진 고봉
온난화로 자꾸만 눈이 녹고 있다
저 당당한 설봉들이 지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안나푸르나'는 하얀 쌀밥이 쟁반에 가득 담긴 모양'이 어원이라고 한다
풍요의 여신, 수확의 여신으로 불리는 안나푸르나
온난화로부터 꿋꿋이 버텨내어 오랫동안 지구의 풍요를 지켜주길 바란다
히말리아 14봉 중에 7번째 산인 다울라기리 ( Dhaulagiri, 8167m)
숙소 정면에 닐기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다올라기리
다울라기리는 흔히 광광코스로 많이 가는 푼힐전망대(3210m)에 오르면
그 폼을 있는 데로 자랑한다고 한다
Jomsom (2,720m)은 박물관과 경비행장까지 갖춘 도시이다
마을은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있다
<<좀솜시내풍경과 가게>>
등반을 기다리는 포터들과
등반을 끝내고 내려온 포터들
인력시장을 생각게 하는 마을이다
유난히 사과를 많이 팔고 있다
말린 것도 많이 팔고 있어서 여기서 트레킹 시작이라면 한 봉지 사두면
트레킹 중에 유용한 간식거리가 될 것이다
좀솜 경비행장
<<Jomsom 2,720m의 일출>>
2024.04.25일 오전 5시
틸리쵸와 닐기리
닐기리
다울라기리 ( Dhaulagiri, 8,167m)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산인 다울라기리 I봉을 포함한 8천 미터급 1개,
7천 미터급 12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산군을 칭한다.
악천후와 급격한 기후변화로 유명한 위험한 산이다.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와 인접해 있어 안나푸르나와 트레킹 거점을 공유한다.
안나푸르나서킷 트레킹 코스를 통해서 가까이 접근할 수 있으며,
중간 거점인 고라파니/푼힐(해발 3,100m)에 올라가면 다울라기리 산군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 7시에 타기로 했던 14인승 경비행기는 결항했다
포카라에 안개가 많아서다
비행기가 뜨기를 10시까지 기다렸다
더 늦어지면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비행기도 탈 수 없어
야간버스를 타고 지루한 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11시 이후에는 이곳의 지형 여건상 비행기가 뜰 수 없다고 한다
서둘러 포기하고 10시에 지프차를 타고 포카라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좀솜에서 포카라까지는 대략 150km인데 7~8시간 소요된다
깊고 험한 오지다 보니 도로사정이 열악하다
우당탕 쿵탕 엉덩이에 열이 날 것 같고 멍도 들 것 같은 길인데
이 길이라도 있어서 포카라까지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10시에 출발한 지프차는 12시 30분쯤 따또바니(1200m 고지)에서 멈추고
이곳 현지식 점심식사를 한다
안나푸르나 서킷을 정말 종주하는 사람들은 이곳 따또바니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우리 팀은 묵티나트(3700 고지)에서 걷기를 중단하고 좀솜과 따또바니까지 자동차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린 따또바니 마을의 어느 식당
식당벽의 수많은 스티커들 중에 한국말이 눈에 들어온다
김홍빈 산악인 2018년 4월 10일에 이곳을 다녀갔다
그는 죽었지만 케리커쳐가 그려진 손수건은 여기에 오는 한국인들을 반겨주고 있다
김홍빈 산악인
KBS 다큐 '열손가락의 눈물'을 기억한다
1991년 데날리산 등반 도중 열손가락을 잃었지만, 등산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서
장애인 최초로 7 대륙최고봉과 8000미터 봉우리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였다.
그러나 2021년 7월 19일 마지막 8,000m 봉우리인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등정 도중
정상을 오른 후 하산하는 과정에서 실종됐으며,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채로 산악인으로서 산에서 영면하였다.
손/김홍빈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만두와 네팔식 볶음밥
후식으로 나온 감자튀김과 바나나
점심식사로 대단히 만족했다
포카라공항(820m)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 20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
약 19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어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꼽힌다.
포카라(네팔어: पोखरा)는 연못을 의미한다.
포카라 시내에 많은 연못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허리가 몸살이 날 정도로 우당탕거리는 지프차를 타고
드디어 포카라 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오후 5시에 도착했으니 7시간 소요되었다
포카라 공항은 새로 지어진 단층건물로 넓고 깨끗하다
오후 7시 30분
드디어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넘어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탄다
공항출구를 나서자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비행기를 향해 걸어서 이동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공항이 작고 이용객이 많지 않다 보니 이렇게 운영을 하나보다
비행기 내부에서 바라본 카트만두 야경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는 약 30분 소요되었다
이제 장정의 안나푸르나 일정은 끝이 났다
그토록 기다렸던 여정이 어느새 막을 내린다
이번 여정은 가장 깊은 강과 가장 높은 하늘을 만났던 느낌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고
신이 나를 도와줄 거라는 믿음도 없었다
고민이 깊었던 만큼 어떤 기대도 없이 안나푸르나 여정에 올랐었고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이상의 트레킹을 했다
밤 내네 빙빙 돌아서 힘들었던 고산병
밤마다 잠을 설치고도 이른 아침 전해주는 따듯한 차를 마시며 몸을 달랬고
때로는 흰 죽과 계란 1개의 힘으로 새벽출발을 했다
자초한 고생이지만 프랑스의 몽블랑, 스위스의 아이거북벽, 마터호른등의
만년설과 함께하는 알프스트레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고단함이 있다
그렇지만 6~8000미터 고봉이 병풍처럼 이어진 웅장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오랫동안 감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또 올 거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대단한 여정을 이겨냈지만 또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서지 않는 것과
나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까닭이다
네팔 카투만두(스와얌부나트사원→ 더르바르광장 → 공항 → 인천) -12,13day
카투만두 유적지 탐방
스와얌부나트사원(원숭이 사원) 카트만두 북서쪽에 있는 스와얌부나트의 작은 언덕에서 평화를 찾으십시오. 해외 방문객들 사이에서 "원숭이 사원"으로도 알려진 스와얌부나트는 카트만두 시내 대부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습니다. 이곳은 도시의 전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이곳은 또한 카트만두의 신념과 조화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카트만두의 영광은 바로 수와얌부나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언덕에 자리 잡은 스와얌부나트는 네팔에서 가장 신성한 불교 사원 중 하나입니다. 이 사원은 2천 년 전 원시 호수에서 계곡이 생성되었을 때 자연적으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이 사리탑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탑입니다. 스와얌부나트 사원 옆에 다른 사원과 절도 많습니다. 스와얌부(Swayambhu)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존재”입니다. 서기 460년이 작성된 문서에 의하면 마나데바 왕이 이것을 건설했으며 13세기부터 스와얌부타는 불교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때 카트만두 전체가 호수였고 스와얌부는 그 한가운데 피어 있었던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네팔 석가모니 부처의 가장 큰 불상이 바로 스와얌부 서쪽 구역에 있습니다. 스와얌부나트 바로 옆에서는 만주스리와 사라스와티 여신의 사원이 있습니다. 스와얌부나트 사원 있는 언덕은 힌두교와 불교의 여러 사원들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방문 가능하십니다. 사리탑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사로 이어지는 매우 가파른 돌계단은 상당히 도전적입니다. 하지만 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있어 차를 몰고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많은 힌두교인과 불자는 매일같이 스와얌부나트를 방문합니다. 스와얌부는 네팔에서 종교적 화합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일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기념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리탑의 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금도금 Vajra '벼락' • 스와얌부 서쪽에 있는 불상 • 잠자는 부처님 • 부처님과 전통 티베트 회화의 청동 아이콘으로 유명한 데와 달마 수도원 • 모든 아이들의 여신인 하라티 에게 바쳐진 사원 . 부처님께서 그녀를 모든 아이들의 돌보미로 바꾸시기 전에 그녀는 나그네였다고 합니다. 네팔관광청 |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며
불자들이 신성시하는 원숭이가 많아서
일명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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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 아이스크림 먹는 원숭이
초입에 들어서면 보이는 스투파
자브라다투차이티마 사원
stūpa(스트파,산스크리트어)는
돌, 벽돌, 나무 따위를 깎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 집 모양의 건축물.
부처나 고승의 사리, 유품 등을 안치하는 곳이다.
미소 짓는 평화의 소녀상
한국불교처럼 동전을 던져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곳
원숭이 숫자랑 개의 숫자가 비슷한 곳이다
사원 올라가는 양옆 길가 카페와 상점들
부처님께 올라가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있지만
문맹의 원숭이씨는 부처님 어깨에 올라있다
석가모니 부처상 이마에 붉은 점은
제3의 눈: 지혜의 눈을 의미함
불교 건축물에 힌두양식이 가미된 듯
네팔 고유의 불탑
화살같은데
어떤 용도인지는?
하단에 연꽃문양과 야크인지 양인지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이스크림도 잘 먹고 물병도 잘 따고....원숭이씨는 만능재주꾼
카트만두시내
원숭이 사원이다보니
어딜가나 원숭이만 눈에 들어온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불탑이다
또 다른 하얀 불탑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약 2000년 전
아쇼카왕 방문기념으로 세운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
많은 불자들이 찾는다고 함
원숭이 사원을 빠져나와 옆에 있는 다른 사원으로 이동
우리나라 연등보다 더 많은 오방색 타르쵸가 휘날리는 사원
늘 축제분위기의 사원이다
타르쵸(風念經 또는 經文旗라고 함)는
티베트인 신앙의 상징으로 불경을 적은 오색깃발의 천을 말한다
우주의 다섯 가지 원소를 뜻하는 오색 중
파란색은 물, 녹색은 나무, 붉은색은 불, 흰색은 구름 그리고 노란색은 땅을 상징한다.
타르쵸가 바람에 나부낄 때 내는 소리를 티베트인들은 '바람이 불경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한다.
룽다는 불경을 적은 천을 장대에 걸어놓은 깃발로
바람을 타고 가는 말이란 뜻으로 '風馬'라고도 한다.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
더르바르 광장은 네팔의 광장이다 카투만두, 파탄, 박타푸르에 위치한 광장이 제일 유명하다. 카투만두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은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네팔 왕궁이 이곳에 있어 허누만 도카 궁전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허누만은 원숭이 신을 의미하는데 궁전의 중앙 입구 오른편에 붉은 칠을 한 원숭이 석상이 있다. 원숭이 신은 더르바르 광장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많은 힌두교인이 찾고 있다. 더르바르 광장은 옛 왕궁 외에도 살아있는 신이라고 불리는쿠마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더르바르(Durbar)는 왕궁이란 뜻으로 하누만도카는 1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18세기의 샤(Shah)왕조, 19세기 라마교 통치자들이 완성하였다. 카트만두 계곡에 있는 3개의 왕궁 광장 중 하나로서 UNESCO 세계문화유산이며, 하누만도카 등 여러 왕궁건물 및 역사 깊은 사원, 아름다운 내원, 우아한 탑 등이 있다. 광장 남쪽 끝에 처녀신인 쿠마리의 화신이 살고 있는 쿠마리사원, 500년 전 우물공사 중에 발견된 칼리버이라브상 등이 있다. |
카투만두의 더르바르 광장
마치 골동품을 파는 광장처럼 보인다
지진으로 건물이 훼손되었는데
복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밥공기처럼 생긴 이것은
그릇 둘레를 방망이로 살살 돌리면 은은한 종소리가나는 불교 용품이다
바그바티사원
힌두교신 바그바티를 모신 바그바티사원은 1층을 가게로 사용하고 있어서 놀랍다
세계문화유산인데 이래도 되는 건지....
정교하게 새겨진 목각장식물
여러가지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에게 바치는 재물들을 조각한 네와르 양식이라고 한다
15-16세기 네와르 양식으로 지은 힌두교 사원
우측에 있는 자간나트사원은 마헨드라 말라왕 시대인 1563년에 건축된 것으로
이곳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2층 목조건물이다
3개의 벽돌 기단 위에 나무로 지어진 네와르 양식으로 힌두교 신인 자간나트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자간나트는 원래 인도 토착신이었으나 힌두교로 융합되어 크리슈나의 화신으로 숭배받는 신이다
크리슈나는 파란 피부를 가진 사랑과 연민의 여신으로 손에는 플루트를 들고 있다
비슈누의 여러 아바타 중 8번째로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이다
참고로 힌두교에서 비슈누의 9번째 아바타가 붓다라고 한다
광장 중심으로 여러 사원이 있는 이곳에 사각기둥이 하나 있다
기둥 꼭대기에는 말라 왕조의 프라탑 말라왕의 황금동상이 있다
동상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부인과 아들들은 두 손을 모은채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리고 있다
왕과 가족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맞은편에 있는 데구 탈레주사원에 모셔진 탈레주 여신을 향한 것이라고 한다
네와르양식은
기단과 1층은 벽돌로 2-3층은 나무로
독특하고 정교한 나무조각이 특징으로 네팔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불탑 위에 올라앉은 신기한 나무
카게슈와르 마하데브사원
이사원은 마하데브신에게 바친 힌두교 사원으로
네팔양식으로 만든 기단과
힌두교사원양식인 시카라양식이 합쳐진 독특한 모습이다
비둘기 천국 더르바르 광장
비둘기 똥때문에 앉아서 쉬기조차 불편한 곳이다
쿠마리(Kumari)의 집
쿠마리의 유래애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힌두교 여신인 탈레주가 매일 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카트만두왕국에 내려와 프라카쉬 말라와과 트리파사라는 주사위 놀이를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여신의 미모에 반한 왕이 여신을 범하려 하자
분노한 여신은 하늘로 올라가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왕은 탈레주 여신의 사원을 찾아 매일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는데
꿈에 탈레주여신이 나타나 아직 초경을 겪지 않은 소녀를 뽑아
나의 분신으로 섬기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네팔에서는 쿠마리를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한다고 한다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보기 위해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쿠마리의 집 마당
오후 4시 드디어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벽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붉은 글씨의 문구가 있고
연신 관리인이 방송한다
쿠마리 (Kumari)
네팔의 살아 있는 신.
만 5세 안 쪽의 아주 어린 여자아이를 선발하여
살아 있는 여신으로 섬기는데 힌두교의 여신인 탈레주와 두르가,
그리고 밀교의 여신인 바즈라 데비의 화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피는 불경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쿠마리 활동 중에
월경이 시작되거나 상처 등으로 인해 피를 흘리면 은퇴한다.
현재 월경이나 피를 흘리는 등 여러 이유로 쿠마리에서 은퇴한 소녀들은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
웹툰' 시타를 위하여'에서는 쿠마리였던 시타가 맨몸으로 쫓겨나고
가는 곳마다 죄인 취급받거나 천대받는 걸로 묘사되는데
20세기 이전에는 이처럼 은퇴한 쿠마리에 대한 온갖 편견과 천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사원 안에서만 자랐던 쿠마리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 혼자서 잘 적응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까지 네팔 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동 인권에 민감한 서방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는데
21세기 들어서 조금씩 쿠마리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주는 등 조금씩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피를 흘리면 바로 은퇴했던 다른 쿠마리들과 달리
예외적으로 50살이 넘도록 쿠마리로 살고 있는 여성이 한 명 있는데
월경이 시작되지 않아 결국 공식적으로 은퇴할 때까지 30년이 넘게 쿠마리로 활동했고
지금도 쿠마리에 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펌사진)
쿠마리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문
2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산병과 고된 걸음으로 하늘 높은 설봉을 보며
목표했던 5400 고지 토롱라를 넘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뿌듯함과 흥분으로 가득한 시간을 맞이했다
내겐 너무도 과한 도전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가난이 삶인 포터들
네팔을 자주 찾아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가이드
우리 입맛을 잘 맞추어 주던 셰프들 때문이다
언어 소통 부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그날그날 잘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더러는 한국사람들의 인정을 너무 베풀어주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하지만
그들이 잘 살았다면 그랬을까
나누어주는 것에 이유를 달고 싶지 않아 기쁘게 나누어 주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그들이 자꾸만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부자가 되어 한국땅에서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후 7시 20 출발하기로 했던 비행기는
관제소 허가 지연으로 오후 8시 40분 카트만두 출발
한국시간 오전 5시 20분 도착
비행시간은 5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비행기가 뜨고 얼마후 몇번의 기류를 탓지만 인천공항에 잘 도착했다
갈때보다 한국으로 돌아올때 시간이 훨씬 적게 걸렸다
기내 1박의 이동이라 그동안의 피곤 때문에 곤하게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비행 상공의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편하디 편한 내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보았던 감격스러운 풍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허무함이 가득하다
내 인생 최초이자 다시는 가기 힘든 곳을 다녀왔다는 뿌듯함보다는
내가 이제서야 안나푸르나를 알게 되었을까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땅이라 무심하게 떠났던 네팔의 히말라야
걷다보니 대단한 도전과 인내심이 있어야 마무리가 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저 깊은 곳에는 평소 알지 못했던 대단한 힘이 갇혀있다
용암처럼 폭팔하는 힘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인생을 차곡차곡 밟아가다 보면
또 뜻하지 않은 풍경을 만나고
다른 감격에 젖어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첫댓글 사진을 너무 많이 올려 죄송합니다
몇 편의 사진만 올릴까 고민도 했었는데
히말라야를 다녀오신 분도 있겠지만
저처럼 처음이신 분이 있을 것 같아요
멀고 힘들긴 하지만 도전 할만한 가치가 있어요
모르는 것이 많아 네팔로 가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었지요
혹시라도 안나푸르나에 가실 분이 계실까 하여 자료 삼아 여러 편 올렸으니 이해해 주세요
올리신 글 그리고 사진 정독 하다보니 지금 다 읽었습니다.
내년 가을 네팔 트레킹을 준비 중인 저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네팔에서의 긴 여정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신것 다시한번 축하 드립니다
대단하세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