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종일 자숙해야겠다.
9월 초순에 첫 울음을 터뜨린 신생아, 나한테는 첫 손녀가 오늘 처음으로 잠실로 온단다.
성질이 급한지 미리 세상 바깥으로 나왔고, 산모인 며느리는 조리원과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잘 하다가 서울로 올라 온 지가 제법 오래 되었을 터.
오늘 잠실로 신생아를 데리고 오겠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할머니가 된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나중에 왔으면 싶다. 아직 세상바깥으로 나들이 하기에는 너무 어린 유아라는 걱정이 앞섰다.
'뭐 하러 와?'
'당신은, 손자가 아니라서, 서운해서 그래요?"
하고 아내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나를 힐끗 올려다 보았다.
'이건 아닌데, 신생아의 건강을 우려했고, 또 신생아를 처음으로 키우는 며느리가 시댁으로 오려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우려로 한 말인데...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심독술이 전혀 없는 사람이기에, '여자의 육감'을 강조하는 아내의 예견력에 회의를 가졌다.
'뭘 왜 엉뚱한 생각으로 남의 감정 영역를 들여다 봐? 순 엉터리이면서?'
내일 이빨 두 대에 금부치로 덮어 씌우는 치료가 1차로 끝나면 도로 시골로 내려갈 계획이다.
콧구멍에 고무호수를 꼽고, 그 호수관을 통해서 음식물과 약을 투입하는 투병생활을 5개 월째 지속하는 어머니를 병실에 놔 둔 나로서는 바깥나들이 가는 행위가 내논리상 어불성설이다. 자숙하는 의미로 집안에서 늘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서울 올라 온 요즘 며칠 동안 나는 조금은 일탈했다.
아파트 근방에 있는 대형서점에 나가 영농책, 건강에 관한 책을 골랐다.
오늘도 서점에 나간다면 책을 살 게다. 책 수집광에 걸린 것처럼 책 사려고 할 게다. 한푼이라도 아쉬운 내가 책을 자꾸만 사는 버릇을 잠깐이라도 자제하려면 외출을 자제하면 된다.
시골 이웃집한테서 사 온 고구마를 오늘 오전에 삶아 놓고는 외출한 아내.
나는 인터넷으로 잡글 쓰면서,뜨겁게 삶아진 잔챙이 고구마 몇 개를 먹었다.
이빨이 데일 정도로 뜨겁다. 조금은 멍청이가 된 입 안과, 혀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뜨거운데도 고구마를 삼켰다.
고구마의 시세는 장사꾼 마음대로다.
시골에서는 10키로에 2만 원. 인터넷에서는 25,000이나 30,000원을 요구한다.
어제 귀가하면서 둘러 본 대형마트에서는 100그램에 670원에서 700원까지 정찰가로 판매하고 있었다. 10키로에 67,000원이나 70,000원 한다는 뜻이다. 굉장히 비싼 금액이다. 하기사 돈 많은 도시소비자한테는 이 금액이 적당할런지도 모르겠다.
2.
위 제목이 좀 그렇다.
절반은 성공한 농사꾼이라고? 내가?
순 거짓말이다. 아마 10%는 성공했을 게다.
인터넷 통신판매망에서는 돼지감자(뚱딴지)가 10키로에 25,000원으로 판매한다고 게시되었다.
내 텃밭 일부를 완전히 점령한 그 흔해빠진 돼지감자다.
재배하기가 무척이나 수월한데도 판매가격은 제법 고가로 판매된다는 뜻이다.
돼지감자가 주식인 쌀보다도 훨씬 비싸다는 뜻.
지난해 쌀값은 1키로당 2,100원도 채 안 되었다.
올해 쌀값는 아마도 2,200원쯤으로 책정낙착될 전망이다. 80키로 한 가마당 177,000원 정도라고 미리 발설했다. 올 해의 가격으로는 쌀 10키로에 22,000원 쯤이고, 개인이 정하여 파는 돼지감자는 25,000원이다. 돼지감자가 더 비싸다는 뜻. 식품의 위치가, 주객이 전도되었다.
시골집 내 텃밭 여기저기에는 돼지감자가 제멋대로 번식 중이다.
퇴직 직전 대전 누나가 씨알 6개를 내게 주었다. 해마다 그 씨알을 증식시켰더니만 이제는 지나치게 많이 번식되어서 텃밭을 완전히 점령하려고 작정했다. 때로는 집 주변 이웃들의 잔치가 되었다. '그냥 다라도 캐 가세요.'
돼지감자는 당뇨병 환자가 먹으면 좋다고 한다.
당뇨병 환자인 나로서는 아주 적당한 식재료일 터. 하지만 내 뱃구레(뱃속)가 얼마나 크겠어? 일정량만 먹으면 금새 배가 불러 올 터. 그 맛대가리가 지독히도 없는 돼지감자를 마냥 먹고 마실 수는 없을 터. 내가 먹어치워야 할 양은 이미 정해졌다는 뜻.
남한테 나눠주어도 내 밭에서 소출되는 양은 훨씬 많을 터.
지난해 가을 돼지감자 재배면적을 줄이려고 매면서 잔챙이 씨알을 낱낱히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땅 속에 콩알만한 씨알이 남았는지 올해, 지금은 또다시 온통 돼지감자 줄기로 밭 여러 군데를 뒤덮혔다.
돼지감자로 보면 나는 농사짓는 데에 이골이 난 것처럼 성공한 것으로 보여질 게다.
처음 씨알 6개를 심었는데, 지금은 처치곤란할 정도로 무지하게 많이 증식되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작물은? 무척이나 많이도 죽였다.
종자값도 못했고, 처음 사 온 모종의 숫자도 건지지 못한 작물과 화초, 과수목들이 수두룩.
일전 풀밭이 된 텃밭 속으로 들어가 키를 넘는 잡초를 베어냈더니만 그 속에서 키 낮은 돌단풍 모종 여닐곱 포기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그게 어떤 식물인지 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간 곰곰히 생각하니 이름이 생각났다. '돌단풍'.
두어 차례 장에서 사다가 심어서 증식되기를 기다렸던 돌단풍. 그런데도 내 눈에는 예닐 곱 포기만 보였다. 뭐야? 대부분 죽였다는 뜻이잖아?
올 봄이던가?
당진 동창네의 결혼이 서울 남산 한옥에서 있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한옥마을 뒤편의 작은 쉼터를 둘러보았다.
자잘한 흰꽃이 핀 돌단풍. 양짱은 그 돌단풍을 슬쩍 뽑아서 나한테 건네 주었으나 나는 거절. 시골집에 있으니까.
양짱은 돌단풍을 손수건에 싸서 가져 갔다. 그 뒤로는 그 돌단풍이 화분에 심겨져서 제대로 재배되는지의 여부를 묻지도 못했다. 생각이 안 났으니까. 양짱이 가져 간 돌단풍이 지금도잘 크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양짱이 산야초에 지식이 있었면 벌써 다 뜯어 먹을 수도 있겠다. 돌단충의 잎, 줄기, 꽃은 좋은 식재료이니까...
3.
꿈같은 며칠 간의 휴식기간도 곧 끝나 간다.
내일 시골 내려갈 계획으로... 오늘은 서울 잠실 집에서 쉰다.
잡글 쓴다. 아무 쓰잘데기 없는 신상일기일 뿐.
반쯤 성공한 이면에는 또 절반쯤 실패한 이야기도 많을 터.
나중에 조금씩 꺼내야겠다.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지금은 조금 지친다.
2014.10.26.일요일. 바람의 아들