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에 관한 시모음 16)
제비꽃 /최동희
작은 꽃이라고 얕보지 마라
제 꿈을 위해 당당하게 선
저 거짓 없는 얼굴을 보라
묵은 대지를 들어 새로운 하늘을 연
보랏빛 뚝심을 보라
바람에 흩어지는 향기 없이도 발길 붙잡는
요염한 눈짓을 보라
억센 줄기도 없이 기어코 꽃자루 올리는
지독한 몸부림을 보라
작은 꽃이어서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제비꽃, 얕보지 마라
제비꽃 /메주스님 고제웅
그녀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녀
얼마나 깊으면
눈시울이 시리다 못해 하늘빛으로 아리따울까
꽃실을 타고
첫뽀뽀 화경* 안으로 들면
은하수보다 깊은
가슴이
강물로 흐른다.
*화경: 하나의 꽃이 화축에 피어있을 때 꽃대와 연결되는 자루 부분이다.
졸방제비꽃 /신미균
속살거리며
비온다
상봉동 시외버스터미널
우산이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한해살이 풀들
저마다
보따리만한 절망
하나씩 안고
처마 밑에서
오들 오들
그냥 비 맞고 있다
제비꽃 /남원용
빗소리 팔짱 걸고
제비 따라 달려온 날
아름아름 피어난
아지랑이 숲속 길에
날개 접은 이슬 내려앉고
하늘향한 나의마음
보랏빛으로 물들면
수줍게 노래하는 종달새 날개위에
제비꽃 곱게 접어 구름위로 날아간다.
제비꽃 /허정자
양지바른 초가집 흙담 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보랏빛 제비꽃
살랑이는 봄바람 따라
볏 살 마실 나와
이야기꽃 피우며
웃음꽃 터트린 제비꽃
소곤소곤 거리는
사월은 행복이어라
제비꽃 그녀 /유소례
뜰 아래 요조숙녀 제비꽃
봄볕을 걸치고 사색한다
나긋나긋 맵시가
S아우의 각선미를 닮아
꽃잎 위에 입체 되는 향긋한 끌림
밝으면서 숙연하고
나약하면서 당당하고
고고하면서 풀꽃 냄새, 제비꽃 같은 여인
어느 날, 그 아우
노을빛 무르익은 언덕에서
제비꽃은 노을 물고
그녀는 입술에 노읇 물고
눈썹에 이슬 적시던 시리고 다정한 성품
곱게 틀은 낭자 속에
아린 그늘은 모두 밀어 넣고
맵차게 꽂아버린 꽃비녀의 비밀
뜰 아래 제비꽃,
체념의 꽃술이 벙긋이 웃고 있다.
제비꽃 출사 /이새별
봄 병아리들이 탐방로를 걷던
나를 종종종 따라온다.
숲속 푸르름이 삐악삐악 소리를 지른다.
삼각대에 걸쳐진 내 카메라는
까르르 웃고 있는 꽃을 향해있다.
저도요 저도요 노랑제비꽃이 일어선다.
바람도 꽃을 따라 일어서고
벌도 달려와 포즈를 취한다.
11월 제비꽃 /신동현
얘야
꽃들은 마음의 보약이란다
꽃들은 시들어 갈수록 더 진한 향기를 내지
어머니
겨울이 오는 것은 무서워요
찬바람과 추운 날씨 때문이 아니에요
아름다운 꽃들의 나라로
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 어떤 꽃도
그냥 스쳐지나가면 곧 후회할 거예요
어머니
꽃 속에는 향기로운 상처들만
가득해요
꽃들은 눈물에서도
향기가 나요
제비꽃 물김치 /손영희
박시인이 담가준 제비꽃 신 물김치
땅에 서린 기억을 몸으로 받을 줄 아는
햇살이 몰려가는 저쪽
문득 , 발이 저리다
흰 무명 덧대 기운 검정 고무신 깔고 앉아
넋놓고 오수에 잠겨드는 꽃들의 시간
수저로 건저 올린다
어머니의 슬픈 밭둑
몇 꿈을 돌아와도 이랑은 너무 길어
꽃핀 저녁 밥상이 환해서 아픈 시여
수면에 떠오르는 봄
경건히 받는다
금강제비꽃 /김승기
잘 있었는가
반가우이
여전히 그대로 꽃 피우고 있구먼
하얀 웃음이 보기 좋네 그려
미안허이
자주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한 번도 찾은 적 없는 고향
병든 몸으로 찾아온 것
용서하구려
보고야 싶었지
생각이야 꿈에서도 오매불망
벌써부터 오고도 싶었지
어쩌겄는가
오죽했으면 정든 땅을 등졌겄는가
갈 데가 없더라구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고향 아니겄는가
자네가 있어
염치 불구하고 찾아왔구먼
고마우이
모두 외면하는데
네만은 변함없이 반겨주는구먼
이해하구려
병으로 찌그러지고 나서야 찾은 고향
나으면 또 떠나야 할 몸일세
괜찮겄지
그 동안 자네 품에 안겨
맑은 웃음 바라보며
고단한 몸 쉬어 가고 싶으이
정말 멋있구먼
오로지 이곳 한 자리에서
뿌리 내리며 꽃 피우고 지우고 하는
환한 미소가 아름답네 그려
※ 금강제비꽃 :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특산식물이다. 우리나라 지리산과 강원도 오대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금강산까지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의 깊은 숲속에 자생하는 고산식물이며,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희귀식물이다. 원줄기는 없으며, 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길게 뻗는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오는데 심장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뒷면 잎맥 위에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이 처음 나와 꽃이 필 때까지는 안으로 말려 있다가 꽃이 지면서 활짝 펼쳐진다. 4~5월에 흰색의 꽃이 피는데 꽃줄기는 잎보다 짧으며, 입술꽃잎 안쪽에 자주색의 줄무늬가 있다. 7월에 타원형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으면서 3갈래로 갈라지며 씨앗이 드러난다. 한방에서「자화지정(紫花地丁)」이라 하여 지상부(地上部)의 전초(全草)를 약재로 쓴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이 붙여졌다.
제비꽃 한 가족 /유소례
지하도 시멘트벽 아래
당돌하게 문패 하나 달고
애써 웃음 띤 아침상이 시리다
오스스 떠는 긴 모가지 가누며
할매 아배 어매는
아들 딸의 바람막이 되어
봄냄새에 햇빛을 비벼
피란살이 외로움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빌딩숲에 갓 매장된 고향
너의 풀꽃종자들 뿔뿔이 흩어져
오직 제비꽃 한 가족만
척박한 시멘트 틈 사이
모래 몇 알 딛고
보라 얼굴 눈썹에 이슬이 가엾구나
하필이면
이 거리, 이웃 없는 외톨이
보릿고개 어찌하려고....
제비꽃님 /최광호
파란 입술로
입가 미소 번지며
피운 제비꽃.
비 맞아
잔뜩 울고 있는
제비꽃.
그래도 언젠가는
제비처럼 날 수 있을 것 같은
제비꽃.
훨훨 날아라.
제비 꽃님아...
오! 제비꽃 /안경애
들길 풀숲에
핀 제비꽃
바람이 불면
은하수 별 싸라기 뿌려놓은 듯
햇살에 기대어
꽃잎 하나하나 반짝이면
순수한 모습 그대로
사랑에 빠진 보랏빛 미소에 이끌려
봄의 연인이 되어
만져보고 싶은 사랑의 유혹
꽃 사이로
한 폭의 시화에 담아
나를 잡아끌지!
제비꽃 / 김명숙
나비도 없는 이른 봄
길모퉁이에 매단린채
이리저리 눈치 보며 새파랗게
질려 피어난 제비꽃
겨우내 동여맨 몸을 풀어
쌓인 낙엽 사이로 뽀족이
얼굴 내민 보랏빛 향기 피운다
언제 피웠을까?
살랑이는 봄바람에 파르르
떨면서 환한 미소 짓는
너처럼 나도 순간의 꽃이고 싶구나
제비꽃 /임준빈
조금만 아프고
이는 바람에도
작게 흔들리고 싶어
조급히 한쪽을 닫았을 뿐이야
향기를 버려야만
보랏빛 삶을 거둘 수 있기
모든 자 앞에
가련풋이 피었을 뿐야
가녀린 목 길게 세워
진보랏빛 미소로
수줍게 웃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뿔 꽃사슴 모가지가
길게 치켜세운 것도
그리움이 아니야
제비꽃도
뿔 꽃도
그저 하늘만 높이 바라보는 것은
하늘에 계시는 그리움을 대신해 줬을 뿐야
하나님의 눈물을 받아주고 싶었을 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