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 (18) 광양시 태인동 용지마을 송인자 씨 ‘우럭조개조림’
남도매일신문 2023. 04.26(수)
광양 갯벌이 품어낸 깊고 진한 봄맛
말린 우럭으로 독자적인 레시피 개발…입소문 타고 진가 발휘
영양 가득 뻘이 품은 넒고 깊은맛…맛·향·식감에 봄내음 물씬
단짠단짠 우럭에 마늘향이 입혀져 색다른 맛을 내는 우럭조개조림
‘우럭’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싱싱한 회로, 구이로, 탕으로 먹는 생선, 우럭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 우럭은 실제 ‘조피볼락’의 다른 이름이다. 진짜 ‘우럭’이라고 불리는 종이 따로 있으니 바로 조개이다.
필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 ‘우럭’은 오래전부터 남도 땅에서 나고 있었다. 2023년 춘삼월에 취재팀이 찾아간 곳은 광양시 태인동에 있는 작은 섬, 배알도다. 이곳은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망덕포구까지 해변을 따라 긴 데크가 조성돼 있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봄비가 내리던 날, 오후 3시쯤 배알도 수변공원 앞바다에 드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화, 비옷, 호미로 무장한 한 아낙네가 우럭을 캐기 시작했다. 처녀 적부터 우럭을 캐 온 오늘의 주인공, 올해 일흔여섯의 나이인 송인자 씨이다.
“옛날에는 배알도가 아니라 ‘큰등’이제. 큰등에 가려면 깊은 강이 있기 땜시 나룻배를 타고 30분 정도 건너가야 돼. 강을 건너면 바다가 나오는디 물 빠지면 우럭조개를 잡아오제. 옛날에는 ‘큰등 나면 우럭 파러 가세’라고 그렇게 말했당께.”
‘큰등’은 태인도 앞바다의 넓은 갯벌을 말하는데 넓은 갯벌이 마치 고래등처럼 보여 이 지역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렀고, 지금은 광양제철소 부지에 편입돼 사라졌다. 섬진강 하류에 있는 섬인 태인도에 속한 ‘큰등’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기에 우럭이 많이 났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그런지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고, 몇 해 전부터는 배알도 부근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배알도는 섬진강과 남해 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포구를 끼고 있어서 우럭이 서식하는데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배알도는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포구를 끼고 있어 우럭이 서식하는데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푹푹 빠지지 않는 모래펄에서 송 씨는 허리를 구부린 채 날이 길쭉한 호미로 여기저기 쿡쿡 찍고 다닌다. 사람 발자국 소리와 호미질이 우럭 조개의 신경을 건드리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비 오고 추울 때는 우럭 조개가 눈을 안 떠. 맑은 날에는 눈을 뜨고. 우럭 구녁이 ‘8자’ 모양으로 생겼어. 소매(수관)를 내고 빠끔하니 나와 있어. 콕 쪼으면 들어가고 그래.”
궂은 날이 오랜 경력으로 쌓은 고수의 ‘비법’을 어찌 막을까. 갯벌에 숭숭 난 구멍 중에 ‘8자’처럼 생긴 구멍을 그의 예리한 눈이 포착. 그가 잽싸게 호미로 모래펄을 한 30㎝ 정도 파더니 껍질이 까만 우럭을 꺼내 든다. 모래펄 위를 계속 호미질하자, 이번에는 번개처럼 물총 발사. 이 신호탄은 바로 우럭의 또 다른 모습이다. 비를 맞으며 캐는 짜릿한 손맛은 오직 그만이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는 우럭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럭조개는 분류학적으로 우럭과(Family Myidae)에 속하는 종으로 정식 명칭은 우럭이다. 학명은 Mya arenaria(Linnaeus, 1758)이고 한국에서는 우럭 또는 우럭조개로 불리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볼 수 있으나 1종만이 보고되고 있다. 우럭은 연안의 하구 가까이에 많이 사는 종으로 특히 하천이 유입되는 하구의 모래펄에 서식한다.”
우럭(Mya arenaria)의 내부 형태 및 명칭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제공>
그림에서 보듯이 우럭의 내부 형태와 명칭을 보면, 긴 수관을 이용해 최대 30-40cm의 저질 속에 잠입하여 서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광양지역 사람들은 수관을 ‘소매’, 소화맹낭을 ‘불똥개’라고 부른다.
일년 중 3-4월에만 우럭이 나서 봄철이 가장 맛있다. 송인자 씨가 나고 자란 용지마을에는 청정 바닷속의 영양이 풍부한 뻘이 있기에 우럭뿐만 아니라 맛조개 등 다양한 먹거리가 많이 난다. 특히 이곳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바다가 풍성하게 내어준 것은 ‘김’이다. 송 씨도 나이 30대까지 여름에는 농사를 지었고 겨울에는 김 양식을 했었는데, 당시 광양 김은 유명했다.
송인자 씨가 청정바다 속 영양이 풍부한 뻘에서 갓 잡은 우럭조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 양식의 배경은 용지마을의 내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5년에 출판된 ‘광양시지’(光陽市誌)의 용지마을 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용 룡(龍) 자, 터 지(址) 자를 쓰는 용지마을은 옛날에 마을 앞 개천 둠벙에서 용이 머리를 내밀고 나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된다. 문헌상 처음으로 용지마을의 이름이 나타난 것은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때이다. 시대적으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은 광양현 동면에서 돌산군 태인면, 광양군 골약면과 태금면, 동광양시 태인동의 관할 지역이었다가 1989년 광양시 태인동에 속하면서 오늘날에 이른다.
용지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사람은 김해 김씨 판서공 김식(金湜 1591-1624)의 둘째 아들 김여익(金汝瀷, 1616-1660)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에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을 겪은 뒤 고향 땅, 영암을 떠나 1640년에 태인도로 옮겨왔는데,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에 해초가 걸린 것을 보고 창안한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김 양식법이다.
이 아이디어는 광양 일대 사람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었고 이후 맛과 향이 좋은 광양 김은 전국에 이름났었다. 1981년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기 전까지 태인동과 금호동은 김 주산지였고, 광양읍, 중마동, 광영동, 진상면, 진월면에서도 김 농사로 큰 소득을 올렸다. 김시식지유적보존회에 의하면, 1981년 김양식장 총면적은 약 1500만㎡, 김 생산량은 약 2천800t일 정도로 규모가 꽤 컸다.
김여익이 김 양식법을 개발·전파한 이후, 용지마을에 지금까지 약 360년 동안 계승되고 있는 전통민속놀이가 있다. 바로 ‘용지마을 큰줄다리기’이다. 6·25 동란으로 인해 40년간 중단됐다가 1993년 ‘용지큰줄다리기보존회’가 만들어지면서 고증을 거쳐 재현돼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정월 초닷새부터 집집마다 짚을 거두어 남자들이 마을 공터에서 새끼를 꼬아 팔뚝 굵기만 한 줄을 만들고 다시 이 줄 세 개를 합쳐서 더 큰 줄을 드린다.
정월 14일까지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하여 완성된 줄은 길이가 40-50m, 둘레가 150m쯤 된다. 그리고 줄꾼들 두세 명이 붙어 끌어당길 수 있도록 2-3m 되는 겉줄은 양쪽에 달아낸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용지마을 사람들은 선창 쪽에 있는 곳을 ‘선창몰’, 안쪽에 있는 곳을 ‘안몰’이라고 부르며 편을 가른다. 두 팀이 마을 광장에 모여 흥과 응원을 실어주는 농악대와 함께 큰줄다리기 대결을 펼친다.
한바탕 신나는 놀이와 함께, 김 풍작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들을 큰줄다리기에 담아낸다. 현재 마을 내 어울림센터에는 큰줄다리기 실물 전시와 홍보를 만나볼 수 있는데, 옛것을 꿋꿋이 지켜가는 위대한 전승문화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런 고향마을에서 송 씨는 21살에 한마을의 김해 김씨 후손인 남편과 결혼해 한평생 살고 있다. 그 오랜 세월과 함께해 온 친숙한 먹거리가 바로 우럭이었다.
대야 한가득 채취한 우럭을 크기별로 선별하는데 제법 큰 놈은 가로 길이가 13㎝나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껍질 색깔이 회백색으로 변하는 이 우럭을 손질하는데, ‘싹싹싹’ 칼질 3번이면 뚝딱이다. 작은 칼로 우럭껍질을 벌리고 알맹이를 떼어내고 수관을 가르면 끝. 그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이 동네 사람들이 ‘곱’이라고 부르는 얇은 비늘을 벗겨낸 후, 수돗물로 깨끗이 씻은 우럭의 내장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빼내고, 다시 물로 씻어서 꼬챙이에 수관 부위를 끼워 10개씩 말린다. 이 때 위쪽은 가늘고 뒷가장자리는 둥글게 보인다. 살랑살랑 봄바람과 함께 우럭의 싱싱한 갯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비 안 맞히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일주일 정도 말리면, 윤기 나는 미색의 우럭은 점차 황갈색을 띠게 되고 수관은 까맣게 변한다. 이렇게 돼야 제격이다.
크기가 10㎝이상 되는 우럭에서 ‘곱’을 제거한 후 내장을 살짝 빼내 꼬챙이에 수관 부위를 끼워 10개씩 말린다. 이 때 위쪽은 가늘고 뒷가장자리는 둥글게 보인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일주일 정도 말리면, 윤기 나는 미색의 우럭은 점차 황갈색을 띠게 되고 수관은 까맣게 변한다.
우럭은 갓 잡았을 때 숙회로 먹거나 시금치나물, 미역국, 된장국에도 궁합이 잘 맞아서 그 조리 방법이 다양하다. 특별히 말린 우럭으로 조리하는 그만의 메뉴가 있다. “나가 50대쯤 우럭을 어떤 식으로 하믄 맛있겠냐 하고 이런 생각이 들대. 그래서 생각난 게 조림이었제. 우리 친정 엄마는 농사짓고 살았어, 뻘에 가서 뭘 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엄마한테 배운 게 아니라 나가 스스로 깨우친 거제.”
친정엄마의 음식 솜씨를 물려받은 그는 이 마을에서 ‘우럭조개조림’을 처음으로 개발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자식들에게 해줬던 이 음식이 맛있어서 입소문이 나자 주문하는 이들이 생겨 짭짤한 수입이 됐고, 손주 결혼식 때는 이바지 음식으로 보낼 정도로 그의 자부심이 남다르다.
친정엄마의 음식 솜씨를 물려받은 그는 이 마을에서 ‘우럭조개조림’을 처음으로 개발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송인자표 우럭조개조림을 만들어 본다. 말린 우럭을 흐르는 물에 몇 번 씻은 후, 딱딱한 우럭이 말랑말랑해지도록 찜기에 넣어 센 불로 10분 정도 찐다. 찌는 이유는 말린 우럭을 물에 담가두면 본연의 맛이 빠져버리고 퍼져버리기 때문이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찐 우럭조개를 약간 볶다가 진간장, 설탕, 물엿을 넣고 중불로 볶는다. 5분 정도 자작해질 때까지 졸이다가 다진 마늘을 넣고 좀 더 졸인 후 통깨를 뿌리면 우럭조개조림 완성.
설레임 한 젓가락을 보태어 한 입 들면, 맛과 향에 한 번 반하고 식감에 두 번 반한다. 단짠단짠한 우럭에 신의 한 수인 마늘 향이 입혀져 눈이 번쩍 뜨인다. 내장 부위는 부드럽고 수관은 오징어채 느낌이지만 더 연하고 쫄깃쫄깃하며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광양 앞바다의 뻘이 품은 넓이와 깊이가 우럭에 오롯이 담겨 그 특유의 그윽한 향이 입 안에 오래도록 머문다. 용지마을 송 씨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우럭조개조림에서 광양 뻘이 안겨주는 새봄이 한가득 묻어난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