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박미경(46세)· 배형진(22세) 모자(母子)를 다시 만난 건 정확히 1년 반 만이었다. 두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을 환한 미소와 웃음으로 대했다. 살던 집도 그대로였고, 손님이 오면 말없이 자리를 내주는 동생 슬옹(21세)군도 그대로였고, 가끔은 뜻 모를 표정을 짓거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형진씨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적어도 외관상은 변한 게 없었다.
그러나 이들 가족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동생 슬옹군은 그사이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어머니 박씨는 건강이 안 좋아 한때 큰 위기를 겪었으며, 조그만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배동희(50세)씨는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공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사이 형진씨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을 했으며,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마라톤을 그만두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맘껏 달리는 마라토너였지만, 지금은 작업복을 입고, 소도시의 작은 공장에서 하루 9시간 동안 꼬박 부품을 조립하는 공장 근로자가 된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였다.
“운동을 계속 시키고 싶었지만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형편에 형진이가 계속 운동을 하려면 결국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분들도 결국 상처만 주더군요. 이럴 바엔 차라리 운동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론을 통해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고 난 뒤 후원을 자청하며 연락해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순수한 마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는 게 박씨의 얘기. 그들은 얘기를 잘 하다가도 막판에 꼭 뭔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결국 형진씨는 운동을 그만뒀다. 그리고 학교에서 소개해준 하남의 작은 공장에 취직을 했다. 공장에서 형진씨가 하는 일은 악기용 작은 부품을 조립하는 일.
형진씨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 두 번이나 경기를 일으켜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운동을 할 땐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었고, 밤에 잠도 잘 자던 그였지만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운동만 하던 사람이 집이 아닌 외딴 곳에서, 하루 반나절 가까이 꼼짝도 않고 단순 작업을 한다는 건 분명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자폐를 앓고 있기 때문에 의사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진씨는 자신의 힘든 심경을 그런 식으로라도 알리려고 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