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파 종정예하 출가 이전 소년 시절 한시 모음집 ‘온계시초’ 출판
- 청소년 시기 씨줄날줄 교차점에 생동감 가득
- 어릴 적부터 ‘재동’ 꼽혀 원로 유학자들 참가하는 ‘시회’에도 참가할 정도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가 출가 이전에 지은 한시 모음집 ‘온계시초(溫溪詩抄)’를 펴내 주목을 끌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붓글씨를 쓰는 모습.
佚宕今無學
居然後有悲
天下均平道
只在不失時
방탕하여 지금 배우지 않으면
어느덧 훗날 슬퍼함이 있으리.
천하의 고르고 공평한 도리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않음에 있네.
(본문 100쪽 ‘무제 7수’ 중에서)
출가 이전 소년 시절의 성파스님이 지은 한시 모음집 '온계시초(溫溪詩抄)' 책 표지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가 출가 이전 소년 시절 지은
한시 모음집 <온계시초(溫溪詩抄)>(원작 조봉주, 역주 성범중/도서출판 통도)가 출간됐다.
<온계시초(溫溪詩抄)>란 따뜻한 시내에서 뽑아 올린 시(詩)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년 시인이 설정한 삶의 지향이자 소박한 희망을 나타낸 세상을 일컫는다.
종정 스님은 1939년 경남 합천군 야로면 창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책 <온계시초>는 바로 그 고향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가야면 사촌리의 서당 ‘강성재’에서 수학하던 시절(속명 조봉주),
그러니까 출가하기 2~3년 전에 써놓은 한시를 시체별(詩體別)로 묶은 내용들의 한시 번역서이다.
‘온계(溫溪)’는 스님의 자호(自號)이기도 하다. <온계시초>의 초고본 <온계 조봉주 시초>에 실린 작품은 총 210수였다.
그러나 펜으로 금을 그어 지운 작품 3수,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 15수를 번역 대상에서 제외해
이번 책에는 총 192수의 한시가 실린 셈이다.
종정 스님의 출가 연도는 1960년이다.
이 책<온계시초>에 실린 시는 원작자, 종정 스님이 출가하기 전인 16~18세에 써놓은 것을 1958년 2월에 별도로
공책에 정리한 것이다.
종정 스님이 출가 3~4년 전인 1955년~1957년 사이, 만 18세 이전에 써놓은 내용들로 무려 68년 전의 보물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내용이다.
閑尋聖籍辨陰陽
脉脉胷中智日長
雨聲昨夜生氣動
萬山景色一新蒼
한가로이 성인의 저술을 찾아 음양을 분별하니
가슴속에서 끊임없는 지혜가 나날이 자라네.
어젯밤 빗소리에 생기가 움직이더니
수많은 산들은 경색이 한꺼번에 새로 푸르러지네.
(본문 64쪽 ‘칠언절구’ 중에서)
종정 스님은 책의 서언(序言)에서 이번에 출간된 한시집 <온계시초>에 들어있는 시들은 ‘동적(動的)인 생동감’이
가득했던 청소년 시기, 공문(空門)에 들어오기 이전 향리의 서당에서 공부하던 시절 읊조렸던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스님은 “출세간의 ‘고봉정상(高峰頂上)’도 세간의 ‘십자가두(十字街頭)’도 잘 모르던 시기에 지은 작품들이라 고졸(古拙)한
구절이 더러 있을 수 있다”고 겸손해하면서 “질박한 시구를 읽다 혹 마음속의 현묘한 거울이라도 발견한다면
그것 또한 과거와 지금의 일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하나의 다리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밝혔다.
책의 목차는 원작자 종정 스님의 서언과 오언절구(4수), 칠언절구(57수), 오언율시(18수), 칠언율시(112수),
고시(1수) 순으로 실렸으며 역주자인 성범중 울산대 명예교수의 후기가 책의 뒷부분에 실려 있다.
한편 <온계시초>는 시집에서는 드물게 ‘색인’을 실어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를 돕게 한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誰知此處古人風
讀易深窓一燭紅
諸君莫道今時富
不若隨貧外私空
누가 이곳에 옛사람의 기풍이 있음을 아는가?
<주역>을 읽는 깊숙한 창에 촛불 하나가 붉네.
그대들은 지금의 부유함을 말하지 마라.
가난을 따르되 외적 사욕을 없애는 것만 못하네.
(본문 49쪽 ‘칠언절구’중에서)
출가 이전에 쓴 한시를 옮겨놓은 공책 표지.
‘溫溪 曺鳳周 詩抄(온계 조봉주 시초)’라 적혀 있다.
‘공책의 안쪽 ‘曺鳳周 溫溪詩抄(조봉주 온계시초)’.
1958년(단기 4291) 2월에 정리한 것이다.
종정 스님은 어릴 적부터 재동(才童)으로 불렸다고 한다.
합천의 원로 유학자들이 참가하는 봄, 가을의 시회(詩會)에 참가해 60~70대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가 하면
시회에 참가해 쓴 시들은 주관한 이들이 챙겨가 따로 적어두지 않은 탓에 이번 한시 역주에 싣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 제목에는 합천 고향 마을이나 서당 등 장소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으며 서울의 삼각산 백운대, 군사, 계룡산 등
지명이 제목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합천의 서당 ‘강성재’에 다니며 다른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 그 실상을 알고 싶어 혼자 다른 지역으로
호연지기도 기를 겸 유람을 떠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어느 해 봄에 한 달간의 일정으로 떠났을 때 지은 시들이다.
그런가 하면 태백산에 은거하고 싶다는 내용을 다룬 시는 실제로 태백에 들어가 거주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고 싶다는
가상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라고 종정 스님은 밝혔다.
결국 종정 스님의 출가 전 한문 공부는 ‘강성재’에서 3년간 한정산 훈장에게 수학한 것이 전부였다고 전했으나
<명심보감> <소학> <논어> <맹자> <중용> <시전> <서전>을 공부하며 탄탄한 한학의 입지를 마련한 것이다.
■ 스스로 부르짖다 (自號)
虎嘯篁林谷 群獸隱跡忙
龍潛蒼海濶 鳥尺白雲茫
日曝中園野 風來南浦汪
大器完成後 好還父母鄕
호랑이가 대숲 골짜기에서 울부짖으면
뭇 짐승들은 자취를 숨기기에 바쁘네.
용이 잠기니 푸른 바다가 넓고
새가 날갯짓을 하니 흰 구름이 아득하네.
햇볕이 비치는 가운데 동산이 펀펀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남쪽 갯가가 넓네.
큰 그릇을 완성한 뒤에는
부모님 계신 고향으로 기쁘게 돌아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