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고 예태원 대위의 묘 앞에서 한 소녀가 기도하고 있다.
故 예태원(芮泰元) 대위
지난 1일은 건군 제71주년을 맞는 국군의 날이다.
내가 사는 청도의 58번 국도(청매로)가 지나는 매전면 지전리 청도군농촌체험관광센터(옛 중남초등학교) 서쪽 밖 채전(菜田) 모퉁이에 1.5m 정도 높이의 갓 머리한 작은 돌비(石碑) 하나가 서 있다. 전장에서 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비명(碑銘)으로 새긴 ‘육군대위 예태원 도사비(陸軍大尉 芮泰元 悼思碑)다.
陸軍大尉 芮泰元 悼思碑/ 甭生質美 早就高學 我死愁愁 山窮水葛 數旣不齋 乃遭戰歿 伐石刻銘 實由寃抑 庶不磨滅 此其生迹/ 檀紀 四二八七年 月 日 未死父 潤基 竪
나의 짧은 한문 실력으로 내용을 정리해 보니 이렇다.
“좋은 성품을 갖고 태어나 일찍이 높은 학문의 길에 올곧게 나아갔다가 이를 써보지도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니 슬프고도 슬프구나./ 산이 덥히고 물이 마르도록 이미 셀 수 없이 정진했으나 뜻밖에도 전쟁터에서 죽었으니 참으로 원통한 마음 억누를 길 없어 이에 그 살다간 자취가 지워지지 않도록 돌을 쳐서 새긴다./ 서기 1954년 월 일 아직 죽지 못한 아비 윤기(潤基)가 세운다.”
2015년 8월 12일 내가 처음 이 비를 보았을 때는 비의 받침돌은 오래된 자연석이나 비와 갓은 새로 다듬어진 흔적이 있어 처음 자연석을 최근에 화강암으로 바꾼 것 같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수년 전에 누가 중장비로 공사를 하다가 비신(碑身)을 깨뜨려 예 대위의 조카 되시는 예의해 님께서 그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글을 ‘죽은 아들을 위한 비(碑)’라는 제목으로 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고맙게도 지인 김종태 님께서 연락이 왔다.
”故 예태원(芮泰元) 대위는 군번 119013. 육군 제5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두 달을 남겨 둔 1953년 5월 28일 강원도 철원군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여 1959년 11월 25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묘비 33-1144)되었음이 확인“되었다는 자료를 보내왔다. 나는 매전초등학교 총동창회 졸업생 명부에서 제15회(1943년 졸업) 내동 사는 예태원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 대위의 부친 예윤기(芮潤基) 선생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비문을 의흥예씨 덕유공파 카페에도 올린 적이 있다. 그해 11월 14일 서울에 사는 예재두 님이 카페의 글을 잘 읽었다는 감사의 말과 함께 그가 직접 서울현충원에 가서 묘비를 확인했는데 비명(碑銘)에 고인의 전사 장소가 ‘고성지구에서 전사’로 잘못 새겨져 있다고 묘비 사진을 첨부해서 보내왔다.
나는 이를 근거로 국립서울현충원에 확인 신청을 했는데 현충원에서는 보관 중인 자료와 비명이 다르게 새겨진 것은 확인되었으나 자세한 경위를 알 수 없어 육군본부에 조회 중이라는 전화가 왔다. 12월 4일 육군본부에서 보내온 회신 자료에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예태원 대위는 1929년 11월 27일 출생하여 1952년 1월 19일 임관되었고, 1953년 5월 28일 강원도 금화군 임남면에서 전사했고, 주소는 경북 청도군 매전면 내동 778번지(자력표에는 내동 225번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비명을 “강원 금화 전사”로 바로잡아 다시 세우겠다는 연락이 왔고, 며칠 후 새로 세울 비명 초안과 함께 동의 의사를 물어왔다. 그러나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수소문한 결과 전사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인 조카이자, 이미 사망한 예윤기 님의 손자인 예의해 님이 청도군 매전면 내동1리에 사는 것을 확인하고, 그분의 동의를 얻어 현충원의 비를 새로 세울 의사를 분명히 밝혀 서울현충원에 회신하였다. 서울현충원은 2016년 따뜻한 봄날에 예 대위의 묘비를 다시 세웠다.
나는 해마다 10월이 되면 고 예태원 대위와 부친 예윤기 선생이 생각나 기존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오늘 다시 올린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내 눈에 띈 작은 비석 하나가 우리 고장 출신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 사람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성경에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애통하고, 다윗왕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통곡했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세기 37:34~35)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사무엘하 18:33)
사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고 예태원 대위의 묘 앞에서 한 소녀가 기도하고 있다. 청도군 매전면 지전리에 있는 '육군대위 예태원 도사비'.서울현충원 예태원 대위의 묘전비(2016년 이전), 육군본부의 병적확인 경과 회신, 서울현충원에 새로 세워진 예태원 대위의 묘전비(2016년 이후)
첫댓글 님의 청도 사랑과 기리고저 하는 마음에
머리숙여 집니다
감사합니다.
저 아래 #7734의 조카아버님(제겐 사촌매형)께서 국립묘지(대전)에 묻혀계신
(지난번 얘기하던)분이시랍니다. 한번 찾어보셨는지요? 육군소령으로 근무~
고 이상현 님에 대한 자료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청도인님의 고향사랑 선배님의 따뜻한 사랑 기감이 됨니다.
큰일하신 님의 정성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