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동이 비교적 늦게 걸리는 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공부라는 것을 왜 해야 되는지 몰랐다. 그저 읽고 쓰고, 가게에서 물건값 치르고, 잔돈 받아내는 능력이면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그랬는데 공부를 해야하는구나, 하고 처음 느낀 것은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중학교 가기 위해 시험을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부하는데 무슨 자격이 따로 왜 필요한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됐지만, 좌우지간 읍내 공립중학교에 가려면 성적이 꽤 좋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가지고 6학년 때 비로소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고 간신히 검은 모자에 하얀 테가 둘 달린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운동에 대한 생각도 같았다. 제발로 가고 싶은 데 가고, 책가방 들고 등하교를 해낼 정도의 체력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무슨 운동선수가 될 것도 아닌 바에야 내가 필요한 정도의 체력은 먹기만 하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고,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좀 미련해 보인다, 그런 느낌을 가졌었다.
이런 나의 생각에 더욱 기름을 부은 사건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어났다.
그 전에 좀 핑계를 대자면, 중2 때 이명이 생기는 바람에 그만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놔 뒀으면 그래도 중간은 갔을 것이다. 단지 귀가 좀 그래가지고 목소리 카랑카랑해서 잘 들리는 선생님의 과목은 성적이 좋았고, 잔잔하고 넓게 좍 깔리는 저음의 음성을 소유하신 선생님의 과목은 죽을 쑨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일이 안 되려고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하필 담임을 맡은 선생님 과목 성적이 제일 안 좋았다. 상황이 나빠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간에도 무슨 질투 의식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거의 앙숙이다시피 사이가 불편한 다른 선생님 과목의 성적이 제일 좋았는데, 이걸 두고 그 선생님을 좋아해서 성적이 좋고, 담임 선생님을 싫어해서 성적이 나쁘다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요새말로 해서 담임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다. 당해보신 분들은 잘 알 것이다. 담임에게 밉보이면 학교생활이 얼마나 팍팍해지는지....나도 빵점으로 대응하려고 했는데 이것만은 성공하지 못했다. 혹시 빵점 맞아 보신 분들은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그거, 쉬운 거 아니다. 사지선다형의 시험에서 빵점을 맞는다는 것은 로또 맞히는 것보다 힘들다. 운이 되게 좋던지 아니면 실력이 아주 뛰어나야 한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하긴 너무 오랫만에 수다를 떨려니까 손목이 좀 풀린다.
좌우지간 그래가지고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게 되었는데, 읍내 고등학교는 싫고 무조건 대구로 유학을 가자니 어쩔 수 없이 경쟁율이 최하위인 학교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 학교에서도 사연이 많지만, 오늘의 수다꺼리가 아니니까 이쯤에서 접자.
고1 때 공설운동장에서 교련 평가대회인가 뭔가가 열렸는데 그때 그 사건은 일어났던 것이었다. 운동장에 도열해 서서 훈시 비슷한 것을 듣고 있는데, 모자에 하얀 테를 세 개 두른 학생들이 무슨 나무토막 쓰러지듯 여기저기서 엎어지는 것이었다. 쟤들 좀 봐,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서 있을 힘도 없는 모양이야, 하고 짝꿍이 속삭이는데, 나는 또 그게 너무 장렬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또 하얀 테에 대한 로망도 컷을 테지. 옛날 중국의 어떤 미인이 그저 배가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을 뿐인데 그게 이쁘다니까 덩달아 안 이쁜 여자까지 그랬다는데 내가 똑 그짝이었다. 겉멋에 빠져도 도취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나도 정말 저렇게 한번 온몸으로 대책없이 엎어지고 싶었다. 그랬으니 학교 체육시간도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리고 않아 수다로 보내기 일쑤였다.
또 서론이 더 길어졌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좌우지간 그래가지고 운동이라는 것을 평생 안 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들수록 체력이 저하되고, 배는 자꾸 불러오고 (폭발의 위험까지 느낀다), 온갖 병이 다 몸에 침범했다. 당뇨에, 통풍에, 고혈압에, 참 종합병원이다.
'우리 몸의 장기라는 것은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힘을 다해 인체를 보호합니다. 그러다 과부하가 걸려 한계를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운동을 시작해야합니다.'
내 당뇨병을 치료하는 담당 의사가 그런 경고를 보냈을 때 섬뜩하기 조차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장기의 사투를 알면 감동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가 하면, 술을 당장 끊어야 하는데, 그래가지고 학창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2년 쯤 뒤에 졸업이나 하면 끊겠다는 나의 안이한 대응에 의사는 한심해했던 거였다. 아닌게 아니라 살을 좀 빼긴 빼야 되는데, 하며 작심을 해도 늘 그때뿐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졸업식 날, 학교 복도에서 배 회장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불쑥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우리 서로 살 좀 빼가지고 '반월의 밤' 때는 날씬한 모습으로 만납시다.'
아마도 모르겠다. 회장이라는 큰 짐을 어깨에 매달고 사느라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미처 운동이라는 것을 못했을런지.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무사태형하게 세월을 보냈다. 11월이라 아직 세월은 충분하다니까, 중얼거리면서.
드디어 11월이 오고, 반월의 밤 행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뜨고, 저절로 약속이 생각나면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일단 입으로 뱉어낸 이상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중천금은 못돼도 양푼은 돼야지.
그래가지고 아프트 앞에 있는 범어 공원에 가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이 걷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느냐 하면, 전에도 언젠가 한번 썼듯이, 아무리 이쁜 여자가 데이트를 하자고 해도 걷는 것만은 딱 질색이어서, 무슨 산에 가자고 하면 무조건 사절이었다. 식구와 갓바위를 가도 혼자 차안에서 갖고 간 책을 잃거나, 밖에 나와 어슬렁거리며 커피를 마시거나, 컵라면을 먹곤 했다. 그랬었는데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를 테면 한 30분만 걷자, 이렇게 생각하고 집을 나서면 이내 뭐 오늘은 처음이니까 십 분만 걷자 하다가, 에라 내일 하지 뭐 이러면서 옆으로 새서 대구박물관 도서실로 가 책을 읽고 오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안 그랬다.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 자꾸 조금만 더 걷자, 하는 아찔할 만큼 강렬한 유혹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여기에 혹해 가지고, 사실 좀 의외다 싶은 생각도 들고 기특해서, 속삭이는대로 다 따랐더니, 놀라지 마시라. 첫날 한 시간을 걸었다. 사실 오랫동안 나는 몸이 왜 이러는 줄 몰랐다.
불과 열흘도 안 돼서,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 아주 작심을 한 날은 네 시간도 걸었다. 밥도 반공기를 먹고, 간식을 일체 먹지 않았다. 더욱 신기한 노릇은, 예전 같으면 배가 고파 잠이 다 안 오곤 했었는데 그러기는커녕 시장기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신문을 보니까, 다이어트를 하면 비상체제로 들어가 몸에 영양분을 비축하는 습성이 있으니까,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폭식을 해서 몸을 속이는 시늉도 해야 한다는 기사를 봤다. 옳지. 그렇구나. 그럼 외식할 때는 주는 대로 다 먹으면 되지. 그럼, 밖에서까지 궁상을 떨 필요 뭐 있어. 더군다나 뷔페 이런 것 하면 왕창 먹으면 되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아무튼,
학문외과에서 그 무슨 수술을 하고, 열흘 동안 입원을 하고 운동을 못하게 되자 미치는 줄 알았다. 더구나 한달 동안 안정을 취하라는데는 어이가 없었다. 퇴원한 다음날 바로 또 걸었다. 처음엔 30분만 걷다가 요즘엔 다시 2시간 걷는다. 이거 덧나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면, 저 깊숙한 내면에서, 조금 덧나도 다만 치료가 오래 걸릴 뿐이지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니까, 하고 은밀하고도 달콤하게 속삭여 오는 데는 정말이지 대책이 없다. 오늘은 작심하고 네 시간쯤 걸어볼까 한다. 내 의지만이라면 그렇게 못하겠는데 몸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자꾸 꼬드기는 데 거기에 안 넘어갈 재간이 없다.
어제 우연한 일로 건강보험공단에 갔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체성분검사를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 체지방율과 복부지방율이 표준이상으로 엄청나게 나왔다. 거기다 신체균형지수에서 두 다리가 표준이하였다. 참 기계가 좋긴 좋다. 하체 부실한 것과 배나온 것을, 손만 잡고 있을 뿐이데 어떻게 알 수 있나. 옳지. 한 달에 한 번 여기 와서 검사해보면 성적을 알 수 있겠구나. 굳이 병원에 안 가도 되는 것이다. 참 알고 보면, 탈도 많고, 말도 많지만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범어 공원에서 내려와 대구은행 지점에 들러 생수를 마셔도 눈치 한번 안 준다. 정말 인심이 후한나라다. 조금만 더 소통하면 된다.
이러구러 11월이 가고 12월이 가도 몸무게가 하나도 변하지 않아 참 미칠 노릇이었다. 왜 살이 안 빠지지. 그랬는데 1월달이 되니까 드디어 살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주 조금씩. 그리고 어제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체중을 재니까 드디어 마의 70도 돌파하고 69도 돌파하고 무슨 히말리아 고봉처럼 좀처럼 진입을 허용치 않던 68키로 대에도 성공했다. 가속도가 붙는 것이었다. 처음 74키로에서 이만큼 온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운동에서만큼은 의지가 별로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원인이 뭘까 곰곰 생각하다가 며칠 전에야 겨우 알아냈다.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장기가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면 감동 안 하고 못 배길'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사투를 벌이던 장기가 주인이 운동을 시작하니까 냅다 이때다 하고 나에게 주문을 걸어온 것이라는 것을. 조금만 더 걷자 하면서.
그래보니 알겠다. 운동만 하면, 당뇨고 뭐고 간에 한방에 다 날릴 수 있다 생각해서 내가 행동을 취하니까 몸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온다는 것을. 아니 호응정도가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기까지 한다는 것을. 그러고보니 또 알겠다. 내 목숨이 나만 모르는 상태에서 경각에 달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내가 운동을 시작했을 때, 몸도 딴지를 걸지 않고(말이 나왔으니 이야긴데, 꼭 오늘 해야 돼, 내일도 있잖아, 하는 유혹만큼 달콤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이때다 하고 두말없이 그 체제에 맞춰 가동을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고 보면 정신으로나 몸으로나 다 함께 수긍이 되고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엄청난 위력을 발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도 이런 위력이 있는데, 가족이, 어떤 조직이, 심지어 나라가 그런 쪽으로 가면 핵폭발에 버금가는 추진동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탈도 많고 말도 많지만 우에됐든동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지도자와 국민이 '한번 잘 살아보자'고 똘똘 뭉쳤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보릿고개라는 말을 모른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이런다고 내가 특정 정치세력을 비호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사실 요즘 신문 날짜만 가리면, 지난 정권 이야기인지 여겨지는 것도 많고, 심지어는 60년대 기사로 착각되는 것도 많다. 그러니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차기 대권을 거머쥔 우리 김순란회장님과 임원진들이 한 마음이 돼가지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거 절대 정치적인 이야기 아니다. 어떤 단체든지 무슨 조직이든지 간에 목표가 주어지면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좌우지당간,
지금 다 성공한 것도 아닌데, 미리 이런 말 하긴 좀 무엇하지만, 무슨 일을 하다가 중도에 그쳤다고 의지없는 자신을 책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책이 아주 심해지면 그것도 병이 된다. 단지 인체는 아주 오랫동안 생존에만 길들여져 있어서 거기에만 적극적으로 대처할 뿐이라는 것을 알면 그만이다.
또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이것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자신도 확신을 하고, 몸에게도 자꾸 그런 주문을 걸면, 그리고 그것이 정신적으로나 몸적으로나 받아들여지고 확신이 서면, 전혀 차원 높은 삶도 가능해질 지도 모르겠다고. 이 어리버리도 운동에만 그치지 않고, 이것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찾아가지고 몸에게 주문을 거면서 다른 일에도 도전해볼 참이다.
기대하시라. 먼먼훗날의 후일담을 . ㅋㅋㅋㅋㅋ
첫댓글 방송대 이야기를 빼야 되는데, 그냥 올렸습니다.
본문에도 있듯이, 수다로 마음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바랍니다. ^^
이렇게 험한 다이어트의 여정을,,,,
보행할 때의 운동화도 많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후일담 기대 만땅이옵니다
그냥 등산화 신고 합니다. ^^
워킹화를 신으세요 관절나빠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