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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동은 김달삼 사살설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
“저도 알고 있는 게 없습니다. 현지에서 올라온 정보이고, 현재 그의 시체가 강릉에 이송되어 있다더군요. 사실 전과를 올리기 위해 거짓 보고도 많이 합니다…”
“우리 신문사 기자도 뭐라 확답을 못 하더군…”
며칠 전 그곳을 현장 답사한 기자의 보고에 의하면 인상착의와 소지품만으로 추정 할 뿐 객관적 사실을 담보할 어떤 증거도 없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동의했다.
병문은 김달삼만 나오면 낙준이 떠올랐다. 재작년 김달삼과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불시검문에 걸리고 고초를 겪었다. 그때 이후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경찰의 추적을 받아오고 있었다.
또 한 사람 떠오르는 인물은 현재 남도부라는 인물로 알려진 하준수였다. 병문의 고보 일 년 후배인 하준수와는 특별한 개인적 친분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학창 시절 가장 유명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와 김달삼은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 이르는 빨치산 사령관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하준수는 갑동이 학창 시절 우상처럼 떠받들던 선배 아닌가. 병문은 하준수를 상기하며 짓궂은 질문을 갑동에게 던졌다.
“갑동이, 만약에 자네가 남도부, 아니 하준수를 막닥뜨리면 어떡할 건가?”
갑동은 질문의 요지를 눈치채고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과거의 인연은 인연이고, 현재는 적 아입니까? 지가 나라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사적인 연에 끌려다니지는 않을 겁니더…”
갑동은 불편한 질문을 피하려는 듯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세 사람에게는 또다른 불편한 인물이 있었다. 소식이 묘연해진 동창 성낙준. 그와 만난 시간도 꽤 오래 되었다. 병문은 얼마전 남로당 거물 김삼룡이 체포된 소식을 떠올렸다. 그때 동시다발적으로 체포된 남로당원들 중 어디에도 낙준은 없었다. 작년 이곳에 있는 김소산과 혜린에게도 연결된 정황으로 보아, 그리고 황 서장의 태도로 보아 낙준이 여전히 비밀리에 잠복해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짐작만 했다. 다들 우려하듯이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달이 기울고 밤이 깊어져 갈 무렵,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갑자기 실내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일단의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방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병문의 일행을 둘러쌌다. 한 손에 권총을 들고, 한 손에 수갑을 든 걸로 보아 형사들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란 갑동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큰소리 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난 방첩대 수사과장 정갑동 소령이다.”
사내들은 갑동의 기세에 눌려 잠시 주춤했다. 그중 책임자인 듯한 형사가 신분증을 보이며 말했다.
“난 성북경찰서 수사반장입니다. 긴급 제보가 있어 연행하겠습니다.”
“제보라니… 우리가 간첩도 아니고…”
“일단 서까지 연행해야겠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어찌 경찰이 국군 장교를 연행하려는가.”
갑동은 지지 않으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권총으로 형사들을 위협했다. 형사들은 잠시 뒷걸음질 쳤다. 형사들도 지지 않고 세 사람을 둘러싸고 총을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이 순간 병문이 갑동을 막아섰다. 일단 순순히 따르자는 병문의 신호에 갑동은 권총을 내려 놓았다.
수갑 채워진 채 방을 나서는 그들 앞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김소산이었다. 그녀 역시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안위는 신경쓰지 않는 듯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경주는 그녀가 낙준 때문에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 알고 어찌할 바를 몰라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가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일선 형사들이 어떻게 신원을 일일이 알 수 있겠습니까…”
황 서장은 병문 일행을 보자마자 당장 사과부터 했다. 그는 평시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과하자마자 바로 세 사람을 석방했다. 사과의 의미로 경찰차로 집까지 모셔드리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황익규는 자신의 자리에서 비망록을 살피며 최근의 상황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의 끈질긴 포석으로 남로당 핵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특히 김삼룡의 체포는 그의 집요함이 빗어낸 뜻밖의 성과였다. 잠복하던 형사들이 수상한 사람을 추적 끝에 한 적산가옥을 덮쳤다. 서너 명의 수상한 젊은이들이 저항했다.
그러는 사이 한 사람이 뒷문으로 탈출했다. 그 사내는 담을 타고 넘다 다리를 다쳤는지 심하게 절면서 결사적으로 도망갔다. 비상이 발동되었다. 다리 저는 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검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그날 서울 시내 다리 저는 사람은 발견 즉시 모두 압송되었다.
결국 다음날이 되어 김삼룡도 체포했다. 예전 남로당에서 전향한 형사에 의해 그 사내가 김삼룡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황 서장은 뜻밖의 대어에 흥분만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김삼룡을 미끼로 또다른 함정을 팠다. 김삼룡은 남한에 잔류한 남로당 최고 책임자 아닌가. 나머지 잔당들이 결사적으로 김삼룡을 구출할 것이라 예상했다. 일단 내부에서부터 입단속에 들어갔다.
“지금 잡은 자가 김삼룡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김삼룡을 일반 잡범처럼 취급하며 일부러 경계를 소홀히 했다. 대신 주위에 형사들을 잠복시켰다. 며칠 후 경찰서를 서성거리는 수상한 사람을 체포했다. 2인자 격인 이주하를 체포했다. 이제 남은 거물은 정태식이었다.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이미 포착한 상태였다. 정태식의 대학 시절 친구인 채항석이었다. 그는 일개 은행원이었지만, 그의 부인은 장택상의 장녀 장병민이었다.
장택상의 큰딸과 사위라는 막강한 방어벽이 있어 함부로 그가 있을만한 거처를 급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남로당의 거물들이 속속 검거되는 상황에서 거칠 것이 없었다. 다시 함정 수사를 개시했다. 일주일이 안 돼 정태식도 걸려들었다. 짐작대로 그는 장택상의 사위 집에서 체포했다. 그때 정태식과 함께 있었던 서너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현장에 있던 황 서장은 재빠르게 도망가는 한 젊은이를 보았다. 그가 바로 성낙준이라고 확신했다. 워낙 재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그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그를 마지막으로 검거하고 싶었다. 그가 움직일만한 유력한 곳이 대련각이었다. 성낙준 대신 그의 친구들이 잡혔다. 이제 김소산에게도 더 이상 덫을 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김소산이 연행된 방으로 들어갔다. 포승줄에 묶인 김소산은 황을 보자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미소 지었다.
<계속>
첫댓글 재밌네요 ^^
아주 어렸을때 아버지따라 집 가까이
양정고등학교 강당에서 시국강연?따라갔던 기억이 어슴프레 생각이납니다...
그시절 열기가 어린마음에 기억나는걸보니 아마 6.25 전쟁 끝난지 얼마지나지않아 선거철이 아니었나.....소설속 닥아오는비극의 냄새가 그 때의 기억까지 소환하며 시대의 아픔속으로 함께 들어갑니다....
세 친구의 체포..
남은 친구, 주인공에게 죄어오는 그물..
소설이 막바지로 치닫는 긴박감이 대단합니다
서늘한 새벽
마음을 조이며 소설을 읽다 보니
청년 시절의 그 가을 밤과 기시감!!
오늘도 고맙습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