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혼행출도(婚行出島)
①
검은 팔선탁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금괴(金塊)에서 발해지는 황금빛이 석백
송의 방안을 황홀하게 물들였다.
다섯 관짜리 금괴 육십 개.
무적세가에서 보내는 것이라며 세 명의 수하들과 함께 금괴를 가져온 자는 뜻
밖의 인물이었다.
비록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금진후의 서찰과 금괴를 건네고 수령증을 받자마
자 황급히 돌아갔지만 석백송은 그 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오 년 전, 세력을 확장하던 흑마방의 회남(淮南) 분타주
에게 당한 후 새로운 검공(劍功)을 익히기 위해 폐관참수(廢關參修)에 들어갔
다고 알려진 안휘성 회남땅 용검문(龍劍門)의 주인 탁표(卓彪)가 틀림없었다.
물론, 탁표와 정식으로 수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다.
하나 그가 일찍이 소림에서 무공을 닦을 때, 당시 문주이던 아버지와 함께 소
림을 방문했던 소문주의 해맑고 준수한 모습은 턱수염이 무성한 장년이 된 탁
표에게 아직도 남아있었고, 기억력이 남다른 석백송은 탁표에게 입혀진 세월
의 더께를 걷어내고 눈앞의 장한이 당시의 미소년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이 있었다.
무슨 까닭으로 무적세가의 일에 탁표가 끼여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상 아는 체를 할 필요도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석백송에게는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려 삼백 관에 달하는 금괴를 바라보는 석백송의 마음은 전혀 황홀하지도 뿌
듯하지도 않았다.
"닷새, 닷새 후면 표물이 도착한다……."
아직도 무엇인지 모르는 문제의 표물이 닷새 후에 도착한다는 금진후의 서찰
이 온통 그의 정신을 빼앗은 것이다.
잠시,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석백송은 엄중한 신색을 되찾고 문밖에서 기다리
고 있던 총관을 불러들였다.
"찾으셨습니까?"
방안에 들어선 이형완은 탁자 위에 쌓인 금괴를 일별하고는 밝은 목소리로 대
명했다.
표국의 살림을 책임진 그의 입장에서야 어떤 내막이든 관계없이 막대한 수입
이 생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삼백 관일세. 이백관은 보관하고 나머지는 은자로 바꾸게."
"성화전장(盛華錢莊)은 금 백관을 바꿀만한 은자를 지니고 있지 않을 텐데요.
선대 때부터 거래해온 성화전장이 항주에서 손꼽히는 규모이긴 했으나 전표(
錢票)도 아니고 은자로 바꾸기에는 금 백관은 너무도 막대한 액수였다.
몇 년 전에 장백산(長白山) 근처에 대규모 금광(金鑛)이 발견되어 금의 시세
가 예전 같지는 않다 해도 금 한 냥이면 은으로는 열 일곱 냥, 그러니 금 백
관이면 은자로는 무려 십칠만 냥이었다.
"우선 성하전장에서 되는 대로 바꾸고 모자란다면 다른 전장과 거래해도 관계
없네."
적어도 일고여덟 곳의 전장을 다녀야 모두 바꿀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나오는
순간, 이형완은 세권표국의 넉넉한 살림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며 저
절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고강한 무공이 무인의 자랑이라면, 비록 자기 것은 아닐망정 이형완같은 사람
에겐 막대한 재물이 자랑이었다.
사실, 세권표국이 표국으로는 중원제일을 다툰다 해도 그 수입은 무역을 하는
상인들에 비하면 내세울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은자가 오가는 곳에서는 거
래 액수만큼의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이 기회에 콧대높은 전장
의 주인들이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형완에게 있어서 다시없는 보람
이었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성공적으로 표행을 마치고 돌아온 표사들이 복명하듯, 힘차게 외친 이형완은
서둘러 금괴를 상자에 담았다.
질펀한 풍악소리가 그치지 않는 금연루 후원의 외딴 전각.
화려하게 치장된 방안에는 호피(虎皮)를 깔아 보기에도 푹신한 의자가 있었고
, 그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턱을 괴고있는 자는 금연루의 주인 황대진이었다.
"휴우……."
깊은 한숨을 토한 황대진은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래도 큰 사고를 치고야 말
것 같다는 예감으로 자꾸만 불안해지는 심사를 애써 달랬다.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금(琴)을 잘 타고 미모가 빼어난 난홍(蘭紅)이를 놓
고 돈 자랑, 세도 자랑을 하며 선객(先客)들에게 시비를 벌이는 고관집 망나
니 애새끼들의 행패에 불끈 울화가 치밀어 단매에 쳐죽이려다 꾹 참고 돌아선
것이다.
"지나친 충성이 화근이다……."
애초에 금진후가 봉래도의 인물들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보고한 자신의 경솔함
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전주 염상호의 채근은 그칠 줄 몰랐다.
매일 올리는 보고로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하고 전서구(傳書鷗)를 통해 세세한
지시를 보내오는 것이 아닌가.
전주는 물론이고 하늘같은 방주의 관심마저 집중된 지금, 이대로 아무런 성과
도 거두지 못한다면 자칫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크으……."
심사가 편치 않은 탓인지 입안에 감도는 풍미가 그윽해 즐겨 마시던 울금향(
鬱金香)도 소태처럼 쓰기만 했다.
불안과 울화가 뒤범벅이 되어 술잔만 들이키던 황대진에게 귀가 솔깃한 소식
을 전한 것은 마안기무전 항주 분찰(分察)의 부찰주(副察主)이자 구룡전장(九
龍錢莊)을 관리하고 있는 나소철(羅蘇喆)이었다.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보통 전장의 일은 다음날 아침에 점검하는 것이 상례임에도 나소철이 급한 걸
음으로 그의 거처를 찾아온 것이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냐?"
짜증이 가득한 황대진의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들어선 나소철이 내놓은 것은
묵직해 보이는 금괴였다.
"……?"
살짝 취기가 도는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는 황대진을 향해 나소철은 조심스럽
게 입을 열었다.
"이 금괴는 오늘 낮에 세권표국의 총관 이형완이라는 자가 은자로 바꿔달라며
가져온 것입니다."
"금괴가 가짜라도 된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고 이 금괴는 북경의 만금공방(萬金工房)에서 주조(鑄造)한 것이라
는 겁니다."
무심코 금괴를 들어 뒷면에 새겨진 '萬金'이라는 작은 글씨를 살피던 황대진
의 눈에 기광이 서렸다.
"뭐라고, 만금공방……?"
천하각지에서 본 궁으로 올라온 정보 중 각 분찰에서 알아야 할 내용을 취합
해 전주가 정기적으로 내려보내는 기무요보(機務要報)에서 얼마 전 보았던 내
용이 떠오른 것이다.
순간, 황대진의 머리가 먹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독사보다 빠르게 나소철을 향
해 내밀어졌다.
"하면, 무적세가에서 만금공방에 주문했다는 삼백 관의 금괴중 하나란 말이냐
?"
나소철이 전장 일을 맡은 것도 보주(寶珠)나 귀금속에 관해 적지 않은 지식과
안목이 있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 표면에 흠집이 적고 광채가 선명한 것으
로 보아 최근에 주조된 금괴임에 틀림없고 속하가 알아본 바로는 이형완이라
는 자가 성내의 전장에서 바꿔간 금괴가 대략 백관쯤 된다고 합니다."
황대진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에 따라 나소철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
다.
"또한, 보통 금괴는 두 관 짜리로 만드는 데 비해 이형완이라는 자가 뿌린 것
은 모두 다섯 관 짜리이니 아무래도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닌 듯 해서……."
천하가 넓고 부호(富豪)도 많다하나 황금 삼백관이라는 엄청난 거금이 움직이
면 어디에서고 표가 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기무요보에 따르면 무적세가에서 주문한 금괴 역시 다섯 관 짜리로
육십 개였다.
무적세가에서 주문한 금괴가 삼백 관, 세권표국에서 은자로 바꾼 금괴가 백
관.
그것도 만금공방에서 주조한 다섯 관 짜리 금괴로.
"흐음, 무적세가에서 주문했던 것으로 보이는 금괴가 세권표국에서 나왔다…
…!"
대체 무슨 연유로 무적세가에서 세권표국에 그런 막대한 황금을 전했는지 이
유를 짐작 할 수 없었다.
하나 그의 임무는 정보를 알아내어 보고하는 것이었고, 판단은 상부의 몫이었
다.
봉래도나 무적세가의 인물을 발견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무적세가와 관계된
일을 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황대진으로서는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다.
잘하면 징계가 아니라 상을 받을 지도 몰랐다.
"수고했다. 최근에 세권표국을 방문했던 자들을 자세히 알아보고, 당장 세권
표국에 대한 감시를 늘려라!"
오랜만에 활기찬 상관의 모습에 나소철도 덩달아 얼굴이 밝아졌다.
"존명!"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봄바람이 제법 선선하건만 나소철이 나가기 무섭게 보
고서를 작성하는 황대진의 이마에 하나둘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손바닥만한 종이에 세필(細筆)로 빼곡이 적어나가는 일이 쉽지는 않으나 늘
해오던 일이니 그 때문은 아니었다.
자질구레한 일들만 적어 올리던 보고서에 모처럼 무적세가와 관계된 일을 쓰
자니 자기도 모르게 손이 떨렸고, 행여 획이 엇나갈까 붓을 잡은 손가락에 있
는 힘을 다 주고 있으니 어찌 땀이 나지 않겠는가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ㅎ
즐감
즐.독 합니다
감사합니다
ㅈㄷ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