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서영처
불도저가 잠든 자들의 봉분을 뭉개고
굴착기가 잠든 자들의 꿈을 파헤쳤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차례 큰 사변이 지나가고 이제야
악몽처럼 벌떡벌떡 일어서는 뼈들
숭숭 뚫린 구멍마다 자리를 잡고 인광을 뿜어내는
아픈 자들의 터, 아파트
하나의 표정밖에 없는 가면을 쓰고 가면에 든다
하나의 표정밖에 없는 가면을 바꿔 쓰고 팔다리를 흔들며 노래한다
창과 벽들의 세계
이목구비를 잃은 얼굴들이 어른거리는
열한 길 우물의 세계
깎아지른 봉우리들의 절경 사이로
네온사인이 호객하는 현란한 미래
두레박줄을 놓친 구름이 울음소리를 내며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