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중)
고종은 전날 저녁에 감주를 들었다 했다.
일본인들이 나인을 매수하여 독을 탔다는 말이 궁 안을 떠돌았다. 옹주늨 넋을 잃은 듯 앉아 있었다.
유모는 옹주를 감싸 안았다. 탈진한 듯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옹주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그럴 수는 없다. 지난 밤 내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아바마마는급환으로 돌아가실 분이 아니다.'
옹주는 입을 앙다물었다.
" ..... 이건 독살이야."
칼날처럼섬뜩한 말이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확신이 서려 있었다.
" 마마, 그런 말씀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심증으로는 확실하다 하나 소리 내어 발설할 수는 없었다. 입을 다물어야 했다. 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유모는 내가 어젯밤 늦게까지 아바마마랑 함께 있었던 걸 모르는가?"
" 아옵니다, 아옵니다."
" 그런데 왜 이런 일이...... ."
옹주는 눈물을 훔쳐 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발밑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모로 쓰러졌다. 유모가 황급히 그녀를 일으켰다. 유령 같은 얼굴을 마주하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 마마, 마마! 정신 차리소서! 마마!"
옹주는 쉬이 깨어나지 못했다. 열이 오른 옹주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가느다랗게 숨을 쉬고는 있으나 금방이라도 툭 끊어질 것처럼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 마마, 견더야 하옵니다. 살아야 하옵니다. 그것이 바로 붕어하신 선왕의 뜻일 것이옵니다."
유모의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련했다. 견더야 한다. 살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 아바마마가 살아 계실 동안에나 가치 있는 게 아니던가.
아바마마를 위해 살고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살고.
그런데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옹주는 정신이 까무룩 잦아드는 걸 느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영영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리라.
유모는 품에 안은 옹주를 힘껏 흔들었다. 다시 옹주가 눈을 떴다. 그러나 그 눈빛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옹주는 소리 없이 울었다. 눈물만 흘렀다.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이 유모의 옷자락을 적셨다.
" 아직은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옵소서."
유모는 주문처럼 그 말을 읊조리며 옹주의 작은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고종의 승하 원인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급보를 듣고 순종이 달려갔을 때 이미 전의 안상호와 총독부 의원 모리야스 박사가 고개를젓고 있었다고 했다.
의친왕, 이지용, 민영휘 등의 근친자 자작들이 별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고종의 유해가 흑자색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궁궐 안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일본인 어의는 고종의 공식적 사인을 뇌일혈이라고 발표했다.
수라간의 궁녀 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흘러니왔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범인으로 장시국장 한창수와 새로운 시종관 한상학, 윤덕영이 거론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그저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에 말을 보탤 뿐이었다.
" 낭중지침이라 했는데..... ."
밤새 눈물을 쏟고 나서 옹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궁 안이 뒤숭숭한 가운데 1월 27일,
" 대훈의 이태왕 홍거에 대하야 특히 국장을 행한다" 는 칙령에 따라 고종의 국장을 관장하는 장의괘 사무소가 동경 궁성 안의 내각에 설치했다.
조선의 의례서인 ' 상례보편'의 제반 절차를 따르다가 갑자기 1월 27일에 일본식 제례를 따르게 한 것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 저승으로 가시는 길조차 일본식으로 따라야 하는구나.'
사람들은 장례의식조차 일본식으로 치러야 하는 고종의 죽음을 한탄했다.
고종의 승하소식이 전해지자 백성들의 조문과 통곡이 대하문 밖에서 이어졌다.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된 가운데 24일 영친왕이 귀국했고 25일 밤엔 재궁(왕, 왕비, 세자, 세자빈의 관을 일컫음)이 함녕전으로 들어갔다.
이왕직 고등관 및 황실 친족, 귀족들은 전통상복 혹은 양장예복으로 갈아입고 성복제를 치렀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어린 옹주는 인형처럼 아무런 말이 없었다.
2월 9일,
순 일본식제의로 국장을 행한다는 봉고제가 진행됐다.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봉고제에 창석했다. 제관장은 이토 히로쿠니였다.
귀족대표 윤택영 후작, 민영휘 자작, 야마가타 이사부로 정무총감 등도 참석했다. 일본식으로 제의를 차려 입은 사람들이 경운궁 안에 득시글거렸다.
' 이제 우리 마마, 가여워서 어찌 할꼬.'
유모가 훌쩍거렸다. 옹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낭중지침이라 하였어."
단호하게 그 말을 되풀이해 외치는 옹주의 눈에 꾹꾹 눌러 담은 분노가 가득했다.
백성들의 분노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참다 참다 터지는 분노는 아무도 걷잡을 수 없었다.
첫댓글 조선 황실의 흔적을 없애기위해 일본인들은 온갖 노력으로 ~~~고종황제까지 승하하게 만들고 , 저승으로 가는 임금은 일본식 제례를 치러야하는~ 모든 게 조선은 일본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뼈아픈 나날을 보냈어요
고종황제는 독살을 당한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쩌든지 쉽게 한반도를 집어 삼킬 욕심에
눈이 먼 왜놈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