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에서 서남쪽을 바라볼 때 군소산들을 넘어 검푸르게 멀리 바라 보이는 산이 단석산(斷石山)이다.
경주시에서 40리 가량 서쪽으로 있는 경주시 건천읍에서 산내면에 가는 도중, 우측에 솟아 있으며, 높이 827m로 경주 주변의 산중에서 제일 높은 산이고 신라 때부터의 명산이다.
삼국시대의 신라에서는 중악(中嶽)이라고 불렀고, 동경잡기에 의하면 일명 월생산이라고 했다 한다.
중악은 김유신장군의 수도장으로 유명하다.
단석산은 청도군의 운문산과 연결되며 그 운문산은 세속오계를 남긴 원광법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신라의 육장(六將)이 수도했다는 장육산(將六山)도 단석산의 일부이다.
단석산(斷石山) 남쪽은 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큰 자연호수가 있어 화랑(花郞)들이 말을 기르고 조련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석산(斷石山)을 중심으로 운문산(雲門山), 장육산(將六山), 말먹이 벌, 말먹이 못 등을 연결하는 이 일대가 화랑의 수도장(修道場)이었것이라 추측된다. 산이 험준하고 도심지(都心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국립공원(國立公園)의 한 지역(地域)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개발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진천)의 태수이던 서현(敍玄)장군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백제,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에 소개되어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이 산은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 우중골에 있으며 산 7∼8부 능선 4개의 바위가 둘러싸인 천연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상인암 (上人巖:일명탱바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이 바위굴속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이 절을 신선사(神仙寺) 또는 단석사(斷石寺)라고 부른다. 내부의 마애불상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단석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827m)으로 백제에 대한 신라의 국방 의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진달래군락지로 봄철 산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인근 조래봉(657m)과 더불어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진달래 개화 시기는 비슬산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것 같고 이시기에는 천주암에서 올라오는 745봉 부근의 진달래가 좋다.
산행기점 찾기
"교통편을 참조" 하면 산행기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천주암 입구 약수터에는 7대정도의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우측에 공덕비 바로위에 있는 리본을 따라 진입을 하면
묘가 있는데 길이 여러갈래 나았는데 좌측으로 잡으면 되고 천주암을 둘러본후 산행을 하여도 된다.
등산코스
1코스 : 송선리 우중골 - 신선사 - 정상 (2시간)
2코스 : 방내리 - 방내못 - 화장골 - 정상 (2시간)
3코스 : 방내리-천주암-745봉-정상(2시간), 진달래군락지
교 통
신선사로 가기
건천 IC를 나와 우회전하여 약 3.3km을 가면 좌측으로 "단석산 신선사"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다.
승용차만 통행을 할 수 있고 이곳에서 1.1km을 올라가면 단석산장이 나온다. 이곳이나 조금더 올라가 주차를 하여도 된다
단체 버스를 이용시에는 "단석산 신선사"입구에서 내리면 많이 걷게 됨으로 청도, 운문방향으로 700m쯤 더올라가
공선2리(우중골) 버스 하차장에서 내려 "해겸도예"를 지나 단석산장으로 가면 된다.
천주암으로 가기
건천IC를 나와 좌회전 건천시내로 들어가 2km 정도 가면 철도 밑 지하를 지나 20-30m, 좌측 농협이 보이는 신호등에서
우회전을 하여 2.3km를 가면 우측에 금척고분군이 있고 다시 1.7km를 가면 우측에 모량초등학교가 보인다.
이곳 우측에 용화사 등 간판이 있는데 전주 때문에 잘보이지 않으니 조심하고 묘량초등학교 뒤건물을 따라 우회전
철도와 고속도로 밑을 지나 버스는 직진을 하고 승용차는 우회전 시멘트 농로를 따라(차량교행불가) 가면 다시 큰길과 만나 우회전후 급좌회전을 하면 방내 자율방범초소를 만난다.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앞을 지나는 대구-경주간 국도변의 양쪽에 30여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해발 65m 정도의 평지에 고분군(古墳群)이 조성되어 있는데 도로의 서쪽에 분포하는 고분군의 봉토는 비교적 그 규모가 큰 편이며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으나 도로 동쪽의 고분들은 비교적 봉토가 작고 봉토의 훼손도 또한 심한 편이다.
서쪽의 고분들은 잘 정비된 상태로 관리되고 있으나 동쪽에 분포하는 고분의 주위로는 밭, 과수원 등으로 경작되고 있어 고분을 포함한 고분 주변의 훼손이 우려된다. 대형묘는 아니나 봉토들이 완전한 고분들이 있고 고분 중 하나에 금척(金尺)이 부장되어 있다는 속전이 있는 것으로 고 신라의 귀족묘로 추정된다. 1952년 대구-경주간 국도에 의해 봉토의 절반이 파괴된 2기의 고분을 국립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바에 의하면 경주식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금제세환식(細環式), 호박옥(琥珀玉), 곡옥(曲玉), 철도(鐵刀)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여근곡
부산(富山)은 경주시(慶州市)에서 대구(大邱)방면(方面) 약 16km 건천읍(乾川邑)과 산내면(山內面)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 640m의 산으로 전설(傳說)과 사적(史蹟)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지리지(地理志)에는 부산(夫山)이라고도 기록(記錄)되었으며, 주사산(朱砂山)과 오봉산(五峯山) 등도 부산내(富山內)에 있는 주사암(朱砂庵)과 오노봉(五老峯) 등에서 온 별칭(別稱)이다. 부산(富山)에서 가장 유명(有名)한 곳이 여근곡(女根谷)이다.
산 지형이 영락없이 여자의 벌리고 있는 다리 가랭이와 그 국부를 닮았다고 하여 여근곡이라 한다. 현재 여근곡에는 유학사라는 조그만한 사찰이 있고, "옥문지(玉門池)"라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우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