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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개별곡 스크랩 기다리는 아픔 / 조용필
다몬드 추천 0 조회 32 14.11.02 05: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Diamond 애창곡 No 1

 

DiamondDiamond Diamond

 

'가왕'이 돌아온다..조용필, 2년만 전국투어

 

 

 

기다리는 아픔 / 조용필

 

고독한 이 가슴에 외로움을 심어주고
초라한 내 모습에 멍울을 지게 했다
함께한 시간보다 더 많이 가슴을 태웠고
사랑한 날보다도 더 많이 아파했다
아픔속에 지워야 할 사랑이면
고개숙인 향기마저 데려가지
눈을 떠도 감고 있는 내 그림자
그대에게 가고 있는데
날 위해 힘들다 말해줘
내가 기다릴 수 있게 해줄래
돌아와 베어진 가슴에 눈물이 마를 수 있게
눈물이 마를 수 있게

 

아픔속에 지워야 할 사랑이면
고개숙인 향기마저 데려가지
눈을 떠도 감고 있는 내 그림자
그대에게 가고 있는데
날 위해 힘들다 말해줘
내가 기다릴 수 있게 해줄래
돌아와 베어진 가슴에 눈물이 마를 수 있게
눈물이 마를 수 있게
 

 

 

 

 

내 가슴에 내리는 비 / 조용필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외로움도 주지 않았는데

오늘 내 가슴에 쏟아지는 비
누구의 눈물이 비 되어 쏟아지나
어제 나는 사랑에 젖고
오늘 나는 비에 젖네

바람한점 옷깃을 스쳐도
상처받는 이 가슴이

오늘은 비에 젖고 외로움에 젖네

 

어제 나는 사랑에 젖고

오늘 나는 비에 젖네

바람한점 옷깃을 스쳐도

상처받는 이 가슴이

오늘은 비에 젖고 외로움에 젖네

 

 

 

 

바람이 전하는말 / 조용필


내영혼이 떠나간 뒤에 행복한 너는 나를 잊어도
어느순간 홀로인듯한 쓸쓸함이 찾아 올거야
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여봐
작은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 갔느니
착한당신 외로워도 바람소리라 생각하지마


너의 시선 머무는 곳에 꽃씨하나 심어놓으리
그꽃나무 자라나서 바람에 꽃잎 날리면

쓸쓸한 너의 저녁 아름다울까
그꽃잎 지고나면 낙엽의 연기
타버린 그재속에 숨어있는 불씨의 추억
착한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거야

 

 

조용필

조용필은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하였다.

 

1971년에 3인조 음악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락 음악으로 전환하였으며,

1974년 쯤에서야 자신의 이름을 쓴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

26세가 되던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트로트 음악,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처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6년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4년간의

공백기를 갖게 되고, 해금 조치 이후 지구레코드와의

전속으로 1979년에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정규 1집 음반 타이틀곡 <창밖의 여자>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이 수록된 조용필의 정규 1집 음반은 대한민국 최초로

100만장 이상 팔린 밀리언 셀러 단일 음반이다.

 

 

조용필이 데뷔했을 때의 가요계는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친 가수가 없었다.

그는 단독으로 음악작업을 하면서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고

1980년대 대중음악계 영웅으로 탄생하였다.

조용필은 트로트 음악으로 처음으로 최고 인기 반열에 올랐다.

 

그가 발표한 트로트 음악을 살펴보면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미워 미워 미워>,

<허공>, <외로워 마세요>, <일편단심 민들레야> 등이 있고

이 곡 모두가 대중들 사이에서 히트한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조용필은 트로트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락 음악과 발라드 음악, 또는 <강원도 아리랑>처럼

한국 민요를 리메이크하는 등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해 내며

다양한 연령층을 확보하였다.

 

 

또한 조용필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오빠부대로 불리는

젊은 여성 팬층을 이끌고 다니기도 했으며

조용필 등장 이전에 한국 최고 인기 가수로 칭하던

남진과 나훈아의 뒤를 이어 한국가요계를 주름잡았다.

하지만 1985년 조폭 출신 김모씨로부터 폭행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경찰은 조씨에 대한 폭행사건에 대해 수사를 펼치기로 했으며

보디가드를 5명으로 늘리기로 하였다.

 

홀로 한국 가요사의 한 획을 긋기 시작하던 조용필은 1986년에

일본에 진출하여 발매한 앨범 <추억의 미아 1>가 100만장이상

판매하는 대성과를 거두어 그 해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에서는 모든 장르를 섭렵한 가수로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조용필을 엔카의 황제로 불리고 있다.

1988년에는 10집 음반을 발표했는데 그 음반의 수록곡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가 대박을 떠뜨리면서

여러 가수와 경쟁을 하였다.

 

일편 단심 민들레야 - 조용필

 

조용필은 1994년에 대한민국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00만장을 기록했다. 일본에서의 앨범판매량 역시

공식적으로 600만장이 넘어 한류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오가며 활동을 해오고 있고

지금까지 총 18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가장 최근의 앨범은 2003년에 발매한 18집《OVER THE RAINBOW》

(비정규앨범은 2009년에 발매한 《2008년 조용필 40주년 콘서트

기념 앨범 "THE HISTORY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조용필 이후로 가요의 음반 판매량이 외국 음반 판매량을

넘어서게 되었다. 데뷔 이래 현재까지 조용필의 히트곡은

다른 가수들 보다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1983년에 미술교사 박지숙과 결혼하였으나 5년만에

이혼하였고 1994년 재미교포 안진현과 결혼하였다.

하지만 결혼 9년차 2003년,급성 심근경색으로

부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조용필은 부인 안씨를 추모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바로 <진>이다.

당시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감정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눈물을 흘렸다.

 

 

현재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역사, 전설, 가왕,

국민가수 등으로 불리며 한국 대중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다양한 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다른 작곡가에게 받은 곡일지라도 대부분의 곡을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 하였으며 앨범 프로듀싱까지 하여

대한민국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확립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는 자신의

단독 콘서트 활동을 통해 각종 진귀한 기록들을

낳고 있으며 한국의 콘서트 문화를 정착시킨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Diamond Music 음악방에 고운 걸음으로 들려주심에 깊은 감사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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